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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가장 친밀한 것들을 잃고 가장 먼 곳에서 기대 없이 받은 위안들.
따뜻함.
외로운 감정들의 느슨하고도 열렬한 연대.
이상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하다가 어느 순간 내가 나를 문득 받아들이게 되기.
이것들은 지난해, 결핍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무엇보다도, 세상과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 배우게 되었다.
그냥, 그냥 사랑해주면 안 될까. 아이처럼.
사람들은 아이들이 태어나면 걸음마만 떼도, 탈 없이 건강하기만 해도, 방긋 웃기만 해도 사랑해준다.
난 묻고 싶었다. "어른들도 그렇게 사랑해주면 안 돼요?"
왜 안 돼? 어른들은 꼭 '조건 있는' 사랑만 받아야 하나?
어른들도 서로 좀 그냥 예뻐해주고 사랑해준다면 좋을 텐데.
아무튼. 사노 요코의 이 책은 생활의 구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느낌으로 가득한 책이다. 어린 시절 이야기와 회상도 많이 담겨 있고. 담담하게 그때그때의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좋다.
그는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많이 힘들었지" 하고 한마디 건넸다. 나는 그 한마디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는 먼 친구였다. 그 한마디는 그가 먼 친구라는 사실을 명확히 말하고 있지만, 그 먼 우정이 나를 감동시켰다. 진정으로 나를 지탱해준 우정의 테두리 너머에 있는 먼 우정은 멀리 별을 보고 우주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_47, 48
아무리 고통스러운 때가 있었어도 사람은 시간을 아쉬워한다. 시간을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아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시간은 돈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낭비하지 않는 사람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시간을 아무렇게나 쓰고 싶다. 시간에 쫓기거나 시간을 좇고 싶지 않다. _65
미술 대학교에 다니면서 친구 몇 명은 그림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런 착각이나 자신감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보통 사람으로서 그림을 계속 그렸고, 사람들 대부분 보통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보통 사람도 저마다 소중한 자신임을 깨달았다. 보통 사람이 보통인 자신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_159
그럴 때, 모든 것을 같은 높이에서 몰입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어떤 외로움도 노을이 타는 낯선 마을에서 미아가 된 다섯 살짜리 나의 울음과 고독의 격렬함 앞에 색이 바랜다. 그처럼 기쁘고 슬펐던 생활을 빼면 머릿속에 상상력이 생기지 않는다. 기저귀를 가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 비닐봉투에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구별하는 게 아니다. 구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상상력은 난처한 일을 산더미처럼 안고, 남들이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 생활을 평범하게 쌓아가며 얻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_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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