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장바구니담기


하지만 소박하고 악의 없는 상식적 희망마저도 악마적 결론을 낳을 수 있다. 한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생각해보자. 개인은 소박한 꿈을 따를 뿐이지만, 부자 되기가 유일한 상식이 되는 순간 몰상식이 시작된다.
상식과 상식이 서로 견제할 때는 몰상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하나의 상식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비상식적 사건을 낳을 뿐이다. 부자 되기가 다른 상식을 모두 먹어치우고 유일한 상식으로 등극하면, 상식은 괴물이 된다. -26쪽

소비자본주의는 수치심 자극이 그 어떤 판매 기법보다 효과적임을 알아챘다. (...)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던 이마의 주름이 창피해진다. 유행에 뒤떨어진 옷을 입고 나서면 망신스럽다. 휴가를 해외로 다녀오지 않았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골프는 쳐야 하고, 등산복의 소재는 최소한 고어텍스여야 한다. (...) 소비주의 사회에서 '체면'이란 관념적 상태가 아니라 소비 수준의 증명이; 된다. -140쪽

통속적인 인정의 개념으로는 종업원의 불친절에 화가 난 손님이 매니저를 불러 '손님은 왕'이라고 소리지르는 '리얼 진상'의 풍경,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임원으로부터 호감을 얻기 위해 노래방에서 머리에 넥타이를 두르고 탬버린을 치며 "부장님 최고!"를 연발하는 가련한 장면만이 떠오르지만, 미식가의 감정을 거친 인정이라는 개념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세상은 다르다.
인간은 배부르면 만족하는 돼지가 아니다. 아무리 위장이 꽉 차 있어도, 자기 존엄이라는 그릇이 비어 있다면 인간은 만족할 수 없다. -207쪽

매우 억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있다. 아저씨 혹은 아줌마라는 호칭에서 누구도 품격과 인격을 연상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아저씨와 아줌마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명사는 뻔뻔함, 능청스러움, 악착스러움 등이다. -239쪽

양적 팽창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한 '성장'이 '성숙'을 대체하여 삶의 목표가 되는 사회에선, 배움조차 성숙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수단이 된다. (...) 전 국민이 죽어라 공부하고 졸업 후에도 승진하기 위해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지식사회의 외양은 갖추었어도 성숙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린 사회에서 배운 사람과 성숙한 사람은 일치하지 않는다.
성장과 성숙이 일치하지 않은 사회에서 교육은 위인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의 생산 공장으로 전락한다. -24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