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진짜 돈이 아쉬워서 백화점에 진열된 초경량 패딩파카를 쳐다보기만 할 때 큰오빠는 엄마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 (...) 며칠 전 엄마와 백화점에 동행했을 때 엄마가 상품권 다발을 휘두르며 용맹을 떨치고 매장 직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여러 해 묵은 쇼핑의 원한을 푸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자, 큰오빠는 이제야말로 엄마에게 용돈을 드릴 때가 왔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이 간절하게 돈을 필요로 할 때는 결코 주지 않으면서 돈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더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치약이나 샴푸를 선물로 받는데,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권 봉투가 자꾸만 선물로 들어와서 수천만원씩 서랍에서 썩어갔다.-230쪽
내 눈물은 또 한번 깨어진 내 동경을 향한 것이었다.
성민에게 언제나 현실적이기를 요구했으면서, 막상 그가 현실을 역설하자 내 가슴속에서는 날카로운 자상이 느껴졌다. 성민이 꾸고 있던 꿈이 단도가 되어 내 복부를 깊숙이 찔렀다. 나는 내가 성민과 결혼했던 것, 이제까지 별다른 갈등 없이 평화롭게 살아왔던 것이 모두 동경이라는 기반 위에서 이루어져왔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달았다. 그것은 무심하고 고지식한 이공계 남자에 대한 동경, 수학적 계산에는 귀신처럼 빠르면서 현실에는 곰탱이처럼 약삭빠르지 못한 순수한 모범생에 대한 동경이었다. -2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