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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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죠? 알면서 그러는 거죠.  

내가 말을 안 한다면 그건 못 하는 거잖아요. 말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  

하지만 당신이 침묵한다면 그건 안 하는 거잖아요. 알면서 안 하는 것.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내 마음은 비로소 편안해진다. 시간의 여백을 어떻게 채울지 몰라 늘 허둥대는 나에게 그럴싸한 핑계라도 생기는 것이다. 그 여백, 꼭 채우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그대로 있으면 되는데, 어리석게도.  

기삿거리를 찾아야 한다.  

뭔가 써야 한다.  

그러나 '얘기 되는' 것들을 찾아야 하는, 그런 것들만 써야 하는 기사의 이면에 우리 생의 진실이 있다. 대부분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드러내야 하고, 기삿거리도 못 될만한 소소한 일상의 아픔은 가차없이 잘라내버려야 하는 것은 기자의 아픔이다. 뻔한 얘기지만, 기자도 사람이다. 생이 기사처럼 기승전결로 구성되거나 꼭 센세이셔널하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쓰이는 것 이면에 더 많은 이야기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좀 말하지 않을 수 없을까.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좀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야, 장기매매 같은 건 기사 쓰지 마. 내가 다 갚을게. 넌 쓴 기사보다 안 쓴 기사가 더 좋다. 그게 더 진실돼. 안 그래?  

-야, 길게 쓰지 마. 지방판 2단이야. (...) 그리구 너두 쉬어. 거기서 쉬라구. 

(...) 서북경찰서 야간 당직사건 중에는 기삿거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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