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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평점 :
그런 말들이 있다.
현실이 그런 걸 알지만, 현실이 그런 걸 알기 때문에, 누군가가 애써 부정해주길 바라는 말들.
이를테면 이런 말.
"난 사랑을 믿지 않아. 너도 똑같아."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성이 있다면, 곧이듣지 말 일이다. "아니야, 사랑은 있어. 난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난 영원히 널 사랑할거야."
뭔가를 부정하는 말, 뭔가를 외면하는 눈빛. 그건 때때로 간절히 그것을 바라는 자의 역설적인 몸짓이며 그걸 더 확실히 보여달라는 어리광일 때가 더 많다. 우리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타인의 승인을 기다리고 타인이 확신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절반은 뼈저린 현실을, 그리고 절반은 부정 속에 꼭꼭 숨겨둔 언젠가 꼭 찾고 싶은 희망을 보았다.(이 희망은, 저자가 싫어하듯 누구나 쉽게 말하고 외치는 희망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느꼈던 건, "이 사람, 정말 끝을 두려워하는 사람이구나. 생의 끝이든, 사랑의 죽음이든. 그 모든 끝을 두려워하는 사람이구나."
사랑의 환상이 깨지고 일상에 잠입해들어가는 게 보기 싫어서 사랑을 중단한 사람, 누구와 사랑을 시작할 때든 사랑이 영원하진 않음을 상대방에게 각인시키려는 사람. 그렇지만 어쩌면 그건, 영원을 갈구하는 마음은 아니었나. 이 세상에 비범한 한 사람의 존재로 남고 싶었던 열망은 아니었나. 어쩌면 그는 사랑의 완벽한 보존을 위해 절정에서 사랑을 멈춘 채 외면했을 터이고, 영원하길 바랐기 때문에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끝을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본인은 책에서 내내 그걸 강하게 부정하고 있지만.
인간이란, 보통의 존재임을 깨달을 때 철이 드는 것이겠지만 누구나 또 그 보통을 끊임없이 넘어서고 싶은 열망을 버리지 못하기에 괴롭고 고독한 존재일 것이다.
끝으로 덧붙이는 말.
책엔 아주 유용한 충고가 두 번 반복해서 나온다.
사랑상담을 하는 자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그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그럴 수가 있어?"
이해하려 들 필요가 없다니깐. 너가 느낀 게 정답이야. 너가 그렇게 느꼈으면 그게 진리야. "그 사람이 요즘 바빠서" "무슨무슨 이유 때문에" 하고 스스로를 이해시키려 들지 마. 그건 거짓이야.
요약. 누군가가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뭐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