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앓이, 사슴앓이 하는데, 사슴앓이가 뭐지?" 비단 저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수습 기자들이 경찰서를 돌며 제일 처음 듣는 말. "오늘부터 넌 사슴앓이야" 그때 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매일 밤, 그리고 동도 트지 않은 겨울 신새벽에 경찰서 도는 일이 너무 힘겨워서 그래서 사슴앓이라고 부르는구나. 뭔가 연약한 생명체가 아파하는 느낌. 그만큼 고통스럽다고 해서 사슴앓이로 부르는구나. 물론 그 '사슴앓이'가 사실은 '사쓰마와리', 즉 경찰출입기자를 지칭하는 기자계의 은어라는 것은 얼마 후에 바로 알 수 있었지만요.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사쓰마와리는 사슴앓이가 맞는 것 같습니다. 연재됐던 김훈 선생님의 <공무도하>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는 동안 사쓰마와리가 왜 신출내기 기자들에겐 사슴앓이로 느껴질 수 밖에 없는지 실감했으니까요. 아마 책을 읽는 사람들 중 언론계 종사자라면 너도나도 무릎을 팍 치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 업계의 뻐근함과 가슴시림에 공감하며 아마도 그렇게 하겠지요. 경찰서란 곳은 정말 신기한 곳입니다. 어느 직종에 발을 들이든, 그곳에 입문하는 순간, 지금껏 봐온 세계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세계의 이면을 보게 되죠. 김훈 선생님께서 마음으로 묘사하신 부분, 하나하나 정말 맞아요. 형사계 장부에 쭉 나열된 간밤의 사건사고 늘 "조용해. 조용하다구"를 연발하며 "오늘도 술먹고 단순 폭행 이런 사고밖에 없었어. 늘 있는 일이잖아"를 말하는 형사들. 각다귀처럼 달려드는, 그들 눈에는 아직 뭘 좀 잘 모르는 신입 기자들이 귀찮고 그러나 수습기자들은 소위 '이야기 되는' 뭐라도 하나 물어가기 위해 형사들의 잠을 방해하고 짜증섞인 말을 들으며 끝없이 질문을 해대고... 차라리 매일 아침 경찰서의 풍경은 조금쯤은 지루하고 조금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거기에 삶이 있습니다. 수치화하면 그래프로 요약될 뿐이지만 법리를 적용하면 그렇고 그런 판례가 될 뿐이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하게 끝날 수 없는 개개인의 삶이... 가장 흔한 사건. 음주하고 폭행하여 쌍피가 발생했다고 한들 그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었는지 아는 사람 누구일까 평생토록 오봉순이만 하다 도심 변두리의 어느 모텔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여급의 변사체를 찾은들 가족도 연고자도 나타나지 않는데 이건 너무 흔한 일이라 한줄 기삿거리도 못 되고... 그러나 그 여인의 삶을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일까 그런 의미에서 경찰서는 마음 없이 보자면 가장 진부한 사건이 매일매일 접수되는 곳인 동시에 가장 뜨겁고 비루하며 진지한 사람들의 인생이 매일매일 요약되는 곳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독자로서, 김훈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되네요. 역시나 선생님께서는! 결코 단신이나 박스기사로 처리될 수 없는 삶의 무늬를 소설 속에 아로새겨놓으셨구요. 세상은 여전히 사슴앓이 중. 혹시라도 날선 질문을 하면 누군가가 상처받을까봐 들이밀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던 어느 소시민의 선은 이제 활자에 가 박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