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더 나이트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자꾸 시니컬해질 때가 있다.
... 그럴 것 까지야
... 그렇게 흥분할 것까지야
본질을 꿰뚫어본다는 건 힘든 일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눈을 가리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종종 지위와 자기자신을 혼동한다. 자기가 속한 곳, 그곳에서 자신의 직위. 혹은 자신이 가진 것들. 그게 곧 자기자신이라고 혼동한다.
아이히만은 죽을 때까지 나치가 주입한 생각을 줄줄 읊어대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주입된 인간이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게 마비된 인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더나이트>는 말 그대로 냉소의 가볍고 서늘하고 따뜻한 힘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
48.
공원은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놀아도 될 만큼 널찍했다.
그 작은 에덴동산에서 아이가 외치는 짤막한 노랫소리가 종종 들려왔는데, 매번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감미롭고도 구슬픈 그 노래는 이제 술래잡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으니 아직도 숨어 있는 사람은 모두 나오라는 뜻이었다.
그 노래는 이러했다. "올리 올리 옥스 인 프리."
나는 나를 해치거나 죽이려 들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숨어 지내는 처지에서 종종 누군가가 나에게 그 짧은 노래를 불러주기를, 그래서 이제 나의 끝없는 술래잡기가 끝났음을 알려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올리 올리 옥스 인 프리"
234.
어둠 속에 앉아 내가 했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충격에 빠지지 않았다. 그때 식은땀을 흘렸다거나 그와 비슷한 어떤 반응을 보였다고 말한다면 내 변호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항상 내가 한 일을 알고 있었다. 또한 항상 내가 한 일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현대인이 널리 향유하는 아주 단순한 혜택, 정신분열증 덕분이다.
---------------
하워드 w 캠벨 2세.
비록 미국의 첩보원으로, 나치가 되었지만
그는 나치가 한 일에 가담했으며, 자신이 한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미국도, 독일도 그를 지켜주지는 못했으며
사랑조차도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가 그 자신 외에 누구를 믿겠는가. 그러나 그 자신조차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유머가 유쾌한 점은 그가 끝없이 의심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자신과 자신이 했던 일을 멀찌감치 떨어뜨려놓고 거리를 자꾸 만들면서 반성하고 성찰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웃고 싶다면. 그리고 함께 생각하고 싶다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