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던 나날, 그 후
츠지도 유메 지음, 이현주 옮김 / 모모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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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 말보다 믿지 않는다, 말이 세련된 감성처럼 여겨지는 시대에도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이야기. 쉽게 믿기지 않아도 믿고 싶고, 어떤 날에는 충분히 그럴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이야기가.

 

 

여기 빠뜨린 물건을 다시 사기 위해 집을 나서는 남자가 있다. 지루할 정도로 오래 가던 장맛비가 멎은 . 그는묘한 타이밍 운이 좋다는 혼잣말을 하며 낡은 빌라를 나선다. 그저 없이 지나가는 듯했던 말에 걸린 반전은 소설 후반부에 가서나 밝혀진다. 바로 타이밍에 그가 하려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 헌신>에도 그런 타이밍이 나온다. 혼자 사는 방에 줄을 걸고 목숨을 끊으려던 바로 그런 순간이. 그때 그를 찾아온 이웃으로 인해 이야기는 새로운 길을 내고 끝내 사랑이 무엇인지를, 때로는 사랑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인간이 어디까지 있는지를 보여준다.

 

 

바로 묘한 타이밍 남자, 유즈루를 찾아온 노란 모자의 아이. 그와 아이의 인연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감응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를 성숙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더디게 흘러가던 삶의 속도를 다시 따라잡고, 일어나 창을 열고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살아서, 다시 만나자 말이 오랜 여운을 남기는 소설. 소설 속의 문장처럼 하나의 미스터리를 사람의 인생 속에서 어김없이 풀어내기 위해서는 살아서, 만나고, 기억해야 한다. 이미 실패했으나, 지나간 시간을 고쳐 읽으며 다시 떼는 첫걸음.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비로소네가 있던 나날, 시간을 온전히 다시 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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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질량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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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표지에는 깊은 물에 뛰어든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짙은 푸른색으로 표현된 이 물은 이 사람을 잡아당기는 무겁고 깊은 마음속 어둠인 것만 같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 깊은 어둠 속에서 반사되어 밝은 빛이 드러나는데, 절망한 사람의 심연에도 빛이 비출 수 있다는 의미로 나는 상상력을 더하여 해석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가는 사후세계.

이곳 사람들은 목뒤에 몇 겹이나 되는 매듭이 묶여 있다.

이 매듭을 풀어야 이곳을 떠나 진정한 안식을 찾을 수 있다.

목뒤의 매듭은 자신이 직접 풀 수 없고, 사람들과의 유대를 통해서만 풀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과 아무리 깊은 정을 나누어도 매듭은 최대 두 개까지만 풀 수 있다.

자신의 매듭을 풀려면 어쩔 수 없이 더 넓은 세상 속으로, 더 많은 사람들 속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팍팍한 현실에 지쳐서,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죽음을 선택했고, 이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사후세계는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유대가 더 강조되는 사회였다.


서진이 대학생일 때, 서진의 어머니는 막내 동생만 데리고 사라졌다. 둘째 동생과 집에 남겨진 서진은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가려고 아르바이트를 몇 탕이나 뛰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었다. 몇 년 뒤 어머니는 막내 동생과 함께 돌아오지만, 늘어난 가족수만큼 갚아야 하는 빚도 더 늘었다.

대학 동기들이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을 때, 서진은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더 늘려야 했다. 결국 취업에 실패하고 자신을 불러준 선배의 학원에서 조교로 일하게 된다.

서진은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 자신과는 너무 먼 나라 사람처럼 느껴지는 애인 곁을 떠나 대학 선배 장준성과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의 도피처나 더 나은 삶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 남편에게 매를 맞고 가스라이팅을 당하다가 서진은 강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이곳 사후세계에서 첫사랑, 이건웅을 만났다.

그리고 서진의 전 남편, 장준성도 먼발치에서 발견했다.

이들은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매듭을 풀어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을까.


삶의 무게, 인간의 무게.

이 책에서는 이런 무게를 의미하는 단어로 흔히 쉽게 떠올리는 '중량'이 아니라 '질량'이라는 말을 내세운다.


가끔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데 왜 나는 이렇게 불행한 걸까, 자기 연민에 빠져 한탄할 때가 있다.

불행의 크기를 굳이 남과 비교하며 나보다 훨씬 작은 아픔과 불행에도 비명을 지르는 이들에게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작가는 우리가 다른 중력이 작용하는, 다른 사람의 행성에는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모두 같은 질량이지만 거기에 더해지는 중력 때문에 어떤 이는 더 무겁게, 어떤 이는 더 가볍게 견뎌내며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우리 행성에 가해지는 각기 다른 중력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질량을 알게 되지 않을까.


자살과 사후세계, 목뒤에 매인 매듭을 풀어야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우리의 삶을 질량과 중량으로 나누어 설명한 대목에도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할까.

그냥 다 놓아버릴까.

이런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 한 번쯤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 포스트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무게와 질량. 무게는 중력가속도의 영향을 받고 그래서 중력 가속도가 클수록 무거워지지만 질량은 모든 행성에서 동일한 값을 가진댔지, 그러니까.

각자에겐 서로 다른 세기의 중력을 가진, 각자의 마음이 머무는 행성이 있어. 아무도 모르고 오직 저만 발을 디뎌보았기 때문에 그 중력이 얼마 정도인지는 저만 느껴보았지만 동시에 아무도 서로의 행성에 방문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의 중력을 알지 못해. 나는 누군가의 행성에서는 내내 둥둥 떠다니느라 누군가에게 달음질치지도 못할 테고, 또 다른 누군가의 행성에서는 온몸이 납작하게 짜부라 들어 행성의 주인이 결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게 될 거야." (323쪽)

"나는 내 짐이 가장 무겁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내 행성의 중력이 가장 센 까닭이었을 수도 있어. 나는 저 사람의 짐이 가볍다고 생각했지만 내 짐을 저 사람의 행성에 옮겨 놓으면 깃털 같은 무게감만 가지게 될 수도 있단 말이야."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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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바이블 - 작가라면 알아야 할 이야기 창작 완벽 가이드
대니얼 조슈아 루빈 지음, 이한이 옮김 / 블랙피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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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바이블』은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


이야기를 짜는 기본 원칙을 플롯, ② 등장인물 배경, 대화, 주제의 세 가지로 분류한다.


각 장의 소챕터는 훑어보기로 간략한 내용 정리, ‘원칙으로 심화 학습, ‘대가의 활용법으로 실제 적용되는 사례를 해설한다. 마지막에는 미니 퀴즈로 이 챕터에서 익힌 원칙을 짤막한 상황 퀴즈를 통해 독자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짚어볼 수 있다.


스토리텔링 바이블』 에서는 어려운 말이나 전문 용어를 쓰지 않고 독자가 쉽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한다.


예를 들어 1장의 망치를 내리쳐라가 그렇다. 글의 초반에 망치를 내려쳐서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고, 앞으로 펼쳐질 스토리를 기대하게끔 한다. 그리고 왜 망치를 내리쳐야 하는지 그 이유를 꼼꼼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대가의 활용법으로 제시하는 소설, 드라마나 영화도 일반 독자에게 잘 알려진 예시를 활용한다. 고전소설인 셰익스피어의 『햄릿』부터 『사우스 파크』와 같은 애니메이션도 등장시킨다. 또한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같은 청소년들도 잘 알 만한 스토리를 각 장의 원칙에서 제시한 주제에 적용한다.


소설, 영화, 드라마를 감상할 때는 그냥 지나치곤 했던 장면을 스토리텔링에서 등장인물의 성격, 필연성, 독자의 공감대를 어떻게 부여하며 살을 붙여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는지 그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다 보면 자가가 왜 이런 설정을 했는지 그 숨겨진 의도도 함께 배울 수 있어 작가의 입장에서 스토리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과 재미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스토리를 구성하는 방법을, 그리고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려는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 하더라도 새로운 독서의 관점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보람이 있을 것 같다.


*본 포스트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망치를 내리쳐라

수많은 작가들이 번뜩이는 영감 한 줄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야기 설정을 제대로 못 해서가 아니라 길을 잃어서 그만두게 된다.

18쪽. 1. 망치를 내리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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