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불안한가 - 하드 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시즘의 사회학
에바 일루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 사랑은 왜 불안한가: 하드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즘의 사회학-에바 일루즈>

 

-베스트셀러의 사회학

다수의 대중문화 분석 텍스트들은 특정 매체의 성공이 사회상 혹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단심리의 반영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시작한다. 예컨대 극한직업의 예상치 못한 흥행이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에 지친 한국 사람들의 욕구를 건드렸다던가 하는 분석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분석에 필요 이상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공감하기 어려웠다-특히나 별다른 생각 없이 오늘의 시간 때우기로 감상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는-. 다만 마케팅적 요소, 마케팅 이외의 외부 작용, 불규칙적인 입소문 등 다양하고 불측적이며,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흐릿하게 드러나는 흥행 요인들 속에서 무언가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인문학적인 시도 역시 그것의 정합성을 떠나 필요한, 혹은 할 수 밖에 없는 작업이라는 것에는 동의했다. 대중문화 분석이라는 학문적 영역 안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시대의 반영일까? 실은 그저 흥행이라는 결과의 시대의 분위기를 연결한 결과론적 해석인 것은 아닌가?

<사랑은 왜 불안한가> 1장의 베스트 셀러 분석과정에 대한 설명은 이렇듯 약간은 회의적인 입장에 있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유도하는 안내서가 되어준다. 다시 말해 에바 일루즈의 설명이 나에게 매체를 통한 사회 분석(혹은 사회를 반영한 매체분석)의 과정이 비단 결과론적인 해석만은 아님을 납득하게 해주었다는 의미이다. 영화와 음악보다도 더 개인 내적인 감상의 과정을 겪는 책이라는 장르에서 더욱 그렇다.

책의 내용을 다시 언급할 필요 없이 1장의 분석과정은 정밀하다. 한권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가는 국면을 각각의 시장원리로(27p) 분석하고 그 틀에 따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작용한 사회 요인을 밝힌다. ‘남성과 여성의 성관계를 특징짓는 문제들을 드러냈고, 사도마조히즘을 그 해결책으로서 제시했다. 결국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고전적 주제와 이야기 구조를 현대의 사회 모순에 접목하여 세련되게 표현한 성생활 자기계발서로서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이와 같은 엄밀한 분석의 토대에서 이제 에바 일루즈는 그렇다면 그 성공이 보여주는 우리 시대, 그 중에서도 남녀 관계에 투영된 사회적 욕구가 무엇인지를 밝힌다.

-승리게이트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서구권의 반향이 국내에까지 크게 전파되지는 않았다. 모 신문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아직 BDSM이라는 가학적 소재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라 하는데 정확한 분석인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다른 자극적인 것들이 많아서 트와일라잇 동인지 느낌의 상업소설에 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분석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그것에 대한 다양한 관심의 표출 지향을 살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실제로 에바 일루즈의 분석틀은 베스트셀러를 한국의 가십으로 바꿨을 때 어느 정도 통용이 되는 듯 하니까 말이다. 승리 게이트는 사소한(?) 신체적 다툼에서 시작되어, 경찰 유착, 불법 마약 유통, 탈루와 거물급 인사(총경 혹은 그 너머)와의 유착 관계까지 퍼져나가다, 이제는 연예인들의 문란한 성생활과 몰카라는 지점에 멈춰 서 있다. 이 사안이 그 어떤 정치적 문제들보다 섹스스캔들로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들의 전폭적인 관심 덕분으로 보인다. 남성들은 겉으론 그들을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자신들의 성적 상상을 충족시킨다. 정준영이 누구와 얼마나 잤는가의 문제와 그에 대한 열광은 소비문화로서의 섹스, 인정 수단으로서의 섹스가 남성의 가치를 드러내는 기준임을 암시한다. 그레이의 BDSM에 대한 열망이 물뽕과 연예인의 섹스라는 소재로 치환 됐을 뿐이다. 단순히 한 연예인의 문란한 성생활이었다면 아마도 남성들의 욕구를 자극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율적 주체-남성들의 판타지이던 연예인들-라고 생각하던 이들이 정복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주는 쾌감이 남성들로 하여금 그 가쉽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에바 일루즈의 분석대로 자유와 소비문화 속에서 해방된 섹스가 특히나 지배적이었던 남성들에게 더욱 더 인정 투쟁을 이끄는 하나의 도구로 자리 잡았음을 현재 한국 남성들의 관심 지형을 따라가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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