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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평점 :
'사람에게 혼 따위가 없다면, 이 세상에 표류 하는 영혼 따위를 믿지 않는다면, 고인이 묻힌 표지나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일 때마다 대체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인가.'
-45쪽
여성 월간지를 발행하는 출판사에 유령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주인공 마쓰다는 시모키타자와로 가서 열차 건널목에 출현한다는 유령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다. 제보자를 취재하고 돌아온 날 새벽, 마쓰다에게 기이한 전화가 걸려 온다.
‘마쓰다는 엉겁결에 수화기를 내려놨다. 목덜미에 난 털이 꼿꼿이 솟았다.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았던 그 목소리는 연기로 낼 수 있을 만한 음성이 아니었다. 실제로 죽음이 임박한 인간만이 내뱉을 수 있는 소리였다.’-73쪽
마쓰다는 아내가 죽자 다니던 신문사도 그만둘 만큼 상실감에 빠져있다. 심령 취재를 마뜩찮아 하면서도 사람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신중하게 반응한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찍힌 영상, 급정거하는 열차, 누군가를 보고 경악하는 사람들. 끔찍한 신음이 들려오는 전화 등 어떤 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마쓰다의 행보를 통해 인과(因果)를 가지는 과정이 특히 흥미롭다. 피해자는 그날의 비극이 반복 재생되듯 끝나지 않고, 그 고통이 결국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무섭고 섬찟하게 느껴졌다. 현실감이 있는 공포랄까. 작가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이라 전작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피해자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맞닥뜨리는 부조리함에 분노하고 때로는 허탈해 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집요하다기보다 용기나 인간애에 가까워 보인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 적지 않은 분량인데도 잘 읽힌다. 담백하고 건조한 문장에 가까운데 읽는 내내 다음 장이 궁금해졌다. 그 힘으로 마지막 장까지 쉼 없이 달릴 수 있다.
‘정상적인 판단력과 합리적인 사고로 인지되는 세계만이 현실이라면, 비합리적인 관념으로만 감지되는 세계는 없는 것인가?’ -121쪽
(참고. 책을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사람에게 혼 따위가 없다면, 이 세상에 표류 하는 영혼 따위를 믿지 않는다면, 고인이 묻힌 표지나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일 때마다 대체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인가.‘ - P45
‘정상적인 판단력과 합리적인 사고로 인지되는 세계만이 현실이라면, 비합리적인 관념으로만 감지되는 세계는 없는 것인가?’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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