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일지 실천문학 시인선 27
옥빈 지음 / 실천문학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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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링을 갈며/ 옥빈

 

 

 

축의 중심을 잡는 일이나

안아주고 지탱해주는 하우징처럼

사랑의 시작은 뭉클하다

 

틈새가 벌어지는 일

둥글게 부대끼며 사는 동안

닳아진 볼처럼

사랑도 나이를 먹는다

 

속이 거북해진 날들이 더해가며

토해내었던 각혈처럼

사랑도 아플 때가 있다

 

축에 베어링을 맞추고

하우징을 조립한다

이 몸살 같은 사랑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이 시는 기계사랑이라는 두 축으로 축조한 건축물이다. 씨실과 날실을 엮어 한 벌의 옷을 직조하듯 기계사랑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아름답게 완결되는 한 편의 시를 위해 복무한다.

  딱딱하고 차가움으로 상징되는 기계와 뭉클하고 따뜻한 속성을 가진 사랑이라는 두 구조물은 반대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서로 대척점에 놓여있지 않고 오히려 긴밀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베어링을 갈며라는 공통된 연결고리가 시의 두 축을 탄탄하게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기계사랑이라는 이질적 질감의 교직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작위적이거나 난데없이 툭 불거져 나오는 불편함과 어색함이 없다. 담담하면서도 정돈된 진술이 오히려 묵직한 정서적 파동을 일으키며 독자를 아프게 흔들어놓는다.

  두 축의 짜임새가 강골로 축조한 건축물이라 14행밖에 안 되는, 짧다면 비교적 짧은 시 한 편의 근수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중량감 속에는 타자를 대하는 자세와 생의 페이소스를 품고 있어 독자는 종래에 몸살기처럼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통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집 업무일지에서 기계장비와 부품들과의 교감을 통해 삶의 희노애락을 진솔하게 그려내는 시인 옥빈의 시는 아프고도 따뜻하다. 우리 삶의 전() 과정이 녹아든 시의 보편적 정서가 그러하지 않던가만은, 이 시가 유독 독특한 페이소스를 발산한다고 느낀다면 기계라는 사물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 사람 간()의 사랑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와 맞물려있다는데 기인한다고 하겠다.

  기계 축의 중심을 잡아주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하우징 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기계가 원활이 작동하고 사랑이 원만히 유지되는 원리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기계장비와 부품들이 결코 일회성의 소모품이 아니며 차갑거나 딱딱한 성질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을 공구와의 교감을 통해 보여주며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가치를 복원한다. 또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사랑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사유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돌아보게 하며, 사랑을 지키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때만 비로소 사랑 안에 거주하게 된다는 평범한 이치를 깨닫게 한다.

  기계도, 사랑도 세월 따라 늙는다. “둥글게 부대끼며 사는 동안서로 물고 물리며 돌아가다 보면 자신을 지탱해주는 또 다른 한 축을 갉아먹게 되고 서로를 붙들어주던 힘도 느슨해진다. 조임이 헐거워지면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궤도를 이탈해 작동을 멈추는 사단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전조가 발생하기 전에 타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테면 닳아진 베어링을 갈아주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베어링은 회전축을 지지하는 것으로, 축의 위치를 확보하고, 마찰 저항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가할 상처를 줄이게 해준다.

  기계가 고장 나면 나도 고장 나고 기계가 멈추면 나의 일상도 멈춘다. 사랑에 탈이 생기면 내 삶도 삐걱거리고 각혈의 위기가 찾아온다. 손봐주지 않으면 일이 틀어진다.

  이처럼 기계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일이나 사랑이 원만하게 유지되는 일에는 베어링을 갈아주는 일처럼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것은 곧 상호간 기울어야 할 세심한 조율이며, ‘마음씀아니겠는가. 적절한 타임을 놓치고 관리를 소홀히 하면 뭉클했던 첫사랑이 닳아진 볼처럼 나이든 사랑으로 변하고 급기야는 아픈 사랑으로 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기계사랑이라는 두 뼈대로 구축된 시라고 위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좀 더 정밀하게 시의 뼈대를 추려보면 시인은 사랑에도 관심과 점검,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진언을 하기 위해 기계를 끌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시집   업무일지에서 오브제로 쓰인 기계장비’, ‘부품’, ‘도구등은 삶의 은유이며 환유인 셈이다.

  뭉클했던 첫사랑이 나이를 먹고 급기야는 아픔으로 내몰리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베어링을 새로 갈아 끼워 축의 중심을 잡아주고 하우징으로 감싸듯 사랑도 리셋팅, 재정비해야 한다. 첫사랑의 뭉클하던 시기도 지나면 사랑도 늙고 때로 사랑 때문에 아프기도 하지만 충만한 사랑이란 언제나 몸살처럼 앓을 때이다. 사랑의 속성이 그런 것이며 그것이 지금 내가 사랑 안에 거주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다짐한다. “이 몸살 같은 사랑을/다시 시작해야겠다. 그럴 때 진정 살아있는 느낌으로 뭉클하게 충만해질 것이다.

 

  이상, 어린 안목으로 시의 대강을 개괄해 보았다.

  다음은 굳이 사족을 단 셈인데, 미시적인 측면에서 덤으로 짚어본 부분들이다. 넘버링을 해보았다.

 

어조는 비교적 담담하고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다.

의도적인 기획처럼 문장들의 점층적/혹은 점강적인 조립이 시의 구조를 탄탄히 구축하고 있어서 사유는 응축되고 축적된다.

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된 수사법은 은유가 주조를 이루며 세부적으로 각 연마다 직유가 쓰였다. 이 직유도 1, 2, 3연에서는 ‘-처럼으로, 마지막 연에서는 ‘-같은으로 변주되면서 나름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피했다.

각 연의 말미에는 서술형 어미 ‘-로 마무리 되는데 다소 단호한 듯 느껴지는 이 맺음에서 감정을 절제하려는 듯한 억누름을 엿볼 수 있으며 그 속살에는 물기가 자못 흥건하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챌 수 있다.

마지막 연의 서술형 어미 ‘-겠다의 화법은 아프고 위태해진 사랑을 갱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화자의 다짐과 각오를 확인할 수 있겠다.

건축이나 기계용어인 하우징은 기계의 부품이나 장치를 둘러싸서 보호하는 겉의 상자 부분을 뜻한다. 그러나 필자는 하우징이란 용어에서 하우스house를 연상하며 읽었다. 하우스는 더 나아가 보호받고 쉴 수 있는 안정된 장소home’으로까지 그 의미망을 확장, 변주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상작용은 독자의 몫으로 독자가 직접 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사랑의 시작은 뭉클하다” -> “사랑도 나이를 먹는다” -> “사랑도 아플 때가 있다” -> “사랑을/다시 시작해야겠다로 전이되고 변주되는 사랑의 모습에서 사랑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자기반성적 사유는 깊어지고 확산된다. 결국 대상과의 대립을 무산시킬 수 있는 방법은 전적으로 나의 의지와 태도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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