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0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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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성인이 아니다. 공동선을 추구할 수는 있어도 언제나 그것을 성공시키는 현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런 방법은 있지도 않을 것이고, 그 모든 관계를 다 고려하기엔 이 사회는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방법'을 익히고 살 수는 있다. 밀의 <자유론>은 바로 이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런데 제목은 '자유론'이다. 제목대로 하려면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 각자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논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개인이 개인의 자유를 발휘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밀의 <자유론>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는,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의 관계 효용을 위해, 그리고 거기서 각자의 삶의 고양과 행복 추구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사회 안에서 부딪히며 살고 있어서, 단순히 나만 자유로워진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는 없다. 다시 한번 설명, 밀의 <자유론>은 사회의 구성원 각자가 도모하고 발휘해야 하는, 나의 행복 추구를 위해 반드시 주체적이어야만 하는 관계 효용으로서의 자유 의지를 단단히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다. 


밀은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하여, 사상과 토론의 자유, 개성의 존중, 각자의 자유 보장을 위하여 소극적이지만 때때로 효과적인 장치로서 필요한 국가(사회)를 이야기한다. 지극히 자유로운(?)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현재 시점으로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참 비장하게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막상 밀이 책에서 하는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공기처럼 당연히 우리 곁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서 자유의 뜻을 한참이나 모른 채 지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왜 자유로워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지는 거의 고민하지 않은 채 살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결핍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자유로움까지도 해치고 방해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답 없는 싸움과 갈등, 몰상식한 독재를 계속해올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런 자유를 새롭게 고민하게 된 계기는 어떤 정치적인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다. 어린 시절 다소 문학적인 경향으로만 생각했던 '자유'라는 개념에 찬물 끼얹듯 새로운 뜻으로 닥쳐온 순간은 위정자의 판단이 사회 정의에 위배되었다 생각되었을 때부터였다. 그런 사건들에 나의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데(이것은 말을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집단이나 결사로서 행동하는 것도 포함한다)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자유는 어떻게 발휘되어야 하는가를 알려 준 책이 어렸을 때 봤던 바로 이 책 <자유론>이었다. 이런 가르침은 지금도 종종 나를 깨우고는 한다. 사회인이 된 지금 자유를 실천하려 할 땐,  특정 집단(회사)에 소속되어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집단 이익, 범적으로는 공익을 위하여 내가 최선으로 이 조직에서 존재하고 일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나의 생각과 의지, 판단을 주장하고 설득하며, 교류하는 일의 모든 것은 자유와 관련이 있다.


'자유'라는 말을 언제 처음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지 하는 가치관을 세운 기억이 좀 오래된 걸 봐서는 꽤 어렸을 때 그 개념을 자연스럽게 익힌 것 같다. 그리고 이때 배운 자유라는 개념은 (정확하게는 '느낌'은) 내가 지금까지도 원하고 바라는 자유의 방식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 나의 의지와 판단으로 내 삶을 결정하는 것, 나의 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 결국엔 내가 나를 만들어 간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미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사회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관계가 서로 엉키지 않고 적절히 매듭지어 연결되어 있으며,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나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현대인의 자유는 그 오래전 밀이 이야기한 자유의 개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새로 출간된 현대지성의 <자유론>은 책의 첫머리에 역자의 쉽고 명료한 해제가 실려있다. 자유란 무엇이고, 그 수많은 함의 중에 왜 하필이면 사회의 건강함을 위해 자유가 꼭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있다. 첫머리부터 자유에 대한 길잡이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어서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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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어떻게 일하는가 - 네이버 그린팩토리는 24시간 멈추지 않는다
신무경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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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구글과 애플처럼 '이상적인' 업무 문화(기업 문화 아님)를 가지고 있는 회사를 떠올려보라 한다면, 어딜 많이 떠올릴까?

모두가 같은 대답을 하지는 않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네이버'를 꼽을 것 같다. 


네이버는 우리 삶을 편하고 스마트하게 도와주는 무형/유형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곳이다. "우와 이런 기술이 가능하다니" 하면서 일상에서 빈번하게 놀라는 때는, 2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바꿀 때가 아니다. 2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되는 네이버 앱의 릴리즈 노트를 읽어보고 다운로드해 직접 그 기능을 써볼 때 더 자주 놀라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스마트한 서비스 이미지와 그 회사를 동일시하는 일은 그냥 스며들듯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아무튼, 네이버라는 회사가 국내 IT SW 기업의 선두에 있는 만큼, 업무 방식과 문화도 정말 선진적이고 스마트한지 알고 싶어서 <네이버는 어떻게 일하는가>를 읽어보았다.



이 책은 주로 3가지 주제를 큼지막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한 답은 사실, 부제 '네이버 그린팩토리는 24시간 멈추지 않는다'에 다 나와있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1. 네이버를 만들기까지 창업자 이해진(과 그의 사람들)의 이야기.

2. 이해진이 삼성SDS을 나와 성공적으로 벤처기업을 만들고 키울 수 있었던 업무 방식과 철학, 그리고 그의 사람들(임원들)이 네이버에 뿌리박아둔 업무 방식과 철학.

3. 현재 네이버가 실패하고 성공한 각종 서비스 및 SW의 현재 진행형 역사.


1. 네이버의 창업 비화에는 워낙 전설적인(?) 사람들이 많이 관련되어 있다. 네이버에 관심이 있고 역사를 조금이라도 찾아본 사람이라면 아주 모르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세하게 창업 당시 이해진의 상황과 목표가 나와 있어서 대강은 알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창업 시절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잠깐 마음이 뜨거웠던 점은, (물론 이해진이 아주 총명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주 맞는 사실이긴 한데) 자신이 비록 코딩을 아주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즉 실제 구현 능력은 나의 주특기가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꿈과 설계도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동력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key는 결국 인맥, 인사일지라도 말이다.


2. 스마트한 업무 도구를 활용해서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수행하고, 밤낮없이 서비스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밤낮없이 일한다는 내용이 생각보다 길게 나온다. 저자가 이런 과로를 마냥 칭송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네이버의 성공을 이끈 건 '열정'이라는 사실을 아름답게 설명하고는 한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IT 업계가 시끌시끌한 판국에 이 부분을 마냥 손뼉 치면서 볼 수는 없을 것이다(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서비스 담당자들이 적절한 오너십을 발휘하여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방망이를 깎았다는 미담 정도로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진정으로 이 업계 종사자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는(굳이 '워라밸' 이런 용어 쓸 필요도 없이 그냥 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가치들 말이다) 이런 업무 문화 역시도 때로는 비판적으로 봐야 할 것이다.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나는 이 책에서 설명하는 네이버의 업무 방식과 거의 다르지 않게 매일 일을 한다(툴의 이름만 바꾸면 내가 일하는 회사라고 해도 모를 수준이다). 출근길에도, 출장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도, 화장실에서도 업무 툴로 업무 이슈를 팔로우한다. 직원들이 일을 안 하는 것 같아서 사내에 어떤 물건을 치웠대더라, 어떤 시설이 없어졌다더라, 복지가 없어졌다더라.. 같은 이야기도 종종 비슷하게 접한다. 경쟁사는 뭘 어떻게 만들어서 오픈했던데, 그럼 우리는? 이런 얘기도 자주 한다. 서비스를 빛의 속도로 개선하여 회사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매일의 긴장이 생활에 도처에 널려있다. 물론 회사와 기업을 위해서는 아주 좋은 일인 것은 맞다. 그러나 임원이 아닌 사원의 입장에서 이런 성공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역시 각자의 몫일 것이다.


 3. 네이버의 성공적인 제품들과 앞으로 네이버의 먹거리를 참 고루고루 설명하고 있다. 생각보다 네이버 주식회사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는 않고, 라인의 성공 스토리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라인이 어떻게 현지화에 승부수를 띄워 성공했는지 궁금한 사람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 외에 AI 엔진, 웨일브라우저, 전기차에 대한 설명도 골고루 들어가 있다.


저자는 본인이 처한 위치와 그동안의 경험에 입각하여(저자는 언론사 기자이며 네이버와 합작법인 소속으로 주제판을 만든 사람이다), 네이버가 그야말로 '스마트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설명했다. 이 중에 틀린 말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네이버가 이만큼 성공을 이룬 것 또한 이 책에서 설명한 입지전적의 인물과 전략 덕분이라는 것도 틀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바로 이 책의 부제가 설명하고 있는 그 관점이 아닐까 싶다. 네이버의 사람들이 24시간 일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과연 이 명제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IT 업계의 오늘에서 듣기에 괜찮은 말인지는 각자가 판단해야할 것이다. <네이버는 어떻게 일하는가>는 네이버가 어떻게 만들어져 어떻게 일하는지를 깨나 정직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국내 최고의 IT 회사가 어떻게 스마트하게 일하는지 궁금한 사람, 결국에는 '네이버처럼' 기업을 일구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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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눈 창비청소년문학 84
주디 블룸 지음, 안신혜 옮김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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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죽음'이란 반드시 겪어야만 하고 절대 피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다. 자신의 죽음도 피할 수 없고 가족의 죽음도 피할 수 없다. 혹시 가족이 없는 사람이라면-가족만큼 가까운 주변 누군가의 죽음을 생을 사는 순간엔 단 한 번이라도 겪게 될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겪는다. 단지 각자의 역사가 만들어내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의 도래를 나보다 빨리 경험한 누군가들도 많을 것이다. 설사 누군가라는 존재가 아직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청소년이라 할지언정, 내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인간의 어떤 정의를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누군가의 이야기는 들어볼 만한(나아가서는 배울 것이 있는)것이라 생각한다. <호랑이의 눈>을 본 김에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청소년 문학을 어른이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호랑이의 눈>은 이런 흥미로움을 안고 읽은 소설이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의 죽음을 거의 눈앞에서 경험한 주인공 데이비는 아버지를 잃은 상처를 잊고자 고모네 집으로 잠시 동안 이동하여 살게 된다. 데이비의 곁에는 남동생과 고양이, 그리고 아빠를 너무 사랑했고 이제는 그의 죽음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엄마가 있다. 이들은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우리 가족' 과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사는 고모, 고모부와 한지붕에서 살기 시작한다. 


데이비는 멀리 떠나온 이곳에서 어른의 여러 단면들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의 여러 단면들이라 표현해도 되겠지만, 작은 변화조차 두려워하고 자신의 세계가 너무 강력해진 데이비 주변의 어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어른답다'. 그 와중에 만난 '울프'는 어른과는 다른 사람이다. 데이비가 세상을 용기 있게 살기 위하여 동기부여를 해주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울프와 함께한, 짧지만 강렬한 시간을 통해서 데이비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가족이 세상을 떠난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어제와 같이 여전한 날들은 이 어린 소녀에게도 계속 이어질 뿐이다. <호랑이의 눈>은 아직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이후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40개의 나날들을 잘게 쪼개어서 이어 붙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린 주인공의 매일매일을 우리는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정확하게 40일의 날수로 쪼개서 쓴 것은 아니지만, 사건이 터진 직후 (챕터가 쌓일수록) 자의반 타의반 변해가는 주인공의 생활을 보고 있노라면 끊기지 않고 계속 쓰여지는 주인공의 일기를 보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빚어낸, 세상에 후유증처럼 남은 공포를 이겨내는 과정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샌가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인 나 또한 심연의 동굴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호랑이의 눈>은 성숙한 인간으로서 한 발짝 나아가는 진행형 결말을 가지고 있기에 성장소설로 이야기해도 괜찮기는 하다. 하지만 소설이 그리고 있는 사건과 풍경은 어른의 세계 속 사건들과 거의 다르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가 그리는 상상의 세계는 어른이 되어서도 덤덤하게 맞서기 힘든 바로 그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경험한 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나의 삶을 어떻게 지속하면 좋을지 잘 모르는 순간이 올 것 같다. 순간적으로는 공포스럽고,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올 것 같고, 아무튼 잘 이겨내야만 할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나의 삶을 계속 이어가야만 할 것이다. 방법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데이비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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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편해지고 싶어서 :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슈테파니 슈탈 지음, 오지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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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하기 쉽지 않은 말일 수도 있지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관계 때문에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는 사실. 나도 그렇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면 이런 고민이 드러나는 경우들이 많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라는 게 무엇인가. 정확히 말을 하자면 연인과의 관계다. 연애를 하는 순간은 서로의 마음의 무게 차이 때문에(사랑이 아니다) 매일매일이 심연으로 치닿는 느낌이다. 가벼운 쪽이든 무거운 쪽이든.


우리는 관계가 힘들다는 심리 문제를 두고 '상담'하는 것에 인색한 문화이다 보니, 이런 고민이 있어도 웬만해선 심리적인 접근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푸념하듯 하소연하고 징징 대는 문화는 팽배하지만 정작 치유의 역할을 하는 심리적인 '상담'은 정말이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저마다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해결 방법은 잘 모른 채 살아간다. 다 울고 난 후엔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자책하거나 묻어두고 이겨내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제대로 들여다 보고 스스로 고쳐나가기 위한 지침서 같은 책이다. 연인과의 관계, 정확히는 이별의 봉착이나 이별 후의 스트레스가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그대로를 순서대로 이야기해보자면) 연인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원인은 내 성격이나 성향 문제는 아니다. 각박해진 현대사회가 개개인을 독립적으로 만들어서도 아니다. 전적으로 이 모든 문제는 어렸을 때 어떤 환경과 어떤 경험 속에서 자랐는지에 기인한다. 이게 아주 병리적인 징후로 나타난다면 '트라우마' 같은 것이 될 텐데, 사실 이렇게 심각하게 병리적으로 나갈 것 까지도 없다. 우리는 모두가 어린 시절의 '나'를 여전히 속에 지니고 있는데, 바로 이때의 '나' 때문에 이런 징후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그림자 아이'라고 부른다. 


그림자 아이는 다 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인간관계 속 나의 모든 태도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인 관계에서, 이 '아이'의 모습이 참 노골적으로 보인다. 사랑 받지 못한 성장기를 겪은 사람은 애착 성향이 강한 사람이 된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런 성향의 사람은 애정결핍 스트레스와 분리 불안, 집착을 갖게 된다. 반대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집착과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사람은 자유 성향이 강한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들은 반대로 자기 방어 기제가 강하게 자리 잡으며 혼자서도 뭐든지 잘할 수 있고, 잘 해내야 하고,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깐깐한 잣대를 가진 사람이 된다. 


하지만 이들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 모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동일한 불안 의식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 서로 사랑하며 안정된 관계이고 싶지만, 사람은 누구나 영원하지 않을 불안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방어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같은 불안이 만들어내는 인간 관계의 문제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림자 아이의 존재를 냉철하게 인식하라고 한다. 그림자 아이를 직면한 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런 나를 '타자화'하여 다스리기를 권한다. 이 책은 300p에 달하는데, 사실상 이 방법론을 매 챕터마다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똑같은 이야기를 300p 넘게 읽다 보면, 반복 효과 덕분에 그림자 아이를 어떻게 다스리면 되는지를 부지불식간에 거의 외운 상태가 된다.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기 때문에 조금 지루한 감은 있다. 게다가 각자의 '어린 시절'을 도매금으로 이야기하기엔 각자의 복잡한 사정이 정말 많을 것이고, 기억조차 힘들어 억지로 잊고 은폐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과거의 나, 어제의 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제일 처음 사람에게서 사랑 혹은 무관심을 배운 때가 바로 그 '어린 시절' 아니던가. 연애 상담을 받을 시간은 없는데, 구체적인 '방법'이 그래도 필요한 사람이 보면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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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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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첫인상은 매우 거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경애 삶에 쌓인 갖가지 사건들을 알게 된 순간 그 누구보다도 경애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수는 어렸을 때부터 상처와 두려움이 많지만, 이런 아픔들을 깨나 잘 인내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었을 때엔 막연한 부러움이 들기도 했다.


구체적인 사건 없이 <경애의 마음> 속 주인공들의 강직함과 단단함을 이야기하려니 너무 투박한 소설로 보이는 것은 아닐지 싶다. 더군다나 '경애'의 '마음'이라니, 제목의 촌스러움 때문에 과연 이 소설이 요즘 감성에 맞기는 한 것인가 싶기도. 그리고 이런 설명이 이 소설이 재미를 보증하는 역할을 하지도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경애의 마음>을 단숨에 읽어버릴 수밖에 없게 만든 건 바로 이들, 경애와 상수의 단단함 때문이다. 이미 다 읽은 상태이지만, 물러져 녹아 내려가려는 내가 되었을 때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애의 마음>은 마냥 따뜻하고 부드럽지는 않지만 마치 현실에 있는 누군가가 이야기하듯 우리에게 위로의 손길로 다가올 것이다.


<경애의 마음>은 우리와 비슷하게 사는-그러니까 연애를 하고 회사를 다니고, 노동 계급으로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그리운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인-경애와 상수가 (알고 보니) 서로 겹치는, 몇 가지 삶의 교차점을 알게 된 후 삶을 이어간다는 내용이다. 과거 화재사고와 과거의 연애,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들이 있지만 삶은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소설 속 두 사람은 최근에 본 소설의 어떤 사람들보다도 이런 강인함이 읽는 순간마다 피부에 와 닿는 사람들이었다. 망원동 어드메를 돌아다니다 보면, 호찌민 번화가 어딘가를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경애와 상수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그 경험을 단지 슬프고 아픈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건으로 인해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과 세상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경애의 마음>의 두 사람은 정말 서로 다른 것 같다. 하지만 <경애의 마음>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두 사람은  공통의 인물, 경험, 사건을 가진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을 닮아있는 듯했다. 소설의 도입 부분, 서로가 절대 마주칠 수 없을 것 같던 평행선 위의 두 사람은 결국 만나기에 이른다. 그건 아마도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애’의 ‘마음’이라는 제목은 온전히 심정적인 의미로만 채워져 있다. 


문학을 읽는 이유와도 통한다. 참 아름다운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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