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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막 출간되자마자 따끈따끈한 책을 사놓았는데 이제야 펼쳐보았다. 꼭 가볍고 쉬운 책은 그자리에서 읽어버리고, 제대로 앉아 느끼고 싶은 책은 그 '제대로 앉을' 최상의 자리를 찾느라 뒤로 밀리기 십상이다. 이 책에게 그런 날은 이제서야 왔다.
표지부터 아주 선명한 이 책, <레즈를 위하여>는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말이 딱 어울린다. '새롭게 읽는'이라는 말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저자는 자신이 읽어온 공산당 선언에 다른 동서양의 고전과 자신의 삶까지 넣어 꼭꼭 씹어서 설명해준다. 마치 논어나 맹자를 배우면, 서당 훈장님들이 공자님 말씀 한 줄을 가지고 자신의 삶과 역사적 인 이야기 등 여러가지 예를 들면서 그 한줄에 대해 깊이있는 의미를 부여해 설명해주듯이. 공산당 선언의 중요 단락단락마다 자신의 생각, 살아온 삶, 우리의 노동운동사 등을 이야기해준다. 공산당 선언을 읽는다기보다 저자의 삶 혹은 우리의 80년대를 이야기해주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기존의 공산당 선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를 찾자면 1991년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공산당 선언을 읽는 것은 마치 철이 덜 든 사람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한동안 있었다. 이 책은 이제 몰래 읽지 않아도 되나 사람들, 특히 젊은 대학생들이 공산당 선언을 외면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새롭게 읽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시효가 만료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그 선언의 유효성, 마르크스의 예언이 더욱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공산당 선언의 각 구절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저자가 자신의 삶과 생각을 써놓은 수필처럼 잘 읽힌다고 해도 틀리지 않겠다. 두번째 부분은 다시 해석한 공산당 선언. 영어판이지만 놓고 다시 번역하다보니 기존 번역의 실수를 정정하였다는데 흐름을 알 수 있는 사진까지 함께 수록되어 기존 판본을 보는 지루함도 없어졌다. 세번째 부분은 공산당 선언의 다섯 가지 주요 논쟁(오해들)에 대한 설명. 이것은 앞 부분보다는 조금은 무거운 성격을 띈다.
'無恒産이더라도 有恒心을 가지고', 초심을 잃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하는 저자. 평생을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온, 머리만 과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천을 평생을 두고 보여주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이냐?'에 대한 무의식속의 뿌리깊은 역사적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는 저자가 제시하는 방향은, 시간을 두고 여러 사람이 깊이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