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표백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빈 땅을 보고도 그날밤을 기억했다. 평범한 붉은 흙으로 메워지고 다져진 부지에 이제 존재하지 않는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가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가장자리를 밟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 근처였다. 버스를 타러 갈때마다 비어 있는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방에 있으면 밤낮을 구분할 수 없었다. 창은 하나뿐이었고 그나마도 벽과 마주보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에 밤이 아홉 번씩 찾아오는 방 같았다. 밤은 형광등으로 몰아낼 수 없을 만큼 견고했다. 형광등 빛은 밤을 조금 묽게 만드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방 전체에 닿지는 않았다. 가장자리나 모서리마다 그림자가 뭉쳐 있었다. 예닐곱 명이 누우면 남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은데도 그랬다. 집주인은쪼갤 수 있을 만큼 방을 쪼개 놓았다.
작가와 길어야 일년여의 시차속에 살고 있는 듯 모든 것이 나와 주변인의 이야기 같았다.하지만 물건속에 몸이 묶인 듯, 이케아를 중심으로 돌고 도는 이야기에 폐쇄공포증과 비슷한 답답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