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이야기 -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애니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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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물건이나 들고서 그것의 진짜 기원을 추적해보세요. 그러면 어떤 물건이라도 그것을 만드는 데는 전체 경제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을거예요."

   휴대폰을 바꾼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잔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전원이 제멋대로 켜졌다가 꺼지는 것은 물론, 통화 중에 연결이 끊어지기도 하고 장문 문자 메세지(mms)를 보내면 20분 후에 전송이 실패했다는 메세지가 도착한다.
   그것이 벌써 반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지금도 잔고장들을 참으며 그 휴대폰을 쓰고 있다. 언젠가 반도체 공장의 산업재해 관련 기사를 본 이후로 전자제품을 새로 사는 것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아니, 전자제품을 쓸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내가 쓰고 있는 휴대폰이나 컴퓨터에 들어있는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가 일하다가 병에 걸려서 죽어 가고 있고, 회사는 그것을 모른 척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 것이 단지 그것뿐일가? 알고 보면 내가 쓰고 있는 온갖 물건들에 저런 이야기들이 하나씩 아니 수십, 수백개씩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애니 레너드의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쓰고 있는 물건들의 원료부터 시작해 원료를 가지고 물건을 생산하고, 만든 물건들을 유통하고 소비하고 마지막으로는 폐기하는 단계까지의 물건의 일생을 추적한다. 그러니까 반도체 공장 이야기만큼, 혹은 그보다 더 끔찍하고 화나고 슬프기까지 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 빼곡히 담겨 있는 것이다. 분명 이 책에 나와있는 단 하나의 이야기만으로도, 예컨대 콩고의 콜탄 광산이나 월마트 같은, 10시간 짜리 다큐 영화 정도는 거뜬하게 만들 수 있을 것 이다.
   나는 스스로 평소에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물건 이야기>를 읽으면서 충격이 더 컸다. 사실 반도체 공장에 관한 기사들을 접할 때도, 물건들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물건에 들어가는 진정한 비용(생산뿐만 아니라 물건의 일생을 아우르는 전 과정에 드는 비용)이 이렇게 클지, 그렇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비용으로 인한 영향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도 생각치 못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물건에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쩌면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아 보였던 것들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물건 이야기>가 말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환경 차원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전체적인 시스템의 이야기이며, 경제학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진짜' 경제 이야기이다.
   <물건 이야기>는 물건들의 일생을 추적하며 물건과 물건들이 유발하는 엄청난 비용들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적인 변화 그리고 실행 가능한 대안들, 그리고 책을 읽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들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미국에서 나온 책이라 여러 가지 통계나 정보, 그리고 독자가 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일부는 미국이라는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다양한 논의들이 활발히 이루어 지기를 바란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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