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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허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 빛과향기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색은 임의로 불러낼 수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책장에서 읽기 전에 감히 이 책 제목인 <생존과 허무>에 대해 짧은 생각을 했다. ‘생존’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에서 어쩔 수 없이 사는 듯한.. 맹목적으로 살기 위해, 마지못해 사는 그렇게 아둥바둥 거리며 생존을 위한 생활을 영위하다 막상 삶의 끝자락에서 다가오는 ‘허무’한 짧은 인생의 시간이라는 제목에서 쇼펜하우어의 특유의 염세적인 색깔이 묻어남을 알 수 있었다.
70년의 인생을 산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인 이 책의 키워드는 <고뇌><생존><허무><생물의 삶><죽음><생성><행복><재물><결혼><철학><사색><이론><학자><저술><예술><독서><법과정치><처세><명예><명성><인격>으로 인간의 근본적인 생사에서부터 쇼펜하우어가 겪었던 학자로서의 삶의 관점과 당시 사회구성원 중 고독한 역할로 쇼펜하우어의 주변관계의 사실을 통해 느낀 회고록이라는 느낌이다. 쇼펜하우어의 대표작 Die Welt 민 Wile und Vorstellung과 Parerga und Paralipomena에서 발췌해서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옮긴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쇼펜하우어의 글을 재구성하여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린 듯한 인상을 받았다.
어찌됐건 염세주의자로 대표되는 쇼펜하우어가 바라보는 세상과 인간의 삶에 대한 기록은 첫 장 <인간과 삶> 중심으로 하여 옮긴이의 구성대로 4가지의 부분[행복과 사랑][사색과 학문][자신과 처세][명예와 명성]으로 인간과 삶의 뼈대에 살을 붙여 전체를 이루고 있다.
고통과 고뇌의 연속인 인간과 삶에 대해서 이미 받아들인 삶으로써 행복과 연결시키려는 규범을 짜내어 제시하고 있다는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몇 백억년 전에도 존재하지 않고 몇 백억년 후에도 존재하지도 않는 인간과 삶의 중심에서 전체를 이루는 부분으로 행복과 사랑, 사색과 학문, 자신과 처세, 명예와 명성의 목차로 구성된 이 책에서 규범을 이끌어 삶을 받아들인 인간에 대한 생존방법과 어쩔 수 없이 사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인생은 생존을 위한 괴로운 투쟁의 연속이며 인간이 그토록 이루고 싶은 개인의 목적에 도달하는 순간 향락은 사라진다는 허무함이 짙게 묻어난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인간의 모든 노력은 결국 없음(無)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채울 수 없는 목마름과도 같은 욕망. 욕망과 만족사이에 제한적으로 선택하는 인간의 우매함과 사악함. 세균이 우글거리는 치즈를 현미경으로 봤을 때 미세한 벌레들의 눈물겨운 활동과 싸움하는 모습처럼 인간도 하나의 티끌로써 아둥바둥하는 개체. 그저 존재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바로 생존을 갈구하는 마음이라 여기고 있다.
삶을 부정하며 허무주의가 짙은 쇼펜하우어이지만 200년 전의 고통과 고뇌속의 쇼펜하우어의 고민이 지금에서 더 강한의미로 다가오는 의미가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닌 어떻게 사느냐의 질적인 문제를 살펴보게 한다. 강한 부정은 긍정의 효과로 나타나듯이 쇼펜하우어의 깊은 허무는 지금 생존하는 것 이상의 삶의 의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게 하는 힘이 된다. 삶을 그저 선택된 자들의 향유로 보기에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면을 생각하게 하여 좀 더 현실에 가까운 면을 바라보게 한다.
기쁨을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슬픔이 있기 때문과 백(白)은 흑(黑)이 있어 더욱 희게 보이듯이 삶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앞면의 생존은 뒷면의 허무와 함께 늘 따라오는 하나이다. 동전자체가 삶이라는 양면성의 인정에서 허무를 받아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단지 생존에서 시작해서 허무로써 끝나지 않는 삶.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강한부정에서 생겨나는 긍정의 힘을 가지게 하는 매력이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이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이해하고 인정하는데서 고뇌와 고통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난 자유로운 해방감이 든다.
희노애락의 고만고만한 삶에서 삶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과 지금 고민하고 고뇌하고 고통이 있는 건 내가 현재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200년 전의 자신의 불행을 후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록한 쇼펜하우어의 존재에 대해 난 감사하다.
부정할 수 없는 삶을 긍정으로 이끄는 힘은 바로 ‘나’의 존재 이유에서 비롯된다는 쇼펜하우어가 그토록 말하고 싶던 깊은 허무 속에 숨겨진 축복의 인생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