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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 사회정의와 공정함의 실천에 관한 한 검사의 고뇌
프릿 바라라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2월
평점 :
정의란 무엇인가. 지난 2010년
이 질문과 동명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서점가에 열풍을 일으켰던 때가 생각난다. 정권 변화와
지방 선거 등과 맞물려 공정한 사회에 대한 갈증으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라는 개념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회자된 지 오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정치·사법·문화계 및
환경에서까지 각계각층에서 정의를 부르짖고 있지만 계층 분화와 정파 갈등은 극심해졌고 정의 구현은 아직도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책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펼치자마자 느꼈던 것은 과연 나부터 정의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그 달성을 위해 고민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이야말로 지난 정의에 대한 기초적인 관심에서 한 발짝 나아가 다시금
새로이 정의를 찾기 위해 사회정의의 실천에 대해 이해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위치에서 정의를 추구해야할 때가 아닐까.

책의 저자 프릿 바라라는 미국 뉴욕남부지검에서 검사장으로 봉직하며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하였고 트럼프로부터 모종의 관계를
맺고자 받은 요청을 거절한 후 해임되어 눈길을 끈 바 있다.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정치·경제 등 공권력 행사에 있어 언론, 검찰계까지 여전히 유착관계가 횡행하는 요즘 뚝심있게 정치적 중립을 지킨 저자의 목소리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책은 수사부터 기소, 판결, 그리고
처벌에 이르는 법의 집행 절차에 따라 전개되며 초임 검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딜레마와 이를 해결하기위한 지침서의 성격을 띄기는 하나,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법조인들뿐 아니라 일반 가정과 직장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내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도
정의 일반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으로 전체 독자를 아우른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하는 이 접근법은 정의 실현의 확대를 위해 주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지금까지 정의란 자칫
정치계와 법조계 등의 최일선에 있는 이들에게서만 구현될 수 있는 것으로 미뤄두거나 그 밖의 사람들과는 먼 일로 여기기 일쑤였기 때문에 정의 탐구가
원론적인 수준에서만 머물렀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 올바른 의식 개선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이유를 위해 하라. 그리고 오직 여기에 집중하라.”
단순하면서도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위 문구는 검사장 봉직 시작과 함께 저자가 마음에 새기며 포용하고자 노력하고
동료들과 나눈 충고이자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급박한 수사 과정과 빠른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 공정함을 이끌어내기 위해 잊지 말아야할 것은 무엇보다도 올바른 것에 집중하는 뚝심일 것이다. 범죄자가
협력적인 동지로 돌아서면서 법치질서를 유지해 올바른 일을 하게 되는 역학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궁극적
목적인 정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야만적인 신문방식 대신
인간적인 배려와 신뢰로 다가가는 대화방식을 활용하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책 속에는 정의로 향하는 길의
나침반 바늘을 흔드는 확증편향의 문제나 조직문화를 후퇴시키는 정책 등 경계해야할 사례들까지 꼼꼼하게 실어 놓았다.
그리고 정신적 속박에서 벗어나 창의력과 혁신적 사고를 갖추고 효과적으로 질문던지기를 추천하는 조언들은 평범한 일상 속 업무 중에도
문득문득 생각날 만큼 도움이 되었다. 저자가 풋내기 연방검사 시절의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 멍청한 질문이라도
계속 했던 것처럼 행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발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호기심과 함께 깨어 있는 상태에 집중해야 하겠다.

3부 판결 부분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용되는 배심원 평결
제도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2011년 스리랑카 출신의 억만장자 라지 라자라트남 사건의 재판에서 감청기법을
사용한 수사로 배심원들에게서 유죄를 이끌어낸 저자의 우쭐한 사례가 재미있는 한편 검사로서 초조하게 배심원 평결을 기다리는 속 깊은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흥미를 끈다. 12명의 배심원단이 무죄나 유죄평결을 내리기까지 이해관계를 거쳐 고심하는 과정은
고전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불확실함 속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고 평결을 내리는 모든 과정이 더욱 엄숙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단계 형벌과 관련해서는 공정함과 양형을 잇기 어려운 고뇌에 대해 논한다. 긴 고뇌 끝에 정당한 형벌을 내리기 위해서는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공감 또한 살피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태어난 지 20여 일
만에 납치되어 20년이 넘도록 우여곡절을 겪은 페트웨이 사건의 사례만 읽어 보더라도 깊이 생각할 것없이
아기 카를리나를 유괴한 앤 페트웨이에게 무조건 최대 양형을 주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아니라 유괴를 촉발시킨 가해자의 개인사정을 되짚으며 숨은 과정까지 찾아내는 노고가 바로 정의를 향한 진정성을 빚어내는 비결이 될
것 같다.

책은 더욱 새롭게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가해자에게 내려진 사형집행을 정지해달라는 소송까지 제기한 놀라운
사례로 정의 너머에 있는 세계를 소개하며 마무리 짓는다. 증오를 없애고 악을 정복하며 격정을 사라지게
하는 모든 것은 법과 제도가 아닌 ‘인간’이 행함을 강조하는
구절이 다시금 감동을 자아낸다. 이 감동 끝에서 개인적으로 일상 속 관계에서나 업무를 할 때 원리원칙을
중시하며 법과 원칙만이 최선인듯 무리한 결과를 마주하곤 했던 지난 날을 반추해 본다. 복잡해지는 세상
속에서 공고히 해야 할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니라 바로 인간임을 기억해야 하겠다. 그 중에서도 “용감하고 강인하며 보기 드문 인간”이 되기 위해 힘쓰며 앞으로 하는
모든 일들 속에서 정의를 살아 숨쉬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책 속에서 꺼내 만든 나침반을 바로잡아 본다.

※ 본 서평은 교보북살롱에서 책을 지원받고, 전문서평단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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