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 - 산 자를 위로하는 죽은 자의 마지막 한마디
신동기 지음 / M31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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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유언이나 묘비명들이 몇 있다. 빛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는 괴테의 유언을 좋아했었다.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졌지만, 한때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문장이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확실히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문장이다. 유언이나 묘비명은 그 사람이 살아온 생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울림 : 산 자를 위로하는 죽은 자의 마지막 한마디>(이하 '울림')는 그런 유언이나 묘비명, 한 사람의 마지막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들의 마지막 말은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이런 책을 썼다고 한다. 목차를 살펴보면 윤동주, 김구, 이순신이나 안중근처럼 누구나 알 법한 사람들도 있고, 한국사 시간에 배웠던 사람들도 있고, 이름 정도만 들어 봤던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것이다. <울림>은 그 인물들의 삶을 간단히 조명하고 그 삶의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좋은 인물들이 많지만 전부 소개할 수는 없으니, 가장 인상적이었던 전태일 열사의 파트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는 노동자의 인권을 주장하며 분신 자살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두 살이었다. 2020년에 스물두 살인 사람들은 군인일 수도 있고, 대학생일 수도 있고, 군인도 대학생도 아닐 수도 있겠다. 하여튼 스물두 살은 법적으로야 성인이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젊다 못해 어린 나이다. 전태일이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던 1960년대의 노동 조건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했다. 책에 따르면 전태일이 일하던 서울 평화시장 피복제조업체에서는 '노동자들의 하루 근무 시간이 14~16시간이었으며, 휴일은 한 달에 이틀뿐이었고, 노동자 중 96%가 폐결핵 등 기관지 계통의 질환 그리고 81%가 신경성 위장병을 앓고 있었으며 거의 전체가 안질에 시달렸다.' 이런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 운동을 하던 전태일은 결국 목숨을 걸었다. 그는 몸에 불이 붙은 채로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다행히도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현재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주 5일 노동을 하며 이틀을 쉰다. 물론 지금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로서 50년 전 스스로의 목숨을 던진 전태일 열사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 역시 마음을 울린다. 김수환 추기경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였던 명동 성당을 독재 정권의 폭력적 탄압으로부터 지키고 서 있었다. 그가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사랑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입에 올렸으며, 마지막으로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남긴 사람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내가 주변에 충분한 사랑을 나누어 주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책 제목이 <울림>인 이유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어떤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분명 큰 울림을 가져다 준다. 그건 그들의 마지막 모습으로부터 그들이 살아온 삶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커피를 마시며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데,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해서 커피를 마시면서 읽지는 못했다. 커피나 차 한 잔과 함께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의 무게가 가볍지는 않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인물들 중 특별히 마음을 끌거나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그 인물에 대해 더 자세히 찾아보고 공부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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