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행을 선택하세요
데이나 슈워츠 지음, 양지하 옮김 / 오월의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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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은 "가족들이 부디 이 책을 읽지 않기를."이라는 문장이었다. 덕분에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특이한 책이다. 이 책은 어떤 여성(기본적으로 저자의 이야기이지만,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의 이야기지만 어드벤처 게임 북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선택지들 중 a를 고르면 18페이지로, b를 고르면 28페이지로, c를 고르면 36페이지로 가던 그런 책들 말이다. 독자는 어떤 여성의 삶을 따라가 보며 중요한 순간들마다 선택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두 남자 중 어떤 남자를 만날지, 영 별로였던 남자에게 연락을 해 볼지 하지 않을지, 해외 여행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갈지 정착하려고 노력할지와 같은 선택들이다.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으레 게임 북에서 그렇듯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몇 번 정도 배드 엔딩을 보고 나서 생각했다. 진정한 해피 엔딩이 있긴 한 걸까? 어쩌면 주인공인 여성은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불행하거나 영 좋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도록 되어 있는 게 아닐까?

저자는 1993년생 여성으로, 영어권 트위터에서는 꽤 유명한 유저인 모양이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서문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당신의 불행을 선택하세요>는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였던 것이다(책 뒷표지에도 나와 있다). 주인공은 형편 없는 남자에게 매달리기도 하고, 식이 장애에 시달리기도 하고, '인싸'를 동경해서 그들의 세계에 기웃거리다가 뼈 아픈 실패를 겪기도 한다. 독자는 선택지 두 개를 보고 이 둘 중 꼭 하나를 골라야 한단 말야? 하고 생각하거나, 마지못해 고른 선택지의 결과를 확인하곤 한숨을 쉬며 돌아와 반대쪽 선택지를 확인해 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아직 이 책의 모든 부분을 읽지는 않았고, 몇 개의 '엔딩'을 보았을 뿐이지만 나도 그랬다. 애초부터 주어진 선택지 자체가 형편 없거나 어느 쪽을 골라도 불행만이 기다릴 것 같은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훌륭하게 이런 책을 써 냈으니, 그 불행들이 저자를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위안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특히 이 책은 게임 북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말하면 재미가 크게 줄어든다. 가능한 한 아주 구체적인 내용을 적지 않도록 노력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라면, 그리고 게임 북을 접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부분의 '감사의 말'을 보면 저자는 자신과 잤던 모든 남자들에게, '나에게 상처를 줬다 해도 내가 아직 어릴 때 깨달음을 줘서 고맙다'라고 말한다. 어떤 불행들은 깨달음이 된다. 저자가 겪은 크고 작은 불행들이 그에게 깨달음이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많은 여성들이 불행을 겪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나중에 돌아보며 그건 깨달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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