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릅니다. 저기 먼 곳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군요. 모든 것은안개 속에 가라앉고 가까운 곳에 있는 나룻배며 해안이며 섬들은 마치 대패질을 한 듯 판판합니다. 누군가 호숫가에 버리고 간 통 하나가 물결을 따라 살짝살짝 흔들거리고 노란이파리들을 축축 늘어뜨린 버드나무 가지는 갈대와 한데 뒤엉켜 있습니다. 뒤늦게 갈매기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와서차가운 물에 자맥질을 하고 다시 날갯짓을 하더니 안개 속으로 사라집니다. 저는 그 광경을 혼이 나간 사람처럼 보고 또봅니다. 얼마나 경이롭던지요! 그때 저는 아직 아이였습니다, 어린아이였습니다……!
저는 가을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특히 수확을 마치고 모든일을 다 끝내고 오두막집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겨울 모임을열며 모두들 겨울이 오기를 기다리던 그런 늦가을을 좋아했습니다. 그맘때는 세상이 다 음산해집니다. 하늘엔 구름이잔뜩 끼고 나뭇잎을 다 떨구고 벌거숭이가 된 숲 가장자리에난 오솔길은 노란 잎사귀들로 뒤덮입니다. 숲은 파랬다 검었다 하죠. 특히 저녁때, 회색 안개가 내려앉으면 나무들은 마치 거인이나 형체 없는 무서운 유령들처럼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놀러 나갔다가 늦어지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지는 날에는 혼자서 종종걸음을 칩니다. 무섭거든요! 저는 나뭇잎처럼 바들바들 떨고 저기 저 구멍에서는뭔가 무서운 것이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숲속까지 불어온 바람은 윙윙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너무도 애처로이 울부짖습니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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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하지만 오늘은 뻬쩨르부르그에서는 보기 힘든 신선하고맑고 빛나는 아침이 찾아와 준 덕분에 원기를 회복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어요. 그러고 보니 벌써 가을이네요! 시골에서 살 때 전 가을이 정말 좋았습니다! 저는 아직어린아이였지만, 이미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죠. 가을엔 아침보다 저녁나절이 더 좋았어요. 우리 집에서 아주 가까운곳, 산 밑에 호수가 있었던 것이 기억 나네요. 그 호수는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 그 호수는 정말 넓고 환하고 수정처럼 깨끗했어요! 저녁에 세상이 고요해지면 호수도 잔잔해집니다. 호숫가 나무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수면까지 잔잔한때는 정말 거울 같았습니다. 그 신선함과 상쾌함이란! 풀잎엔 이슬이 내려앉고 호숫가 오두막집엔 하나 둘 불이 켜집니다. 목동들은 가축을 몰고 집으로 돌아가고요. 그러면 저는미끄러지듯 살며시 집을 빠져나와 넋을 잃고 저만의 호수를바라보곤 했습니다. 어부들은 물가에서 섶나무 단에 불을 놓고, 불빛은 물길을 타고 멀리멀리 흘러갑니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고 그 가장자리에 붉은 노을이 선을 그리며 타오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흐려집니다. 달이 뜹니다. 대기는 그렇게 너무 조용해서 놀란 새가 이리저리 푸드덕거리며날아다니는 소리며, 갈대가 가벼운 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며, 물고기가 물 속에서 뛰어오르는 소리까지 모두 들립니다. 파란 물 위로 하얗고 가느다랗고 투명한 수증기가 피어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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