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코 여자
고노 다에코 지음, 부윤아 옮김 / 톰캣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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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뒤틀린 욕망에 물든 여자가 있다.
사랑과 낭만을 대신한 집착과 광기
과연 그녀의 삶은 비극이었을까?

일본 아쿠타가와상 최초의 여성 심사위원 고노 다에코의 미스터리한 역작. <하얀 코 여자>로는 마이니치 예술상과 이토세이 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브랑톰의 저서 <숙녀들의 생활>의 어느 한 페이지와의 만남에서 탄생했다.

17세기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어느 소도시 국가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로 처형 받게 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마지막 이별 자리에서 결혼한 지 겨우 2년 된 아내의 코를 물어뜯었다.
이것은 그 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살아간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제 1부 소문

제 2부 상처

제 3부 불꽃

세간 사람들은 나르디 상회의 막내딸을 언급할 때 종종 ‘양초 가게 엘레나’라고 했다. 실제로 엘레나는 양초 가게 딸이었다.

자코모와 엘레나가 결혼한 날짜는 5월 28일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두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지 열흘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6월 9일에 자코모가 사형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엘레나는 혼자만의 결혼기념일을 10번이나 보냈다.

소문을 무척 좋아하는 그 마을 사람들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날리 없는 일을 겪은 엘레나에 대해 얼마나 쑥덕거리고 있을지,
오늘 밤 이 시각에도 거리의 여기저기에서 소문의 씨앗이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얄팍한 장난으로 자신의 이름을 꺼내는 것은 엘레나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엘레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이름이 터무니없이 무서운 형태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을 알게 된다.

‘양초 가게 엘레나’는 다시 커다란 숄로 눈만 남기고 얼굴을 다 가린 후…
터벅터벅 혼자 내려갔다.

그 시절 이탈리아 작은 마을을 상상해 보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으로 상처받는 엘레나가 얼마나 큰 외로움에 갇혀 지냈을지!
남편의 집착과 광기로 시련을 겪은 마음과 얼굴의 상처로 10년을 지낸 시간이란 지금도 그때도 아프다. 검은 숄 안에서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온 몸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그리고, 그 ‘집착과 광기’는 오롯이 그녀에게 스며들어 간 것 같다.

‘사랑하면 닮아간다’는 말…
엘레나의 10년, 다시 세 번 혼자만의 결혼기념일을 보내는 동안 한 번도 남편을 잊은 적이 없었다. 아니 남편과 늘 함께였다. 죽은 남편의 집착과 광기는 이제 ‘엘레나의 몫’이 돼버린 것 같았다. 그를 따라가고 싶은 그와 함께하고 싶은 욕망!

과연 그녀의 삶은 비극이었을까?

기묘한 이야기가 ‘붉고 하얀 소용돌이 책표지’에 담겨 있다.
처음엔 강렬하게 느껴졌지만, ‘양초 가게 엘레나’의 시련과 혼돈으로 물들어간 검은 숄 안에 세상이지 않았나 싶다.

읽고 가슴이 아픈 이유는 우리가 세간의 수근거림에 오르내린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하며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엘레나는 양손으로 뒷머리를 완전히 빗어 올려봤다. 무척 시원했다. 이렇게나 기분 좋은 일인가. 그 부분을 도끼로 내려친다. 잘 갈아서 상당히 날카롭고 거기에 더해 무거운 도끼이겠지. 덩치 큰 남자가 양손으로 그것을 머리 위로 치켜올려 있는 힘껏 내려칠 때 도끼는 공기를 가르며 휙 소리를 낼까. 그리고 그때 자신은 자코모와 처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묶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자코모에게 연결되는 것일 뿐이다. 자코모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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