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뒤틀린 욕망에 물든 여자가 있다.사랑과 낭만을 대신한 집착과 광기과연 그녀의 삶은 비극이었을까?일본 아쿠타가와상 최초의 여성 심사위원 고노 다에코의 미스터리한 역작. <하얀 코 여자>로는 마이니치 예술상과 이토세이 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브랑톰의 저서 <숙녀들의 생활>의 어느 한 페이지와의 만남에서 탄생했다.17세기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어느 소도시 국가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로 처형 받게 된 남자가 있었다.그는 마지막 이별 자리에서 결혼한 지 겨우 2년 된 아내의 코를 물어뜯었다.이것은 그 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살아간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제 1부 소문제 2부 상처제 3부 불꽃세간 사람들은 나르디 상회의 막내딸을 언급할 때 종종 ‘양초 가게 엘레나’라고 했다. 실제로 엘레나는 양초 가게 딸이었다.자코모와 엘레나가 결혼한 날짜는 5월 28일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두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지 열흘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6월 9일에 자코모가 사형으로 세상을 떠났다.이후 엘레나는 혼자만의 결혼기념일을 10번이나 보냈다.소문을 무척 좋아하는 그 마을 사람들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날리 없는 일을 겪은 엘레나에 대해 얼마나 쑥덕거리고 있을지,오늘 밤 이 시각에도 거리의 여기저기에서 소문의 씨앗이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얄팍한 장난으로 자신의 이름을 꺼내는 것은 엘레나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엘레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이름이 터무니없이 무서운 형태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을 알게 된다.‘양초 가게 엘레나’는 다시 커다란 숄로 눈만 남기고 얼굴을 다 가린 후…터벅터벅 혼자 내려갔다.그 시절 이탈리아 작은 마을을 상상해 보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으로 상처받는 엘레나가 얼마나 큰 외로움에 갇혀 지냈을지!남편의 집착과 광기로 시련을 겪은 마음과 얼굴의 상처로 10년을 지낸 시간이란 지금도 그때도 아프다. 검은 숄 안에서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온 몸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그리고, 그 ‘집착과 광기’는 오롯이 그녀에게 스며들어 간 것 같다.‘사랑하면 닮아간다’는 말…엘레나의 10년, 다시 세 번 혼자만의 결혼기념일을 보내는 동안 한 번도 남편을 잊은 적이 없었다. 아니 남편과 늘 함께였다. 죽은 남편의 집착과 광기는 이제 ‘엘레나의 몫’이 돼버린 것 같았다. 그를 따라가고 싶은 그와 함께하고 싶은 욕망!과연 그녀의 삶은 비극이었을까?기묘한 이야기가 ‘붉고 하얀 소용돌이 책표지’에 담겨 있다.처음엔 강렬하게 느껴졌지만, ‘양초 가게 엘레나’의 시련과 혼돈으로 물들어간 검은 숄 안에 세상이지 않았나 싶다.읽고 가슴이 아픈 이유는 우리가 세간의 수근거림에 오르내린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하며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엘레나는 양손으로 뒷머리를 완전히 빗어 올려봤다. 무척 시원했다. 이렇게나 기분 좋은 일인가. 그 부분을 도끼로 내려친다. 잘 갈아서 상당히 날카롭고 거기에 더해 무거운 도끼이겠지. 덩치 큰 남자가 양손으로 그것을 머리 위로 치켜올려 있는 힘껏 내려칠 때 도끼는 공기를 가르며 휙 소리를 낼까. 그리고 그때 자신은 자코모와 처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묶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자코모에게 연결되는 것일 뿐이다. 자코모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