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때
달지 지음, 김진화 그림 / 그레이트BOOKS(그레이트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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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며 내가 처음 선생님이 되었을 때, 천방지축으로 사고치던 첫 해, 처음으로 아이들을 떠나 보내던 종업식,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올려 보낸 우리 토끼띠 아이들이 차례로 생각났다.

4년 전 5월, 선생님이 되었다.

기억 난다. 전날 긴장감에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떨린다고, 기도해달라고,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라고 쓰고 찡찡거렸다고 읽는다).

선생님은 어른의 대명사인데, 나는 어른인가? 나는 어른이 되려면 한참은 멀었다고 생각했다.  실습 지도 선생님이나 수석 교사 등 ‘진짜’ 선생님 없이 홀로 스무 명도 넘는 아이를 대면하려니 식은 땀이 났다.


그림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생생히 기억나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그날

하나도 도움 되지 않았던 그 심호흡과

호기심에 가득 빛나던 아이들의 그 눈빛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 애쓰던 나 -p.2-7


에탄올을 중탕하고 그 안에 이파리를 넣어 엽록소를 추출하는 실험 수업이 있었다. 전날 사전 실험을 하며 영롱한 초록 빛이 참 마음에 들어 인스타에도 올리고 은근히 자랑을 했다. 그리고 대망의 수업 날, 시범 실험하던 에탄올에 불이 넘실대고 비커가 와장창 깨지고 불이 바닥에 확 옮겨 붙었다. 다행히 옆에 있던 소화기를 빼 들어 순식간에 진압했으니 주입식 안전 교육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애들도 와아- 신나고, 나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침착한 척, 의연한 척을 다 하며 아이들을 줄 세워 교실로 보냈다. 그렇지만 실시간으로 내적 비명이 꺅꺅 나왔다.


🔖며칠 밤을 잠 설쳐가며 세웠던

수업 준비들은 사실 허점 투성이였고 -p.8-9


『다시 만날 때』는 선생님 래퍼로 유명한 달지 쌤의 노래에 그림 작가 김진화가 그림을 그려 만든 책이다. 모든 가사, 그림 속 표정과 상황이 전부 내 이야기로 보였다. 아마 교직에 있는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달지 쌤이 이 가사를 쓸 때, 아이들에게 들려 주고픈 말을 담으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림책 속 한 장면을 보며 나 또한 종업식이 떠올랐다. 그리고 따뜻한 이별의 감정이 마음 속에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내가 바라는 것 딱 하나

그저 너의 삶에 행복 한 줄기를 더해주는 것

잊혀지더라도 난 괜찮아

너의 삶에 더 큰 행복이 쌓여 내가 지워지는  것


아, 이런 가사를 쓰려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 걸까? 너의 삶에 행복이 더 크게 더 많이 쌓여 내가 지워지는 것이니 잊혀지더라도 괜찮다니.

학년이 바뀌고 나면 3월 첫주에 이전해 아이들이 많이 찾아온다. 빼꼼 고개를 내밀고 멋쩍게 인사하고 가는 아이, 당당하게 남(!)의 교실에 들어와서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가는 아이 등 각양각색이지만, 새로운 교실, 친구, 선생님이 낯설어서 힘을 얻고 가려는 마음은 매한가지다. 그러다 짧으면 한 두 주, 길면 한 학기 정도 찾아오다가 점차 아이들은 발걸음을 끊는다. 처음에는 ‘날 벌써 잊은거야?’하며 섭섭하고 아쉬웠는데, 이제는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안다.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을 해서 굳이 이전의 관계에 집착할 이유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19년 1학기에 나와 지지고 볶고 온갖 산전수전 다 겪은 후에, 매일 선생님께 전화하겠다며 감동의 이별을 한 최양도 전학 간 곳에서 잘 지내기 때문에 아무 소식이 없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이 부분은 출판사에서 미리보기를 제공하지 않아서 그림을 가져오지 않았다. 투박한 선에 온갖 감정이 다 담겨 있으니, 직접 보기를 추천한다.


올 해는 신기하게 의욕이 자꾸자꾸 샘솟는다. 5년차인데 마치 신규 발령난 새내기 선생님인 양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다. 그러던 중 『다시 만날 때』 서평단 모집 글을 보고 이 책을 만났는데, 이 책, 초심 지피기 용으로 딱이다. 신규 때 내가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고 경험한 일들이 뭉게뭉게 떠오르면서 의욕이 더 더 더 생긴다.


『다시 만날 때』는 졸업식에 어울리는 노래고, 오늘은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조금은 안 어울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평소였으면 아이들과 첫 만남을 진행하고 눈 코 뜰 새 없이 지냈을 오늘, 교육부에서 전국의 초, 중, 고등학교의 개학을 2주 더 연기한다고 발표했는걸. 이토록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데 못 만난다. 참 오래도록 기다려서 아이들을 만나기에 그 만남이 더욱 귀하고 소중하다. 아직 면대면으로 만나지 못한 아이들이니 ‘다시’ 만나는 게 아니라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글자로만 만난 6학년 4반 아이들을 얼른 얼굴을 맞대고 만나고 보고 악수하고 안아주고 사랑을 주고받고 싶다.


가사 전문을 올리며 서평을 마무리한다.

다시 만날 때 - 달지 (feat. 6학년 2반)


생생히 기억나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그날

하나도 도움 되지 않았던 그 심호흡과

호기심에 가득 빛나던 아이들의 그 눈빛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 애쓰던 나


며칠 밤을 잠 설쳐가며 세웠던

수업 준비들은 사실 허점 투성이였고

마치 어릴 적 했던 첫사랑 첫 연애 때처럼

열정에 비해 서툴기만 했던 

사실 아직 가끔 두렵기도 해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길 기도해

uh 내가 조금만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하는 아쉬운 마음들을 매일마다 지워내

그래 여기에 서지 못했다면 어디서

이런 넘치는 맘을 받을 수 있었을까 싶어

교실을 꽉 채운 아이들의

존경,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들을


우리가 다시 만날 때

똑같은 미소를 보여 줄래 

우리가 다시 만날 때도

네 편이 되어줄게


우리가 다시 만날 때

똑같은 미소를 보여 줄래 

우리가 다시 만날 때도

네 편이 되어줄게



고작 1년. 

주어진 시간이 참 짧더라

많은 걸 주고 싶었는데 받은 게 더 많았고

가르치기 위해 섰지만 그 밝은 미소 안에서

오히려 내가 배운 것들이 훨씬 더 많았어


내가 바라는 것 딱 하나

그저 너의 삶에 행복 한 줄기를 더해주는 것

잊혀지더라도 난 괜찮아

너의 삶에 더 큰 행복이 쌓여 내가 지워지는  것

난 언제든 네 편이 돼줄게

혹여나 세상이 널 아프거나 슬프게 할 때

어느 날 갑자기 날 찾아와도 돼

세상이 등을 돌려도 나만은 널 안아줄게

지금 네 얼굴에 띄운 그 미소를

그 어떤 누구도 빼앗거나 지우지 못하길

사랑할 줄 알고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그 웃음 그대로 다시 만나길



고마운 6학년 2반 친구에게

일단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년 동안 고생했어

6학년이 될 때 많이 어색했지만

선생님과 좋은 추억들을 쌓아서 재미있었어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지만

재미있게 지내자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이니까

중학교를 가더라도 잊지 말고 기억해줘

그리고 친구야 우리 반이 되어주어서 고마워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너와 함께한 올해가 너무 행복한 지율희 보냄



다시 만날 때도

우리가 지금의 우리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래

그땐 각자의 색으로 가득 채운 

너희들의 도화지를 보여주길 바래

네게 닿기를 바래

세상의 진심이 너희들에게 닿기를 바래

네가 닿기를 바래

너희의 진심이 세상에게도 닿기를 바래



우리가 다시 만날 때

똑같은 미소를 보여 줄래 

우리가 다시 만날 때도

네 편이 되어줄게


우리가 다시 만날 때

똑같은 미소를 보여 줄래 

우리가 다시 만날 때도

네 편이 되어줄게



내가 바라는 것 딱 하나
그저 너의 삶에 행복 한 줄기를 더해주는 것
잊혀지더라도 난 괜찮아
너의 삶에 더 큰 행복이 쌓여 내가 지워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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