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아는 사람 - 유진목의 작은 여행
유진목 지음 / 난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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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다 끝나니까 면허를 따서 운전은 해보고 죽자. 이것이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죽으면 다 끝나니까 이 책은 쓰고 죽자. 매번 그런 식이었다. 죽으면 다 끝나니까 하노이에 가서 반 꾸온 꼬년과 분짜를 한 번 더 먹어보고 죽자. 이것이 내가 하노이에 가게 된 이유였다.”

산문집 <슬픔을 아는 사람>의 저자 유진목 시인은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의 보복성 고소로 무려 6년 동안이나 싸우게 된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사건이지만(ㅂㄷㅂㄷ)
사람들이 모르더라도 ‘내가 알기 때문에’ 싸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고된 싸움의 끝에 ‘혐의없음’ 처분을 받아내고,
하노이행 비행기를 탄다.

승소의 기쁨보다 살아내는 일의 고통을 더 깊게 느끼는,
슬픔과 고통과 분노와 무기력 사이의 어디쯤을 오가는 그의 여행기를 읽으며-
나는 5년 전 직장에서 겪었던 ‘나의 싸움’을 생각했다.
애써 잊고 싶었던, 내 삶에서 잘라내고 싶은 아픈 기억.
공공의 적이 되어 고립된 가운데,
그 와중에도 수많은 거짓말과 왜곡을 바로잡겠다고 고군분투했던 나였다.
기꺼이 곁에 서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내 몸과 마음은 피폐해지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싸우는 나’를 스스로 경멸하며
더이상 세상의 모순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던지.
‘이걸 꼭 내가 해야 하나? 왜 하필 내게 이 싸움이 주어졌나?’
저자의 괴로움은 곧 나의 괴로움과 겹쳐졌고,
그가 하노이를 통해 한 걸음 내딛는(이렇게 표현하는 게 폐가 안 된다면!)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저자는 한 달 상간으로 하노이를 세 번이나 방문하고는,
세 번째에서야 드디어 그곳의 아름다움을 눈에 들이고는 눈물을 흘린다.
거기엔 국물이 걸쭉한 쌀국수가 있고, 망고가 통째 썰려 들어간 아이스티가 있고, 무엇보다 같은 곳에서 늘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있지.
그러니, ‘죽지 않고 살아있기 위해’ 하노이로 계속 간 거 너무 잘하셨다.

“나는 내가 본 것을 다시 보기 위하여 하노이로 떠났다. 살면서 내가 잘한 일이 있다면 불행한 내가 본 것을 행복한 내가 다시 보기 위해 몸을 움직여 멀리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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