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들의 노래 -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
홍은전 지음, 훗한나 그림, 비마이너 기획 / 오월의봄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친구들 만난 자리에서
“이 책 제발 모든 사람들이 다 읽게 해주세요.”하며
절실하게 추천한 적이 있다.
이 사회의 통념을 멈춰 세운 장애인운동가들의 삶을
홍은전이 인터뷰하고 기록한 책, <전사들의 노래>.

“책이 무거워서”라고 운을 떼고는
“아, 무겁다는 게 그 물리적인 무게 아니고…” 했다가
친구들로부터 ‘넌 대체 우리를 뭘로 보냐…’하는 핀잔을 들었던,
어쨌거나 ‘무거워서’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읽는 내내 나의 개인사와 연결되며 동시에
도끼가 머리를 치는 듯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생각의 샛길에 어찔할 정도여서,
그래서 읽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THE 홍은전 님의 책이기도 하니 이거 모든 사람이 다 읽었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이 책에 실린 다섯 명의 장애해방운동가들의 삶이 다 너무 멋진데,
나는 특히! 박김영희의 이야기에 오래 머물렀다.
‘여성’인 장애인으로서,
‘떠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낮달 같은’ 존재로서,
하지만
‘네가 필요해.’라는 말을 들으면 어디든 가게 된다는 그.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서 어떻게 연구를 하지?’라는 의문을 품는 그.
무서운 건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사람들의 ‘우린 뭘 해야 해요?’ 하는 물음만은 너무 막막하고 무서웠다는 그

‘죽으면 입만 동동 뜰 거’라는 그의 친구들 말처럼
그의 흘러넘치는 이야기는 곧 그의 흘러넘치는 사랑이었다.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가며 세상에 젖어들고 분투하는 그의 이야기가 너무 멋져서
나는 책을 읽다가 종종 멈춰서 필사를 했다.
이를테면 이런 말들.

“(워싱턴 국제장애인여성리더십포럼에 참가했을 때) 몸의 차이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우리와 너무도 달랐죠. 아시아의 장애여성들은 얼마나 맞아죽는지 얘기하고 아프리카 장애여성들은 얼마나 굶어죽는지 얘기하는데 유럽 장애여성들은 레즈비언이 어쩌고저쩌고했어요. 한국은 우리가 얼마나 성폭력을 당하는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제대로 조사된 것조차 없어서 오로지 경험에 기대야만 했어요. 그런데 레즈비언이라니, 완전 신세계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장애가 있는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장애여성의 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과 함께 가기 같은 것들이요. 언젠가 연구소에서 독립해 우리만의 단체를 만들 때를 대비해서 온갖 자료들로 가방을 꽉꽉 채워서 돌아왔어요. 어휴, 휠체어가 무거워서 밀리지가 않을 정도였어요.”

또, 이런 말도.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니까 유리창에 내 얼굴이 비쳤어요. 스스로에게 물었죠. ‘나는 어떻게 살지?’ 터널이 끝나서 바깥이 밝아지면 내가 사라졌다가 터널로 들어가면 내가 나타났어요. 어두워야만 내가 보였죠. 인생에서 힘들 때기 찾아오면 터널을 지나던 그 순간을 생각해요. 힘들 때 나를 바라보면 내가 보인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살아왔어요.”

이 이야기를 읽고 나는 바로 ‘장애여성공감’ 사이트에 접속했다.
전장연에 후원하고 있다고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어 ’장애여성공감‘에도 후원을 신청.

지금껏 살면서 가장 잘한 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살아있는 게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너무 멋져서, 나는 우선 이 책을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했다.

“요즘 뭐 읽어?” 하면 바로,
“어어, <전사들의 노래>. 홍은전 작가님이 장애인권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한 책이야. 제발 읽어줘ㅠㅠ”

(아, 훗한나님의 삽화도 너무 좋다. 인터뷰이의 삶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담백한 그림에, 또한 담백한 그림 설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