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근을 싫어하는군요 저는 김치를 싫어합니다 - 제주에서 서양 식당하는 사람의 생각
임정만 지음 / 밑줄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글, 문체는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적나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적인 감정, 순간적인 표현은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니,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본모습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사람의 지극히 단순한 일부분이지 않을까.

 

 차근히 들여다보고 정리해서 드러낸 내면, 지향하는 가치.

 결국 그것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는 현실에서는 조금 빗겨난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듯 보이고,

 자신의 로망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듯 보이지만,

 현실에서 아주 발을 뺀 것은 아니고,

 감정적 삶은 더더군다나 아닌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인다.

 

 생활에 낭만은 있으나 현실도 잊지 않고 있고,

 감상은 있으나 감정에 매어 있지 않으며,

 그런 균형 감각은 짧은 문장과 담백한 문체에 잘 드러나 있다.

 

 경험과 그것에서부터 확산되는 단상들,

 이 글은 이 작가의 생업 기록임과 동시에 섣부른 자영업 준비자에게 주는 신중한 조언인 듯도 하다. 

 

 아무튼,

 원하는 삶을 위한 열정을 이렇게 여유로 드러낼 줄 아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작가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부디, 평화로운

우리의 미래,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 우리가 쌓아온 것이, 그저 상황에 달려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언제든 톡 밀면 나락으로 떨어져버릴 수 있는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생략) 제도는 현실적으로 어떤 부당한 권리의 침해도 방어해줄 수 없고, 나의 이득은 사회적으로 주장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 개인의 쫓겨남, 한 개인의 폐업, 한 개인이 당한 부당한 일로 끝날 뿐이다.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있고, 각자 좌절하고 각자 재기할 뿐이다. 다들 안녕하신지. - P78

에자키는 요리에 정성을 들여야 맛있음을 역설한다. 이때의 정성은 정성이 무슨 맛을 내느냐고 따져 묻는 정성과 의미가 다르다. 단지 고생을 알아 달라는 일차원적 수사가 아니라 방향성을 띤 정성, 다른 말로하면 본분이다. - P114

완벽할 수 없다는 말이 완벽함을 포기한다는 말은 아니다. 언제나 목표는 완벽함이다. (생략) 중독 같은 것이기도 하다. 완벽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의 짜릿함, 그리고 나의 완벽함이 손님에게 전달되었을 때의 쾌감은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붙이게 한다. - P157

청결하다는 상태는 꾸준히 유지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한순간도 방심하거나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 P158

안타까웠다. 자본과 실력이 있어도 방향성이 없으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걸 지켜봤다. 어쩌면 우연히 한 방 터질 수도 있다.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한 방 터진다한들. 그 한 방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물론 방향성을 잡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쉽고 어려움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방향성을 잡는다는 건 진짜 좋아하는 것을 만나는 일이고, 만남이란 대체로 우연히 찾아온다.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많은 경험을 통해 이 우연의 계기를 늘리는 것이다. 사랑과도 같다. 덜컥 찾아온다. 빠지고 나면 다른 길은 보이지 않는다. 식당이란 정말 사랑하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랑은 언제나 일방향이다. - P1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표지에 소개한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이라는 멘트는 정확했다.

이 분은 참 특이하다. <베를린 일기>를 읽을 때도 그랬다.

말장난과 같은 농담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화법에 익숙해진다. 편안하고 진실된 이야기에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쉽고 빠르게 읽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쉽고 빠르게 읽히지만 다시 읽게 된다

기억하고 싶어서.

우리의 일상은 깊이 생각하면 어렵지만, 일상이라는 성질 자체는 쉽고 편안하게 흘러가는 시간들이다.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일들을 생각하면 때로 무겁고 어렵고 버겁긴 하지만, 일상의 소중함은 그것이 맞춤옷과 같이 편안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함께 한다는 것이 아닐까.

(, 이 작법과 화법의 느낌을 설명하고 싶어서 말이 길어져버렸다.

구구절절 말고 간단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요즘 표현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이 작가의 고민 상담술을 배우고 싶다.

그는 가볍게 운을 떼는 것 같지만 매우 디테일하게 고민하고 현실적으로 대안을 찾으려고 애쓰며 자신의 모든 경험을 살려 공감하고자 노력한다.

이를테면 패션 센스가 없다는 여대생의 고민에 대해 애처로운 기분으로 며칠간 조사를 하여 일반적 여성룩의 통계를 내어 주는 것

머리 크기가 고민하는 사람의 고민 해결을 위해 남녀의 머리 사이즈 평균을 조사하여 우주의 넓이는 무한대이며 영혼의 두께는 우주보다 넓을 수 있는데’, 단지 평균과의 1,2센티 차이라는 옹색한 견해로 자신을 비하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대신 가장 하고픈 말을 할게요. 많이 웃으세요. 얼굴이 크면 웃는 모습이 더 크게 보일 거잖아요. 큰 얼굴이 웃으면 배로 예쁠 겁니다.’라고 저절로 미소지어지는 결론을 내리는 정성어린 따뜻함이 돋보인다.

너무 진지해서 고민이라는 사람에게는 진지의 대명사격인 독일의 언어로 구텐탁!’이라고 인사하는 위트마저 갖추고 있다.

때로는 진중한 조언도 풀어낸다. 말을 잘하고 싶은 사람에게 평소에 아름다운 마음과 훌륭한 생각을 품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여러 이슈와 현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두는 것, 이게 기초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공감은 기초, 고민 해결을 위한 세부적인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기본, 재치와 위트는 덤, 진지한 결론과 현실적 조망은 핵심, 그 중의 화룡정점은 '추신'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과장되게 디테일하거나 진지한 척하여 장난 같아 보이지만, 듣다보면 가볍고도 편안한 위로가 되는 말들을 풀어낼 줄 아는 사람.

때로는 과감하게 솔직하고 냉정해지기도 한다. 어설픈 희망의 고문따윈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우연의 법칙, 우연을 가장한 운명의 법칙을 간과하지도 않는다.

 

의문을 품어 보지 않은 사실에 대해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할 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나도 생각해 봐야겠다.

이를테면, ‘수업 시간에 자면 왜 안 돼요?’, ‘왜 꼭 엄마 말을 들어야 해요?’, ‘학교에서 신발을 신고 있으면 왜 안 돼요?’라고 규율과 교육에 의문을 제시할 때 어떻게 현명하게 답해줄 수 있을까. 고리타분한 교훈 말고. 나는 가르쳐준대로 받아들이며 학창 시절을 보내와서 저런 걸 궁금해하지 않았다.


작가님, 저도 고민이 있습니다.

위트가 있으면서도 따뜻하고 진지하게 상담에 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인생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정진하면 되고,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그저 순리대로 닥쳐오는 상황을 해결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 P200

단순한 삶은 물리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여러 단계의 절단(즉, 포기와 버림)이 필요하니까요. - P212

한데, 방심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애써 노력해서 형성한 ‘자신만의 견해‘를 언제든지 바꾸고, 폐기 처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살기 좋은 방향으로 높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초보 어른으로서 구축한 ‘태도와 자세‘는 허물 수 없는 성벽이 아니라, 흐르는 물에 잠시 묶어둔 부표와 같습니다. 더 멋진 생각과 더 나은 자세가 발견되면, 이전에 묶어둔 부표를 새 흐름에 과감히 떠내려 보내는 것, 이게 바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방법‘입니다. - P2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