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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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소개한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이라는 멘트는 정확했다.

이 분은 참 특이하다. <베를린 일기>를 읽을 때도 그랬다.

말장난과 같은 농담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화법에 익숙해진다. 편안하고 진실된 이야기에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쉽고 빠르게 읽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쉽고 빠르게 읽히지만 다시 읽게 된다

기억하고 싶어서.

우리의 일상은 깊이 생각하면 어렵지만, 일상이라는 성질 자체는 쉽고 편안하게 흘러가는 시간들이다.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일들을 생각하면 때로 무겁고 어렵고 버겁긴 하지만, 일상의 소중함은 그것이 맞춤옷과 같이 편안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함께 한다는 것이 아닐까.

(, 이 작법과 화법의 느낌을 설명하고 싶어서 말이 길어져버렸다.

구구절절 말고 간단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요즘 표현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이 작가의 고민 상담술을 배우고 싶다.

그는 가볍게 운을 떼는 것 같지만 매우 디테일하게 고민하고 현실적으로 대안을 찾으려고 애쓰며 자신의 모든 경험을 살려 공감하고자 노력한다.

이를테면 패션 센스가 없다는 여대생의 고민에 대해 애처로운 기분으로 며칠간 조사를 하여 일반적 여성룩의 통계를 내어 주는 것

머리 크기가 고민하는 사람의 고민 해결을 위해 남녀의 머리 사이즈 평균을 조사하여 우주의 넓이는 무한대이며 영혼의 두께는 우주보다 넓을 수 있는데’, 단지 평균과의 1,2센티 차이라는 옹색한 견해로 자신을 비하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대신 가장 하고픈 말을 할게요. 많이 웃으세요. 얼굴이 크면 웃는 모습이 더 크게 보일 거잖아요. 큰 얼굴이 웃으면 배로 예쁠 겁니다.’라고 저절로 미소지어지는 결론을 내리는 정성어린 따뜻함이 돋보인다.

너무 진지해서 고민이라는 사람에게는 진지의 대명사격인 독일의 언어로 구텐탁!’이라고 인사하는 위트마저 갖추고 있다.

때로는 진중한 조언도 풀어낸다. 말을 잘하고 싶은 사람에게 평소에 아름다운 마음과 훌륭한 생각을 품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여러 이슈와 현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두는 것, 이게 기초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공감은 기초, 고민 해결을 위한 세부적인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기본, 재치와 위트는 덤, 진지한 결론과 현실적 조망은 핵심, 그 중의 화룡정점은 '추신'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과장되게 디테일하거나 진지한 척하여 장난 같아 보이지만, 듣다보면 가볍고도 편안한 위로가 되는 말들을 풀어낼 줄 아는 사람.

때로는 과감하게 솔직하고 냉정해지기도 한다. 어설픈 희망의 고문따윈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우연의 법칙, 우연을 가장한 운명의 법칙을 간과하지도 않는다.

 

의문을 품어 보지 않은 사실에 대해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할 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나도 생각해 봐야겠다.

이를테면, ‘수업 시간에 자면 왜 안 돼요?’, ‘왜 꼭 엄마 말을 들어야 해요?’, ‘학교에서 신발을 신고 있으면 왜 안 돼요?’라고 규율과 교육에 의문을 제시할 때 어떻게 현명하게 답해줄 수 있을까. 고리타분한 교훈 말고. 나는 가르쳐준대로 받아들이며 학창 시절을 보내와서 저런 걸 궁금해하지 않았다.


작가님, 저도 고민이 있습니다.

위트가 있으면서도 따뜻하고 진지하게 상담에 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인생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정진하면 되고,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그저 순리대로 닥쳐오는 상황을 해결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 P200

단순한 삶은 물리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여러 단계의 절단(즉, 포기와 버림)이 필요하니까요. - P212

한데, 방심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애써 노력해서 형성한 ‘자신만의 견해‘를 언제든지 바꾸고, 폐기 처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살기 좋은 방향으로 높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초보 어른으로서 구축한 ‘태도와 자세‘는 허물 수 없는 성벽이 아니라, 흐르는 물에 잠시 묶어둔 부표와 같습니다. 더 멋진 생각과 더 나은 자세가 발견되면, 이전에 묶어둔 부표를 새 흐름에 과감히 떠내려 보내는 것, 이게 바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방법‘입니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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