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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지음, 조동섭 옮김 / 세계사 / 2023년 7월
평점 :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2019)의 원작. 사실 그동안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는 단 한 편도 보지 못했다. 심장 쫄리고 피 튀기는 잔인한 장면에서는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하지만 책이라면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은가! 싶어서 읽어 보았다.
소설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은 1969년 8월, 미국 LA에서 일어난 <테이트-라비앙카 살인사건>, 일명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이다. 연쇄 살인범 찰스 맨슨이 자신의 추종자들인 맨슨 패밀리를 사주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집으로 쳐들어가 당시 임신 8개월이던 그의 아내 샤론 테이트와 그녀의 친구, 동료 등 5명을 잔인하게 난도질해 살해했다. 역사상 희대의 살인사건으로 당시 미국 전체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논픽션+픽션’의 조합으로 가상의 인물들이 역사적인 사건의 전개와 결말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다는 점이 흥미롭다. 주인공 릭과 클리프는 작가가 만든 세계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지우고, 바꾸며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워낙 문장력이 뛰어나서인지, 영화에서는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았다는 걸 미리 알았는데도 그 둘의 얼굴이 전혀 생각나지 않고, 나만의 릭과 클리프를 상상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영화로 본 이동진 평론가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님이 갱년기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꽤 감성적이다. 작가가 추억하는 그 시절 할리우드 영화계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고, 스티브 맥퀸이나 이소룡 같은 반가운 옛날 영화배우들도 등장한다. 세기의 비극이었던 사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품격있게 바꿔 놓았다. 한마디로 타란티노가 그 시절 할리우드에 보내는 위로이자 찬사!
나 같은 무지렁이도 재미있게 읽었으니, 할리우드의 역사 또는 타란티노 감독&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본다면 더욱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순한 맛’의 타란티노도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