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내 일 -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
이다혜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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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전이 아닌 한 인물의 성실성에 대한 기록



이다혜 작가는 처음부터 이 책은 위인전이 아님을 정확히 명시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분들의 이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상승과 하강이, 지난한 정체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7명의 인터뷰는 그들의 ‘꾸준함’만을 이야기한다. 전형적인 영웅서사처럼 그들은 조력자를 만나기도 했고(이상희님의 교수님처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누군가에겐 그들이 영웅처럼 해당 업무에 대한 비범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겪지 않은 것들에 대한 평가가 가장 쉬운 법이니까.



그런데 내 눈에는 그들이 가진 가장 비범한 능력은 감각적인 연출 기술도, 뛰어난 배구 실력도, 훌륭한 커피 추출 능력도, 세상을 뒤집는 상상력도, 시대를 앞서 읽는 경영인의 눈도, 학자로서의 천재성도, 엄청난 분석력도 아니다. 그들이 가진 가장 비범한 능력은 ‘성실성’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꾸준히 걸어왔다. 이다혜 작가의 말처럼 그들의 인생은 끊임없는 상승과 하강을 겪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7명은 모두 그저 걸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성실성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기반으로 이루어지 않았다는 사실은 하나의 위로가 되어 전해진다. 그들도 불안한 앞날을 보며 울기도 했고, 길을 비틀까 생각도 했으며, 실제로 길을 비틀기도 했다. 만약 이 7분의 인터뷰이가 현재 직업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이 것만 파고든 천재들이었다면, 난 결단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원래 선택한 전공과 다소 달라지더라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공모전마다 장르성이 짙다는 소리를 들으며 떨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장르물을 쓰기 시작한 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어떻게든 성실하게 버텨낸 이들에 관한 기록이다.





심드렁하게, 그러나 큰 테두리를 갖고.



고인류학자 이상희님은 “하기 싫은 일을 심드렁하게 해낼 줄 아는 사람이 오래 가고 생산적인 일을 하더라고요.” 라고 말하며 목표를 이루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작가 정세랑님은 이 길이 내가 원래 가는 길과 다른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 때 한 가지만을 생각한다고 한다. “큰테두리! 큰테두리만 생각하면 돼요.” 그리고 이 두 분의 이야기는 나머지 5분의 이야기와도 이어진다. 7분의 인터뷰이는 모두 심드렁하게, 그러나 자신의 큰 방향성을 놓치지 않은 채 인생을 꾸려간 이들이다.



우리의 미디어는 너무 많은 천재들을 보여준다. 어렸을 때부터 이 분야에 재능을 갖고, 신동으로 불리며, 그리고 그렇게 한 우물만 파낸 천재들을. 그러나 나의 삶은 너무도 많은 변화를 가지고 있었다. 때론 글을 썼으며 때론 그림을 그렸고 때론 공부를 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스스로를 애매한 재능의 합체쯤으로 여겼다. 하나로 성공할 능력도 없는 애매한 인간. 이따금 그것은 곧 실패로 여겨졌다. 모두 각기 노는 것들이라 나는 아마 그렇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내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 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 흥미로운 것들을 하나씩 하다보면 나는 ‘길’은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 광장을 걷고 있는데, 길에 집착해 보아야 할 것은 못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했던 것, 하고 싶던 것, 끌리던 것들은 모두 다른 길 같은데 결국 ‘나의 광장’을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더 용기내도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7분의 인터뷰이들은 모두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그들의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그들이 그들로서 존재할 수 있게끔 기반이 되어줬다. 그들의 ‘길’이 아니라 여긴 것들이 결국 그들에게 광장이 되어주었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특별하지 못함에 기죽지 않기로 한다. 그저 나만의 광장을 꾸준하게 가꾸기로 다짐하며.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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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흡혈마전
김나경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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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931 흡혈마전>은 희덕과 계월의 이야기이다.

흡혈마인 계월이 희덕이 있는 진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사감으로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소설인데,

시대적 배경이 특이하게도 1931년이다.

현대 흡혈마 이야기나 서양을 배경으로 한 흡혈마 이야기는 많이 보았지만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이라니. 물론 대한민국에서 흡혈마 얘기가 꼭 현대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밤을 걷는 선비>도 있지만, 그 작품의 전체적인 줄거리도 잘 모르고 조선시대 배경인 것으로 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살린 채 흡혈마를 등장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두 질문이 내가 책을 펼치기 전 가졌던 질문들이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작가에 대한 존경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작가는 아주 훌륭하게 작품에 온갖 것들을 녹여냈다. 그것도 무척 간결하고 쉬운 문장으로.

웹툰 작가로 활동했던 김나경 작가답게(해당 작품을 보진 않았지만),

작품은 전개 과정 내내 머릿속에 그려지듯 움직인다.

글이 나를 두고 저 멀리 가는 일 없이, 작품에 발맞춰 그 장면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1931년의 경성

1930년대는 세계경제대공황으로 인해 일본이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을 때이고, 또 그 위기를 당연하게 식민지였던 조선을 착취하여 해결하려던 시기이다. 그만큼 산미증식계획이 활발히 진행되어 조선인들은 쌀은커녕 조라는 작물을 수입해서 먹어야 했고 많은 조선인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보리도 아니고 조는 밥이라고 치기도 민망스런 것인데 이는 작품에서도 간단하게 언급된다.

진수성찬을 차려놓은 외국인들과 기회주의자들의 만찬을 보며 희덕은 조선인들은 '조밥'도 먹기 힘들다며 경악하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자연스럽게 당시 조선인들의 환경을 노출시킨다.



앞서 말한 사례처럼 병인양요, 파리강화회의와 헤이그 특사, 만주 개발 계획(1930년대 만주는 만주국이 되어 일본의 손아귀로 넘어갔지만), 일본의 전쟁 야욕 등 온갖 것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다.

그리고 그 역사적 사실들이 언급을 넘어 작품의 배경이 되어주는 장면들은 이 작품의 매력 그 자체였다.

게다가 대사에서 묻어나는 역사적 분위기들도 자연스럽게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희덕이 다니는 진화여자보통고등학교도 일제의 식민지 차별 교육이 그대로 보이는 명칭이다.



그리고 소설 속 사이토 선생이란 인물은 사이토 총독(1920년대 문화통치기 총독)을 떠올리게 했는데,

특히 그가 학생들에게 '친절한 듯' 보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결국 황국 신민이라고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면서, 그는 꽤 온화한 척 굴며 학생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늘어놓는다. 문화통치기에 더욱 은밀해진 일제의 침탈과 유사해보여서 눈이 갔다.



사실 여기까지는 지극히 내 개인적 욕심으로 정리한 영역이고, 진정한 서평은 아래의 주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희덕'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작품은 앞서 말했듯이, 간결하고 쉬운 문장으로 전개 내내 그려지듯 움직인다.

다양한 사실들은 뒷배경으로 지나감으로써 독자에게 어떠한 피로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1931년의 경성을 통해 오늘을 꼬집는다.



이 책은, 이 책을 읽을 여성, 청소년 독자들에게 한 줌의 용기를 줄 것이다. 그 한 줌은 그들의 기반이 되어줄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구원해줄 초월적 남성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은장도를 손에 쥔 희덕이 되기를 꿈꾸게 될 것이다.



오래된 동화를 넘어 현대 드라마 곳곳에도 등장하는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것,

혹은 초월적인 존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영웅주의적 소설의 연장선.

그러나 작가는 희덕을 통해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한다.



"내가 아니라, 희덕이 구했어"



계월이 균일에게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고 난 뒤 말한 대사이다. 이처럼 흡혈마인 계월이 그 힘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희덕이 은장도를 손에 쥐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누군가의 지시도 없이.



흡혈마인 계월이란 존재가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등장했지만, 그 역시 과거 아버지의 소유물에 불과했던 '여성'이었다. 그리고 흡혈마가 된 배경도 그 이후의 삶에도 계월은 한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희덕은 계월에게 개인이 되는 경험을 선물한다. 비록 특별한 능력을 지니긴 했지만, 강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닌 희덕을 통해 우리는 초월자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초월자에게 사랑하게 되는 모습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을 얻었다.



마침내 은장도를 손에 쥐고 계월과 친구를 구해낸 희덕은 누군가의 허락이나 이해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강한 왕자님을 기다릴 이유도 없는 존재였다. 만주로 가는 기차에서 희덕이 내내 기다렸던 가족의 편지를 찢음으로써 그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해냈다. 남성의 나이 많음보다 여자의 배움이 문제가 되는 시대에, 희덕은 자신의 의지로 은장도를 손에 쥐었고, 만주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물론 계월과 희덕이 만주로 갈 수 있었던 배경엔 '남성'의 지지가 있었고, 독립 운동 단체 내에서도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모습들도 소설에서 보인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남성의 지지가 필요한 것도, 그들 단체의 여성을 가볍게 보는 대화들도 이해가 된다. 실제로 당시 독립 운동 단체 내에서도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는 일들이 있었고 그와 동시에 그 일들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희덕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목소리로 만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희덕을 꿈꾸게 되는 순간, 우리는 남성이 자신의 구원자가 되어줄 것이란 헛된 망상을 내면화하지 않게 될 수 있다. 더 이상 누군가가 자신을 힘든 상황이나 어려움으로부터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은장도를 손에 넣기를 꿈꾸게 될 것이다. 희덕은 우리에게 새로운 꿈이 되어 준 것이다.



●●●



작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1931년의 경성을 통해 우리에게 스스로 선택하라고 말함과 동시에 역사적 흐름까지 익히게 한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근현대 한국 여성 작가의 작품들에서 따온 목차들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며, 김나경 작가는 우리에게 '희덕'을 선물해주었다. 이 막중한 일들을 작가는 이렇게 쉽고 간결한 문체로 해냈다.



우리가 흡혈마가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나, 우리가 희덕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를, 스스로의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채워가면 된다. 그리고 어려움을 마주할 때 벌벌 떨며 기도하는 대신, 은장도를 손에 쥐면 된다. 이 것은 결국 자신을 스스로 구해내겠다는 의지이다. 그러니 희덕을 꿈꾸게 됨으로써, 헛된 망상 속 존재에 대한 기대 대신 스스로가 자신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부담스럽지 않고 흥미로운 소설을 찾는 이들이나,

새로운 주인공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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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흡혈마전
김나경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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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931 흡혈마전>은 희덕과 계월의 이야기이다.

흡혈마인 계월이 희덕이 있는 진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사감으로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소설인데,

시대적 배경이 특이하게도 1931년이다.

현대 흡혈마 이야기나 서양을 배경으로 한 흡혈마 이야기는 많이 보았지만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이라니. 물론 대한민국에서 흡혈마 얘기가 꼭 현대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밤을 걷는 선비>도 있지만, 그 작품의 전체적인 줄거리도 잘 모르고 조선시대 배경인 것으로 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살린 채 흡혈마를 등장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두 질문이 내가 책을 펼치기 전 가졌던 질문들이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작가에 대한 존경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작가는 아주 훌륭하게 작품에 온갖 것들을 녹여냈다. 그것도 무척 간결하고 쉬운 문장으로.

웹툰 작가로 활동했던 김나경 작가답게(해당 작품을 보진 않았지만),

작품은 전개 과정 내내 머릿속에 그려지듯 움직인다.

글이 나를 두고 저 멀리 가는 일 없이, 작품에 발맞춰 그 장면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1931년의 경성

1930년대는 세계경제대공황으로 인해 일본이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을 때이고, 또 그 위기를 당연하게 식민지였던 조선을 착취하여 해결하려던 시기이다. 그만큼 산미증식계획이 활발히 진행되어 조선인들은 쌀은커녕 조라는 작물을 수입해서 먹어야 했고 많은 조선인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보리도 아니고 조는 밥이라고 치기도 민망스런 것인데 이는 작품에서도 간단하게 언급된다.

진수성찬을 차려놓은 외국인들과 기회주의자들의 만찬을 보며 희덕은 조선인들은 '조밥'도 먹기 힘들다며 경악하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자연스럽게 당시 조선인들의 환경을 노출시킨다.



앞서 말한 사례처럼 병인양요, 파리강화회의와 헤이그 특사, 만주 개발 계획(1930년대 만주는 만주국이 되어 일본의 손아귀로 넘어갔지만), 일본의 전쟁 야욕 등 온갖 것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다.

그리고 그 역사적 사실들이 언급을 넘어 작품의 배경이 되어주는 장면들은 이 작품의 매력 그 자체였다.

게다가 대사에서 묻어나는 역사적 분위기들도 자연스럽게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희덕이 다니는 진화여자보통고등학교도 일제의 식민지 차별 교육이 그대로 보이는 명칭이다.



그리고 소설 속 사이토 선생이란 인물은 사이토 총독(1920년대 문화통치기 총독)을 떠올리게 했는데,

특히 그가 학생들에게 '친절한 듯' 보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결국 황국 신민이라고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면서, 그는 꽤 온화한 척 굴며 학생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늘어놓는다. 문화통치기에 더욱 은밀해진 일제의 침탈과 유사해보여서 눈이 갔다.



사실 여기까지는 지극히 내 개인적 욕심으로 정리한 영역이고, 진정한 서평은 아래의 주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희덕'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작품은 앞서 말했듯이, 간결하고 쉬운 문장으로 전개 내내 그려지듯 움직인다.

다양한 사실들은 뒷배경으로 지나감으로써 독자에게 어떠한 피로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1931년의 경성을 통해 오늘을 꼬집는다.



이 책은, 이 책을 읽을 여성, 청소년 독자들에게 한 줌의 용기를 줄 것이다. 그 한 줌은 그들의 기반이 되어줄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구원해줄 초월적 남성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은장도를 손에 쥔 희덕이 되기를 꿈꾸게 될 것이다.



오래된 동화를 넘어 현대 드라마 곳곳에도 등장하는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것,

혹은 초월적인 존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영웅주의적 소설의 연장선.

그러나 작가는 희덕을 통해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한다.



"내가 아니라, 희덕이 구했어"



계월이 균일에게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고 난 뒤 말한 대사이다. 이처럼 흡혈마인 계월이 그 힘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희덕이 은장도를 손에 쥐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누군가의 지시도 없이.



흡혈마인 계월이란 존재가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등장했지만, 그 역시 과거 아버지의 소유물에 불과했던 '여성'이었다. 그리고 흡혈마가 된 배경도 그 이후의 삶에도 계월은 한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희덕은 계월에게 개인이 되는 경험을 선물한다. 비록 특별한 능력을 지니긴 했지만, 강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닌 희덕을 통해 우리는 초월자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초월자에게 사랑하게 되는 모습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을 얻었다.



마침내 은장도를 손에 쥐고 계월과 친구를 구해낸 희덕은 누군가의 허락이나 이해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강한 왕자님을 기다릴 이유도 없는 존재였다. 만주로 가는 기차에서 희덕이 내내 기다렸던 가족의 편지를 찢음으로써 그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해냈다. 남성의 나이 많음보다 여자의 배움이 문제가 되는 시대에, 희덕은 자신의 의지로 은장도를 손에 쥐었고, 만주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물론 계월과 희덕이 만주로 갈 수 있었던 배경엔 '남성'의 지지가 있었고, 독립 운동 단체 내에서도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모습들도 소설에서 보인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남성의 지지가 필요한 것도, 그들 단체의 여성을 가볍게 보는 대화들도 이해가 된다. 실제로 당시 독립 운동 단체 내에서도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는 일들이 있었고 그와 동시에 그 일들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희덕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목소리로 만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희덕을 꿈꾸게 되는 순간, 우리는 남성이 자신의 구원자가 되어줄 것이란 헛된 망상을 내면화하지 않게 될 수 있다. 더 이상 누군가가 자신을 힘든 상황이나 어려움으로부터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은장도를 손에 넣기를 꿈꾸게 될 것이다. 희덕은 우리에게 새로운 꿈이 되어 준 것이다.



●●●



작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1931년의 경성을 통해 우리에게 스스로 선택하라고 말함과 동시에 역사적 흐름까지 익히게 한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근현대 한국 여성 작가의 작품들에서 따온 목차들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며, 김나경 작가는 우리에게 '희덕'을 선물해주었다. 이 막중한 일들을 작가는 이렇게 쉽고 간결한 문체로 해냈다.



우리가 흡혈마가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나, 우리가 희덕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를, 스스로의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채워가면 된다. 그리고 어려움을 마주할 때 벌벌 떨며 기도하는 대신, 은장도를 손에 쥐면 된다. 이 것은 결국 자신을 스스로 구해내겠다는 의지이다. 그러니 희덕을 꿈꾸게 됨으로써, 헛된 망상 속 존재에 대한 기대 대신 스스로가 자신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부담스럽지 않고 흥미로운 소설을 찾는 이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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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거짓말 - 삶의 진실은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프랑수아 누델만 지음, 문경자 옮김 / 낮은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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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주 글로서, 말로서 더 나은 사람으로 스스로를 ‘창조’합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거짓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믿어봅니다. 우리는 그럼으로써 스스로의 이상을 만들고 따르고자 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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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에듀윌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기본서 심화(1.2.3급) - 新급수체계 대비/무료강의/한능검 동형모의고사 3회 제공 2020 에듀윌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에듀윌 한국사교육연구소 지음 / 에듀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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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능검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개편된다는 말에 무척 불안했는데, 에듀윌은 개편 내용이 반영되고 최신 기출 유형이 반영된 교재여서 안심이 됩니다. 무엇보다 시험적중률이 높기로 유명해서 이것만 믿고 공부하고 있어요! 게다가 내용은 첨부된 사진처럼 설명이 잘 되어있어서 여러 번 읽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손 아프게 필기 안 해도 된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ㅜㅜ...ㅋㅋㅋㅋㅋㅋ손 아픈 거 싫어유..

저같이 대학교와서도 벼락치기로 살고 전공도 벼락치기 하시는 분들은 따로 정리할 필요도 없이 정리만 하면 되니까 더 편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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