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어드 1 - Call me Transer
김상현 지음 / 시공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저자: 김상현
-출판사: 시공사 (재출간)

행성 어스라 불리는 미래의 지구. 최종전쟁 이후 문명은 퇴보하고 토지는 황폐해졌으나 각종 외계종족들의 피난처로 자리잡으면서 점차 부흥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스의 존속에는 다른 종족과의 의사소통을 돕는 감응능력자 '트랜서'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메이런은 트랜서의 소질을 갖고 있는 열여섯 살 소년. 그는 트랜서로 일하다가 불행하게 죽어간 아버지와 그로 인해 정신이 나가버린 어머니의 영향으로 가능한한 자기 능력을 숨기고 평온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느 날 처음 보는 종족의 항성간 셔틀이 마을 근교에 추락하면서 그의 신변은 가차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드는데...

-여러 종류의 수인(獸人)계 외계종족이 공존하는 세계관을 무대로 지구 출신의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나가는 장편 SF소설. 원래 2000년부터 2001년에 PC통신 게시판을 통하여 발표된 뒤 2002년에 종이책 초판이 발행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되어 당시를 기억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전설로만 전해지던 작품이다. 이번에 시공사에서 전4권 중 첫 2권이 먼저 재출간되었는데, 제1권에서는 주인공 메이런이 정든 마을을 떠나 도시로 나와서 입은 거칠지만 솜씨는 일류인 하이어드(청부업자) 쿨란과 파트너를 짜는 이야기를, 그리고 제2권에서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계속해서 달려나갈 것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 멈춰설 것인가'라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메이런이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와 동시에 다른 외계종족이 일으킨 사건을 메이런과 상관없는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추적하는 서브플롯이 들어가 있어서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다. 물론 결말 부분에서 두 플롯은 하나로 수렴되어 일단 해결을 보게 되지만, 그로 인해 메이런의 인생은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흐름이 다음 권의 시작에 연결된다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각 권이 서로 독립적인 이야기를 펼쳐보이는 연작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보자면 메이런의 일생을 순서대로 따라가는 일련의 대하 장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주위에 서식하는 생명체의 형상을 본뜬 수인계 종족은 다른 항성계에서도 지구와 비슷한 생물이 태어나는 모순을 만족스럽게 설명하기가 어려워서인지 SF보다는 판타지에서 더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또한 SF작품 중에서도 시각적인 임팩트와 캐릭터 조형의 편의성 때문인지 활자매체보다는 만화나 게임에서 더 손쉽게 구현되는 듯 하다. (개그로 흘러가지 않고 진지하게 이런 종족들을 다루는 경우는 더더욱 찾기 힘든데, <우주선 사지타리우스>나 <철완 버디> 정도가 알기 쉬운 사례일 것이다. 활자 쪽에서는 래리 니븐의 '노운 스페이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크진 족이 유명.)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생물들의 특징을 따 와서 적절하게 각색하면 바로 설정이 완성되기 때문에 독자에게 '이 종족은 이렇다'라고 설명하기도 편리하고 완전히 생소한 고유의 생명체를 내놓는 것보다 훨씬 그럴듯하게 묘사할 수 있다. 또한 서로 다른 종족 사이의 관계나 상호작용을 그릴 때에도 실존하는 생물들 간의 반응을 관찰함으로써 상상의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반대로 겉모양은 지구의 어떤 생물을 닮았지만 실제 성질은 미묘하게 다르다든가 하는 식으로 묘사하여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러한 종족 설정은 본 작품의 테마 중 하나인 '소통'의 문제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생김새도 관습도 언어도 전혀 다른 각 종족들이 큰 충돌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은 '트랜스'라는 특수능력 덕분이라고 설명된다. 흔히 말하는 텔레파시(정신감응)와도 비슷한 능력이지만 본작에서는 '텔레파시'라는 단어가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기술'에 국한해서 사용되며 '트랜스'는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양방향적인 감응을 가리킨다. 트랜서, 즉 트랜스 능력자는 물리적으로는 계측할 수 없는 정신공간 속에서 상대방과 의식을 링크한 뒤, 상대방과 같은 종족(그 중에서도 상대방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특정 개체)의 모습을 빌어 의사소통을 하고, 트랜스를 끝낸 뒤 그 내용을 다시 인류의 언어로 풀어서 동료에게 설명하는 식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말하자면 완전히 다른 종족의 모습이 되어 그들의 감각까지 느끼게 되므로 정신적인 부담도 상당하고, 너무 오랜 시간동안 트랜스를 하면 그만큼 건강에 위협을 받게 된다.

-주인공 메이런은 다른 면에서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소년이지만, 남의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 능력이 트랜서로서의 소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점차 밝혀지면서, 사건의 흐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대부분의 큰 사건은 그의 통제를 벗어난 곳에서 벌어지며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각 사건의 범인과 대치할 때에도 육체적인 수고는 거의 다 쿨란이 맡기 때문에 실제로 전투에 참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트랜스 능력으로 알아낸 정보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를 주기도 하고,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재치로 쿨란의 위기를 구해줌으로써 반격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등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이다. 또한 각 사건에 연루된 다양한 종족과 계층의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들음으로써 차차 성장해가는 모습 역시 주목 포인트다. 단순한 소꿉친구였다가 2권에서는 사건의 다른 한 축을 이끌어나가는 또 한 명의 주역으로 격상된 아이라와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될지도 흥미깊다. 트랜스 능력에 대해서도 1권에서는 기본 개념만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것에 비해 2권에서는 지나친 혹사로 인해 트랜서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인 '미싱'이나, 마치 사이코메트리처럼 사람이 아닌 물건의 기억을 읽어내는 별개 타입의 트랜서가 소개됨으로써 설정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작품 내에서 활보하는 온갖 종류의 종족들과 그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보다 보면 왠지 이들이 현대 지구의 주요 국가들을 풍자한 알레고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되었다가 겨우 한숨 돌리고 살 길을 찾는 휴먼 레이스(지구인류)는 남한, 휴먼 레이스와 많이 닮았으나 철천지 원수지간인 락벳 행성인은 북한(2권 말미에 쿨란과 대결하는 '어떤 인물'의 존재가 이런 상상을 더욱 더 부채질한다), 은하사회의 정치경제적 실권을 쥐고 휴먼 레이스를 부려먹는 수수께끼의 로즈웰형 레이스(이름의 유래는 상상에 맡긴다)는 미국, 머나먼 어스까지 찾아와서 노동자로 힘겹게 일하며 번 돈을 고향으로 송금하는 포미사이드 레이스(개미형 인류)는 동남아 여러 나라, 차별과 박해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내전을 겪어 온 만티드 레이스(사마귀형 인류)는 중동 모국, 기타등등. 물론 이런 식의 해석은 작가가 숨겨놓은 더 풍부한 의미를 놓치게 될 위험도 있지만 애초의 집필 의도가 '국가간의 폭력과 생명의 소중함'의 대조에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1권까지만 보고 나서는 '이제 다음 권부터는 메이런과 쿨란 콤비가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하는 옴니버스로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2권에서 멋지게 예상을 뒤엎고 더 장대한 방향으로 줄거리를 확 틀어버리는 작가의 솜씨에 경악했다. (1권과 2권 사이의 3년간 '이런저런 사건이 있긴 했다'고 말 한두마디로 때워버리긴 하는데 그렇게 해놓으니 더더욱 무슨 사건을 겪었던 걸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말이지. 이 시기의 얘기를 단편집으로 따로 내준다면 얼마든지 살 용의가 있지만 아무래도 워낙 오래전에 쓴 작품인지라 좀 무리일 듯.) 만약 2권도 1권과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면 굳이 다음 권으로 넘어갈 필요가 있겠나 싶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뒷얘기를 예측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아무래도 메이런이 좀 더 넓은 세계로 나가서 뭔가 사고를 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가능하지만 디테일은 완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셈이다.) 3권 이후도 빨리 보고 싶은 심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