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를 찾아서·어제와 오늘·사색의 호수·사람의 향기·따로 또 같이' 라는 목차의 큰 이름들이 아름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글 사이에 글과 어울리는 사진들도 눈을 즐겁게 했다. 수필답게 작가의 솔직한 생각을 볼 수 있었다. 또 실제로 겪은 이야기나 생각들은 깨달음을 줬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짤막짤막한 수필들은 글 읽기에도 편했다.
'나는 왜 나를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수필을 읽고 나는 내가 지금까지 자기애를 갖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혹시 자기도취에 빠져 남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하다보니, 자기애가 너무 없어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를 멀리하게 만드는 친구가 생각났다. 그에게 이 수필을 읽어보라고 하면 좋을텐데.
철학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 속에서 '짜장면'이라는 글은 내가 한 시름 덜수 있게 해주었다. 사실 소설은 많이 읽어도 수필을, 그것도 책으로 왕창 읽는 것은 실로 처음이라 살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중국집의 풍경을 말하며 그런 중국집에서 먹는 짜장면이 최고다, 라고 말하는 글쓴이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난 그래도 근사한 곳에서 먹는게 좋다.
내용이 궁금해지는 제목을 가진 '속는 자와 속이는 자'. 나는 과연 속는 자일까 속이는 자일까. 세상 사람들을 이렇게 두 분류로 나눈다면, 내가 속아준 적은 있어도 속았던 적은 기억에 별로 없으니 난 아무래도 속이는 자가 아닐까 싶다. 근데, 속는 자랑 속이는 자 중에 더 나은 사람은 누굴까?
가을을 좋아하고 그리워 하는 나였기에 무척 끌렸던 '가을 나무' . 작가는 옛날엔 봄과 여름의 약동과 성장이 가을과 겨울의 조락과 죽음보다 더 뜻있게 여기고 기다리며,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옳고 마땅하다고 알아 왔다고 한다. 그 뒤로는 내 조그만 뇌로 이해하기엔 버거운 문장들이 이어지고, 또 말한다. 나서 자라서 시들어 죽는 것, 또다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과 성장을 거쳐 영원한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아니 이러한 일 자체가 이미 대자연의 법칙을 똑바로 증명해 보여 주고 있다는 말. 계절의 변화가 이렇게나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니. 계절이, 가을이 주는 진리를 생각해 보았다.
'푸를 청, 봄 춘'.청춘.글쓴이는 말한다. "청춘은 갔다." 라고 말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젊은 것만이 청춘은 아니라고. 어쩌면 아직 우리에게 청춘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어떻게 오지도 않을 걸 갔다고 할 수 있느냐고. 내 나이 아직 10대. 과연 나에게도 지금이 청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삶이 끝날 때까지 내가 청춘이라는 것을 겪을 수 있는 것인가.
'토실을 허문 데 대한 설'. 굉장히 짧은 글이다. 겨우 한장. 이글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의 이치대로 살라고.
'슬픔에 관하여'. 유난히 우울하고 슬픈 날이 많은 요즘. 슬픔은,아니 슬픔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영혼을 정화하고 높고 맑은 세꼐를 창조하는 힘이 아닐까?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슬픔이 높고 맑은 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가득해야 맑은 세계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지금은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어렷품이 의미를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구두'라는 수필에서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자를 대하자면 남자는 구두 소리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점잖다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건 이성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건, 세상이 그렇게 만든게 아닐까?참 웃기면서도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