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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인생 질문 - 예수를 만나야만 알 수 있는 진리!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9년 8월
평점 :
팀 켈러의 인생 질문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일까? 아는 것이 많아졌다는 방증일까? 요즘 나는 말을 많이 한다.
또 그에 못지않게 생각도 많이 한다. 그런데, 이 생각이라는 것이 긍정적이고 선한 것이면 좋으련만,
대부분은 부정적이고 남과 비교하거나 비교당하거나, 상상으로 결과를 지어내기에 급급하고
내 기분마저 상하게 하는 일이 잦아서 스스로 피곤해하고 있던 참에 [팀 켈러의 인생 질문]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야만 알 수 있는 진리”라는 소제목에 현혹되어 책장을 열어 한 동안 입을 다물고 읽게 되었다.
[팀 켈러의 인생 질문]을 읽기 직전 나를 자극했던 질문이 있었다.
“오늘날 예수님을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은?”이란 질문이었다.
오래된 성도들에게 좀 치이고 있던 차여서 살짝은 분노에 차서 답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교회 안에 오래된 성도와 지도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팀 켈러의 인생 질문]을 만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읽다보니,
오늘날 예수님을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이 첫 번째 이적을 보이신 가나 혼인잔치에서 어머니 마리아와 갈등상황에 놓였을 때,
예수님의 반응을 보며 나는 인생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신랑, 신부가족 모두의 수치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이 때,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짐을 알렸고,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답한다.
그 분의 때는 곧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을 말한다.
p.108. 도대체 예수님은 무슨 생각을 하신 걸까?
그저 포도주를 청하는 말을 왜 자신의 죽음의 때와 연결시키실까?
수치를 기쁨으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포도주를 만드실 때 정결 예식용 항아리를 쓰셨다. 예수님의 생각은 이렇다.
‘옳소이다. 나는 이 세상에 축제의 기쁨을 가져올 수 있고 죄책과 수치로부터 인류를 깨끗하게 할
수 있나이다. 기쁨을 주러 내가 세상에 왔나이다. 그러나 어머니여, 그러려면 내가 죽어야
하나이다.’
p.110. “어머니여, 내 백성이 내 품에 안기려면 내가 죽어야 하나이다.
내 백성이 기쁨과 축제와 복의 잔을 마시려면 내가 정의와 형벌과 죽음의 잔을 마셔야 하나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시기 위해 자신의 기쁨을 모두 잃으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그 분이 편안히 하늘나라에 계시면 그만인 것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우리 죄를 가지고 달리셨다.
우리에게 스스로의 잘못의 대가를 치루라고 요구하지 않으시고,
자기의 목숨으로 인간 삶의 궁극적인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
요즘 내가 잊고 살았던 그 분, 나의 예수님, 나의 구세주를 [팀 켈러의 인생 질문]에서 다시 만나
좁아지고 모나고, 폐쇄적이기까지 한 내 마음이 예수님으로 인해 풍성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정결예식에 필요한 항아리에 물을 채우시고,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그 분은 내 삶에도 순간순간
다가오셔서 수치를 가려주시고 깨끗하게 하시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예쁨 받는 자녀로
변화시켜 주셨다.
오랜 교회 생활, 횟수가 잦을수록 지쳐가는 성도들과의 만남. 이로 인해 낮아진 나의 자존감 탓에
말씀을 듣거나 읽어도 원망이 먼저였고, 찬양과 기도 가운데서도 참 기쁨을 느끼기 어려웠다.
[팀 켈러의 인생 질문]을 읽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런데, 다시금 일깨워 주시고,
여전히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라 인정하시고 안아주신다.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평안을 회복시켜 주셨다. 지금은...... 감사만 남았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또 마음이 찌그러지고 어려워지면 꺼내 읽어볼 [팀 켈러의 인생 질문]을
잘 간직해 두어야겠다. 또 나와 같이 마음이 어려움에 처한 지체들에게 권하고 선물해 주어야겠다.
인상깊은 구절 : p.220.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는 가르침은 당신의 낮은 자존감에 변화를 가져와 새로운 안정과 균형을 갖게 한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면하셨을 뿐 아니라 ‘명예 훈장’까지 달아 주셨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용서받은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아름답고 그분 안에서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 이제 당신을 향한 비판이나 실패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내가 나를 볼 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