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지젝과 들뢰즈

지젝의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에 관한 '본격적인' 언론 리뷰는 의외로 늦춰지고 있는데, 서울신문에 도서출판b의 기획위원이자 역자이기도 한 이성민씨와의 인터뷰가 게재되었길래 옮겨온다(인터뷰어는 조태성 기자). 지젝의 들뢰즈론 입구에 있는 독자들에겐 참고가 될 만하다. 기사의 검색 타이틀에 오타가 있는 듯하여 그냥 '지젝과 들뢰즈'를 페이퍼의 제목으로 삼는다.  

서울신문(06. 06. 29) “손쉬운 정치적 번역이 아니라 들뢰즈 본연의 철학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가 노마디즘을 비판(서울신문 6월1일자 보도)한 뒤, 들뢰즈의 ‘정체’에 대한 의문은 커지고 있다.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대표와의 논쟁을 통해 홍 교수는 들뢰즈를 ‘마르크스·엥겔스의 후계자’로 규정한 뒤 그럼에도 ‘탈 영토화’로 상징되는 들뢰즈의 변혁전략이 현실적으로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멋들어진 아나키즘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들뢰즈는 이제 폐기돼야 하는가. 이때 <신체없는 기관>이 번역·출간된 것은 적절한 시점으로 보인다.

 

 

 



-저자는 영화판에서부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해 상당한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동유럽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그는 들뢰즈 사상의 핵심은 초기의 단독 저술에 담겨 있다면서, 가타리와 함께 쓴 후기 저술(<앙티-외디푸스>, <천개의 고원>)이나 미국식 정치적 번역이 담긴 <제국>(네그리·하트)을 통해 알려진 들뢰즈의 모습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아예 가장 대척점에서 서 있는 헤겔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철학자가 들뢰즈라고 규정한다. 번역을 맡은 이성민 도서출판b 기획위원에게 이번 책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최근 노마디즘 논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들뢰즈 본연의 철학과 그 정치적 번역은 다르다.‘유목주의’나 ‘자율주의(아우토노미아)’는 본연의 철학과는 거리가 있다. 홍윤기·이정우 논쟁에서 주목해볼 점은 이정우 대표가 시중의 해석 대신 들뢰즈 본연의 철학으로 되돌아간다는 점이다. 지젝도 후기 들뢰즈적 경향을 ‘손쉬운 정치적 번역’이라 폄하한다.

지젝도 들뢰즈적 실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아닌가.
-지젝도 평가하듯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중립적이다. 예컨대 지젝은 “‘제국’에서 다수성(다중·multitude)은 저항의 힘이지만, 스피노자에게는 근본적으로 애매하다.”고 말한다. 저항도 야만적 폭력일 수 있다. 그래서 유목주의자 혹은 자율주의자는 좀 더 ‘따분한’ 이론적 작업을 해야 한다. 동시에 ‘구좌파’,‘독단주의자’,‘원칙주의자’가 들뢰즈를 받아들였으면 한다. 인간 주체가 여전히 집단적으로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들뢰즈와 진정으로 만났을 때, 변화를 위한 작은 공간이 열릴 것이다.

결국 들뢰즈가 헤겔을 부활시켰다는 것인데, 이게 들뢰즈의 의도인가.
-궁극적으로 들뢰즈를 ‘다르게’ 읽는다면, 헤겔을 부활시킬 수 있다. 지젝은 헤겔이, 들뢰즈가 견디기에는 너무 가깝다고 한다. 그는 둘이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들뢰즈를 다시 읽는다. 물론 여기에는 헤겔을 재해석하는 지젝의 작업이 깔려 있다. 조만간 지젝의 동료 돌라르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해설서를 낸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 이미 우리는 ‘새로운’ 헤겔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들뢰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내가 느끼기에 지젝은 동유럽 지식인임에도 ‘유럽주의자’다. 지젝은 유럽을 사랑하고 유럽의 가치를 높이려 한다.‘낡은 유럽’이 스스로의 가치를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들뢰즈를 받아들일 때 한국적 현실을 고민하는 것은 패배적인 관점이다. 들뢰즈의 보편성을 껴안아야 한다.‘손쉬운 정치적 번역’ 대신 ‘본연의 철학’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으로, 가장 과감하게 끌어안아야 한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라고 한다. 역시나 전문이 요약보다는 더 흥미로우며 계발적이다.

최근 들뢰즈의 노마디즘 개념에 대한 혼돈이 많습니다. 대개 철학하시는 분들은 어떤 추상적인 관념으로 이해하시는 반면,다른 분야에 계신 분들은 실제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듯 합니다.즉 무조건 대규모의 이동이 일어나야 노마디즘 현상으로 파악한다는 겁니다.단적인 예가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천규석의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겠지요.천규석의 문제의식만이 아닌 것이 노마디즘 관련된 토론장에 들렀더니 모든 분들이 천규석의 문제의식과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대체,철학적인 개념을 넘어섰을 때 유목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종종 한 철학자의 위대함은,진정으로 새로운 개념을 우리에게 선물한 사실에 있습니다.그 점에서 들뢰즈는 위대한 철학자입니다.들뢰즈와 관련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하나는 들뢰즈 본연의 철학입니다.그리고 다른 하나는 들뢰즈 철학의 정치적 번역들입니다.제 생각에,“유목주의”나 “자율주의” 등은 후자에 속하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이 정치적으로 번역되는 데 스스로 협조한 적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가타리와 협력한 들뢰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우리가 그곳에서, 즉 <안티-오이디푸스>나 <천개의 고원>에서 보는 것은 들뢰즈 철학 본연과는,들뢰즈의 독창적인 철학적 성취와는 거리가 있습니다.그것들은 그러한 성취가 정치적으로 번역될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가리킵니다.그것도 매우 손쉬운 길을 말입니다.

-유목주의와 관련된 최근의 논쟁에서 이정우 씨는 분명 들뢰즈-가타리의 개념을 들뢰즈 본연의 철학적 관점으로,예컨대 <의미의 논리>의 들뢰즈의 관점으로 환원시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 이정우 씨가, 비록 들뢰즈 철학의 또 다른 정치적 번역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러한 길을 열기 위한 작은 이론적 틈새를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틈새가 보일 수도 있는 곳에서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가 천규석 씨를 정념적으로 비판하는 곳에서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최근에 유행하는 들뢰즈적 개념들의 해석적 경향성을 비판하면서, 그것을 본연의 철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지점에서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천규석 씨와 이정우 씨가 둘다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없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들뢰즈 본연의 철학과 들뢰즈와 가타리의 협력적 작업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안티-오이디푸스>나 <천개의 고원>이 최근에 한국에서 쟁점이 된 “유목주의”나 아니면 네그리-하트 식의 “다중”과 관련해 내용적으로 전혀 무관할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지젝은 이와 같은 후기의 들뢰즈적 경향을 비판합니다.그것을 손쉬운 정치적 번역이라고 폄하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그의 말에 동의합니다.

이에 대해 홍윤기는 들뢰즈는 영락없이 맑스와 엥겔스의 후계자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높게 평가해도 구체적인 실천의 효과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젝이 하고 있는 작업이 홍윤기의 주장과 비슷해 보이는데,그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차이가 있다면 어디서 차이가 날까요.

-들뢰즈 사상의 핵심적 측면은 전통적 맑스주의자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는 스피노자의 사상을 현대적인 것으로 재해석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오늘날의 사회를 분석하려고 하는 사람이 무엇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지젝은 들뢰즈의 그러한 공헌을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존재의 일의성이나 정서적 강도 같은 개념들은 그 자체로 매우 강력한 개념들입니다. 지젝은 우리가 오늘날 일상생활에서조차 그러한 개념들을 매번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현실은 추상적 개념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반지성적 분위기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이러한 개념들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젝의 말처럼 그것들은 그 자체로 “중립적인” 것입니다. 예컨대 지젝은 <신체 없는 기관> 76쪽에서 “‘제국’에서 다수성(다중)은 저항의 힘으로 찬양되는 반면, 스피노자에게서 군중으로서의 다수성 개념은 근본적으로 애매하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적실한 통찰들입니다. 다수성이랑 권력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야만적이고 비합리적인 폭력의 폭발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대중들의 이와 같은 “유목적” 특성을 곧바로 정치적으로 긍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지만, 우선은 그 지점에서 멈추어서,좀더 고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유목주의자들이나 자율주의자들은 제 생각에 바로 그렇게 사색을 위해서, “따분하고” 순수한 이론적 작업을 좀더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 사유의 근본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잠시 멈추어 설 필요가 있습니다.

-들뢰즈의 성취는 우선은 “철학적으로” 흡수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아쉬워해야 하는 것은 들뢰즈 사상의 정치적 해석이 다양한 논쟁들과 더불어 풍요로운 가운데, 들뢰즈 본연의 철학적 측면이, 다시 말해서 “현대성 그 자체”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들뢰즈는 현대의 바로 그 철학자입니다. 따라서 저는 맑스주의자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구좌파적 문제의식을 놓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라도 들뢰즈를 이론적으로 읽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은 오늘날도 역시 간단한 세미나나 포럼을 마치고 그 유명한 뒤풀이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은 공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들뢰즈는 피해갈 수도, 간단히 정치적으로 번역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저 유명한 “포스트모던적” 주체들이 들뢰즈를 받아들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구좌파적인 사람들이,“독단주의자들”이,“원칙주의자들”이 들뢰즈를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사회의 거시적 변화를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들뢰즈와 진정으로 조우할 때, 인간 주체가 여전히 집단적으로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들뢰즈와 진정으로 조우할 때, 그때 진정한 변화를 위한 작은 공간이 열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들뢰즈는 헤겔의 부활을 꿈꾸는 또 다른 헤겔의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까.들뢰즈가 궁극적으로 의도한 것은 헤겔을 죽이겠다는데 있는게 아니라 철저하게 죽이는 액션을 취함으로써 헤겔을 부활시키는 것이었습니까.그렇다면 진정한 의도였을까요 아니면 고려하지 못한 역풍이라고 봐야 할까요.



-흥미로운 물음입니다. 들뢰즈가 결국 그러한 일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군요. 헤겔을 부활시킨 것이 지젝이 아니라 들뢰즈일지도 모른다는 물음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의 변증법을 성찰하게 만드는군요. 시간의 경과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어떤 “운명”이나 어떤 “필연성” 같은 것을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궁극적으로 들뢰즈를 “다르게” 읽는 데 성공한다면, 그로써 헤겔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말입니다. 지젝의 말처럼 헤겔은 들뢰즈가 견디기에는 들뢰즈에게 너무 가까운 철학자였습니다. 지젝은 바로 그 지점에서, 그 둘이 가장 가까운, 혹은 거의 차이가 없어지는 지점에서, 들뢰즈를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지젝의 독자적인 공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들뢰즈가 헤겔을 부활시키기 전에 헤겔 그 자신이 재해석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지젝의 몫이었습니다. 라캉도 그것을 해내지는 못했지요.오늘날 라캉주의가 철학과 그 자체를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대학인 류블랴나 대학에서 그들은 그것을 해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지젝의 동료 돌라르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해설한 책을 낸다는 소식이 들립니다(*슬로베니아어로는 이미 출간된 걸로 안다). 하지만 이미 이루어진 지젝의 작업을 통해서도 우리는 “새로운” 헤겔을 맛볼 수 있습니다(*아래는 류블랴나 대학).



감히 추론입니다만은, 들뢰즈를 이런 방식으로 읽는 것은 지젝이 동유럽 지식인이라는 점도 작용하고 있는 걸까요. 하트가 들뢰즈를 미국식으로 독해해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지젝이 시사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서구 선진국의 잣대를 함부로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점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런 측면,즉 맥락의 차이를 간과해버린 것이 한국에서의 들뢰즈 열풍이 놓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인상”만을 가지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경우는 그래야 하겠군요. 그러니 제 말이 그 이상으로 읽히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 인상이 “독서”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제가 받은 인상으로,지젝은 “유럽주의자”입니다. 오늘날 진정한 유럽주의자가 서유럽이 아닌 동유럽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여하간 지젝은 유럽의 유산을, 유럽의 문명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정신분석도 유럽에서 탄생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철학을, 라캉과는 달리, 비판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껴안는 것은 그가 유럽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조 기자 님의 말씀처럼, 그는 “서구 선진국의 잣대”를 함부로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가 하는 일은 역으로 바로 그것의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그는 “낡은 유럽”이 스스로의 가치를 바로 그 유럽적 방식으로 재창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민주주의를 창안했듯이 말입니다. 그는 지성적 영역에서 스스로 그 과제를 떠맡고 있습니다.

-들뢰즈를 우리가 수용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한국적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패배적인 관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들뢰즈 사상의 가장 보편적인 측면을 껴안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들뢰즈 사상의 “철학적” 논의를 강조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좀 역설적이게 들리겠지만, 서구 선진국의 잣대를 함부로 끌어들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가장 근본적으로, 가장 과감하게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적용”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지젝은 들뢰즈를 해석하는데 있어 알랭 바디우를 지속적으로 인용하고 있는데, 지젝이 알랭 바디우에서 벗어나는 지점은 어디 입니까.아 니면 전적으로 바디우적 해석 위에 서 있다고 봐야 합니까.

-바디우는 라캉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몇 안 되는 철학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디우와 지젝 사이에 공통점이 생기는 것이지요.하지만 지젝의 해석은 바디우에 토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라캉과 헤겔에 토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지젝과 바디우의 차이에 대해서는 제가 아직 답변을 드리기 곤란합니다. 저는 바디우의 철학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관통하고 있지 못한 그 무엇에 대해,이 경우라면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라도 어떤 인상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바디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진지한 철학자인 반면, 지젝은 진지하지 않은 것에서도 내기를 걸 줄 압니다(*아래 사진은 지젝과 바디우).



도서출판b와 자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저는 현재 도서출판b에서 기획일을 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직함은 “기획위원”입니다. 제 관심사는 한국에서 진정한 지적인 전통이 “부활”하는 것에 일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이와 관련하여 지적인 담론의 장을 심화시키기 위해 번역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기고를 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하지만 말입니다.

-저는 대학(서울대 영어교육과)에서 언어학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촘스키의 언어학이 유행이었지요.덕분에 저는 언어학과 분석철학에 입문하게 되었고, 당시의 맑스주의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졸업을 하면서 맑스주의와 유럽의 철학에 몰두하게 되었지요. 분석철학의 장점은 그것에 매료된 사람으로 하여금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깨닫게 해주는 데 있습니다. 제가 마이클 하트의 들뢰즈에 대한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일정정도 자율주의자인 조정환 씨와 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저는 라캉에게 귀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을 진학하면서,라캉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궁극적인 학문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서 말한 지적인 전통의 부활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선생들을 길러내는 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라캉이 말하는 “주인담론”의 시대에, 혹은 권위주의의 시대에, 권위자들은 선생을, 즉 가르칠 사람을 키우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더욱 혹독한 도제 시절을 겪게 했지요. 오늘날 이러한 연결고리는 무너졌습니다. 저는 이러한 연결고리를 다시 소생시키는 일이라면 바로 그곳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산”이 아닌 “재생산”을 강조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생산은 생산물을 만들어냅니다. 잘 교육받은 교양 있는 학생들을 말입니다. 하지만 재생산은 선생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능한 선생들입니다(*역자가 사범대학 출신이란 걸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저는 제가 번역한 책들이 앞으로 선생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제가 번역한 책들이 대철학자를 꿈꾸면서 언제까지나 학생으로 남아 있을 운명인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얼마전 도서출판b는 출판사를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세미나 공간이 생겼지요. 그곳은 신림동 혹은 난곡에 위치하고 있는데, 저는 그곳을 “난곡연구소”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합니다. 저는 거기서 학생들을 데리고 세미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거기서 선생들을 키우는 작업에 헌신할 생각입니다. 라캉주의의 교조적인 모습이 저를 매혹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오래된 진리를 새롭게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06.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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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철학과 정신분석의 만남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과 김상환 교수(서울대 철학과)와의 대담을 이미지 버전으로 옮겨놓는다. 원래는 <철학과 현실>(2003년 겨울호)에 '철학과 정신분석의 만남'이란 제하로 실렸던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짤막한 코멘트를 단 바 있다. 알다시피 지젝은 2003년 10월에 방한하여 다섯 차례의 강연을 가진 바 있는데(이 강연문들은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철학과현실사, 2005)로 출간돼 있다), 대담이 이루어진 것도 그 즈음이다. 가벼운 서두에 이어서 여섯 가지 주제에 관해 대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대담 자체는 인터넷상에 떠돈 지 오래됐는데, 얼마전에 알라딘 서재에에도 전문이 돌아다니길래 좀더 읽기 편하게 정리해놓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지젝 입문'으로서 아주 유용하겠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이미지들 외에도 강조와 군말은 나의 것이다.

 

 

 

 

김상환: 시작하기 앞서 <철학과 현실>의 독자들을 대신해서 대담에 응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독자들이 당신의 생각을 구체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지젝: 말씀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철학과 현실"이라는 제목에서 '현실'은 어떤 뜻을 담고 있죠? Wirklichkeit, realte, actualtite, matterialite 등등 중에서 어떤 말에 해당하죠?

김상환: Wirklichkeit에 가장 가깝습니다.

지젝: 아, 알겠습니다.

1. 정신분석과 철학의 관계에 대하여

김상환: 우선 정신분석, 혹은 정신분석과 철학 사이의 긴장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당신 책을 읽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가령 푸코, 들뢰즈, 데리다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은 모두 정신분석과 논쟁을 벌였고, 그들 자신의 철학적 개념들을 가지고 정신분석을 넘어서거나 보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출발점은 오히려 프로이트나 라캉의 정신분석 바로 곁에 위치하고 있고, 당신은 철학 쪽에서 가해오는 공격에 맞서 정신분석을 지켜내거나 옹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정신분석과 철학 사이에 어떤 긴장과 갈등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갈등의 본질적 성격은 무엇입니까? 어떤 지점에서 이런 투쟁이나 논쟁이 이루어지는지요?  

지젝: 제가 정신분석을 대표한다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저로서는 대답하기 다소 곤란한 질문입니다. 저는 정신분석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제가 알고 있는 정신분석을 이론화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정신분석과 철학 사이에 그와 같은 긴장이 감도는 방식을 살펴보면 대개 두 쪽의 관점에 모두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물론 이것은 가장 통속적인 수준의 오류일 텐데--몇몇 정신 분석가들의 경우 진료적 용어들을 들먹여가며 철학을 예단, 처단해 버립니다. 마치 철학이 일종의 편집증, 과대망상증이기나 한 듯 단정하는 것인데, 이는 심지어 프로이트에게서조차 엿볼 수 있는 경향입니다. 

그는 철학자의 충동을 사유의 전능성을 믿는 어린아이 같이 순진한 태도에서 나온다고 보고, 이 태도가 철학에 남은 최후의 잔여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철학이 하는 모든 일을 병리적인 어떤 것으로 환원하거나 철학을 병리화 해버리는 일입니다. 게다가 프로이트는 철학자들이 항상 하나의 완성된 그림, 곧 총체성을 고민하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라캉 역시 이 점에서는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사실 정신분석은 어떤 비일관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포착, 해명하고자 합니다. 라캉이 반복해서 정신분석이 탁월하게 반(反)-철학적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떤 개별 과학의 입장에서 반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총체성에 대한 해석학적 관점에서 반대한다는 것이고, 또 어떤 환원 불가능한 미해결의 간극을 포착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에 대한 이런 원초적인 반대에 대해 그 세부사항을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것은 무용할 뿐 아니라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겁니다. 진정한 철학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총체적 체계를 구축하려는 어리석은 시도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철학도 역시 어떤 환원 불가능한 간극에서 출발합니다. 이를 하이데거처럼 "존재론적 차이" 등으로 부를 수도 있겠죠. 우리는 늘 생활세계, 삶의 세계에 함몰해 있고, 일차적인 철학적 제스처는 어떻게 이 세계에 균열이 존재하는가, 어떻게 그 균열이 기능하거나 하지 않게 되는가를 밝히는 일입니다. 심지어 철학은 본래적으로 이런 간극을 정식화하는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가령 칸트 같은 철학자가 초월적인 것과 초월적이지 않은 것을 구별하면서 현상과 본체 사이의 어떤 간극을 발견하고 이 간극을 환원 불가능한 인간 조건으로 제시할 때가 그렇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정신분석 쪽의 비난내용과는 반대로 철학은 우리 지식의 유한성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칸트, 하이데거 등과 같은 최상의 철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유한성을 적극적인 존재론적 조건으로 발전시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와 맞서는 어떤 다른 경향이나 관점이 있습니다. 이는 철학이 정신분석을 초월론적 관점에서 비판, 단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이런 쪽의 사람들은 정신분석이 그 자신의 용어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가령 프로이트에게서 나타나는 리비도 개념이나 에너지 개념, 이것들이 의존하고 있는 기계론적이고 생물학적인 모델 등이 그 사례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정신분석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렇게 주장할 뿐입니다. "정신분석은 개별 과학이고 그 자체로서는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을 감당할 수 없다. 의미의 역사적 지평에 대한 물음과 같은 해석학적 질문을 수행할 수 없다. 가령 정신분석은 이미 의식, 무의식, 인과성, 섹슈얼리티 등등과 같은 일련의 개념들을 자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이 개념들을 통해 전개되고 있지만, 이 용어들의 존재론적 의미나 지위를 설명할 수는 없다."

정신분석 자체가 어떤 철학에 의존한다는 것이고 그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철학적인 전제들에 의존한다는 것인데, 이런 의미에서 다른 모든 개별 과학처럼 정신분석 역시 철학적 반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묘한 지점입니다. 우리는 분명 프로이트에게서 생물학적인 진술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령 그가 억압, 트라우마 등에 대한 경험을 생명 에너지 차원에서 일어나는 어떤 생물학적 불균형으로 말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생물학이 더 발달한다면 풀릴 수 있는 문제일지 모르고,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정신분석의 개념적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이 문제를 생물학적 용어들로 곧바로 정식화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여기서 저는 자크 라캉을 따르는데, 누구든 프로이트를 면밀하게 읽어본다면 그가 실천했던 고유한 의미의 정신분석은 바로 상호주관적인 실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신분석이 어떤 단순한 실증과학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대화라는 것은 이미 명백해집니다. 물론 정신분석이론 자체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리석게도 프로이트의 충동, 죽음충동 등등의 개념을 일종의 선천적 본능이나 자기 해체, 자기 파괴 등과 같은 생물학적 개념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개념들이 프로이트 안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생각을 달리해야 하고, 또 이것이 라캉이 이루어낸 큰 성취입니다.

우선 프로이트는 상징적 질서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충동(Trieb)은 본능(instinct)이 아닙니다. 그것은 형이상학적인 어떤 것이고, 삶과 죽음 너머에 있습니다. 그것은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라 정확히 자연 혹은 자연적 순환을 탈자연화하는 심급, 어떤 근본적인 심급입니다. 따라서 저는 정신분석이 단지 특수한 영역을 다루는 어떤 존재적(ontisch) 학문일 순 없다고 봅니다. 정신분석의 실천과 개념들의 존재론적 지위를 묻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초월론적 철학의 수준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가령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억압 등과 같은 인간 심리의 발생을 설명할 때 프로이트는 셸링이 <세계시대 Die Weltalter>(1811)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어떤 사후적 추정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실, 그리고 이 현실을 지각하는 주체가 어떻게 출현했는지에 대한 초월론적 성찰을 제공하는 것이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 등의 개념들은 존재적이지 않고, 심지어 정신분석의 범주에 속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개념들은 일종의 초월론적(=선험적)인 것, 독일어로 전(前)-역사(Vorgeschite)에 속하는 것을 명명하고 있고, 우리가 주체로서 출현하기 위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우리는 이미 언어 속에서 존재한다" 등과 관련된 라캉의 이론은 바로 이와 같은 초월론적 물음을 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우리가 되기 위해 어떤 일이 일어났어야만 하는가에 있는 것이고, 정신분석이 생물학적이냐 심리학적이냐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죽음충동 같은 프로이트적 사유의 가장 근본적인 차원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독일 관념론, 헤겔과 셸링 등이 말하는 어떤 근본적인 부정성 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정신분석과 철학적 전통의 만남, 특히 정신분석과 독일 관념론의 예기치 못한 마주침은 두 쪽에 모두 중요합니다. 정신분석이 진정 무엇에 대한 물음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이런 철학적 참조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길 바랍니다.

김상환: 프랑스 철학자 쥬랑빌(Alain Juranville) 교수를 알고 계실 텐데요, 그는 그 유명한 저작 <라캉과 철학 Lacan et la philosophie>(1984) 말미에서 오늘날 정신분석은 철학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음을 지적하고, 철학과 정신분석 사이에 어떤 적극적인 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묻겠습니다만, 정신분석이 서양 현대철학의 전개과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바와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바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젝: 저는 서양철학사를 어떤 근본적 통찰에 대한 망각의 역사로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의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라캉뿐 아니라 이른바 서양의 현전(現前)의 형이상학이 어떤 근본적인 수준에 대한 망각과 연루되어 있다는 하이데거에게도 동의합니다. 어떤 근본적인 간극, 차이, 잉여 등등과 같은 것을 하이데거는 "존재론적 차이"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요. 저는 이 잉여를 하이데거와는 달리 단지 철학의 시작(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에서만이 아니라 철학사 전체를 통해 여기저기 위치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가령 데카르트와 같은 서양 근대 철학의 출발점을 생각해봅시다. 그가 코기토를 사유하는 실체(res cogitans)로, 다시 말해서 어떤 실증적인 실체로 바꿔버리는 순간 어떤 간극이 곧바로 닫혀버렸습니다. 이는 칸트에게서도 마찬가진데, 그가 뭔가에 접근해 가다가 끝까지 사유하기를 두려워할 때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좀 다릅니다. 셸링에 대한 위대한 해석에서 그는 인간자유에 대한 셸링의 논제에서 벗어나고 있는 어떤 차원을 돌파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저의 첫 번째 전제는 철학의 유한성이 그 자체로 닫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철학에는 어떤 근본적인 부주의(in-attention)가 존재합니다. 어떤 유한성, 불완전성에 대한 어떤 진정한 철학적 경험이 있지만, 이 경험은 어떤 형이상학적 구축물에 의해 곧바로 가려져 버리는 것이죠. 저는 정신분석이 철학 안에서 억압되어 있는 것을 어떤 근본적인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정식화할 수 있게하는 사유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억압된 것이 병리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이데거가 셸링을 해석하면서 발견해 낸 멋진 구절처럼, 그것은 항상 자기-오인을 발견해내는 몸짓입니다.

우리는 이런 몸짓에 너무 맹목적입니다. 많은 분들이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정신분석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 등한시되고 잘못 지각되어온 철학 자체의 발견적 몸짓, 발견적 경험을 사유하게 합니다. 이는 칸트가 멋지게 표현했던 것처럼, 세계의 존재론적 불완전성의 관념에 대한 근본적 경험입니다. 이는 단순히 현실 바깥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 안에는 어떤 간극이 존재하고, 때문에 현실은 완결성을 띤 것이 아닙니다. 이런 문제나 문제제기야말로 유일하고도 독특한 철학적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2.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하여   

김상환: 그러면 철학에 대해 더 묻겠습니다. 당신은 꾸준히 데리다와 들뢰즈, 그 밖에 포스트모더니즘 등에 맞서는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하려는 제스처와 노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현대 프랑스 철학과 당신 사이에 어떤 긴장이나 갈등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젝: 이 갈등은 우리가 어떤 의미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지에 달렸습니다. 만일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대한 형이상학적 정초의 계획은 끝났다, 우리는 거대 사유는 할 수 없고 단지 일상적 행위만을 실천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시작에는 환원 불가능한 복수성, 분산과 산포가 존재한다" 등등의 의미로 이해하다면, 저는 이런 종류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반대합니다. 물론 이 용어는 유행을 따르는 명칭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보통 포스트모더니스트라 불리는 사람들 중 거의 아무도 자기 자신을 포스트모더니스트로 생각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포스트모더니스트일까요? 들뢰즈는 거대하고 거의 고전적인 철학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데리다의 경우는 간단히 말하기 어렵고 훨씬 더 애매하지만, 어쨌든 레비나스처럼 일종의 부재하는 절대자에 다시 준거점을 두고 있고 윤리적 명령을 해체론의 해체 불가능한 조건으로 설정하고 있으므로, 그 역시 일종의 초월론적 관점을 끌어들이고 있는 셈입니다. 어떻게 보면 데리다는 해체론 자체를 일종의 초월론적 아프리오리(a priori)를 발견하는 활동으로 이해하고 있고, 이 아프리오리를 일종의 윤리-종교적 용어를 써서 메시아적 정의(正義)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흔히 위대한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들 하는 리오타르도 마찬가집니다. <포스트모던의 조건 La condition postmoderne>(1979)에서 그는 환원 불가능한 다양성이나 복수성을 강조하고 거대담론을 비판하지만, 이를 상식적인 의미의 비판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게다가 리오타르 자신이 거대담론의 종말에 대해 말할 때 그 자신이 거대담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리오타르 자신이 나중에 다시 어떤 윤리적 차원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이 말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셈이지요.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푸코는 더 복잡하구요.

따라서 여기서 일차적으로 주목해야할 점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은 매우 다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라는 것이고, 이런 용어상의 애매성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포스트모더니즘을 단지 문화적 영역의 역사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확실히 포스트모더니즘의 계기는 예술적 아방가르드가 위축되고 조형예술, 영화 등등에서 급진적 근대성이 종결되었을 때이고, 이는 1970년대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런 표피적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심층적인 사상사적 이해를 구한다면, 최초의 포스트모더니스트는 니체일 뿐 아니라 이미 셸링이었으며, 심지어 후기 헤겔도 포스트모더니스트였습니다. 이 때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성, 계몽의 기획에 대한 일종의 의심이자 자기 비판적 고찰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흔히들 포스트모더니즘과 결부시키는 이른바 후기구조주의에 초점을 맞춰보면, 여기서 역설은 훨씬 심하게 나타납니다. 당신도 알고 계실 테지만, 프랑스에서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실질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후기구조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용어들은 앵글로 색슨적 지칭일 뿐, 프랑스에서는 전혀 무의미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어떻게 "후기구조주의"라는 딱지 아래 우리가 앵글로 색슨적인 학문 담론에 들어서게 되고 또 동일한 영역의 일부로 인식되는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프랑스에서조차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스트나 후기구조주의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서로를 무시하고 혐오합니다.

 

 

 

 

프랑스에서 데리다와 들뢰즈를 함께 묶어서 보는 것은 정신 나간 짓입니다. 그들은 사상의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개인적 차원에서도 서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도 데리다가 들뢰즈와 가깝다거나 들뢰즈가 데리다와 가깝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후기구조주의자들이 만나는 방식은 데리다와 푸코 사이의 유명한 논쟁이 그렇듯이 대개 엄청나게 험악합니다. 데리다가 끊임없이 광기를 비웃으면 푸코는 광기가 어떤 극단적인 폭력 속에서 파열되고 사라져버렸다고 응수하지 않습니까. 저도 이 프랑스 철학자들이 서 있는 영역에 개입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이때 항상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자크 라캉이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스트나 후기구조주의자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앵글로 색슨적 관점에서 라캉은 "의미가 해체되어야 한다, 주체는 무의식적 메커니즘에 의해 지배된다, 등등......"을 입증했다고 간주되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저는 데리다적인 해체의 영역과 라캉적인 정신분석의 영역이 총체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해 점점 더 커다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두 사람이 "총체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은 둘 중 누구 하나가 더 옳다는 게 아니라 그 둘 사이의 직접적 대화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입니다(*즉, 데리다와 라캉의 '관계'는 불가능하며, 이 불가능은 위상학적 불가능성에 속하다).

물론 저는 데리다를 존경하지만, 가령 <우편엽서 Carte postale>(1980)에서 그가 라캉을 직접적으로 비판할 때 명백히 단순한 오독을 범하고 있으며, 라캉 측에서의 몇 가지 답변 역시 마찬가지임을 저는 인정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이 수준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라면 정직하게 담론의 환원 불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제가 거듭 밝히고자 하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후기구조주의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는 라캉의 특수성입니다. 저는 라캉의 이런 특수성을 이론적, 윤리적, 정치적 차원에서 부각시키고자 합니다.

먼저 이론적 특수성에 대해, 가령 데리다의 라캉 비판이 지닌 문제점을 생각해 봅시다. 데리다의 비판점은 라캉이 주체-형이상학의 울타리(cloture)에 머물러 있다는 것인데, 라캉 자신은 이 울타리 안에 남아 있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라캉의 기획 자체가 주체라는 울타리 안에 남아 주체 개념을 다시 부여잡는 것이었으며, 그러나 또한 이 주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정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해체주의자나 구조주의자에서와는 대조적으로 라캉에게서 주체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라캉은 주체가 단지 담론의 효과라거나 어떤 익명적이고 전(前)-주체적인 텍스트적 과정으로부터 상이한 주체적 위치가 발생한다는 알튀세르 같은 사람들의 관점에 반대합니다. 라캉이 제기한 문제는 상징적 구조에 종속되어 있는 한에서의 이 주체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데 있습니다.

저는 정치적-윤리적 차원에서도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체주의에는 리오타르, 데리다 등의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적어도 레비나스의 윤리학과 데리다의 윤리학은 어떤 근본적인 지평에서 서로 수렴하게 됩니다. 타자를 환대하고, 전적으로 우연한 타자와의 마주침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그들은 한 목소리입니다. 이 수준에서 데리다와 라캉을 함게 묶어주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가령 사이몬 크리츨리(Simon Critchley)가 지적했듯이 데리다의 환대가 라캉이 말하는 전적으로 우연한 실재와의 마주침이라는 점입니다.

라캉의 용어로 말하자면, 그것은 상징적 구조의 바깥에 있는 실재의 우연성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런 점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라캉의 윤리학은 그 기본적 입장에서 데리다의 윤리학과 다릅니다. 물론 저는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고, 이것은 라캉의 새로움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정식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상환: 여기서 질문을 덧붙이고 싶은데, 차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현대 프랑스 철학은 보통 차이의 철학이라 불립니다. 그렇다면 데리다나 그 외 다른 철학자들의 차이 개념에 맞서 라캉의 차이 개념은 어떤 것입니까? 라캉의 차이 개념은 다른 이들의 차이 개념, 철학적 개념상의 차이와는 매우 다를 텐데요.

  

지젝: 아마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이 있다면 "은유 대 환유"라 할 수 있을 겁니다(*매우 흥미로운 주장이다. 은유/환유의 이분법은 사실 러시아 출신의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을 원조로 가지며, 라캉은 야콥슨의 은유-환유론을 새롭게 전유한 바 있다). 보통 해체론에서는 환유가 은유에 대해 우위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여기서는 궁극적인 존재론적 사실은 원초적인 환유적 복수성, 분산과 산종(散種)에 있고, 이것이 데리다적 차이입니다. 은유는 언제나 그 다음, 두 번째에 옵니다.

 

 

 

 

기본적으로 니체나 다른 사상가들,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들뢰즈 역시 이런 차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원초적인 사실은 수동적이지도 능동적이지도 않은 창조적 행위로서의 분산적 생산성에 있고, 그런 생산성을 이루어내는 활동에 있습니다. 그것이 데리다가 말하는 원초적-기록(archi-ecriture)이나 초월론적 활동으로서의 차연(differance)이고, 또 그 차연의 생산성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 창조적인 복수적 운동과 형이상학적 재현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발생의 과정이 대개 그 자신의 장애를 생산하는 과정임을 뜻합니다.

 

 

 

 

당신도 알고 있듯이, 이미 니체가 바로 그와 똑같은 문제를 제기했죠. 그는 환원 불가능한 욕망의 복수성이나 다원성을 강조했고, 또 여기서 계보학의 문제를 찾았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의지 자체가 그 자신의 장애물, 곧 도덕성 등을 생산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지나친 단순화일지 모르지만, 저는 바로 이것이 데리다적 해체론이며, 심지어 들뢰즈적 접근 역시 이런 원초적인 발생적 분산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데리다는 이를 다른 이름들, 가령 원초적 차이(archi-difference), 흔적(trance), 산종(散種) 등등으로 부르는데, 이런 운동은 어느 정도 그 자신의 한계나 마감국면을 스스로 발생시킵니다.

라캉에게서 이 모든 것이 거의 정확히 그 반대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일종의 근본적인 간극, 어떤 입벌림 현상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다양성은 바로 이 간극을 사후적으로 메우기 위한 어떤 폭발현상이라는 겁니다. 원초적 사실은 다양성이 아니라 하나 안에 있는 간극입니다. 다양성은 이런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나중에 발생할 뿐입니다.

단순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대부분 페미니스트인 미국의 해체주의자들은 라캉이 이항대립의 논리에 빠져 있다고 비난합니다. 다양성 대신 주체 대 타자, 남자 대 여자 등등의 대립 관계를 설정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실상은 그런 게 아닙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라캉이 성적 차이라는 토픽을 전개할 때, 그는 단순히 이항대립의 논리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서 한 항이 사라지는 순간의 이항 대립의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라캉은 이를 "여성의 기표는 부재하는 기표"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고대 우주론에서 남성과 여성이 각각 양(陽)과 음(陰)의 원리라면, 라캉은 우리엔 단지 양만 있고 음은 없다고도 말하는 셈입니다. 라캉의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다양성이 하나 안에 있는 이 근본적 불균형을 메우기 위한 과정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로 제가 제 책에서 언급했던 영화를 들어보겠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 중 톨스토이를 패러디하고 있는 영화가 있는데(*우디 알렌의 영화 <사랑과 죽음>을 말한다), 톨스토이의 자연스러운 대립항은 물론 도스토에프스키지만, 이 영화에서 도스토에프스키는 어떤 식으로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는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한 보충이 일어납니다. 두 주인공이 나눈 짤막한 대화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대작의 거의 모든 제목들이 한꺼번에 언급되는 것이죠. "그 백치는 어디 있지?" "아, 카라마조프 형제 말이니?" "그는 지하생활을 하고 있어." 이렇게 다양성이 폭발되어 나오는 이유는 타자가 억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원초적 사실은 하나는 하나가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하나는 그 자신과 일치하지도, 일관적이지도 않습니다. 원초적 사실은 차이가 두 항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구조주의적 용어로 말해서 어떤 한 항과 그것이 기입되는 자리 사이의 차이입니다(*지젝이 자주 인용하는 것은 말라르메의 시구이다). 이는 이미 유럽 중세 논리학에서 이중화(二重化), 상징적 이중화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가령 당신이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일 때 당신 앞에는 대상과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름이 단지 대상에 외부적인 무언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은 그 대상 자체의 구멍에 대한 포착이자 보충입니다. 이름은 어떤 대상을 명명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서 당신이 지각할 수 없는 어떤 구멍을 명명합니다.

고유명사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생각해봅시다. 이상하게도 당신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당신이 겨냥하는 것은 정확히 바로 기술(記述)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이름 안에 있는 어떤 직관적 진리입니다.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내가 참되게 기술할 수 없는 새로운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이름을 기술(記述)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다는 버트란트 러셀의 생각은 여기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름은 꼭 필요한 것이고 이름 없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지만, 왜 그런 걸까요? 만일 대상에 어떤 간극이 없고 그래서 그것이 꽉 차 있다면, 당신은 단지 그 대상을 기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대상에는 어떤 구멍이 있는 것이고, 이 구멍을 명명하기 위해서 바로 이름이 필요한 겁니다.

또한 이런 원초적 간극이 저에게는 궁극적 사실, 궁극적 지평인데, 정신분석에서 그것은 상징적 거세에 해당합니다. 이 거세 개념은 하이데거의 의도와 매우 근접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거세는 역설적으로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거세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원초적인 증여에 해당하는 부정적 운동입니다. 나는 너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감으로써 너에게 뭔가를 준다는 것, 어떤 공간이나 여백을 열어준다는 것. 바로 여기에 거세 개념의 역설이 있습니다.

 

 

 

 

부정성을 사유한다는 것은 오로지 부정적인 것만을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주는 것을 사유한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가 차이(Unterschied), 빈터(Lichitung)를 언급할 때처럼, 이는 마치 물러서고 후퇴하면서 선사하고 증여하는 장면을 생각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물러감(Withdrawal)을 선사(Giving)로 사유하기. 어쩌면 이런 역설로부터 멋진 지각 이론을 전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상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다면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 대상에서 어떤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대상으로부터 뭔가를 상실해야 한다는 것, 물러섬과 철회가 지각의 조건이라는 것 등등......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라캉과 데리다는 서로 다른 차이를 말합니다. 그들을 존경하느냐와는 별도로 우리는 이 차이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에게 들뢰즈는 들뢰즈이고, 데리다는 데리다이며, 라캉은 라캉입니다. 이는 제 새 책의 토픽이기도 합니다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저는 이들의 작업이 어느 정도는 이전의 철학자들, 가령 스피노자, 칸트, 헤겔에 대한 거대한 재해석이자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자세한 논의는 <신체 없는 기관>에 포함돼 있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이고, 그 자신이 그렇게 말합니다. 데리다에 대해 말하자면, 물론 그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저는 그가 자신의 주요 용어들이 어떤 해체 불가능한 조건임을 강조하므로 칸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라캉은 그 누구보다 헤겔적이죠. 혹은 더 멀리까지 소급하자면, 들뢰즈는 그리스적 이교도이고, 데리다는 유대교이며 라캉은 기독교인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3원성은 서양사상사의 근본적 정식이고 아마 계속 다시 반복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 구도를 제안하고 이를 증명하는 것도 큰 가치가 있겠지만, 제가 여기서 따르고자 하는 규칙은 프로이트가 "세부에 대한 해석"이라 부른 것, 곧바로 큰 대답을 찾지 말고 공명을 주는 작은 지식, 작은 과학들을 보라는 것입니다(*문학은 이러한 디테일에 관한 것 아닌가? 나는 이 디테일에 대한 주목이 과학/철학에 대해서 문학이 갖는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시각에서 이런저런 비교작업을 해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비교가 아니라 뭔가를 밝혀주고 빛을 비춰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양 형이상학이고 이것은 동양 철학이고 하는 식의 거대한 종합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큰 것을 직접적으로 찾으려 한다면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3. 영화에 대하여  

김상환: 이제 주제를 철학에서 다른 주제로, 가령 영화로 바꿔보지요. 물론 세부적으로는 묻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영화를 보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창안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지젝: 물론 그런 새로운 방식들이 있습니다. 가령 들뢰즈의 영화 이론 같은 것이 그렇다고 인정합니다. 영화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들뢰즈를 암묵적으로 참조하고 있죠. 그러나 저에게도 새롭게 뭔가를 창안했다는 말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이 점에 관한한 저는 매우 자기 비판적입니다.  

김상환: 그래도 영화를 다루는 데 있어 들뢰즈적 방식과 구별할 수 있는 지젝적인 방식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지젝: 저는 여전히 회의적입니다. 다만 저 자신은 영화를 세 가지 수준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대부분의 경우 저는 영화를 단지 정신분석이나 철학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사례로 이용합니다. 이용만 있지 창조는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수준에서 저는 일상적 삶에 암묵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조명하기 위해 영화를 이용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징후로서의 영화라고 할까요. 이 수준은 그래도 첫 번째 수준보다는 나은데, 그 이유는 이런 작업이 이론적 논점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어떤 영화적 세계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진정한 영화 분석은 아닙니다. 영화를 어떤 존재론적 사태로서 다루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미지의 존재론적 지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건 아니죠. 저는 이런 물음을 소홀히 했고, 이 점을 자기 비판적 시각에서 지적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영화분석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줄거리를 해석하고 배우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해석하는데, 여기서 영화는 시각적 매개에 그치고, 정말 철학적인 분석은 아주 조금 밖에 안 됩니다. 그렇다고 그런 분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히치콕을 다룬 책에서 <현기증>이나 <사이코>를 분석할 때, 제가 진정으로 묻고자 했던 것은 고유하게 존재론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이미지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해서는 물론 "이미지와 사운드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등과 같은 문제 말입니다.  

제가 공동편집자로 참여한 논문집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응시와 목소리 Gaze and Voice as Love Objects>(1996)에서도 저는 이런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저는 영화에서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봅니다. 그것은 영화가 자연적인 것으로 지각되지 않게 되는 현상입니다. 물론 영화에서 말하는 자는 현실적인 인간입니다. 그러나 목소리는 마치 떨어져 나온 공포스런 육체로, 무례한 침입자로 지각됩니다. 영화의 존재론적 의미가 드러나거나 영화가 영화로서 체험되는 것은 이런 대목입니다.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가령 초기 유성영화에서 우리는 환각적인 목소리, 신체 없는 목소리, 감지할 수 없는데도 우리 주변을 떠돌아다니는 목소리만을 지각하게 됩니다. 이는 매우 길들이기 어려운 외상적 목소리죠. 이는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Enjoy Your Symptom!>(1992) 1장에서 제가 검토한 찰리 채플린에게서도 발견됩니다. 찰리 채플린이 어떻게 유성영화에 저항했느냐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는 목소리가 얼마나 외상적인가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고, 히틀러를 패러디한 위대한 작품 <독재자>(1939)에서조차 그는 전형적인 두 명의 목소리 캐릭터를 설정합니다. 좋은 녀석, 유대인 아버지는 항상 말이 없고 조용한 인물인 반면, 나쁜 녀석은 항상 목소리입니다. 그는 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자기 비판적인 시각에서 말하자면, 저는 이런 현상에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욕심도 크지만 그만큼 좌절도 큽니다(*지젝을 읽고 좌절하는 이들은 어떡해야 하나?). 영화에 대해 더 정통해야 하고 더 근본적인 범주를 찾아야 하는데.... 저는 또 고전 음악에 대해서도 역시 어떤 정통하고 내재적인 지식을 가지고 싶습니다. <환상의 돌림병 The Plague of Fantasies>(1997)의 두 번째 부록(<로베르트 슈만: 낭만적인 반휴머니스트>)은 인간의 노래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유감스럽게도 저의 작업은 단지 모방에 불과했고, 명백히 저는 충분한 내재적 지식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큰 좌절입니다.

김상환: 겸손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계속 영화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죠. 문학, 연극 등 다른 장르에 비교할 때 영화만이 갖는 커다란 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리고 영화가 미래 문화에 대해 갖는 적극적 의미가 있다면 또 무엇일까요?  

 

 

 

 

지젝: 저는 영화가 20세기 예술이라는 질 들뢰즈의 개념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시선은 신체 없는 기관으로 자동화되기 때문입니다. 몽타쥬, 카메라 움직임 등등의 공정을 거친 영화에서 시선은 말 그대로 "실재적 대상"으로 주변을 둥둥 떠다니게 됩니다. 다른 한편 저는 새로운 시각적 디지털 기술에 주목합니다. 이를 아직 무엇이라 정의하진 못하겠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여기에 함축된 논리가 더 이상 과거와 동일한 논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상현실은 우리를 전혀 다른 곳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당신에겐 프레임이라는 단위만이 남습니다. 당신은 시선을 도둑맞고 이 도둑맞은 시선은 당신 주변을 떠다니죠. 하지만 이런 디지털 기술과 가상현실에서도 어떤 유기적 전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 드러남의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프랑스의 영화 이론가이자 저의 좋은 친구인 미셸 시온(Michel Chion)은 풍경(Landscape)이라는 말을 따와 풍음(Soundscape)라는 아주 멋진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뉴미디어의 영향 아래에서 나온 것입니다.

 

 

 

 

고전 영화에서 목소리는 기본적으로 이미지에 수반되는 것입니다. 사운드는 이미지에 맞춰 조정되고 부여되죠. 그러나 지금은 마치 유럽 중세의 그림으로 되돌아가기라도 하듯, 당신은 단지 시각적으로 파편화된 대상만을 발견합니다. 당신의 시각적 주의는 파편화되는 반면, 이 파편들에 전반적 배경(Hintergrund)을 제공하고 위치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사운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현실을 총체적으로 지각하는 방식에서 더 중요한 것은 흔히들 생각하듯 시각이 아니라 사운드입니다. 시각이 파편화될 수 있는 것도 사운드 트랙이 배경을 제공하기 때문이죠.

저는 이것이 매우 다른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저로선 이런 현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충분히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고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것인지도 확실히 모릅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영화는 문학보다는 훨씬 더 커다란 변화와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영화는 분명 테크놀러지와 매우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테크놀러지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시선, 부분적 시선, 클로즈업 등에 대한 어떤 존재론적 함축을 지니는 기술입니다.

 

 

 

 

들뢰즈나 몇몇 형식주의자들에 따르면, 영화에서 근본적인 존재론적 현상은 화면상의 파편적인 대상이나 감각이 폭력적으로 현실 안으로 들어와 장악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네 전부를 앗아가지 않는다, 다만 네 머리를 앗아가고, 네 손을 앗아간다...." 새로운 방식의 디지털 기술에 내재하는 이 새로운 유형의 폭력과 더불어 무엇인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불행히도 저에게는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뽀족한 이론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정직하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우리의 탈근대적 세계, 이 디지털 세계에는 형태소들을 만들어내는 공정이 있어 우리는 장면을 연출할 필요조차 없다고, 우리는 단지 하나의 형태를 다른 형태로 변형시키기만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가령 제 아들이 갖고 노는 보잘 것 없는 로봇 장난감이 바로 그런 것이겠죠. 이 로봇은 인가의 형상과 신의 형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연속적으로 변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우리가 포착하여 장면으로 연출해야 할 실질적 바탕 같은 건 없음을 뜻합니다. 현실 자체가 훨씬 더 탄력적인 조형성을 띠어가고 있으니까요. 이제 지각의 차원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가령 청소년이나 성인들 간의 범죄 같은 데서 이 수준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이는 바로 우리 자신이 디지털 비디오게임 속의 현실과 관계하는 방식일 겁니다.

 

 

 

여기서의 현실, 가상현실의 기본 아이디어가 무엇입니까? "당신은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당신은 되돌아갈 수 있다, 아무 문제없이 당신은 게임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은 심지어 여러 명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것 아닙니까? 아마 저는 여기서 "그렇다면 어떻게 진짜 현실 자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령 전쟁의 테크놀러지화라는 콜린 파월의 생각은 저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비디오 게임의 모델을 전쟁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아마 이 수준에서 생겨나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기술해야 할지 아직 적절한 용어를 찾지 못했지만, 하여간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싼 어떤 근본적인 수수께끼일 겁니다. 무한한 조형성을 지니지만 논리적으로는 아무런 연루성(committement)을갖지 않는 자기 정체성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항상 자아를 그 어디에도 진정으로 연루시키거나 개입시키지 않고서도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발상입니다.

가령 비디오 데이트나 가상 데이트는 오늘날 매우 대중화되었는데(*이미지는 왕가위의 영화 <2046>의 한 장면), 그 이유는 당사자가 완전히 연루되지 않고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주 옛날 캘리포니아에 있던 호모섹스 공동체의 관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익명의 섹스가 진행되는데, 어떤 구멍이 있어서 당신은 자신의 성기를 거기다 삽입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누가 자신의 파트너인지 모르고 단지 자기 자신을 한 쪼가리의 대상으로 환원시켜 제공할 따름입니다. 여기서는 인간 상호 간의 소통 같은 건 없습니다. 이는 영화극장과 거의 흡사한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엔 작은 스크린 같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에 대단히 폭력적인 뭔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리가 미친듯이 고조될수록 당시은 더 자유로워지죠. 당신은 거기에 기관을 제공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뒤에 머물러 지켜보고 있는 거예요.  

4. 종교에 관하여  

김상환: <철학과 현실>의 독자들은 종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당신은 최근에 이 분야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출판했습니다. 대부분의 현대 철학자들은 반-기독교적이거나 무신론자인데, 당신은 오히려 무신론에 맞서 기독교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유물론자입니다. 라이트(Wright) 부부가 출판한 <지젝 읽기 The Zizek Reader>(1999)의 서문에서 당신은 자신의 입장을 "바울적 유물론(Paulinian matterialism)"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매우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역설이 당신의 사유에서 매력적인 측면이기도 하지요. 하여간 자본, 기술, 소비주의 등등이 총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기독교나 종교가 갖는 적극적 의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당신이 기독교나 종교를 옹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젝: 제가 기독교에서 찾는 것은 어떤 실증적인 교리가 아닙니다. 카톨릭 교회에서 악마의 실증적인 실존을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에게 흥미로운 것은 상징적 실천의 사회적 공간을 지배하는 논리 같은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저의 작업은 하이데거의 작업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지젝의 철학박사학위논문은 하이데거에 관한 것이다). <존재와 시간>을 위한 예비작업의 첫 단계로 <성 바울의 편지>를 읽을 때 하이데거가 말하고 있는 것은 어떤 형식적 구조입니다. 실증적 교리와는 독립적인 어떤 형식적 구조, 형식적 존재론을 기독교에서 떼 내어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바로 이것이 제가 기독교에서 찾으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 관심사는 기독교가 형식적 수준에서, 특히 인간의 사회적 공동체와 상호성에 대해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있습니다. 제가 이런 데 관심을 두는 이유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대규모의 투쟁은 쾌락주의, 유물론, 과학주의, 무신론, 유신론 등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는 무신론이나 유신론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형태의 정신주의 사이의 투쟁이라는 생각에 있습니다.

당신이 언급한 자본주의, 테크놀러지 등등에서도 저는 정신주의의 한 형태인 어떤 새로운 그노시즘을 봅니다. 이런 방향에서 등장하는 지도적인 인물은 프로이트의 적수였던 칼 쿠스타프 융입니다. 그를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그노시즘이 열리고 있는데, 여기서 저는 어떤 위험이나 악(惡)을 감지하고, 이에 대한 치유책이나 대응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깊게 보아야 하는 것은 근대 자본주의와 테크놀러지가 낳은 새로운 형태의 정신주의, 새로운 정신주의적 태도인데, 이것은 단지 주변적인 현상도 아닙니다.

미국에는 분명 이른바 테크노-그노시스(techno-gnosis), 그노시스틱-테크놀러지(gnostic-technology)를 향한 경향이 있고, 다시 말해서 가상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삶의 가상화라는 그노시스적 논리와 연결짓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현실적 인간이 아니다. 현실은 빌어먹을 똥이다. 우리는 정신적-가상적-잠재적 존재로서, 우리 자신의 유한성에서 해방될 수 있고, 또 다른 현실로 자리를 바꿀 수가 있다...." 요컨대 이와 같은 새로운 그노시스적 정신성이 탄생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그노시즘은 윤리적 관점을 재도입하고 있습니다. 레비나스 같은 철학자는 이미 윤리학이 존재론보다 더 근본적이고, 일차적인 실존적, 사회적 경험은 타자에 대한 윤리적 체험에 있다고 했지만, 그노시즘에서도 근본적으로 윤리가 인식보다 근원적이고 원천적입니다. 윤리는 부차적이지 않고, 악은 오직 인식의 세계에만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들이 말하는 계시나 영적 인식 등이 오늘날의 테크놀러지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관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특히 미국에서 칼 쿠스타프 융은 프로이트와 비교하면 엄청난 베스트 셀러입니다. 프로이트의 저작은 학문적인 것이지만, 융의 저작은 수많은 대중들이 읽고 있습니다. 제가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고, 저에게는 종교 그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이는 데리다의 문제의식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메시아주의적 방법론이 내건 쟁점이 형식적이고 초월론적인 구조에 있다고 했는데, 저도 오직 그런 관점에서만 기독교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5. 서양철학과 미국의 관계에 대하여

김상환: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던 어제의 강연에서 당신은 이미 미국의 현실에 대해, 특히 미국의 패권주의나 이라크 전쟁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저는 좀 다른 각도에서 묻고 싶습니다. 오늘날 서양 철학에 대해 미국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이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물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미국은 다양한 사조나 이론들이 서로 충돌하는 경쟁과 논쟁의 무대, 그 힘을 겨루는 거대한 싸움터입니다. 각각의 이론이 지닌 역량이 검증되는 장소라고도 할 수 있겠죠.  

지젝: 프랑스 철학자들이 공식적으로는 아무리 반미를 내세운다 하더라도, 이들은 모두 미국에 침투해 들어가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당신 말대로 오늘날 글을 작성하고 널리 소통시키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어떤 보편적인 철학으로 승격되기 위해선 미국의 학문시장을 거쳐야만 하니까요. 예를 들어 라캉 역시 그랬습니다. 처음에 그는 미국에서 완전히 무시당했지만 절망을 극복하고 서서히 침투하기 시작하여 드디어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제 친구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처음에 미국을 무시했지만 그 다음엔 미국에 매료되었죠. 이런 매력에 어쩔 수 없이 이끌린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물론 미국 그 자체는 전투를 위한 극장, 배경에 불과하죠. 미국 그 자신은 사유하지 않습니다. 유럽에 교훈을 주거나 직접적으로 유럽의 영향에서 비롯된 산물이 미국에 들어오면 곧장 수락되고 미국인들의 수중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미국 철학에는 아마츄어리즘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프래그머티즘, 실용주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에서는 이 실용주의가 철학에 선행합니다. 하지만 이것 자체가 철학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는 저는 유럽 보수주의자입니다. 실용주의는 일상적 삶의 훌륭한 건축술이지만 철학의 본령은 아니죠. 하지만 흥미로운 문제는 미국의 학문시장에 편입되기 위해 유럽 철학이 치러야 할 대가에 있습니다. 이는 데리다에게서 아주 명백히 드러나는데, 미국에서 성공하고 난 이후의 그의 텍스트들은 미국인들을 모방한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잘 보이지 않는 변형이 일어난 셈이지요.  

 

 

 

 

이는 푸코의 사례를 보아도 마찬가집니다. 처음에 그는 '성(性)의 역사'로 돌아가 차갑고 냉소적으로 권력을 분석하고자 했지만,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온 말년의 푸코는 모든 것을 자아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비할 때 들뢰즈는 지병과 같은 개인적인 이유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 때문에 실질적으로 미국을 여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래 꼼짝하지 않습니다. 들뢰즈는 이미 실천적으로 반(反)-데리다적이었던 거죠. 라캉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몇 번인가 미국을 여행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방문은 완전한 실패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캉의 책은 몇몇 부분에 훌륭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비상업적이진 않지만 매우 훌륭한 영화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죠.

가령 로버트 알트만의 <숏컷 Short Cuts>이 그 사례인데, 제가 보기에 아주 훌륭한 작품입니다(*<숏컷>은 지젝이 꼽은 세계 10대 영화에 포함된다). 물론 이것말고도 다른 멋진 작품들이 많이 있죠. 특히 문학에서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유에서는 아닙니다. 미국에서 사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미국을 우리의 투쟁이나 논쟁을 수행하기 위한 어떤 분파영역이나 지국(支局)으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철학사에 대한 괜찮은 연구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헤겔에 대한 최고 수준의 연구가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헤겔 연구나 독일 관념론 연구의 질은 제가 보아온 독일에서의 연구보다 월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런 측면에서 충분히 새롭게 기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보다 더 나아가 보다 일반적 방식에서도 철학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이는 유럽뿐 아니라 한 때 제 2세계라 불렸던 나라들과 관련된 이야기이기 십상입니다.

산업화되긴 했지만 아직 미국화되지는 않은 이 나라들은 너무 작아서 반미의 중심에서도 벗어나 있죠. 저는 동유럽과 러시아, 한국, 일본 같은 나라들이야말로 유일하게 미국에 대한 저항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1세계와 제 3세계라는 두 세계의 구분을 믿지 않습니다. 미국은 이상적인 방식으로 두 세계에 명령을 내릴 수 있고, 그 명령은 항상 기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자신이 그 두 세계를 개발했으니까요.

미국과 저개발국 사이에는 식민주의나 신식민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이 벌어지지만 저는 이를 믿지 않습니다. 제 1세계와 제 3세계는 늘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유럽인은 바로 이 양자 사이에 있습니다. 가령 일본의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이 제시한 시차(Parallax)라는 개념을 생각해봅시다(*<트랜스크리틱>에서 다루어진다. 한데, 정작 지젝의 책에서는 특이하게도 고진이 한번도 인용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이행할 때 진리는 바로 이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 칸트를 참조할 수도 있는데, 칸트주의의 가르침은 현상과 본체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이 양자 사이의 차이에 있습니다. 자유는 현상 가운데 출현하는 본체에서 옵니다. 자유는 양자 '사이'에 존재합니다. 이와 동일한 의미에서 저는 제 1세계와 제 3세계의 대립에서 우리 역시 시차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충분히 특권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안정된 위치에 있지 않고 '사이'에 있기 때문이죠.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해결의 장이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우리의 위치에 있는 것이지 두 세계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김상환: 당신은 유럽인이라는 데 대해 커다란 자긍심을 가지고 계시군요.

지젝: 요즘 미국에는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대운동이 거센데, 이 나라에서는 정치적 올바름과는 무관하게 외설적 태도는 금기시되고 있습니다. 제가 제 모든 책에서 외설적 유머, 섹슈얼리티 등등에 대해 섰던 것은 이런 점잖은 경향의 제 친구들을 도발하기 위한 것이죠. 들뢰즈가 그만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매우 천진난만하게 인간 안에 있는 어리석음에 대해 말할 때, 이 어리석음은 어떤 자연스러운 성질이 아닙니다. 프랑스인들은 반(反)-자연적이려고 노력하는데, 라캉을 참조하지 않더라도 사유는 그런 반-자연성, 반-정상성에서 잉태됩니다.

제가 내면으로의 여행에서 지혜를 찾으려는 그노시즘의 발상에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저는 진리가 항상 어떤 외상적 마주침에 있다고 믿는데, 이런 마주침은 제가 저 자신을 스스로 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단지 내면으로만 여행할 경우 외상적 마주침의 대상인 똥, 작은 환상, 짐승 등등을 발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와 같은 외상적 마주침에 대한 능력 없이 사유는 일어나지 않습니다(*전적으로 동감이다. 해서, 나는 면벽수도식의 온갖 명상주의 따위를 믿지 않으며, '자기계발'의 수작들을 혐오한다).  

6. 슬로베니아의 철학계와 지젝의 사후 계획에 대하여  

김상환: 당신은 유럽인이지만 프랑스인도, 독일인도, 영국인도 아닙니다. 그래서 묻겠는데, 당신의 글에서 슬로베니아적 요소를 찾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의식적으로 계승하는 슬로베니아의 어떤 문화적 전통이나 유산이 있는지요?  

지젝: 아닙니다. 저는 종족주의를 혐오하니까요. 제가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슬로베니아라는 이름 아래 앞에서 말한 시차를 새롭게 위치 지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슬로베니아는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서유럽만큼이나 반공산주의 국가이기도 합니다. 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서유럽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정치적 생활이나 활동을 제외하면 책을 사거나 지적 생활에서 뭔가를 창안해 내는 등등의 모든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말 그대로 두 세계 사이에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른바 공산주의적 전체주의라는 것을 경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충분히 창안해내고 정식화했습니다. 또 서양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서양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환상이나 가상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기회였죠. 이는 매우 행복한 상황입니다. 제가 제 조국을 인정해야 한다면, 이는 이 나라가 바로 에피큐로스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두 세계 사이에, 그 사이의 틈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적 질서에서 볼 때, 지금은 낡은 질서가 해소되는 국면이자 새로운 질서가 완전히 확립되기 이전의 단계죠. 바로 이 이행과정에서 곧바로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것들을 우리는 다시금 포착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저는 고유한 의미의 슬로베니아주의자도 아닙니다. 만일 그랬다면 슬로베니아에는 정신분석과 관련된 어떠한 이론적 전통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오히려 프랑스 철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슬로베니아에서 '공식 철학', 지배적인 철학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철학과 하이데거적 현상학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지겨워졌고, 그래서 제3의 입장에 서게된 것입니다. 이는 우발적인 현상이었고, 분석해본다 해도 무엇인가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김상환: 그러나 프랑스나 독일, 영국 등 다른 유럽 출신 철학자들과 비교할 때 당신이 슬로베니아인으로서 가질 수 있었던 이익이나 불리한 점은 없었습니까?

지젝: 제가 젊었을 때 프랑스 철학과 독일 철학 사이에는 교류가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 등은 독일에 거의 낯설었고 프랑스에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이론을 전혀 모르고 있었죠. 이 두 나라의 문화적 접촉은 우리나라 같은 데서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70년대부터요.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실상 모든 영향들에 노출되어 있었고, 여기서 나름의 전통이 생겼습니다. 농업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큰 나라들은 단일경작체제이지만 우리는 다경작 체제인 것이고, 이는 매우 좋은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슬로베니아 철학계의 면모를 살펴보면, 이곳은 프랑크푸르트학파, 하버마스, 하이데거, 분석철학 등이 나란히 존재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독일, 미국, 프랑스에서는 그렇지 않죠.  

김상환: 한국도 그런 비슷한 장소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기획에 대해 묻겠습니다. 현재 준비하고 계시는 일이나 몰두하고 계신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지젝: 지금은 이라크 전쟁과 그 귀결들에 대한 작은 책을 끝내가고 있습니다. 이는 별로 심각한 책은 아닙니다. 몇 가지 커다란 기획을 구상 중인데, 먼저 정신분석-철학과 생물학적 발생학, 과학, 두뇌과학 등을 체계적으로 대질시키고 싶습니다. 이런 영역들이 철학에 어떤 도전이 되는지, 이런 영역들을 경험주의적 관점에서만 다루지 않고 어떻게 철학에 융합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진지한 책을 쓰고 있는 중이기도 한데, 여기서 저는 어떤 근본적인 형이상학의 물음으로 되돌아가고자 하고, 특히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역사 존재론을 다루고자 하며, 이런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형이상학적 과제를 다루기 위해 데리다, 레비나스, 하이데거 등등을 다시 읽고자 합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구상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기획이고, 또 이 책이 당분간 제가 역작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불안정한 주체(*까다로운 주체) The Ticklisch Subject>(1999)의 2부에 해당할 것이라 생각합니다(*아주 기대가 되는 책이다). 몇몇 잠재적 독자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저는 여기서 성생활 등에 관한 것들은 그렇게 많이 다루지 않고 오직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만을 다룰 생각입니다(*다소 아쉬운 일인가?).  

김상환: 좋은 생각입니다. 정말 기대가 됩니다. 저는 당신을 다산기념강좌에 초대하자고 처음 제안했고 저와 제 동료들은 항상 서울에 초대할 후보를 찾고 있습니다. 유럽 철학자들 중에 당신이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으신지요?  

지젝: 마피아들의 논리대로 한다면 제가 이번에 받은 강연료의 10프로를 당신에게 지불해야겠군요, 하하. 하여간 저는 알랭 바디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 친구라서가 아닙니다. 제가 좋은 철학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친구들 중에는 그들이 사용하는 난해한 용어나 포스트모던한 특수어법들이 다소 어렵고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바디우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데카르트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프랑스 최고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찬탄할 만한 명료성을 보여주는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바디우의 주저 <존재와 사건>은 언제쯤 번역될 수 있을까?).

 

 

 

 

그 다음에는 이탈리아의 아감벤(Giorgio Agamben)을 추천하고 싶은데, 이 뛰어난 철학자도 시야가 큰 포스트모더니스트이지만, 글도 명료하고 학술회의에서도 명확하게 말합니다(*적어도 <호모 사케르> 정도는 올해 안에 나올 수 있을까?). 또한 바디우에게서는 유럽 사회철학의 공통 임무에 대한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어떤 특이한 맥락을 전제로 하는 방언이나 관용어를 외부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데, 바디우와 아감벤은 모두 이런 말들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빼어난 능력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언은 이미 특정한 공동체의 일부가 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내부적 농담 없이는 그 세계를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디우는 정말 저보다도 이런 농담을 더 잘할 뿐 아니라 고전적인 주제들에 대해서도 잘 말할 수 있고, 게다가 정치-신학적인 축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저로선 이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추천할 수가 없습니다(*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지젝의 추천은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하다).  

김상환: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한국의 독자들이 당신의 깊이와 재미를 모두 즐길 수 있는 대담으로 남으리라 생각하고, 무엇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질문에 응해주셔서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돌이켜보건대, 지난 90년대 이후 지젝이 없는 철학계의 풍경을 상상할 수 없다. 그의 열정과 파격적인, 리얼한 통찰들이 없었다면 철학은, 아니 삶은 또 얼마나 밋밋하며 막연했을 것인지. 그의 건강을 축원한다!).

06.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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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벼랑끝 인문학과 인문학 주간

아침신문들이 인문학 위기 관련기사들로 도배돼 있다. 며칠전 고려대 문과대학 교수들이 '인문학 위기 선언'을 터뜨린 이후에 여론이 총동원된 듯한 인상이다(기자들로서도 '일거리'가 생긴 것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또 내주는 학술진흥재단과 인문학계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인문학 주간'이라고 한다. '벼랑끝'에서 탈출하기 위해 플라멩코춤에 사이코 드라마까지 선보인다고 하니까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준다고 해야겠다.

 

 

 

 

'인문학위기'에 대한 진단과 반응은 언제나 두 가지이다. 한 신문의 타이틀이 뽑은 대로, 인문학자/전공자들이 변화에 소통에 무신경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했다는 자성과 학문의 전당마저 신자유주의 시장판으로 만들어야 하느냐는 분노이다. 이러한 정황은 소설가 김훈이 한 대담에서 든 예를 비틀어서 옮겨오자면, 마치 청나라의 대군을 성밖에 두고 주전파와 주화파가 서로간에 설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처럼도 보인다(내가 '담론들'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인문학이 살아있다는 자기증명은 말이나 선언이 아니라 '실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신문 세 곳의 특집기사들을 아래에 옮겨놓는다. 인문학 주간 행사 일정은 맨마지막에 붙여놓았다(시간이 나면 몇 마디 코멘트를 덧붙여놓도록 하겠다).

한국일보(06. 09. 20) 벼랑끝 인문학 자성과 분노

인문학이 죽어 간다. 대학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고 위기의식마저 마비된 상태다.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공자가 해마다 줄고, 각 대학의 인문ㆍ문과대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통폐합 또는 폐지 대상 1순위가 됐다.

이 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인문학계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은 올해를 ‘인문학 부흥의 해’로 정하고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으로서의 인문학’을 위한 갖가지 실천 방안을 내놓고 있다. 15일 고려대 문과대 교수 선언에 이어 각 대학 인문대 교수들의 연대 서명도 예정돼 있다. 그러나 아직 반향은 크지 않다. 인문학을 연구하는 전공자들을 통해 위기의 원인을 짚어보았다.

■ 변화에 둔감한 눈높이
서울 모 대학의 철학과 조교 황모씨는 얼마 전 지도교수의 신문 기고문을 약간 손질했다 심하게 혼이 났다. 기고문에 실린 한문투의 표현을 쉬운 우리 말로 바꿔 썼다가 “왜 글의 웅혼함이 떨어지게 만들었느냐”는 질책을 받았다. 황씨는 “다른 분야에서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학문적 시도가 많지만, 순수 인문학 분야는 아직도 중세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대회 명지대 교수(한문학)도 “학문적 깊이만 있으면 인정받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대중과의 소통이 학자에게도 필수인 시대”라며 “학문적 업적을 대중과 공유하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원식 인천문화재단 이사장(인하대 국문학)은 변화에 무딘 인문학 교수 사회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았다. 그는 “이공계는 산업현장의 수요에 따라 커리큘럼을 짜는 등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했지만 인문학계는 교수의 협소한 전공지식이 수십 년 째 반복ㆍ전수되고 있다”며 “취업뿐 아니라 학생들이 원하는 교양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인문학이 외면받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 시장 만능주의 극복이 과제
구체적 ‘성과’보다는 추상적 ‘계획’에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정부에도 비난이 쏟아졌다. 올 초 학술진흥재단이 주최한 ‘인문학위기 포럼’에 참석한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산업대 교수(철학)는 “인문학 위기는 김대중 정부 초기 ‘연구결과’가 아닌 ‘연구계획’으로 지원여부를 결정하면서부터 더욱 불거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구자들이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연구계획서를 쓰느라 사회와의 소통을 통한 연구라는 본업에 오히려 소홀해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미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장(사학)도 “정부의 인문학 연구지원비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데 논문 발표수 등 인문학 연구방법과 어울리지 않는 계량법으로 학문성과를 평가하려는 시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정부의 잘못된 정책방향이 인문학의 깊이 있는 성찰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공자들이 한결같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은 역시 ‘시장 만능주의’라는 현실이다. 경제적 부가가치 생산에 이익이 되는 것만 대접받는 현실이 이미 대학을 완전히 접수해 버렸다는 지적이다.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학문의 전당까지 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며 “심지어 국제화라는 미명아래 한국학 관련 학문까지 영어로 강의하도록 강요하는 게 바로 한국 인문학계의 현실”이라고 개탄했다.(유상호기자)

동아일보(06. 09. 20) “취업과 너무 먼 文·史·哲” 폐과 잇따라"

최근 대학 구조조정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더욱 위기에 몰린 분야가 바로 인문·사회학이다. 대학에 시장논리가 팽배해져 문학 사학 철학 등 이른바 문사철(文史哲) 학과들은 취업률이 낮거나 가시적인 성과가 적다는 등의 이유로 폐과 대상 1순위가 된 것이다. 지난해 전국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을 보면 공학계열 71.7%, 자연계열 69.2%, 사회계열 55.8%, 인문계열 53.4% 등 계열별로 큰 차이가 난다.

▽비인기 학과 폐과 속출=경원대가 2003년에 철학과를 없애는 등 최근 3년간 철학과 12개가 폐과됐고 독문과와 불문과도 각각 4곳이 문을 닫았다. 경북대는 5월경 독문과와 불문과를 사범대에 통합하려다 교수들의 반발로 계획을 일단 접었다. 90년 전통의 대구가톨릭대는 인문대 철학과를 비롯해 외국어대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이탈리아어과 등 문과 분야 주요 학과에 대해 내년부터 학생 모집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재 1학년이 졸업하는 4년 뒤에 이들 학과는 폐과된다.

1982년 개설된 철학과의 경우 모집정원을 50명에서 40명으로 줄였지만 입학생은 갈수록 줄어 현재는 10여 명에 불과하다. 독문과도 사정은 비슷하다. 부산지역 대학들이 최근 2학기수시 학생을 모집한 결과 인문학 분야의 지원자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외대의 경우 영어학과는 1.2 대 1, 중국어학과는 미달됐으며 동의대는 인문학부 중 2 대 1을 넘는 학과가 드물었다.

경남대는 지난해부터 국제언어문화학부 4개 학과 가운데 중국어를 제외한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과 등 3개 학과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고 이들 학과 소속 교수들은 일단 유사 전공으로 전보시키는 고육책을 내놓았다.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열 및 야간학과의 통폐합 과정에서 실직을 우려한 교수들의 반발도 있었으나 고용 안정을 약속하고 협조를 유도했다. 이 대학은 과거 시간강사가 담당하던 상당수 강의를 정규 교수에게 맡기면서 시간강사가 일자리를 잃었다.

▽전공보다 취업이 우선=인문학의 위기는 전국적이지만 위기의 정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서울 소재 대학들이 이제 인문학의 위기를 체감하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면 지방대는 이미 무너지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대로라면 지방대의 현주소는 서울 소재 대학의 가까운 미래를 보여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학입시 면접 때 수험생들에게 “왜 인문학 관련 학과에 지원했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학생은 “교직에 진출하기 위해” 또는 “공무원으로 취직하기 위해”라고 대답한다.

전남대 사학과의 경우 4학년생 36명 가운데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5명,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려는 경우는 4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취직 시험에 인생을 걸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가하게 철학을 논하고 역사를 고민하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대학과 교수들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학생 없는 대학원=학부의 빈곤은 대학원으로 가면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대학원생이 아예 없는 학교도 적지 않아 교수들은 학문의 맥이 끊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1학기 강원대는 독문과와 불문과 대학원생이 전무했다. 정교수 6명에 대학원생이 1명뿐인 모 대학의 불문과 교수는 “가르칠 학생이 없는데 어떻게 학문을 이어 가겠느냐”며 “학부생들을 붙잡고 대학원에 오라고 사정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취업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조선대의 한 교수는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고교 때부터 취업을 지상 목표로 정하고 대학에 들어온 마당에 순수학문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인지 자문해 보게 된다”고 털어놨다. 모든 학생이 학자가 되려는 것도 아닌데 거의 모든 대학의 커리큘럼이 학자 양성 코스로 되어 있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원어민과의 자유토론식 면접시험을 보는 마당에 정규 대학교육만으로는 그 틀에 맞추기 어렵다는 것.

전남대 최정기(사회학) 교수는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소위 순수학문이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강의실에서는 시험문제 풀이식 강의가 될 수밖에 없고, 논문의 소재 또한 현실과 접목되는 분야의 정책 대안 위주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년 전 하버드대 총장이 신년사를 통해 ‘기술의 진보가 빨라질수록 학문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결국 인문학이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그릇이 된다는 생각을 사회적으로 공유하지 않는다면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인문학 지원 절실=학문은 기초순수학문과 응용학문이 균형을 이뤄 발전해야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고사 위기에 놓인 인문학에 대한 인식 전환과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학계는 촉구한다. 그러나 정부의 연구개발(R&D)비 중 인문학 연구지원비를 보면 △2003년 6조5000억 원 중 480억 원(0.74%) △2004년 6조9000억 원 중 590억 원(0.86%) △2005년 7조7000억 원 중 556억 원(0.72%) 등으로 열악한 수준이다. 교수들은 인기 분야는 사립대에 넘기고 국립대는 사립대가 꺼리는 기초·순수학문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등으로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공립인문대학장협의회 윤평현(전남대 교수) 회장은 “학부제와 신자유주의 등으로 인문학 위기가 가속화됐다”면서 “학부제를 없애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에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대 김영기 인문대학장은 “프랑스처럼 인문학을 집중 육성하는 정책연구소를 만들거나 국공립대만이라도 인문학 육성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자들이 스스로 부르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영남대 최재목(철학) 교수는 “자연과학과 첨단기술 분야와 인문학을 연계시켜 현실 문제에 접근하는 노력을 보여 주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사 학위는 해외서” 세계화 물결로 우수인재 눈뜨고 뺏겨▼
인문학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는 학문의 식민지화다. 1980년대 한국 지식사회는 학문의 토종화를 주창하고 나섰지만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인문·사회학계가 내세울 만한 보편적 이론의 등장은 여전히 요원하다. 여기에 학문 영역에도 세계화의 물결이 밀어닥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강의가 아니면 우수한 국내 인재를 해외 교수들에게 모두 뺏기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국내 대학은 학사만 양산한 채 석박사 과정은 아예 해외 대학에 위탁하다시피 하면서 학문적 종속성이 더욱 심화됐다. 이는 주요 대학 인문·사회과학 전공 교수의 국내 박사 비율이 1980년 이후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을 통해 1980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단위로 전국 대학 전임강사 이상 교원들의 국내외 박사학위 비율을 추적한 결과 해외 박사 비율은 25.0%에서 35.5%로 10.5%포인트가 늘었다. 기초 학문이라 할 인문학 전공자의 경우 해외 박사 비율은 1980년 이전 25.1%에서 2001∼2005년 48.0%로 22.9%포인트나 증가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명문대 대학원들도 본교 출신의 일급 인재들을 해외로 뺏긴 채 하위권 대학에서 충원하거나 중국과 동남아에서 돈을 주고 연구원들을 데려오는 형편이다.

이는 일본 도쿄(東京)대 교수들 중 90%가량이 국내 박사인 점과 대조를 이룬다. 도쿄대 출신인 양일모(동양철학) 한림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박사과정 2년차 정도에 해외로 나가 언어 연수와 학위 과정을 거치도록 하지만 논문은 국내에서 발표하는 것만 인정하는 학풍이 정착돼 있다”며 “이는 일본 학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자부심의 발로”라고 설명했다.

한국 인문학계가 자생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결과를 생산하고, 이를 교육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의 복구가 가장 중요하다. 또 석박사 과정을 포함해 학문에 뜻을 둔 학생들이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백종현(서양철학) 서울대 교수는 “한국에서는 대학원생들이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서 학문에 전념할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지만 외국에 나가면 5∼6년간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에 내공의 차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권재현 기자)

동아일보(06. 09. 20) 인문학은 학문의 ‘생명수’"

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문제가 광범하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결의를 담은 ‘인문학 선언’을 발표했다. 인문학자로서의 반성과 각오가 포함되어 있는 이 선언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켜 주었다.

돌이켜 보건대, 상당수 대학에서는 인문계 학과를 선택하는 학생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지원하는 학생들의 성적 등도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말도 있다. 여러 대학에서는 인문계열 학과 대학원 지망생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음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는 인문계 학과가 폐과되는 사태도 계속되고 있다. 대학 교양강의에서 인문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낮아지며, 실용적 학문이 교양의 주류인 양 주장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인문학의 위기 상황에는 다 원인이 있다. 우선 인문학이 처해 왔던 외적인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광복 이후 한국사회는 급격한 변화와 압축성장의 길을 걸어 왔다. 이 과정에서 성장에 급급했던 우리 사회는 너무 실용과 효율만을 강조해 왔다. 여기에서 인간 삶의 기본을 탐구하는 인문학의 중요성은 점차 망각되어 갔다.

인문학 위기의 본질이 인문학 자체에 있지 않고 인문학자들의 위기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진단도 가능하다. 분명 인문학과 인문학자는 구별되어야 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인문학의 가치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던 인문학자들 때문에 나타난 사태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굳이 그 위기의 더 큰 책임 소재를 찾는다면 역시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인문 정신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따진다. 인문학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인문학이 빈사상태에 빠지고 인문 정신의 중요성이 망각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눈앞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행동이 인문적 가치에 앞서게 된다면, 사회적 갈등과 충돌의 해소는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과학자에게 건강한 인문정신이 결여된다면, 과학이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을 황폐화하는 도구로 전락되고 만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우리의 구체적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절실히 필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로 세계적 갑부인 빌 게이츠 씨는 어찌 보면 인문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인문학이 없었더라면 나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모든 이에게 필수적으로 요청되고 있다는 말이다.

인문학은 학문의 세계에서 지하수의 수맥과 같다. 사람들은 지하수에서 생명에 필수적인 물을 끌어올려 마신다. 지하수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의 보전과 개발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하수가 오염되거나 고갈되어 버리면 지상의 생명체도 위협을 받고, 산업 활동마저도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인문학이 없이는 다른 학문도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발전을 위한 사회의 인식과 국가의 배려가 요청된다. 인문학 분야에 관한 2005년도의 통계를 들여다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지난해 연구개발에 관한 정부의 총예산은 7조8000억 원이었다. 그러나 인문학 연구 지원비는 556억 원으로 0.71%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많은 사람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발 이런 말들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인문학의 연구 성과가 다른 학문의 발전의 토대가 되고 나아가 국민 모두가 그 인문학의 열매를 향유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조광 고려대 문과대학장·한국사)

세계일보(06. 09. 20) "취업 안되는데…" 문학·역사·철학 폐강 속출

한국의 인문학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정부·사회의 무관심과 실용학문의 거센 파고 속에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인문학이 고사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대학마다 수강생이 없어 폐강되는 강좌도 속출하고 있다. 급기야 교수들이 공동선언을 통해 우리 사회에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세계일보는 한국 인문학이 처한 실상과 더불어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취업률은 바닥권, 취업 후 직무수행에 가장 도움이 안 되고….’ 우리나라 인문학계 출신자들의 현주소다. 인문학만으로 경쟁력이 없다 보니 인문학 관련 학과생이 다른 전공을 함께 이수하는 게 필수처럼 된 지 오래다. 인문계열 학과 졸업 후 취직이 안 되자 교대나 한의대, 법대 등에 진학하려는 ‘늦깎이 재수생’도 많다.


19일 오후 서울 H대학 인문대 도서관. 150여석의 좌석에서 공부하는 학생 중에 인문학 전공서적을 펴놓고 있는 학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토익·토플책이나 공무원시험 문제집을 펴들고 있었고 전공서적을 보는 소수 학생도 경제학원론과 민법총칙 등과 같은 서적을 읽고 있었다. 이 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의 인문대 학생들의 복수전공 비율은 30.6%로 교육대를 제외하고 단과대 중에 가장 높다. 인문대 학생들은 대체로 경영학과 사회과학 계열을 복수전공하기를 가장 선호한다.

서울 Y대의 경우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하는 학생 399명 중 181명이 인문계열 학생이다. 서울 J대 경영학부 복수전공자 225명 중 78명도 인문계열 전공자들이다. 모 대학 국문학과에 다니는 김용훈(24)씨는 “같은 과 친구들은 학점이 좋은 순서대로 교직 이수나 복수전공으로 눈을 돌리고 일부는 일찌감치 사범대나 경영대 쪽으로 전과한 친구도 많다”며 “경영대 수업은 항상 만원이라 수강신청 매크로(자동입력 기능)까지 등장했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은 아예 인문학 전공을 폐지했다. 2001년 호서대가 철학과를 폐지하고 문화기획과를 신설했고, 2003년 경원대도 역사철학부를 없앴다. 인문학도들의 수난은 졸업 후로도 이어진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05년도 4년제 대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취업실태를 조사한 결과 진학·입대 등을 제외한 순수취업률은 인문계열(어문학 포함)이 53.4%로 자연계열을 제외하고 가장 낮았다. 사학이나 철학 등 순수 인문학 전공자 취업률은 최하위권을 형성했다.

3년 전 명문 사립대 국문과를 졸업한 조모(26·여)씨는 현재 교대에 다시 입학하기 위해 재수 아닌 재수를 하고 있다.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했지만 국문과 졸업생의 경우 원서조차 받아주지 않아 취직이 잘되는 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조씨는 “아동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국문과에 입학했는데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며 “나 같은 재수생 중에 인문계열 출신이 예상보다 훨씬 많다”고 귀띔했다.(백소용 기자)

세계일보(06. 09. 20) "바뀐 교육환경에 맞춰 학자들 스스로 변해야”

서울대 인문대학장 이태진 교수(국사학과·사진)는 19일 인문학의 위기는 바뀐 교육환경에 맞춰 학자들 스스로 변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극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의 무관심도 문제지만 ‘그들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문학계 내부의 잘못도 크다는 것이다.

이 학장은 “우리가 먼저 변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들게 하면 국가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서울대도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 인문대는 당장 내달부터 공대, 경영대 등 단과대학들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포럼을 정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며 일본의 도쿄대, 중국 베이징대와 함께하는 학술회의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학문인 만큼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면서 “예전엔 다른 단과대에서 인문대 교수들을 불러주기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불러들일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인문학에 대한 국가적 무관심에 대해선 “나무에 물을 주는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지원해줘야 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학장은 “공부를 열심히 해도 나와서 갈 데가 없다면 누가 의욕을 갖겠느냐”면서 “선진국처럼 학교와 국가가 나서 석·박사 과정생에 대한 학비와 생활비 지원, 일자리 모색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공대가 기여한 부분이 크지만 그것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면서 “국가 차원에서 인문계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경희 기자) 

한국일보(06. 09. 20) 내주 人文주간… 7개 단체 온·오프서 다채 행사

인문학이 대중 속으로 뛰어든다. ‘열림과 소통의 인문학’이란 기치도 내걸었다. 한국학술진흥재단과 인문학계가 손잡고 25일부터 6일간 온ㆍ오프라인 공간을 넘나들며 펼치는 ‘인문 주간’행사는‘인문학의 위기’를 대중과의 접촉을 통해 정면 돌파하려는 절박한 몸짓이다. 행사를 위해 각 대학 인문대학은 물론 한국학 중앙연구원 등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등 대학 부설 연구기관, 그리고 그 동안 일반인 대상 학술 강좌 등으로 인문학 대중화에 힘써 온 재야 연구단체까지 모두 7개 단체가 손을 잡았다.

‘인문학은 고리타분하고 어렵고 딱딱하다’는 편견을 벗어 던지기 위해 세미나 강연 전시 시연 체험ㆍ참여 등 61개의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인문학계 전체가 ‘상아탑 안의 인문학’이 아니라 ‘생활 속의 인문학’만이 활로라는 데 뜻을 모은 것이다. 학술진흥재단 관계자는 “인문학의 위기는 연구자 스스로 대중과 소통하기를 꺼려서 생겼다는 자체 반성에서 출발했다”며 “연구 성과를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을 마련해 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규장각은 고문서를 통해 주택을 사고 파는 과정, 고발ㆍ고소 같은 송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등 조선시대 서민들의 일상 생활을 살펴 보는 ‘고문서를 통해 본 생활사’ 강연을 연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든 과정도 풀어낼 예정이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는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내걸었다. ‘서울 100년,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전시회와 함께 ‘영화 속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와 같은 이색 강연이 기다린다.

철학아카데미는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했다. 플라멩코 춤 마임 행위예술 사이코 드라마를 선보이고 요가 최면술 무속 선(禪) 수행 등 참가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인문학 연구 모임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공부ㆍ몸ㆍ 언어의 하루’ 등을 주제로 한 영상제와 세미나를 함께 연다. 학술진흥재단과 인문학계는 앞으로 매년 한글날(10월9일)을 전후한 1주일을 공식 ‘인문 주간’으로 정해 인문학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계속 이끌어 갈 계획이다.(박상준기자)

06. 0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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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오락공화국의 인문학

아침 출근길 전철에서 여느 때처럼 조간신문을 읽었다. 수요일인지라 한국일보를 사들었는데 최근의 '인문학 사태'와 관련하여 강준만, 전봉관 두 교수의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이 시사적인 이슈에 대한 나의 생각과 닮은 점이 많아서 옮겨놓도록 한다. 강조는 나의 것이다.

한국일보(06. 09. 27) 오락공화국

한국의 40대 남성 사망률은 세계 최고다. 한국인의 스트레스 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인의 자살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대학입시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해 매년 200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성적 문제로 자살을 한다. 한국인의 행복도는 세계 중하위권 수준이다.

● 전쟁 같은 한국인의 삶
이런 기록만 살펴보자면 한국은 지옥에 근접한 나라로 보이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지옥과 천국을 수시로 왔다갔다 할 정도로 나름대로의 대비책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은 세계 50대 교회 중 제1위를 포함하여 23개를 갖고 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겐 음주ㆍ섹스ㆍ도박ㆍ스포츠가 있다. 음주ㆍ섹스ㆍ도박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스포츠는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스포츠 국가주의에 열광하는 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더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오락이 있다. 영화는 히트만 쳤다 하면 천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인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비롯한 오락프로그램은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되 인터넷이 주로 오락용으로 소비된다는 점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등이다. 한국은 게임 강국이며, 비보이 문화의 새로운 종주국으로 떠올랐다. 오락 기능이 강한 각종 방(房) 문화의 발달도 세계 1위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한국은 '오락 공화국'이다! 냉소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자는 뜻이다. 한류 열풍은 '오락 공화국'의 역량을 보여준 사건이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 치하에서도, 민주주의를 박탈당한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도, 오락문화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으며 내내 번성했다. 한국인이야말로 이른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전형이다.

'오락 공화국'은 한국인의 기질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그럴 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땅 좁고 자원 없는 나라가 살 길은 근면과 경쟁 뿐이다. 한국은 그냥 생존하는 것만으론 만족하지 못하고 선진국 되는 걸 국가종교로 삼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그래서 택한 게 바로 '삶의 전쟁화'였다. 전쟁 하듯이 산다는 것이다. 그런 전쟁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든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오락이었다(*그러니까 각종의 오락은 한국인들의 지옥 같은 삶을 지탱해주는 '마약'이다).

한국인들은 정치를 욕하지만, 정치야말로 고급 오락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욕하면서 즐기는 오락, 이건 오락의 최고봉이다. 특정 정치인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따르는 이른바 '빠' 문화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정치에 대해 말이 많지만 매우 재미있는 범국민 오락을 제공한다는 점에선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오락 공화국'에선 삶의 속도가 빠르다. 오락은 유행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싫증나게 만드는 건 죄악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런 속도전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속도의 폭력에 치이는 분야가 생겨났다.

인문학도 그런 분야 중 하나이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하고 나섰지만, 인문학만 위기인 건 아니다. 오락적 가치가 사회의 전 국면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오락적 효용이 떨어지는 건 모두 다 위기다. 신문을 보라.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대학교수들이 의외로 많다.

● 오락 외에는 대안 없나
문화관광부가 이름을 문화체육관광부로 바꾼다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세계 10대 레저스포츠 선진국 진입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라나. 한국은 이미 세계 1위의 '오락 공화국'인데, '세계 10위'를 목표로 삼다니 우리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오락 공화국'은 한국적 삶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택한 대안이었겠지만, 이를 계속 밀어붙일 것인지 본격적인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기에 앞서 '오락 공화국'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더라면 더욱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나의 아쉬움이기도 하다).(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한국일보(06. 09. 27) "이 녀석아 진리가 변하냐?"

인문학을 전공한 노교수는 30년 가까이 같은 학교에서 똑같은 과목을 강의했다. 30년을 사용하다보니 강의노트가 너덜너덜 해어졌다. 대학원생 조교는 노교수의 해어진 강의노트를 타이핑해 컴퓨터 문서로 정리하면서 이렇게 권했다. "선생님, 이참에 내용도 한번 정리하시죠?" 노교수는 무례한 제자를 한심한 듯 한참동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녀석아! 진리가 변하냐?"

● '인문학 위기 선언'을 보고
필자가 다니던 대학원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던 이야기다. 실화인지 허구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실화라고 믿는 대학원생이 더 많았다. '인문학 위기 선언'을 접하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 전설이었다.

나는 인문학 위기 선언이 그동안 학자들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 뼈를 깎는 자기혁신을 단행하지 않은 것, 학문 후속세대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 것, 사회의 통합은커녕 분열에 앞장선 것 등에 대한 진지한 자기반성에서 시작될 줄 알았다.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으로 보낸 10여년 동안, 내가 경험한 인문학의 위기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할 때도, 대학원에 입학할 때도 과정이 끝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는 단 한번도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인문학자가 처한 경제적 곤란은 위기가 될 수 없었다. 같은 국문학자끼리도 전공이 고전문학이냐 현대문학이냐에 따라 서로의 논문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으므로, 인간성 회복이니 사회적 통합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가 인문학의 존립 근거가 될 수도 없었다. 논문과 학술서는 전공자가 아니면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지엽적이고 난해했으므로, 대중의 무관심 역시 위기의 본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젊음을 인문학에 바치면서 절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원생이 열심히 연구해 제출한 논문을 교수들이 대충 읽고 깎아내릴 때, 학술지 논문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때 절망했고, 신진학자의 새로운 견해가 학계의 낡은 기준으로 난도질당할 때, 후배들이 '형처럼, 교수들처럼 살기 싫다'고 하나둘씩 대학원을 떠날 때 절망했다. 무엇보다도 인문학자들이 '나태'를 '영혼의 자유'로 분식(粉飾)하려 들 때 절망했다.

● 해어진 강의노트부터 찢어라
아무리 '남 탓'이 우리 시대의 '정신'이라지만, 인문학자들마저 남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청춘을 인문학을 공부하는데 바치려는 무모한 젊은이들이 아직은 대학원에 남아있다. 사회는 인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데, 인문학자는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독백만 하고 있다.

젊은이들을 인문대 대학원에서 내쫓는 것은 '무차별적 시장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이 녀석아! 진리가 변하냐?"는 오만과 만용, 시대착오와 자가당착이다. 해어진 강의 노트는 찢어버려야 한다. 진리가 변하지는 않지만, 해어진 강의노트에 적힌 것은 진리가 아니다. 설령 진리라 하더라도, 진리를 전달하는 방식은 대상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인문학자들마저 남 탓에 내몰리면, 이 나라는 정말로 희망이 없어진다.(전봉관ㆍ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절충적인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의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기 전에 먼저 '오락공화국'의 문제를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아야 하며 자신의 해어진 강의노트를 찢어버려야 한다(내 강의노트는 어디에 처박혀 있나?). 그러니까 문제는 인문학 일반의 위기가 아니다. 문제는 '한국'의 인문학이고, 인문학자들 자신의 인문학이다(혹 무늬만 인문학은 아닌가?). 그리고 사실 이러한 반성이야말로 (몰염치한 정치와 무반성적인 과학에 대하여) 인문학의 장기이자 특권 아닌가?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네 주제를 알라!" 

06. 0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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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퍼온글] 전공투 일본학생운동사 소개기사

연대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세대를 위한 그림책
다카자와 고지 - <전공투 일본학생운동사>(1985년, 백산서당>

   
만화 천국인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다양한 주제들이 만화로 제작된다. 역사책을 만화로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각종 시험과 관련된 내용이나 영행이나 취미 같은 안내서들도 만화로 제작된다. 철학이나 천황제 같은 심각한 주제들도 피해갈 수 없다. 물론 모두 성인독자를 대상으로 기획되는 것들이다.

우리의 경우 80년대에 일본에서 들여온 PC학습용 만화교재들이 번역되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점차 확대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전문적인 내용을 만화로 재현한 것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교양만화의 대부분은 아동이나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다. 예전과 달리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만화를 펴들고 있는 학생들이 많아졌지만 아직까지 넥타이 멘 직장인이 만화를 펴들고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만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금도 강하게 남아있지만 80년대 그 엄혹한 시절에 이미 ‘아이들은 절대 안 볼’ 심각한 만화 책들이 사회과학 서점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모았었다. 오월출판사가 주로 냈던 이 만화책 시리즈는 마르크스, 레닌, 체 게바라 같은 위험한 인물부터 사회주의, 반핵, 페미니즘 등 골치 아픈(?) 주제들을 다뤘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 중 몇 권은 출판사를 바꿔 지금도 출판되고 있다.

오월 출판사의 사회과학 만화들이 비교적 인기를 끌었던데 반해 백산서당에서 1985년 출판한 만화 <전공투 일본학생운동사>는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유통량도 적었고 출판사가 재판을 찍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그만큼 안팔렸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왜일까? 멀리는 오월광주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고, 건대사태와 열사들의 희생이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던 시절이니 만큼, 아무리 남의 나라 학생운동사라고 해도 그런 숭고한 주제를(?) 감히 만화로 다루는 것이 못 마땅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무리 책 자체가 ‘입문서’라고 해도 당시 일본 사회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는 무슨 말인지 잘 납득이 안됐을지도 모르겠다. 일본학생운동의 활약상이 정말 ‘만화 같은’ 이야기로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정말 재밌다.

* * *

원서는 1984년에 나온 <일러스트레이티드 전공투(イラストレイテッド 全共闘)>다. 저자인 다카자와 고지(高沢皓司)는 대학시절 전공투 운동을 체험했고, 그 경험에 기반 해 훗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되어서는 일본의 사회운동과 학생운동에 관한 저작들을 주로 발표했다. 1990년 이후로는 1970년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갔던 적군파 조직원들의 행로를 직접 북한에 들어가 취재하기 시작했다. 취재 결과를 정리해 2000년 발표한 책 <숙명-요도호 망명자들의 비밀공작>은 그해 고단샤논픽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림을 그린 도요타가 주히코(豊田一彦)는 와세다대 출신으로 유명한 아동그림책 작가다. 아마 그의 작품 활동 경력에서 이 만화책의 작업은 별종 중의 별종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전공투, 그러니까 “전학공투회의”에 대해 다룬 이 책은 150쪽 정도로 얇다. 앞부분의 1/3은 이해를 돕기 위해 일본의 패전부터 전공투 운동이 시작되는 68년까지의 학생운동 상황을 정리하고 있다. 전공투 운동은 사실 4년도 채 안되는 짧은 기간의 폭풍이었지만 책은 1945년부터 일본 학생운동이 실질적인 막을 내리는 70년대 초반까지를 다루고 있는 만큼 ‘일본학생운동사’라는 부제가 어색하지는 않다.

일본의 학생운동은 ‘전학련’과 ‘전공투’로 상징된다. 전학련은 자치회, 우리식으로 말하면 학생회의 연합체다. 50년대 초반까지 전학련은 단일한 조직이었지만 이후 신좌익운동이 시작되고 정파들이 분립하면서 각 파벌마다의 전학련이 따로 생겨났다. 전대협이 학생운동의 대표체였다가 지금 한총련이 ‘하나의 분파’로 전락한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반면에 전공투는 어떤 조직형식을 갖춘 운동이 아니었다. 모든 학생의 공동투쟁 회의라는 이름에서 보듯 당면한 투쟁을 위한 임시기구의 성격이 짙었다. 68년 도쿄대와 니혼대에서 대학의 민주화와 재단과의 갈등을 계기로 자연발생적으로 이들 대학에서 학생투쟁체가 건설됐다.

여기에는 두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기존의 학생운동이 정파운동으로 재편되면서 4~5년 넘게 상호간의 헤게모니 투쟁에 전념하고 있는 동안, 베트남 전쟁의 격화, 일본경제가 고도성장하면서 발생한 사회모순, 기성세대에 대한 학생들의 반감 등이 학생 대중들을 급진화시키고 있었다. 이들은 기존의 학생운동 정파에 가담해 체제에 대항하기도 했지만 조직의 틀을 거부하고 급진적 행동을 표출하기도 했다.

무당파라는 의미에서 “논섹트 라디컬”로 불려진 이 일본의 68세대들이 학원분쟁이라는 형태로 행동에 나선 것이 바로 ‘전공투’ 운동인 것이다. 전공투의 시작은 거창한 정치적 목표가 아니었다. 니혼대는 한 교수가 돈을 받고 부정입학을 알선한 것이, 도쿄대는 의대 수련의들이 근로조건과 병원의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렇게 시작된 학원분쟁은 한두달 만에 국가권력을 대행하는 학교와 재단, 경찰기동대와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전체 학생이 대립하며 학원을 해방구로 만든다는 사상으로 발전했다. 바리케이드와 학생파업 속에서 니혼대 전공투는 1968년 5월 28일, 도쿄대 전공투는 같은 해 7월 5일 결성됐다.

전공투 운동은 기존의 신좌익운동과는 다른 사상을 만들었다. 도쿄대 전공투 의장이었던 야마모토 요시다카가 처음 사용한 ‘자기부정’이다. 처음에 그것은 일본사회의 최고 엘리트로서 오늘은 시위에 나서지만 내일은 관료로의 출세가 보장된 모순된 존재에 대해 비판적인 반성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논리가 확장돼 대학의 해체와 자기 존재에 대한 철저한 부정만이 진정한 변혁에 이른다는 식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전공투 뿐만 아니라 일본 학생운동의 최대 사건 중 하나인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이 발생했다. 이미 1968년 말부터 각 학부 건물을 점거하고 파업농성 중이던 전공투는 해가 바뀌자 주력부대를 야스다 강당으로 집결시키고 있었다. 결국 대학당국이 경찰투입을 요청하고 기동대가 1월 18일 진압을 개시했다. 꼬박 이틀이 걸린 공방전은 TV중계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이 책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강당 꼭대기 층까지 밀리면서 최후의 저항을 한 500명의 전공투 활동가들은 인터내셔널가를 마지막으로 부르고 전원 체포됐다고 한다. 이들이 강당을 점거하고 농성한 이유는 그해의 도쿄대 입시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자기부정의 한 방법으로 이 더러운 제국대학의 엘리트를 재생산을 막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뜻대로 그해 도쿄대 입시는 중단됐다.

도쿄대 전공투는 야스다 강당 건물의 방송시설을 이용해 점거기간동안 자주방송을 실시했다. 본인은 죽을 때까지 확인을 해주지 않았지만 이 방송은 후에 사회당 소속 국회의원이 되는 의대생이 책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는 기동대가 강당을 함락하기 직전 마지막 방송을 이렇게 끝맺었다. “우리의 방송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전국의 학생, 시민, 노동자가 우리의 투쟁을 이어나가 주십시오. 다시 해방강당을 되찾는 그날까지 방송을 중지합니다.”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닐지 몰라도 확실히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있었다. 그리고 방송은 37년째 중지상태다.

   
▲ '자기부정'은 전공투 운동의 화두이면서 동시에 운동의 모순적 성격을 보여주는 단어다. '민청'은 일본공산당의 청년조직으로 당시 학원분쟁에서 일종의 '구사대'역할을 했기 때문에 신좌익운동은 이들을 '체제의 일원'으로 규정했다.
 
* * *

야스다 강당 이후 일본의 대학에서는 유행처럼 전공투가 결성됐다. 학생운동의 불모지였던 여대와 체육계 대학에서조차도 전공투가 결성돼 학원분쟁이 격심해졌다. 전공투 운동의 정치성이 강화됐다.

1969년 9월 5일 도쿄 히비야공원에서는 3만명의 학생이 모인 가운데 전국전공투가 결성됐다. 각 대학 전공투가 연합하고 도쿄대 전공투 의장과 니혼대 전공투 의장이 각각 의장과 부의장에 선출됐다. 그러나 내막은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8대 당파의 연합체였다. 운동의 주도권이 다시 당파에게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책은 “전국전공투의 결성이 결국은 전공투 운동의 마지막”이었다고 회고한다. 전국전공투의 정치성과 학원투쟁이 괴리되기 시작하고, 무당파 활동가들이 당파에 반발해 이탈하고, 조급해진 일부는 ‘무장투쟁론’으로 나아가면서 전공투 운동은 내부에서 붕괴되어 갔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적군파다. 또 당파들은 대중과 혁명의 전망을 잃어버리면서 경쟁당파를 ‘반혁명 집단’으로 규정하고 상대조직의 활동가를 살해하는 ‘내분’을 시작했다. 책은 여기서 끝맺는다.

골치아픈 이야기만 적었는데 만화로 구성한 책답게 재밌는 이야기들도 있다. 일본 학생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공사장 안전헬멧이 당시 500엔이었고 주무장이었던 각목은 50엔이었던 반면 기동대의 개인안전장비는 모두 합쳐 9,550엔이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서 구치소에서 제공하던 관식의 메뉴 같은 자료는 진지한(?) 책이라면 결코 다루지 않았을 내용들이다.

각 시기별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 책이나 대중문화를 적어놓은 것도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 글로만 적어놓으면 실감이 나지 않을 데모의 전개상황이나 점거상황들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등 만화책만이 누릴 수 있는 이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일본에서도 재판이 나오지는 않은 만큼, 국내에서 이 책이 다시 출간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만 혹시 도서관이나 아는 사람을 통해 책을 구할 수 있다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꼭 읽어보길 권한다. 우리나라 도서관에 과연 만화책이 구비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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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이 전공투 세대인 작가는 책을 통해 전공투 운동이 가졌던 ‘연대감’을 강조하고 있다. 전공투 운동은 사회세력화에 실패하면서 세대가 아닌 세대를 남겨놓았다. 전공투 세대는 규모나 그 경험에 있어서 우리의 소위 366세대와 비교가 안 되지만 운동의 패막과 함께 급속도로 기성 사회에 빨려 들어갔다. 전공투 운동 이후 일본사회에서 전공투 세대의 특성이 집단적으로 발휘된 적은 없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저자는 사라져간 연대의 기억에 목말라 하는 것 같다.

 

# 출처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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