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괴물의 정치학

오늘자 이메일로 배달된 '창비주간논평'에서 문학평론가 김영찬의 '괴물의 정치학이 문학에 들려주는 이야기'를 옮겨온다. 페이퍼의 제목은 '괴물의 정치학'으로 줄였다. 처음 타이틀만 보고서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괴물>을 떠올렸지만, 그건 아니었다. 하긴 아직 개봉하지도 않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일 리는 만무하다. 아무튼 2000년대 중반 한국문학과 문화의 한 트렌드를 읽는 데 도움을 주는 유익한 논평이다.

 

 

 

 

-박찬욱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우리의 오대수는 말한다. "나는 이미 괴물이 되었다." 비단 오대수뿐인가. 이것은 최근 파괴적인 욕망과 충동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거나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한국영화 주인공들의 공통된 자기선언이다. 그러고 보면 일찍이 "괴물은 되지 말자"고 반복해 다짐하던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 주인공의 호소는 이들에겐 전혀 먹혀들지 않았던 듯하다. 과연 그렇다. 최근 한국영화의 일각에는 괴물들이(혹은 괴물이 되어가는 자들이) 성업 중이다.



-가령 <올드보이>를 포함한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은 모두 복수의 괴물이 출연하는 비극이고, 김지운의 <장화, 홍련>과 <달콤한 인생>은 저도 몰래 우연히 맞닥뜨린 불가항력적인 절망의 고통에 죄의식과 분노를 토해내며 괴물이 되어가는 자들의 이야기다.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의 인물들 또한 치유되지 않은 80년대의 상처를 짊어지고 편집증적 괴물이 되어간다. 그러니 이쯤에서 물어보자. 대체 이 난데없는 괴물들의 출현은 어찌된 일인가?

-일단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모두 상업적 대중영화의 상상력과 문법을 빌려 작가의식을 실현했다는 데 있다. 최근 한국영화 속의 괴물은 그렇게 작가주의가 호러와 범죄물 같은 대중적 장르영화의 과잉의 상상력을 끌어들여 빚어낸 형상이다. 더욱이 그 괴물의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것이 스크린 가득 흘러넘치는 피와 폭력, 화면구도를 과격하게 일그러뜨리는 불안과 공포, 격렬한 심리적 갈등과 분노의 분출이라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당연하다. 통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일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그런 측면에서 상업적 코드에 붙들려 있는 것이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여기에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그 속에 은밀히 잠재한 정치적 환기력이다.

-정치적이라니.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따져보면 분노와 죄의식이 뒤범벅된 운명론적 비극의 드라마와 그것을 장식하는 과도하고 현란한 스타일을 통해 이들 영화가 은연중 헤집으며 건드리는 것은 최근 한국사회 현실의 모순 속에서 배태된 대중적 (무)의식과 공통감각의 성감대다. 저 괴물의 이야기를 통해 나름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형태의 정치-윤리학 또한 저 자신의 방식으로 그에 대처하는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는 이른바 비판적 작가주의 영화의 정치성이 이제 <박하사탕>이 대표하는 이창동식 리얼리즘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영화의 정치적 함의는 역설적이게도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그래서 당연히 탈정치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극단적이고 파국적인 상황(예컨대 근친상간이나 우주인의 침공)에서 분출하는 폭력과 뒤틀린 정념 속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너무도 극단적이기에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그 사건의 파국을 몸소 떠안고 파멸로 치달아가는 괴물들의 일그러진 정념과 무력한 몸부림을, 이들 영화는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중요한 것은 저 사건들의 치명적인 파장과 갈등은 불가항력적이고, 해결할 수도 없으며, 화해는 더더구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당연히 감정은 격해지고, 파국은 숙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것이 이와 반대로 역사와 현실의 계기들을 이야기에 끌어들이면서도 그 속의 위기와 갈등을 결국은 낭만적인 화해를 통해 봉합해버리는 <웰컴 투 동막골>이나 <태풍>류의 영화언어와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 것인지도 여기서 함께 기억해두자. 여하튼 그럼으로써 이들 영화가 은유적으로 드러내놓는 것은, 지금 한국사회의 근원에 숨어 가로놓여 있지만 지배질서와 지배언어 속에서는 결코 포섭할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적대적인 갈등과 결여, 절망적인 심리적 위기와 교착이다.

-이 근저에 있는 것이 포스트-IMF시대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심리적 불안과 위기라는 점은 필히 덧붙일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이를테면 희망과 가능성이 질식된 시대의 심리적 풍경이다. 한국사회의 일상과 씨스템을 재구조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지배와 그로 인한 양극화의 고착과 심화는 가령 독재나 IMF위기의 시기에 그러했듯 그렇게 눈에 보이는 장애를 극복하면 무언가 나아지리라는 역설적인 희망을 갖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 듯하다. 독재는 사라졌고 경제위기는 극복했음에도 무언가 나아지기는커녕 삶의 조건은 한없이 악화되어가고 나날의 삶을 옥죄는 자본의 지배와 모순은 더욱 심화되어간다는 실감이 지금의 공통감각이다. 하물며 그것이 대중들이 막연히 민주주의세력 혹은 '진보'라고 생각했던 집단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음에랴. 미래는 여기서 결코 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숙명론과 체념적인 인식은 그런 가운데 나오는 것이다.



-한국 작가주의 영화의 비판적 정치의식이 그렇게 극단적인 과잉의 상상력을 통해 표출되는 것은 정확히 이런 현실에 조응한다. 불가항력적이고 해결할 수도 없는 절망적 상황에 휩쓸려 괴물이 되어가는 인물이 맞닥뜨리는 치명적인 위기와 곤경은, 해결될 가망이 보이기는커녕 근원에서 악화되어가는 한국사회의 실패와 결여, 적대의 지점을 헤집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극적인 우연과 불확실함이 지배하는 폐쇄된 세계, 그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악순환, 스스로 괴물이 되어 파멸로 치달아가는 인물들의 절망적인 심리, 치명적인 죄의식과 원한 등은 그런 실패와 적대 속의 주체의 불안과 위기를 응축하고 전시하는 영화적 증상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조금 다르긴 해도 최근 한국문학에서 부각되는 탈현실적인 허구 속에 스며 있는 신경증적 불안과 폐소공포, 절망적인 파국과 죽음의 이미지, 극단적인 환상의 문법 등을 그와 방불한 맥락에서 읽고픈 유혹을 느낀다. 물론 여기에는 똑같은 시각에서 볼 수만은 없는 장르와 세대의 차이, 정치의식의 편차 등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현재 한국문학에는 현실에 대한 민감한 감각에 뒷받침된 문학의 정치적·윤리적 책임의식과는 무관하게 자아에 고착된 자폐적인 실험에 안주하는 소설이 일부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그렇다면 예컨대 편혜영의 죽음과 악취의 미학이나 박민규의 장편 <핑퐁>이 보여주는 놀랍도록 음울한 종말의 환상은 어떤가?

-이 물음에는 짐작하다시피 얼마간의 긍정과 부정이 섞여 있다. 하지만 친절한 대답과 해명은 이 짧은 글에서는 불가능하니 일단은 뒤로 미루고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우리가 이들 한국영화에서 적극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이런 물음이다. 결코 일어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저 끔찍한 상황을, 결국은 나 자신일지도 모를 저 괴물-타자들을 대체 어찌할 것인가?

 

 

 



-이런 물음이 일깨우는 것은 다름아닌 이를 제대로 사유하고 감당할 수 있는 정치와 윤리의 언어가 우리에겐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다. 물론 앞서 본 한국영화의 정치-윤리학은 아직은 모호하고 또 일면 타협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 영화가 그런 불안과 위기를 봉합하거나 섣불리 화해시키지 않는 한, 그것은 바로 그 속에서 새로운 정치와 윤리의 지점을 새로운 언어로 숙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한국문학에서도 그것은 아직 잠재적인 가능성일 뿐이다. 하지만 기왕에 탈현실의 허구를 끝까지 밀고 나가기로 작정한 문학이라면, 그 점은 한국문학이 한켠에서 열어가야 할 또다른 방식의 새로운 정치와 윤리의 언어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함께 기억하고 탐구해야 할 지점이다.

06.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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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노마디즘 논쟁 일지

교수신문(06. 06. 12)에 홍윤기 교수의 반론('노마디즘 대 노마디즘' 참조)에 대한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교수의 재반론이 실렸다. 반론문의 말미에 '노마디즘 논쟁 일지'가 정리돼 있기에 같이 옮겨온다. 이 정도면 생산적인 결론을 이끌며 마무리되었으면 싶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은 듯하다. 나로선 방학때나 '노마돌로지'를 읽어보고 몇 마디 거들 계획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충돌과 갈등을 통해 창조 또한 가능하다. 논쟁이란 이성과 이성의 길항(dia-logos)을 통해서 진리/진실에 한발자국씩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한다거나 상대방을 이기려는 아집에 사로잡혀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것을 피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핵심적인 문제는 들뢰즈/가타리의 ‘유목주의’가 침략주의인가, 천규석의 주장이 과연 근거 있는가, 아니 최소한의 지적 성실성이라도 갖추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유목주의/노마디즘’이라는 표현으로 들뢰즈/가타리 사유를 지칭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는 논증된 문제가 아니다. 이 표현은 이들의 것이 아니라 이진경의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 말을 사용하기로 하자)

-‘노마디즘’은 이중적으로 패러디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목민들의 삶을 그리워하는 낭만적 회귀라는 패러디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기자본주의적 상품논리로서의 ‘유비쿼터스’ 전략이라는 패러디이다. 둘 다 들뢰즈/가타리의 본지와는 한참 떨어진 패러디들이다. 그러나 후자의 패러디가 훨씬 심각하다. 국민국가들을 매개 고리로 하는 후기자본주의적 ‘공리계’(화폐 회로들의 장)에 저항하고자 하는 소수자 윤리학/정치학을 완전히 거꾸로 ‘침략주의’, ‘시장제국주의’로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규석의 책은 ‘천의 고원’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그것을 항간에 유행하는 천박한 “유목주의”와 동일시함으로써 “침략주의”라는 극단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천규석/홍윤기는 들뢰즈/가타리 사유를 1)개념/이론이 아니라 인상/이미지로 받아들이고 2)그것을 상상/억측한 후 3)그것에 대해 전혀 빗나간 ‘비판’을 가하고 있다. “전쟁기계”라는 말을 듣고서 거기에 “전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자 ‘피 냄새가 난다’, ‘칭기즈칸의 정복주의’를 찬양하는 것이다 같은 식의 ‘비판’을 가하는 것이 전형적인 예이다. ‘유목’이라는 말이 들어가자 여기저기 이동하는 것이라고 상상하고, ‘욕망’이라는 말이 들어가자 퇴폐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둥, 우스꽝스러운 상상/억측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떤 개념을 듣고서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성실한 이해도 없이, 그 언어가 연상시키는 이미지/인상을 근거로 상상/억측한 후 다시 그것을 엉뚱하게 비판하는 것, 이것이 천규석/홍윤기의 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사유’이다.

-전쟁기계는 전쟁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정말 그런가?). 그것은 1968년(‘68혁명’) 이래 도래한 소수자 운동(여성운동, 학생운동, 새로운 노동운동, 문화운동, 생태운동 등등)을 염두에 둔 개념이며, 국가장치/자본주의로부터 탈주하면서 투쟁하고 사랑하고 창조하는 모든 행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참으로 얄궂은 것은 천규석 등이 추구하는 생체공동체야말로 다름 아니라 들뢰즈/가타리가 추구하는 전쟁기계의 좋은 예라는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상상/억측할 때 천규석도 침략주의자이다. 천규석은 ‘농사꾼 철학자’이고 따라서 농사와 철학을 가로지르면서 유목하고 있지 않은가(*이전에 지적한 바 있지만, 이것이 이정우에게서의 '유목'이다. '가로지르기'로서의 유목. 그리고 그의 유목은 사실 들뢰즈의 유목과도 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천규석은 침략주의자가 된다. 이 무슨 기묘한 결과인가. 이런 식의 “연상 고리들”을 끊고서, 최소한의 지적 성실성을 가지고서 누군가를 언급하고 평가하고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여 말한다면, 홍윤기는 홈 패인/매끄러운, 유목/정주, 리좀/수목형을 비롯해 들뢰즈/가타리의 구분이 개념적 구분일 뿐 실체적/실재적 구분이 아니라는 내 지적을 논박하기 위해서 내용/표현, 실체/형식을 도식한 그림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봐라, 들뢰즈/가타리가 실체의 내용과 표현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느냐’는 요지의 반론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들뢰즈/가타리에게 ‘내용의 실체와 형식’, ‘표현의 실체와 형식’은 있어도 ‘실체의 내용과 표현’, ‘형식의 내용과 표현’ 같은 것은 없다.

-첫째, 무엇인가가 있고 그것의 내용과 표현이 있는 것이 아니다.(들뢰즈/가타리의 ‘표현’을 어떤 존재가 있고 그 존재가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상식적 의미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돌과 조각가가 있을 때 돌이 내용이고 조각가가 표현이다. 일상적 ‘표현’ 개념과는 전혀 다른 개념인 것이다) 내용과 표현이 각각 어떤 것, 무엇이다.

 -둘째, 이들에게 ‘실체’란 어떤 것, 무엇이 아니라 어떤 것의 질료/물질을 뜻한다.(chemical substance를 ‘화학물질’로 번역하는 것을 상기하면 되겠다) ‘형식’은 어떤 것의 구조를 뜻한다. 그러니까 홍윤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철수의 키와 성격’, ‘영희의 키와 성격’이라 해야 할 것을 ‘키의 철수와 영희’, ‘성격의 철수와 영희’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천의 고원’ 58-60쪽, 한글본 92~95쪽을 숙독할 것을 권한다) 요컨대 홍윤기는 그림의 가로를 먼저 읽고 세로를 읽어야 하는데, 그것을 거꾸로 읽고 있는 것이다.(!)

-더 기막힌 것은 이런 실소를 자아내는 “근거”를 제시한 후에, 그는 오히려 내가 “원전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강변한다는 사실이다. 설사 내가 틀렸다 해도 “사기극”이 무슨 말인가. 논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06. 06. 13.

P.S. 참고로, 북매거진 <텍스트>(2006년 5월호)에 게재됐던 인터뷰에서 이정우 교수가 말하는 '유목'의 뜻을 옮겨온다. 비생산적인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강조는 나의 것이다.

-'유목'이라는 말이 언급되는 맥락이 좀 이질적인데요, 사실 그런 맥락들이 아무런 구분없이 '유목을 하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목이라는 말이 공허하고 티비 선전문구처럼 사용되죠. 유목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최소한 네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봐야 됩니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의 유목이 있죠. 이건 중아시아의 유목민들을 일컬을 때의 유목민들을 말하는 경우 같은 거죠.

-그런 맥락과는 다르게 일반적이고 철학적인, 가령 들뢰즈나 가타리가 말하는 유목이 있죠. 문자 그대로의 유목과 관련은 되지만, 그것으로 이해하면 아주 희한한 이야기가 되죠. 문자 그대로의 유목과 철학적 사유의 방식으로의 유목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들뢰즈 같은 경우는 유목적 사유를 이야기하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도 잘 안 갔다 오거든요. 디지털 유목이라는 말도 좀 이상한 개념이죠. 왜냐하면 인터넷 세계를 막 돌아다니는 사람은 자기 몸은 가만이 방안에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노마디즘인지, 인터넷 공간에서는 노마디즘이지만 자신은 완전히 폐쇄적인 것이거든요.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는 유목은 이런 것과는 관계가 없고 공부를 담론세계에서 문학, 철학, 과학 등으로 전공을 정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데 돈, 이권, 권력 등과 얽혀서 하는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의식, 자신의 체험을 가지고 기존의 섹션화된 학문에 얽매이지 말고 폭넓게 사유하자는 의미입니다(*요컨대, '폭넓게 사유하자'가 이정우의 '유목을 하자'이다. 그리고 이건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디즘과도 전혀 별개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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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김기덕과 함께 보는 한국

김기덕 감독의 신작 <시간>의 국내 개봉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한겨레(06. 60. 20) 정한석 기사의 전갈이다. 

-영화 <시간>의 개봉이 확정됐다. 영화사 스폰지는 오는 8월10일경 김기덕 감독의 <시간>을 개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간>은 이미 올 4월경 완성됐지만 개봉 일정은 불투명했다. <빈 집>과 <활>의 연이은 국내 흥행 저조로 실망한 김기덕 감독이 국내 배급을 완전히 포기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는 “일부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김 감독이 무조건 국내 배급을 거부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여건만 맞으면 국내 배급사가 판권을 구매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네 들었고, 5월 중순경 만나 합의했다. 최종적으로 감독이 제기한 몇 가지 조건을 수용하면서 개봉이 결정됐다. 극장을 운영하는 입장으로서 적절한 한국영화 콘텐츠를 확보해야 하는 우리쪽 입장과도 맞아떨어졌다”고 밝혔다.

-스폰지와 김기덕 감독이 <시간>에 관해 합의한 내용은 국내의 모든 영상물 판권을 스폰지가 소유하되, 판권 보유기간이라도 비상업적인 상영을 위해서는 적극 협조하고, 향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판권을 다시 양도하는 방식이다. 그 밖에도 본인을 내세운 무리한 마케팅 자제도 김 감독쪽이 영화사에 내건 조건의 일부였다.

-조성규 대표는 “김기덕 영화에 적합한 제작방식이 있듯이, 그에 맞는 배급방식도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한국에서도 성공적으로 상영될 수 있다는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 광고 비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소규모 상영하는 쪽으로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성현아, 하정우가 출연하고, 오래된 연인인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 성형수술을 시도한다는 내용의 <시간>은 스폰지가 운영하는 압구정과 종로의 스폰지하우스 두곳을 포함해 대략 10개에서 15개 정도의 개봉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모처럼 듣기 좋은 소식에 <시간>에 관한 자료들을 몇 개 훑어보았다(<시간>은 지난달말 씨네21 등의 주최로 국내 최초 시사회가 열렸었다. 이에 대해서는 <씨네21> no.556 참조. 영화에 대해서는 개봉 후에 다루기로 한다). 그러다가 읽은 김기덕 관련 기사.  

한겨레21(04. 10. 21)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김기덕 감독이 만드는 달력이 담아내는 계절의 색깔은 어떠할까. 부산영화제에 참석 중인 김기덕 감독은 지난 10월8일 러시아 푸친 대통령에게 증정될 VIP용 달력에 담길 사진 연출을 러시아의 유력인사로부터 제안받았다고 밝혔다. 스틸 사진을 세 가지 테마로 찍는 방식으로 진행될 작업은 할리우드 프로듀서와 러시아의 사진작가가 동참할 예정이다. 작업방식은 김기덕 감독의 연출대로 러시아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사진작가가 지시에 따르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김 감독은 “테마 중 하나인 ‘풍경’ 편은 한국의 풍광을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달력의 배경에 담길 로케이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공간이었던 청송 주산리와 송정, 인사동, 한강 등지가 물망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촬영될 ‘풍경’ 편에는 러시아 모델이 참여할 예정이기도 하다. 김 감독에게 이러한 제안이 온 경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비롯한 러시아에 개봉된 그의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영화에서 김 감독은 에곤 쉴레의 회화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미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구도를 보여주곤 했다. 김 감독은 준비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달력 사진을 위한 촬영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1월 모스크바를 떠나올 때 마지막으로 읽었던 현지 기사가 바로 이 사진 작업에 관한 것이었는데, 당시엔 김기덕이 러시아 모델과 일종의 '광고' 사진을 찍는 줄 알았다(푸틴을 위한 달력?). 여하튼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Korea with Kim-Ki-Duk'이다. '김기덕과 함께 보는 한국'은 그걸 옮긴 제목이다. 기획 자체는 '관광엽서'이지만, 결과는 그렇게 친숙하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풍광에 이국적인 러시아 여인이 들어오게 되면 얼마나 '언캐니'해지는가를, 얼마나 섬뜩해지는가를 몇몇 사진들은 보여준다.

지난번에 김기덕 영화 관련 이미지들을 찾다가 이 사진들을 보고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 적이 있는데(한번쯤 경험해 보시길!), 한편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김기덕 영화는 언캐니(uncanny)에 관한 영화가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러시아의 거의 유일한 '한류', 혹은 한국문화 컬트로서의 김기덕이 보여주는 건 혹 '한국 안의 러시아'가 아닐까 싶은 것. 그게 그의 언캐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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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과 러시아 스탭들(전국을 돌며 2주간 작업했다고).

 

전시회에서 자신의 사진 앞에 선 러시아 모델 아나스타시야 포타니나(전시회는 2005년 1월말에 열렸다).

전시회장에서 즐거워하는 표정의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06.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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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온라인 저널인 '자율평론' 제16호(06. 04. 19)에서 하승우씨의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오해와 차이'를 옮겨온다(필자는 폴 애브리치의 <아나키스트의 초상>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으며, <희망의 사회윤리 똘레랑스> 등의 저작을 갖고 있다). '맑스 새롭게 읽기'라는 기획하에 진행된 강연원고로 보이는데(맑스의 '정치문제에 대한 무관심' 읽기이다), 아나키즘과 관련하여 러시아 인민주의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듯해서이다(오늘날 가장 유명한 아나키스트 지식인으로는 노엄 촘스키와 머레이 북친 등을 들 수 있겠다). 이 참에 나도 한번 읽어보고. 참고로, 인용문 전체에 대해서 따로 (-)표시를 하지 않았다. 나의 군말에 대해서만 (*)를 표시했다. 모든 강조와 이미지는 나의 것이다.  

1. 들어가며
오늘 같이 얘기할 텍스트는 아마도 이번 강좌 중에서 가장 짧은 글이자 가장 분명한 입장을 가진 글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짧고 분명한 글이기에 우리는 이 글의 맥락을 짚어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이 글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아나키즘을 분명하게 소개하고 난 뒤에 비판하지 않고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구성하면서 그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분명 아나키즘과 맑스주의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고 특히 정치적인 입장에서 차이를 드러냅니다. 그런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아나키즘에 대한 우리의 오해부터 먼저 해소시킬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2. 하나의 아나키즘? n개의 아나키즘!
아나키즘은 하나의 단일한 이론적 내용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아나키스트들인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골드만, 베르크만의 사상은 조금씩 그 결을 달리 했습니다. 더구나 아나키스트들은 이론적인 노력보다 실천적인 투쟁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하나의 이론적인 흐름을 구성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대충 4가지 정도의 유파로 아나키스트들을 분류할 수 있을 듯합니다.

 

 

 



①아나키스트-꼬뮨니스트: 국가만이 아니라 사적인 소유권을, 조직을 거부하고 꼬뮨을 통한 대안사회 건설에 역점을 둠(대표적인 사상가로 표트르 크로포트킨)

②아나코-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을 통한 집산주의 사회건설을 목표로 삼음(대표적인 사상가로 미하일 바쿠닌)

③아나키스트-개인주의자: 꼬뮨과 노동조합 모두를 의심하며 자율적인 개인의 직접행동을 주장(대표적인 사상가로 막스 슈티르너)

④ 소박한(just plain) 아나키스트: 자신에게 어떤 접두사나 접미사를 붙이길 거부했던 아나키스트(대다수의 익명의 아나키스트들)

 

맑스가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판하고 있는 프루동은 ‘역설의 사상가’(a man of paradox)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고, “나는 체계적인 이론을 만들지 않겠다”, “나는 분파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인물입니다. 이 인물은 체계적인 이론보다 신문을 만들고 정세를 비판하는 언론인, 평론가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평론을 쓰면서 비아냥과 역설을 적절히 구사했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의 말만 가지고 프루동을 읽을 경우 오해의 소지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엥겔스가 “권위에 관하여”에서 비판했던 바쿠닌 역시 마찬가지의 인물입니다. 바쿠닌은 “어떤 이론이나 이미 만들어진 체계, 이미 씌어진 책이 세계를 구하지 못한다. 나는 어떠한 체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참된 탐구자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사회의 가장 소외된 계급들에서 혁명의 잠재력을 보았고 이론보다 본능적인 면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가장 민주적인 방식의 혁명을 주장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비밀조직을 만들었던 바쿠닌 역시 역설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러시아의 인민주의 전통
아나키즘의 토대를 마련한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 모두 러시아의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 자신은 귀족이었으나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했던 농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해방을 위해 삶을 바친 혁명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그 모범이 되었던 러시아의 인민주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짜르의 전제정치는 많은 반란을 자극했고, 스텐카 라친(*'라진'이다)과 에멜리안 푸카체프(*'푸가초프'이다. 영어식 표기는 'Pugachev'인데, 모음 'e'는 여기서 'yo'로 소리난다)의 반란이 대표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푸가초프에 대한 최초의 역사서를 쓴 사람은 시인 푸슈킨이었다). 이런 농민반란은 현실에 대한 저항과 증오를 자극했고, 나로드니끼라 불리던 인민주의자들은 러시아 민중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짜르에 대한 저항을 시작합니다.

귀족층을 중심으로 했던 인민주의자들의 활동은 테러를 비롯 짜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수용하는 과격한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사상과도 연관되는데, 이들은 러시아 인민이 로마법적인 재산관념, 즉 사유재산의 절대성에 대한 관념을 가지지 않았고 평화로운 농민공동체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국가는 적이었고 모든 권력은 악이고 죄라는 생각이 인민주의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거기에 러시아 특유의 기독교 전통도 이런 경향을 강화시켰습니다. 두호보르 종파처럼 “신의 자식들에게는 짜르나 통치권력, 그밖의 어떤 인간의 법률도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한 종파도 있었습니다(*이 두호보르 종파가 탄압을 받게 되자 캐나다로의 이주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쓴 소설이 톨스토이의 <부활>이다. 실상 작가 톨스토이의 사상 자체가 아나키즘과 친연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레오(*Leo는 Lev의 영어식 표기이다) 톨스토이처럼 기독교에 바탕을 두고 인민주의를 실현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소박한 영혼을 지닌 러시아 인민이야말로 역사의 핵심적인 동력이라고 봤습니다. 아나키스트는 인민에 대한 이런 신뢰를 이어받았고 대중이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고 봤습니다(*이때의 '인민'은 물론 '농민'이다. 아나키스트들과는 달리 맑스-레닌은 농민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 인민주의의 전통은 러시아 급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인민에게 깊은 신뢰를 품었다는 점에서 동일했지만 그 신뢰를 드러내는 방식, 즉 혁명을 추구하는 방식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톨스토이처럼 평화적인 방식을 추구했던 사람도 있고 트가체프처럼 짜르의 암살과 폭력만이 러시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1881년 3월에는 인민주의자들이 실제로 짜르 알렉산드르 2세(*사진)를 암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테러를 혁명의 방법으로 선택했던 이런 급진주의자들에는 인민주의자, 맑스주의자, 아나키스트, 허무주의자(니힐리스트)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전통에는 네차예프라는 인물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인물과의 관계 때문에 바쿠닌은 <인터내셔널>로부터 제명을 당하게 됩니다(흥미롭게도 로버트 서비스의 <레닌>에 따르면 레닌은 이 인물이야말로 조직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칭송했다는군요).


 

 

 

 

4.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사실 아나키즘과 맑스주의의 차이점은 목표보다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아나키즘을 어떤 하나의 이념으로 분명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에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인 특징을 중심으로 살피려 합니다).

첫째, 아나키스트들은 맑스주의가 강조하는 전위조직이나 계급독재를 거부합니다. 아나키스트들은 대중이 스스로 ‘직접행동’(direct action)할 때에만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히 아나키스트들은 “노동해방은 노동자의 힘으로”, “농민해방은 농민의 힘으로”라는 구호를 외쳤지요. 서로간의 연대는 가능하고 필요하지만 실천적으로 운동을 이끌어갈 사람들은 반드시 그 당사자들이어야 하고 그 현실에서 생활하고 살아가는 일반 대중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특정한 계급이 전체 운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거나 의사결정과정이 중앙으로 집중된 조직을 반대하는 것으로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단순히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정치혁명이 아니라 삶의 영역 전반에서 벌어지는 생활의 혁명, 즉 사회혁명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둘째, 아나키스트들은 역사가 특정한 발전법칙(역사적 유물론 또는 과학적 사회주의)에 따라 실현된다는 생각을 거부했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새로운 사회의 구체적인 청사진이 미리 마련될 수 없다고 봤고 새로운 사회가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는 대중의 집단적인 활력을 통해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아나키스트들이 과학적인 합리성과 의식보다 대중의 본능과 연대에 희망을 걸었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바쿠닌은 대중이 지닌 반란의 본능과 파괴적인 충동에 희망을 걸었고, 크로포트킨은 서로 돕고 보살피는 본능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새로운 아나키즘 사회는 냉철한 이성이나 지성보다 창조적인 파괴를 지향하고 서로 보살피는 본능에 바탕을 뒀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탁월한 지성과 능력을 갖춘 엘리트의 중요성을 감소시켰습니다(*때문에 지식인-아나키스트는 지식인-맑시스트와는 사뭇 다른 '애매한' 포지션을 갖는다).

셋째, 러시아를 중심으로 발전한 아나키즘 이론은 노동계급보다 농민을 중심으로 혁명 이후의 사회를 구상했습니다(프루동 역시 프랑스의 가난한 농민 출신이었죠). 물론 아나키스트들도 산업혁명이나 과학기술로 인한 생산양식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고 그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봤지만 대규모 공장체제를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사회경제적인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했고 농민공동체가 가진 본능적인 측면에 주목했습니다(*그런 맥락에서 아나키즘은 러시아의 전통사상 내지는 자생적 사상이며, 러시아 맑스주의는 (수입된) 서구의 사상이다. 오늘날 이것은 '농민의 사상' 대 '노동자의 사상'으로 대별될 수 있다). 또한 한 사회를 중앙화된 권력으로 통합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사회전체적인 이론틀이나 이론적인 청사진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아래 그림은 프루동과 바쿠닌).

4. 맑스는 왜?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맑스는 프루동과 프루동주의자들을 격렬하게 비판합니다. 정당을 구성하지도 않고 파업을 반대하는 입장은 맑스의 말처럼 “어리석거나 천진난만하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맥락을 조금 더 세밀히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 맑스는 프루동의 <소유란 무엇인가>를 “통찰력이 뛰어난 책”이라며 그 가치를 인정하기도 했고, 그 뒤 <신성가족>에서도 프루동이 “위대한 과학적 진보이자 정치경제학을 혁명화하여 비로소 참된 정치경제학을 가능케 한 진보”를 이루었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44년에는 파리에서 프루동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맑스와 엥겔스가 주도하던 <공산주의자 통신위원회>에 프루동의 동참을 요청했는데, 프루동은 그 취지에 동의했지만 “우리가 운동에서 앞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편협성을 드러내는 지도자가 되지는 맙시다. 새로운 종교의 사도인 척 하지 맙시다”라고 주장했고 “문제제기를 결코 소모적인 것으로 여기지 맙시다”라고 전제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프루동은 혁명적인 행동을 개시하자는 주장에도 반대했습니다.

프루동은 “나는 가진 자들에 대한 성 바르돌로뮤의 밤[대학살]을 거행해서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것보다 소유를 천천히 불태우는 쪽을 좋아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이후 프루동과 맑스의 관계는 깨지고 <철학의 빈곤>으로 맑스는 프루동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죠.



프루동에 대한 맑스의 비판은 정당합니다. 프루동은 선거참여를 비판했고 노동조합이 파업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그 당시 프랑스에서 사회주의자로 이름이 높았던 프루동이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라는 점이죠.

사실 프루동이 정치참여를 비판한 것은 이론적인 입장이 아니라 현실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프루동은 1848년에 수립된 임시정부가 보통선거권을 도입하자, 보통선거권이 가지는 약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보통선거권은 반(反)혁명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르 레프레젱탕 뒤 페플>이라는 자신의 신문에서 프루동은 “공화국은 모든 의지가 자유롭고 국민이 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통치형태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실현하려면 모든 사적인 이해관계들이 사회를 거스르지 않고 사회를 위해 움직이는 게 필수적인데, 그것은 보통선거권으로 가능하지 않다. 보통선거권은 공화국의 이기주의이다. 이 체제가 오래 유지될수록 경제혁명은 계속 이루어지지 않고 그럴수록 우리는 왕정과 독재, 야만주의로 퇴보할 것이다. 선거권이 더 늘어나고 합리화되고 자유로워지는 한 이 모든 건 더 분명해진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이게도 프루동은 1848년 선거에 출마했고 의원으로 당선됩니다. 그러나 프루동은 1848년 6월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카베냑의 군대가, 노동자들의 군대가 자신의 형제들을 학살하는 것을 보고 난 뒤 의회에서 다른 의원들과 직접적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프루동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제를 정치적인 수단에, 더구나 선거라는 수단에 맡기는 것이 환상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이건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트를 구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다. 우리는 부르주아지를 구원해야만 한다. 하층 부르주아지를 배고픔으로부터, 중간층 부르주아지를 파멸로부터, 상층 부르주아지를 그 악마같은 이기주의로부터 구원해야만 한다. 6월 23일 프롤레타리아트의 문제는 오늘날 부르주아지의 문제와 동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참 역설적인 문체이죠. 언론인으로서 프루동은 이런 식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결국 이런 활동으로 프루동은 의원직을 제명당하고 감옥에 갇혔으며 선거를 통해 예견했던 루이 보나파르트와의 긴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뒤 프루동은 “정치에 몰두하는 건 똥물에 손을 씻는 짓”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가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보통선거권을 이용했을 때, 프루동은 선거와 정당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수단일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투표거부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프루동은 정부의 책략에 가담하기를 거부하는 인민이 정부당국과 인민의 본질적인 갈등을 가장 잘 부각시킬 수 있다고 선언하며 투표거부주의자들(abstentionists)과 함께 했습니다.

이 운동은 적어도 두 가짐 점, 즉 정치행태에서 지배적인 요소이던 편의주의(expediency)를 거부하고(필자주: 어떤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근본적인 원인을 건드리지 않고 그 순간만을 적당히 넘기려 하는 주의. 근대정치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투표를 보편적인 정치적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민주주의의 신화를 거부하는 운동으로, 특히 아나키즘과 생디칼리즘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프루동은 계급갈등을 가급적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프루동은 부르주아지에게 그들이 과거에 혁명적인 세력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부르주아와 노동자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부르주아와 노동자 모두를 해방시킬 혁명을,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의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혁명을 촉진시키려 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프루동의 부정적인 생각은 노동조합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조합이기주의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루동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조합이 독단으로 여겨지기에 잠재적으로 자유에 해롭지만,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조합은 유용하다고 봤습니다. “노동자들의 조합은…그들이 달성한 결과가 얼마나 성공적인가가 아니라 사회공화국을 옹호하고 세우는 그들의 조용한 추세에 따라서 판단되어져야 한다.…노동자들의 노동의 중요성은 조합의 사소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지난번 혁명이 건드리지 않고 남겨둔 자본가와 고리대금업자, 정부의 지배를 부정하는 데 있다. 그런 뒤에 정치적인 거짓말을 극복했을 때…노동자 집단들은 자신들의 타고난 상속물인 대부분의 산업을 접수해야 한다.”

또한 프루동은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인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맑스가 인용하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능력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프루동은 “정치적 능력을 가지는 것은 자신을 집단의 일원으로 의식하게 하고, 이 의식의 결과로 이념을 확정하며, 그 이념의 실현을 추구하게 만든다. 이런 세 가지 조건을 결합한다면 누구라도 가능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프랑스 노동계급이 실제로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기 시작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프루동은 노동계급의 이념을 상호의존의 이념으로 봤습니다. 프루동에게는 상호의존이라는 이념만이 (농민을 포함하는) 노동계급을 부르주아지와 분리시켰고 노동계급에게 진보적인 성격을 부여했습니다. 왜냐하면 상호관계가 발달하면서 결국에는 노동자들이 사회의 경제생활에 정의를 도입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반反상호주의적 정신이 실행을 막아왔던 평등주의 기반 위에 사회를 조직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면에서 상호주의는 인민의 참된 주권을 보장할 연방주의로 표현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연방 공화국에서 권력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고, 일련의 대표들이 인민의 일반의지를 실행하는 조절위원회들에 결합하는 ‘자연스런 집단들’에 의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루동은 자유의 건전한 성장에 해롭다고 여겼던 내전의 폭력 없이도 전체 공동체가 해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당시에 사회의 분할구조를 인식하고 사실상의 계급투쟁이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았지만, 프루동은 이 투쟁의 유동성에서 상호주의의 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프루동은 계급투쟁을 공식화해서 영원한 분할을 만들지 모를 어떠한 방법도 피하려고 노력했다. 파업에 대한 비판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사족으로 얘기하자면 프루동의 인민은행 계획에 대한 비판은 주로 화폐와 소유를 잘못 이해했다는 점으로 얘기됩니다. 그런데 그런 비판은 프루동이 추구했던 것을 오해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프루동이 폐지하고자 한 것은 소유 자체가 아니라 소유의 축적이었습니다. 노동거래소를 통한 노동권의 유통은 단지 화폐를 노동권으로 교체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노동권이 축적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5. 엥겔스는 왜?
엥겔스는 “권위에 관하여”에서 바쿠닌을 겨냥해 비판을 가합니다. 그런데 바쿠닌은 권위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바쿠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모든 권위를 부정한다고? 그건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장화에 관한 한 나는 장화 만드는 사람의 의견을 구한다. 집, 운하, 철도에 대해선 건축가나 엔지니어와 협의한다.…그러나 장화 만드는 사람이든 건축가든 내게 자신의 권위를 강요하는 것을 나는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게, 그리고 온당한 존경심을 갖고 그들의 말을 듣는다.…그러나 나는 어떤 사람도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다. 그런 믿음은 나의 이성, 나의 자유, 그리고 내 과업의 성공에 치명적일 것이다. 그런 믿음은 나를 즉각 어리석은 노예,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의지와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엥겔스는 바쿠닌을 비판했을까요? “권위에 관하여”가 씌어진 1872년과 1873년 사이의 시기는 <인터내셔널>을 놓고 맑스, 엥겔스와 바쿠닌간의 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지다 결국 1872년 9월 헤이그 대회 때 바쿠닌이 <인터내셔널>에서 제명된 시기입니다.

 

 

 

 

맑스주의자들은 바쿠닌이 <인터내셔널> 내부에 분파를 만들고 조직을 장악하려 한 악당이라고 주장합니다. 소련공산당 맑스-레닌주의 연구소가 펴낸 <맑스 전기>는 바쿠닌이 “무력하고 억압받는 인민 대중들과 농부들 및 쁘띠부르조아들의 회의”를 대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쿠닌이 <인터내셔널> 내에 분파를 만들고 테러와 관련된 비밀조직을 운영했기 때문에 제명을 당했다고 주장합니다(필자주: 그리고 바쿠닌이 비밀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은 러시아 짜르의 오크라나라는 비밀경찰제도를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유럽의 혁명가들과 달리 러시아의 혁명가들은 망명 이후에도 끊임없는 체포위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레닌도 마찬가지였죠 *오크라나? '오흐라나okhrana'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합니다. 아나키스트 작가인 조지 우드콕은 맑스와 바쿠닌의 대립을 개인적인 대립이 아니라 중앙집권적인 권위주의자와 반권위주의적 자유인의 대립으로 묘사합니다. 특히 우드콕은 <인터내셔널>의 다수를 차지했던 조합주의자와 상호주의자들이 바쿠닌을 지지한 반면 맑스의 총무위원회(general council)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인터내셔널>을 지배했다고 비판합니다. 둘 중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는 선험적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이 글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아나키스트의 분류에 따르면, 개인주의자나 소박한 아나키스트들은 분명 정치적인 권위를 절대적으로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아나코-생디칼리스트나 아나코-꼬뮨니스트들은 정치적인 권위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의 권위에 대한 생각은 우크라이나에서 농민꼬뮨을 건설하려 했던 마흐노(N. Makhno, 1889-1934)의 연설에서 잘 드러납니다.

마흐노는 마을에서 백군과 지주들을 몰아낸 뒤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여러분을 도우러 왔습니다. 우리는 지주들과 그들의 마름들을 따랐지만, 이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여러분끼리 땅을 분배하십시오. 그리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동등한 관계에서 일하십시오.”

 

 

 

 

그리고 1936년 스페인 시민전쟁 때 국제의용군으로 자원했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얘기는 권위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생각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의용군 체제의 핵심은 장교와 사병간의 사회적 평등이었다. 장군에서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똑같은 보수를 받았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고, 똑같은 옷을 입었고, 완전한 평등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생활하였다.…물론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명령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동지가 동지에게 하는 것임을 인식했다.…실제로는 그런 방법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다.…나는 명령을 따르게 하거나, 위험한 일의 자원자를 얻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혁명적’ 규율은 정치적 의식에 달려 있다. 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아나키스트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분열은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1995)에서도 잘 표사된다.)



아나키즘은 이를 위해 먼저 거대화된 권력을 잘게 나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권력은 크게 뭉칠수록 통제에서 벗어나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 개인을 소외시키기 때문입니다. 반세계화운동과 아나키즘을 연관짓는 숀 쉬한(Sean M. Sheehan)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나키즘은 스스로 없애려고 하는 권위주의의 씨앗을 내포한 관료제를 낳지 않으면서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의사결정 구조를 개발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흔히 반세계화 운동으로 불리는 흐름이 지닌 긍정적인 측면인 친지역화(pro-localization)는 탈중앙화한 공동체들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공동체들은 엘리트나 관료집단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크로포트킨은 스위스의 <쥐라연합>을 통해 이런 구상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사회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이론으로부터 이상적인 공화국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현존하는 사회악을 인식시키고 토론과 집회를 통해 지금보다 나은 사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사고하도록 유도했다. 국제대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모든 노동조합의 연구주제로 추천했다. 그러면 한 해 동안 유럽의 모든 지부에서 직업과 지방의 특성에 맞게 토론되었다. 지부의 결론은 지역대회에 제출되었고 그것은 좀더 정리된 형태로 다음 국제대회에 제출되었다.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사회구조는 이처럼 이론과 실천이 철저히 아래로부터 수렴되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는 엥겔스의 비판, “권위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나쁜 원리인 것처럼 말하고 자치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좋은 원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권위와 자치는 서로 다른 사회 발전 양상에 따라 그 범위가 서로 다른 상대적인 것들이다.”라는 비판이 조금 어긋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줍니다.

6. 오해를 넘어서 차이로
아나키스트들과 맑스주의자들은 분명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하나로 묶었던 것은 사회주의였고, 적기와 흑기가 함께 휘날렸던 적은 아주 많았습니다. 사실 아나키스트들의 가장 큰 적대자는 맑스주의 자체라기보다 그 지류인 볼셰비키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다중네트워크에 모인 분들도 볼셰비키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레닌을 제거한 맑스주의? 지젝식의 비유를 빌자면, '니코틴 없는 담배'나 '카페인 없는 커피'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면 이제 과제는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그 차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계속 낯선 이방인으로 배제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다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때로는 그 상대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는 벗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맑스주의나 아나키즘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배울 것은 누가 더 올바른가라는 점보다는 새로운 대안사회를 만들어나갈 단초를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아나키스트들의 고민을 허투루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의 고민은 아직 가지 않은 길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06.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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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잠재적인 것의 실재성

'지젝'을 키워드로 검색하다가 읽게 된 글 하나는 철학아카데미 이정우 교수의 '지젝의 들뢰즈론(1)', "잠재적인 것과 가능적/상상적인 것 - 지젝의 들뢰즈론: 비판적 음미"(05. 05. 26)이다. 실제 강의된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잠재적인 것의 실재성(1)'이라고 소제목이 더 붙은 걸로 보아 'Organs without bodies'(2004)의 첫 소절('The Reality of the Virtual')을 자세히 '음미'하고자 했던 듯하다(하지만, 그 '음미'는 (1)에서 더 진척되지 않은 듯하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본문의 첫 페이지, 첫 문단 정도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들뢰즈 전문가'의 의견인지라 그의 '음미'를 참조하면서 지젝의 첫 문단을 읽어보고자 한다. 최근에 나온 국역본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에서 이 문단은 이렇게 옮겨져 있다.

 

 

 

 

"한 철학자에 대한 참된 사랑의 척도는 우리의 일상생활 도처에서 그의 개념들의 흔적을 알아보는 데 있다 최근에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이반 대제>를 다시 보면서 나는 제1부 도입부의 대관식 장면에 있는 멋진 디테일을 발견했다. 이반과 (당분간은) 제일 절친한 사이인 두 친구가 새로 기름을 부은 그의 머리 위로 커다란 접시들에 담긴 금화를 쏟아붓는다. 이때 관객들은 이 말 그대로의 금화 세례가 지닌 마술처럼 과도한 특성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접시 두 개가 거의 비어 있는 것을 본 이후임에도 우리는 다음 장면에서 이반의 머리에 금화가 계속해서 '비현실적으로' 중단 없는 흐름으로 쏟아지는 것을 본다. 이러한 과잉은 몹시 '들뢰즈적'이지 않은가? 그것은 물체적 원인을 넘어서는 생성의 순수 흐름의 과잉, 현행적인 것(the actual)을 넘어서는 잠재적인 것의 과잉이지 않은가?"(17쪽)

'음미'의 내용을 보다 명확하게 확정하기 위해서 원문 또한 옮겨놓는다: "The measure of the true love for a philosopher is that one recognizes traces of his concept all around in one's daily experience. Recently, while watching again Sergei Eisenstein's Ivan the Terrible, I noticed a wonderful detail in the coronation scene at the begining of the first part: when the two (for the time being) closest friends of Ivan pour golden coins from the large plates onto his newly anointed head, this veritable rain of gold cannot but surprise the spector by its magically excessivecharacter - eveb after we see the two plates almost empty, we cut to Ivan's head on which golden coins 'nonrealistically' continue to pour in a continuing flow. Is this excess not very 'Deleuzian'? Is it not the excess of the pure flow of becoming over its corporeal cause, of the virtual over the actual?"(3쪽)

여기서 지젝이 묘사하고 있는 영화 <이반 대제>(1944)의 장면은 아래의 장면이다. 이반에게 금화를 퍼붓는 두 친구는 나중에 그를 배신하기 때문에 '당분간은'이란 말이 들어가 있다. 참고로, 이 장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롤랑 바르트의 '제3의 의미'(<이미지와 글쓰기>, 세계사, 1993)에서 이루어지고 있다(영역은 'Image-Music-Text'[1977]에 수록돼 있다). 영화기호학에 관한 필수적인 텍스트인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아무려나 일단은 이러한 영화 속 한 장면에서도 '잠재적인 것의 철학자(the philosopher of the Virtual)' 들뢰즈의 잠재적인 것/현행적인 것이라는 개념쌍을 알아보는 데 들뢰즈에 대한 지젝의 '참된 사랑'이 놓여 있다. 참고로, 에이젠슈테인(1898-1948)의 <이반 대제>는 3부작으로 기획되었지만, 2부까지밖에 완성되지 못했고 '전제주의의 일시적 진보성'을 다룬 1부와는 달리 노골적인 스탈린(=폭군 이반) 비판을 담은 2부(1946)는 상영이 금지되었으며(에이젠슈테인은 화병으로 일찍 죽는다) 그의 사후에야 상영될 수 있었다. 물론 스탈린(1879-1953)도 사망한 이후인 1958년의 일이다. 아래는 <이반 대제>의 포스터(이반 대제 역은 스탈린의 영화적 페르소나라고 할 만한 '니콜라이 체르카소프'가 맡아서 연기했다).

러시아사에서 흔히 '이반 뇌제'라고 불리는 이반 4세(1530-1584)는 전횡적 권력을 휘둘렀던 러시아 황제(차르)들 가운데에서도 폭군으로 유명하다(그 '악명'에 있어서 우리의 '연산군'에 비견될 만하다. 물론 연산군은 내면적으로 굉장히 유약했지만). '뇌제(雷帝)'라는 이름은 그래서 얻게 된 것이며, 이것을 영어로는 'Ivan the terrible'이라고 옮긴다. 세계사의 폭군들을 다룬 책 <권력과 광기>(말글빛냄, 2005)나 <폭군들>(이마고, 2005)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 그래서 영화의 국내 출시명이 <폭군 이반>으로 돼 있으며 이전에 EBS에서는 <이반 대제>란 타이틀로 방영한 적이 있다.

 


 

 

바실리 3세의 아들이었던 이반은 1547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17살에 스스로 즉위하면서 자신을 (러시아사에서) 최초로 '차르'라고 부른다('차르'는 로마의 황제 '케사르'로부터 차용한 단어이다). <이반 대제>의 첫머리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도 1547년 왕관을 자신이 직접 머리에 쓰는 젊은 황제의 대관식 장면이며, 금화 세례를 받는 것은 그러한 의식에 이어지는 장면이다. 국역에서 "새로 기름을 부은 그의 머리"(his newly anointed head)라고 직역된 대목은 "새로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의 머리" 정도의 뜻이다.

이반 대제는 이후에 40년간 모스크바 공국 시대의 러시아를 통치하게 되는데, 생애 말기 그의 최대 비극은 자신의 아들을 왕홀로 쳐죽인 사건이다. 러시아 최대 화가 일리야 레핀의 그림 '1581년 11월16일 금요일의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1885)가 묘사하고 있는 장면(흔히는 '아들을 죽인 이반'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모스크바의 트레챠코프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의 초점을 잃은 늙은 황제의 모습에서 더이상의 광기는 읽히지 않는다. 이반 뇌제는 이후에 몇 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뜨게 되는데, 독살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대략 이 정도의 배경지식을 갖고서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본다. 인용한 첫문단에 대한 이정우 교수의 요약은 이렇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광폭한 이반(Ivan the Terrible)>의 초반부에서 지젝은 매우 '들뢰즈적인' 장면을 포착해낸다. 대관식에서 이반의 친구들이 그의 머리에 금화들을 쏟아 붇는 장면이다. 금화가 거의 다 떨어졌는데도 영화는 금화의 흐름=와류를 계속 보여준다. 이 장면을 지젝은 'nonrealistically'라는 부사로 표현한다. 이 표현은 우리가 흔히 어떤 영화를 보고서 “리얼하다”라고 말하는 방식을 염두에 둔 표현일 것이다. 즉 <광폭한 이반>의 이 장면은 '리얼하지 않은' 장면인 것이다. 지젝에 따르면, 바로 이 점에서 이 장면은 '들뢰즈적'이다. 왜 들뢰즈적인가? 이 장면이 '생성의 순수 흐름이 물체적 원인을 초과하고(excess) 있기 때문'이다. 즉 '잠재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the actual)을 초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역본의 '현행적인 것(the actual)'은 이처럼 '현실적인 것'이라고 옮기는 게 이해하기 쉽다. 다르게 말하면, '사실적인 것', 혹은 '사실임직함'이다. 마치 무한정인 양 쏟아지는 금화의 흐름(=생성의 순수 흐름)은 분명 '물체적 원인' 혹은 '물질적 인과율'을 넘어선다. 바닥이 거의 다 드러난 접시로부터 끊임없이 금화가 쏟아진다는 것은 자연적 인과율로 설명되지 않는, 즉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이 장면에서 에이젠슈테인은 '현실적인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잠재적인 것'의 과잉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계속적인 설명을 들어본다.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보고서 '리얼하다'고 할 때 그 'real'은 사실상 'actual'이다. 즉 ‘실재’를 뜻하기보다 ‘현실’을 뜻한다. 이것은 영화란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전제 아래에 어떤 장면이 우리의 경험에 합치해서 매우 현실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뜻한다. 지젝도 이 점에 주의해서 'nonrealistically'라는 구절에 따옴표를 치고 있고, 그 후 현실적인 것을 뜻할 때에는 'the actual'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현실적이지 않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상적인 것을 표현하고 있는가? 금화가 거의 다 떨어졌는데 여전히 폭포수 같은 금화의 흐름이 보인다면 그것은 하나의 환각적인 것, 상상적인 것에 불과한가? 지젝은 그렇지 않음을, 즉 그것은 상상적인 것이 아니라 들뢰즈적 의미에서의 잠재적인 것임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들뢰즈에게서 잠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어떤 점에서 <광폭한 이반>의 이 장면은 들뢰즈적인가?"

참고로, <이반 대제>에서 그러한 잠재적인 것의 과잉을 보여주는 형상은 아래와 같은 이반의 거대한/과장된 그림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그로테스크한) 그림자들 또한 '현실적인 것'을 초과하는 '잠재적인 것'의 순수한 과잉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그러니까 이러한 '과잉'의 영상화는 에이젠슈테인에게서 전략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정우 교수의 설명: "들뢰즈에게서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실재적인 것이다. 즉 그것은 우리의 경험에 드러나는 현실적인(actual) 것이 아님에도 분명 '실재하는(real)' 것이다. 이 점에서 들뢰즈의 사유 틀은 근대적이기보다는 차라리 고대적이다. 경험을 넘어서는 것을 인간 주체에게서 찾기보다는 경험 너머의 실재에게서 찾고 있기에 말이다. 들뢰즈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존재론자이며, 칸트처럼 주체의 의식의 틀을 탐구하기보다는 차라리 그가 ‘물자체’로 남겨둔 그 자리에 ‘잠재적인 것’을 놓고 있다 하겠다. 즉 들뢰즈는 인간 주체가 어떻게 그에게 나타난 현상들을 구성하는가를 탐구한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이 어떻게 현실적인 것으로서 나타나는가를 탐구한 것이다."(강조는 나의 것)

이에 대한 지젝의 설명: "들뢰즈에게 중요한 것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아니라 잠재적인 것의 실재성(The reality of the virtual, 곧 라캉의 용어로는 '실재the Real')이다. 가상현실 그 자체는 다소 초라한 곤념이다. 현실을 모방한다는, 인공적 매체 속에서 현실의 재생한다는 관념. 반면 잠재적인 것의 실재성은 잠재적인 것 그 자체의 실재성을, 그것의 실재적 효과와 결과들을 나타낸다."(17쪽) 

다시 이정우 교수: "들뢰즈에게 가능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은 구분된다. 잠재적인 것은 실재이다. 그러나 가능적인 것은 인간 주관이 그의 경험 결과를 자의적으로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 즉 사물의 지각을 통해서 형성된 심상(=이미지)을 머리 속에서 이리저리 굴려 상상(=이메지-네이션)하는 것이다. 즉 들뢰즈에게 ‘가능적인 것’은 곧 ‘상상적인 것’이다. 들뢰즈에게서 세계의 실재로서의 잠재적인 것과 인간 주관의 산물로서의 가능적인=상상적인 것은 분명히 구분된다. 따라서 가상현실을 뜻하는 ‘virtual reality’에서의 ‘virtual’은 들뢰즈적 잠재성이 아니라 차라리 가능성=상상적인 것에 해당한다. 들뢰즈 사유의 핵심은 잠재적인 것에 있지 상상적인 것=가능적인 것에 있지 않다."

여기까지는 두 사람 사이에 의견차이가 없는 듯하다. 차이는 <이반 대제>에 나오는 문제의 장면이 과연 '들뢰즈적인' 장면인가 하는 것: "이렇게 볼 때 지젝이 들었던 장면은 과연 '들뢰즈적인' 장면인가? 이 장면은 '리얼하지 않은' 장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꼭 '들뢰즈적인' 장면인 것은 아니다. 일견 이 장면은 잠재적인 장면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인 장면이기에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장면은 이반의 심리이든, 대관식 참여자들의 심리이든, 감독의 심리이든, 관객의 심리이든, 일단 어떤 심리가 투영된, 즉 상상적인 장면으로 생각될 것 같다.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첫째, 지젝은 이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다. 둘째, 지젝은 들뢰즈의 잠재성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첫 번째 가설의 경우,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장면을 단순히 상상적인 것으로 보기보다 더 근본적인 어떤 것, 즉 현실을 넘어서는 잠재적인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꼭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해도 하나의 의미 있는 독해일 수 있다. 즉 에이젠슈타인이 여기에서 자신의 상상을 투영한 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현실 이상의,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어떤 것을 순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쨌든 이 독해 자체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째 가설을 보자. 지젝이 이 장면을 '들뢰즈적인' 장면으로 보는 것은 여기에서 '생성의 순수 흐름이 물체적 원인을 초과하고(excess) 있기 때문'이다. 즉 지젝은 물체적 원인을 ‘현실적인 것’으로, ‘생성의 순수 흐름’을 잠재적인 것으로 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매우 거친 규정이다. 들뢰즈에게서 ‘물체적 원인’은 오히려 잠재성의 차원에 위치한다. 현실적인 것은 물체적 원인의 결과들로서의 현상들, 사건들, 이미지들이다. 여기에서 들뢰즈의 ‘물체’ 개념은, 물체와 물질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상식적-물리학적 사유에서와는 달리, 물질/물체의 구분 이전의 스토아 학파의 ‘소마’이고 스피노자의 ‘사물’이다. 지젝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요컨대, 필자에 따르면 '물체적 원인'은 '잠재성의 차원'에 위치하기 때문에 지젝이 이 둘을 대비시키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  

"따라서 ‘생성의 순수 흐름’과 ‘물체적 원인’은 대조되는 개념들이 아니다. 들뢰즈에게서는 생성의 순수 흐름은 곧 물질=실체의 흐름이고 그것이 곧 물체적 원인의 차원이다. 그리고 그 표면효과들, 결과들이 사건들, 현상들, 이미지들이다. 아울러 들뢰즈의 잠재성을 ‘생성의 순수 흐름’으로 보든 ‘물체적 원인’으로 보든 이런 식의 표현은 매우 일반론적이고 성긴 표현들이라는 점도 지적해 두자."

내가 보기에 문제로 걸려 있는 것은 잠재적인 것의 해석이 아니라 는 '물체적 원인(corporeal cause)'의 해석인 듯하다. 지젝은 '물체적 원인'을 '현실적인 것'에 위치시키는 반면에 이정우 교수는 '잠재적인 것'의 차원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 그렇다면, 그에게서 '현실적인 것(=상징적인 것)'의 자리는 어디인가?

"지젝은 상상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에 관한 들뢰즈의 구분을 정확히 지적해 주면서도, 잠재적인 것의 이해에는 난점을 드러내고 있다. 왜일까? 그것은 지젝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상상적인 것이며(지젝 스스로는 그것을 ‘실재적인 것’이라고 하겠지만), 때문에 들뢰즈를 독해하면서 그가 자꾸만 잠재적인 것에 상상적인 것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지젝의 들뢰즈 독해는 매우 흥미진진하면서도 철학적으로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니까 지젝이 가장 강조해마지 않는 실재, 혹은 실재적인 것(the Real)이라는 게 필자가 보기엔 (실제적으론) '상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둘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 되겠다(지젝이 맨날 보로메오 매듭처럼 얽혀있는 RSI의 3항조를 얘기하지만, 실제로 그가 떠들어대는 것은 SI 2항조뿐이다?). 그래서 정작 실재적인 것(=잠재적인 것)에다 상상적인 것을 투영한다는 것('자꾸만'의 근거는 무엇인지?). 이러한 지젝 독해는 다소간 흥미롭지만 얼마나 정확한지는 의문이다('지젝, 너 또라이지?'라는 거 아닌가?).

다만, 내가 잠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필자에게서 들뢰즈에 대한 '이해'는 넘쳐나지만 '참된 사랑(true love)'은 부족하지 않은가, 라는 것. 그가 '자꾸만' 찾아내는 것은 '꼭 들뢰즈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들뢰지안들이 염려하는 것은 들뢰즈적인 것의 '과잉'인 듯싶다. 그들에게 들뢰즈는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것, 언터쳐블(the untouchable)이다. '니들이 들뢰즈를 알아?'라는 물음은 라캉주의적 '케보이Che Vuoi?'(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응물이자 차폐막이 아닐까? 그런데, 넘쳐나는 건 왜 들뢰즈가 아니라 들뢰지안들일까?.. 

06. 07. 01.

P.S. 이제껏 읽은 건 지젝의 첫 문단이다. 짐작에 '지젝의 들뢰즈론(1)'의 필자 또한 그 글이 씌어진 시점에서는 더 읽었을 성싶지 않다. 이후에 지젝은 보다 많은 걸 말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젝에 대한 여하한 비판 역시 보다 많은 뒷받침을 통해 예증되어야 할 것이다. 철학은 '일견'에 의한 예단은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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