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가장 쉬운 기호학 입문서

다니얼 챈들러의 온라인 기호학 입문서 <초보자를 위한 기호학(Semiotics for Beginners)>이 번역돼 나왔다. <미디어 기호학>(소명출판, 2006)이 그것이다. 책이 나온 건 좀 됐는데, 소개를 하려고 해도 마땅한 리뷰가 그간에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침 북데일리에서 이 책을 다루고 있어서 겸사겸사 옮겨놓는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웨일스대학 연극/영화/텔레비전학과 교수인 대니얼 챈들러가 1994년에 처음 인터넷에 공개해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받은 '기호학 입문(Semiotics for Beginners)'이 교정을 거듭한 후 책으로 발행되었다." 이미지의 책이 그것인데, 나는 한때 문화기호학 강의를 준비하느라 온라인에 떠 있던 텍스트를 다 프린트했었고, 책으로 묶여 나온 것도 (교보에선가) 눈에 띄길래 구입했었다. 말 그대로 '초보자용'이어서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교재로서는 유용하지 않나 싶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표'니 '기의'니 하는 말만 들어도 멀미를 하는 게 강의실의 현실이기 때문에.

국역본의 제목은 특이하게도 '미디어 기호학'이라고 붙여졌다. 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미디어'가 그렇게 어필하는 것인지?). 소개를 더 읽어보면, "기호학의 일반 이론을 쉽게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졌으나 미디어 학자가 '미디어 교육' 수업으로 쓴 교재이기 때문에 영화. 텔레비전, 광고 등의 미디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 미디어학자인 옮긴이가 원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진과 그림, 그리고 100여 개의 역자주를 추가해서 미디어기호학의 입체성을 충분히 살려 냈다." 즉, 저자와 역자가 모두 미디어학자인 탓에 <기호학 입문>이 <미디어 기호학>으로 탈바꿈한 것. '영화. 텔레비전, 광고'가 활용되는 것은 설명의 용이함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것이 '미디어 기호학'으로 특화될 만한 성질의 것인지는 의문이다. 여하튼 드물게 눈에 띈 리뷰도 참조해보시길. 아래 사진은 저자 다니엘 챈들러.  

북데일리(06.12. 29) '분홍’은 남자, ‘파랑’은 여자의 색? 기호의 허구!

분홍색과 파란색, 이렇게 두 가지 색 곰 인형이 있다고 하자. 이를 여자와 남자 어린이에게 준다고 할 때, 어떤 색을 줄지 고민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분홍’이 ‘여성’을, ‘파랑’이 ‘남성’을 상징하는 자연스러운 기호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상황은 반대였다고 한다. <미디어기호학>(소명출판. 2006)의 저자 대니얼 챈들러는, 책 서문에서 1918년에 발행된 미국 잡지에 실린 글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일반적 상식에 따르면 분홍은 남자아이를 위한 것이고, 파랑이 여자아이를 위한 것이다. 분홍은 파랑보다 더 과감하고 강렬한 색이기 때문에 남자에게 잘 어울린다. 반면에 파랑은 더 섬세하고 우아하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에게 잘 받는 색이다.”

현대인은 분홍색에서 자연스럽게 ‘여성스러움’을 연상하지만, 불과 80여 년 전에는 같은 색으로부터 강렬한 ‘남성성’을 발견했던 것. 저자는 “이처럼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기호의 허구성을 깨닫는 것은 인식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일깨운다”며 “바로 여기에 기호학의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즉 <미디어기호학>은 기호학의 일반 이론을 다루고 있는 책. 영국 웨일스대학의 연극.영화.텔레비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미디어학자답게 미디어에 초점을 맞춰 기호학을 풀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샷의 크기(카메라 거리)에는 ‘발화’의 기호가 숨어있다고 한다. 클로즈업(close-up)은 친밀하거나 개인적인 양식이고, 미디엄샷(medium shot)은 사회적 양식이며, 롱샷(long shot)은 비개인적인 양식이라고. 책은 이에 대해 “시각미디어가 재현하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관객의 감정적 개입을 이끌어 낼 수도 있고, 이와 반대로 무관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해설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미디엄샷’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흔히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를 모방한다. 관객에게 부담 없이 접근하는 방법이다. 반면에 대상을 멀리서 잡은 ‘롱샷’은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방함으로써, 관객의 무관심을 유도한다.

<미디어기호학>은 이외에도 문학, 미학, 심리학, 예술이론, 신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최대한 쉬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 움베르토 에코의 학생 가운데 한 명이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지도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는 편지를 저자에게 보냈을 정도다.

역자 강인규(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강사)가 추가한 사진과 그림, 100여 개의 역자주 역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06. 12. 31.

 

 

 

 

P.S. 기호학 입문서들에 대해서는 예전에 다룬 적이 있는 듯한데, 먼저 코블리의 만화책 <기호학>(김영사, 2002)과 존 피스크의 <커뮤니케이션학이란 무엇인가>(커뮤니케이션북스, 2001/2005)를 챈들러의 책과 함께 추천한다. 피스크의 책은 훌륭한 '커뮤니케이션학' 입문서이면서 동시에 '기호학 입문서'이기도 하다(기호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의 차이는 전자가 '의미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에 후자는 '의사소통'을 주된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거기에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다른 책들이 보태질 수 있지만, '교재'로 적합한 것은 이 세 권이다(코블리의 책도 물론 수업용은 아니다). 절판된 책들 가운데는 테렌스 혹스의 <구조주의와 기호학>(을유문화사, 1987)이 조감도로서 뛰어나며, 이께가미의 <시학과 문화기호론>(한국문화사, 1994)도 훌륭하다.

 

 

 

 

물론 국내 저작들도 다수 출간돼 있다. 김경용의 <기호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1994), 김운찬의 <현대 기호학과 문화분석>(열린책들, 2005) 등이 '교재'로 활용될 만하다. 거기에 기호학연대의 책들은 기호학의 유용한 쓰임들을 보여준다. 한국기호학회에서 출간하는 논문집들은 보다 전문적인 수준이다. 입문서 몇 권을 읽어보고 흥미를 갖게 된다면 자신의 구미에 맞는 책들을 더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알아둘 만한 기호학자들의 이름은 소쉬르(스위스)와 퍼스(미국), 그리고 롤랑 바르트와 그레마스(프랑스), 움베르토 에코(이탈리아)와 유리 로트만(러시아), 토마스 시벅(미국)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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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하이데거와 함께 철학을!

하이데거의 <철학입문>(까치글방, 2006)이 출간됐다. 출간일자는 작년말이지만 지난주에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알라딘의 '새로 나온 책'을 둘러보다가 발견하게 됐다. 지난주에 유난히 읽을 만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탓에(홉스봄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나 다니엘 벨의 <탈산업사회의 도래> 등)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는데, "하이데거가 1928~29년 겨울 학기에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수록한 강의록"으로서 지난 1996년 하이데거의 전집 제27권으로 출간되었다는 이 책은 충분히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아직 영역본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하이데거의 모든 책'이기도 하지만, 게다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 입문' 아닌가?

하이데거  

그런 '입문'이란 단어를 제목에 달고 있는 책으로 나는 <형이상학 입문>(문예출판사, 1994)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우연이지만, 내가 하이데거에 매혹당하게끔 한 책이 바로 <형이상학 입문>이었다. 그러니 <철학 입문> 또한 철학 입문이면서 동시에 하이데거 입문으로의 역할을 덩달아 해줄 거란 기대를 갖는 건 억지스럽지 않다. 1928-9년이면 주저인 <존재와 시간>을 발표한 직후이고 갓 마흔이 된 '젊은' 거장의 염력이 거침없을 때이다. 해서, 이 겨울에 딱 3일 정도 바람이라도 쐬러 가면서 들고 가고픈 책이다.

하이데거와 전혀 '안면'이 없는 독자라면 <30분에 읽는 하이데거>에서부터 역자이기도 한 이기상 교수의 <하이데거 철학에의 안내>(서광사, 1993)나 역시나 하이데거 전공자인 박찬국 교수의 <들길의 철학자, 하이데거>(동녘, 2004)를 미리 혹은 같이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내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조지 스타이너의 <하이데거>(지성의샘, 1996)도 지난번에 절판된 듯하다고 적었지만 다시 나왔다). 한데, 하이데거는 가장 기초적인 물음(들)을 던지면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기 때문에 그냥 차근차근 따라가봐도 팍팍하거나 멀미나지 않는다. 아니, 그냥 장서용이면 어떤가. 폼나지 않나. '하이데거' 그리고 '철학입문'.

 

 

 

 

재작년 여름에 데리다의 <정신에 대하여>(동문선, 2005)가 출간되었을 때 책소개를 하면서 몇 자 적어놓은 걸 다시 읽어봤는데, 이왕 하이데거를 펴보았다면 하이데거론도 곁들어 얼마쯤 읽어두면 좋겠다. 나도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정신에 대하여>에서, 이전의 소개를 반복하자면, "데리다는 하이데거와 관련하여 한번도 질문된 적이 없는 '정신(Geist)'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하이데거의 철학은 해체/구축한다. 이런 '대결' 장면은 며칠전 이종격투기 프라이드 경기에서 표도르('효도르'라는 이름은 러시아어가 일어로 음역된 걸 다시 옮겨오면서 생긴 '괴상한' 이름이다)와 크로캅이 맞붙은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볼거리이다. 그런 걸 놓쳐도 좋은 삶은 또한편 나름대로 재미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부러워하는 삶은 아니다."

앨런 메길의 <극단의 예언자들: 니체, 하이데거, 푸코, 데리다>(새물결, 1996)은 네 철학자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안내서이다. 하이데거 편을 데리다 편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그리고 부르디외의 하이데거 비판서 <나는 철학자다>(이매진, 2005)도 (원제인)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 비판으로 읽어봄 직하다. 한데, 번역서는 읽기에 좀 팍팍하다. 그리고 라캉주의자가 되기 이전에 하이데거 전공자였던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b, 2005). 책의 1장은 '칸트 독자로서의 마르틴 하이데거'를 다루고 있는데, 주로 <존재의 시간>에서의 곤궁을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한길사, 2001)에서 어떻게 극복/회피하려고 했는가를 다루고 있다. 하이데거에 대한 '상식'을 상당 부분 뒤흔들어놓는다(나는 지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도달해 있는/있을 경지가 부럽다).  

 

 

 

 

물론 <철학 입문>을 통해서 하이데거의 사유에 맛을 들이고 매혹을 느낀다면 이후엔 그의 주저들에 도전해볼 수 있겠다. 하이데거만큼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번역/소개된 철학자도 국내엔 많지 않다. 게다가 번역의 수준도 높은 편이다(당장 헤겔과 비교해 보라). <존재와 시간>에서 <이정표>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그렇게만 읽어도 우리의 한해는 다 가고 말 것이다. 맨날 하는 소리이기도 한데, 인생은 행복하기에는 너무 길지만 공부하기에는 너무 짧다...

07.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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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지젝에 대한 두 가지 의견에 부쳐

지젝에 대한 비판에는 어떤 것들이 있냐고 에바님이 물어오셔서 몇 군데 검색을 해봤다. 몇 편의 글들에 대한 서지 정도를 확인해두었는데, 영문 서지인지라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띈 건 다름아닌 내가 3년전에 쓴 것이다. 다시 읽으며 약간의 '시간차'를 느끼게 되지만, '자료'로 치면 무난할 것도 같아서 그냥 옮겨놓는다(지젝에 관해 쓴 자료들을 다 옮겨놓은 줄 알았는데 창고에 없다!).  

인터넷 검색(산책)을 하다가 작년(*2003년) 10월 6일자 이대학보에 실린 '지젝 특집'을 읽게 되었다. 당시 각 대학 학보마다 지젝의 방한을 맞이하여 학술면 특집을 마련했더랬는데, "욕망과 실재로 현대사회를 본다"라는 이 특집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 특집은 "사회를 구하는 환상,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지젝의 작업을 개관하는 기사와 함께, 각각 그의 행동적 지식인으로서의 실천에 대한 지지와 이론적 작업에 대한 비판을 담은 짧은 기고문 두 편으로 구성돼 있다. 내가 제목에서 '두 가지 의견'이라고 한 것은 이 두 기고문을 말한다.

먼저 허윤(국문4)은 자신이 지젝을 좋아하는 이유를 열거한다: "그는 학문이 삶과 괴리되지 않음을, 사상이 현실을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활동가다. 이것이 내가 지젝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학자는 상아탑에 갇혀 현실을 보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젝은 상아탑의 높은 벽을 부수고 두 발을 땅에 붙인 채로 자신의 사상을 펼친다. 개인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여겨졌던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을 현실사회와 연결시키고 현실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이 짧은 기고문의 마무리인데, 여기에 그대로 옮긴 이유는 내가 지젝을 좋아하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근래에 나는 그보다 열정적인 목소리로 우리의 전지구적/인간적 현실에 대해서 발언/비판하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내가 작년에 읽은 가장 감동적인 책이다). 지난번 방한 강연회에서의 그의 거친 목소리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복장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바이지만, 그는 이론적/사회비판적 저작들을 계속 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즘의 인물은 아니다. 요컨대 '교수'나 '학자' 타입이 아니라, '활동가'이다.

사실 그가 슬로베이나의 류블랴나 대학에서 맡고 있는 지위도 우리식의 '연구교수' 같은 것이어서 강의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그는 강의로부터 면제돼 있다). 그것은 슬로베니아 당국 혹은 대학권력과의 마찰/불화의 결과이지만, 그는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전화위복으로 삼는다. 우연찮게(우연은 아니다. 그는 대담에서 영화에 대한 관심/열정은 철학보다도 앞선 것이었다고 말하니까) 대중적인 영화들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으로 '뜨게' 되었지만, 그의 그러한 '전술'은 사실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낳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건 충분히 훌륭한 '미끼' 역할을 해준 것이니까. 사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부터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친-지젝파들은 애초에 라캉을 읽어보겠다는 욕심을 갖지 못했거나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대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의 라캉 이해는 전적으로 자크-알랭 밀레에 기대고 있다. 밀레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지젝도 가능하지 않았을 법하다. 하지만, 그가 이론가이자 해석가로서 밀레와 구별되는 지점은 이미 언급되었다시피, 그가 '활동가'라는 점에 있다. 물론 그가 활동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라캉의 이론과 독일 관념론 같이 아주 난삽한 '이론'이긴 하지만, 이때의 이론은 이미 실천으로서의 이론이다. "정신이 뼈"라는 헤겔의 문구를 반복하자면, 그에게는 "이론이 곧 실천"이다(반면에 '실천적 이론'이라거나 '이론적 실천'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이론/실천의 이분법적 도식안에 있다).

이러한 그의 태도와 작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열정은 '연구'에 바빠서 미처 사회적 '활동'을 할 만한 여가가 없는 책상물림들에겐 충분히 자극적이며 모범이 될 만하다. 그러한 모범에 따른다는 것은 무사안일하게 'mere life'나 'mere study'에 함몰돼 있는 '왜소한' 자신의 삶/학문을 더이상 방치하지 않는 것이며, 지금까지의 습관/관행을 "이건 아니지!"라고 거부하는 것이다.

이어서 진태원(서울대 철학과 강사)은 지젝의 세계적인 유명세("동유럽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주류 철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를 진단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이론'(이건 비교문학쪽 소관이다)과 '철학'(분석철학이나 현상학)을 구분하는 미국 학계의 제도적 특성 때문인데, "더 나아가 이는 지젝의 논의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즉, "지젝은 정교한 논변을 제시하는 전통적인 철학자들과는 달리 다양한 대중문화의 사례들의 제시를 통해 자신의 이론, 곧 라캉의 정신분석을 예증하는 논의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주장을 설득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이론의 타당성을 따지기 어렵게 만든다." 이것은 같은과 김상환 교수의 "지젝은 여러 이론들의 활로를 찾는 공을 세웠지만 독자적인 이론가는 아니"라는 평가와도 맥을 같이 한다.

사실, 이러한 평가/비판은 니체의 철학을 무체계적이라고 하여 '문학류'로 취급하거나, 데리다의 철학을 지나치게 수사적(동시에 수행적)이라고 하여 '비철학'으로 간주해버리는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데리다의 <에코그라피>를 번역하기도 한 이에게서 이러한 태도를 다시 확인하는 것은 다소 의외이다. 국내 '유일의' 데리다 전문가 김상환 교수의 평 또한 그간에 '데리다'에게 쏟아졌던 단골 비판이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하다. 문제는 지젝의 실재가 아니라 지젝의 대가적 명성을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함'이 아닐까?

진태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또한 지젝의 급진적인 사회적 변혁에 관한 주장은 경험과학적 지식으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어 논증적 효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데, 이 또한 비판을 위한 비판밖에는 되지 못한다. 최근에 바울이나 레닌에 경도되어 있는 지젝에 따르면, 진정한 행위(act)는 어떤 계획이나 고안에 의해서 성취/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겪어낸다거나 통과한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다. 경험과학적 지식에 의해 뒷받침된 사회변혁의 사례가 과연 있었던가? 지젝의 말대로, '지식'은 사후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의미화하기 위해서 마련되는 것이다. 지젝도 인용하고 있는 영국 사회철학자 존 엘스터에 따르면, 새로운 것은 항상 "본질적으로 부산물인 상태"이지, 결코 선행 계획의 결과가 아니다. 지젝이 강조하고 있는 행위에의 결단에 대해서,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식(증거)를 제시하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내보여라, 그럼 신을 믿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신앙은 도약의 문제이다).

평자는 당부의 말로 덧붙인바, "앞으로 '이론가' 지젝의 핵심과제는 라캉 사유의 약점이기도 한 '진리와 경험적 지식 사이의 괴리'를 해결하는 것인 듯하다"라고 했는데, 평자가 과연 "진리와 경험적 지식 사이의 일치'(이건 상당히 프래그머티스틱한 주장인데)야말로 이론의 목적이자 철학의 지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좀 의심스럽다. 평자가 전공한 스피노자가 과연 그러한 철학자이며, 헤겔이 그러한 철학자이며, 알튀세르가 그러한 철학자인가? 그러한 논리에 따르면,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는 양자역학의 진리(이론)는 전부 넌센스가 될 것이고, 무의식의 진리(앎)를 말하는 정신분석학 또한 잠꼬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사실 지젝이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내 경우에, 상당히 역설적이고 급진적인 그의 주장들이 매우 실감있다는 점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아주 리얼한 것이다. 책속의 진리야 말로 지젝이 혐오해 마지 않을 만한 것인데, 지젝의 '이론'을 책속의 진리로만 치부하는 것은 비판으로서도 좀 고약하다...

04. 01. 07/ 07. 0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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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가라타니 고진의 코뮨주의

레디앙의 연재물 '세계의 사회주의자'에 뜻밖에도 가라타니 고진 편이 다루어졌기에 옮겨놓는다. 단서조항이 없을 수 없는데, 편집자도 옮겨놓고 있는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가 사회주의자일 수 있다면,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 속에서일 것"이라는 게 '사회주의자 고진'의 근거이다. 알다시피 고진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은 NAM을 의미한다". 안 그래도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책상에 올려놓은 지가 오래인데 바쁜 일들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아래의 연재는 고진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로도 읽을 만하다.

레디앙(07. 03. 20) '몰락 이후' 쉰이 넘어 코뮨주의자 되다

잊고자 쓰는 사상가가 있다. 그는 개념으로 성을 쌓지 않는다. 남들이 자신의 착상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차용할 때면 그 자리에 불을 지르고 떠난다. 형이상학을 극도로 경계하며, 따라서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지어내는 예언을 멀리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이에게 ‘~주의ism’는 사상의 죽음을 뜻한다. 예수가 아닌 바울이 기독교(예수주의)를 만들었듯, 마르크스주의가 엥겔스의 산물이듯 ‘주의’는 사상이 하나의 체계로 구축되며 시작된다. 그래서 이동을 감행하는 사상가에게 ‘~주의’는 사상이 멈춰선 자리,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전망이 상실된 90년대에, 그것도 쉰이 넘고 나서야 그는 코뮨주의자가 되었다. 바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이야기다.



비평은 위기적 상황으로 자기를 내모는 것

가라타니 고진은 1941년 일본의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10대에 문학 작품을 탐독했지만 문학을 하나의 장르로 다루는 데에 반감을 품고 있었으며, 결국 도쿄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행방은 문학비평가로 시작되었다. 스물아홉에 가라타니 고진은 <소세키론>으로 군조오 신인문학상을 거머쥐면서 문학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이 시기 그는 영문과 대학원을 진학했지만 경제학과 출신의 문학비평가라는 다소 어색한 그의 이력을 두고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이든 문학이든 그는 분과학문을 한다는 의식을 갖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형이상학과의 싸움이 절실한 문제였다.

형이상학은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이념을 발견한다. 한국에서 널리 읽힌 그의 초기 저작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8)과 『일본근대문학의 기원』(1980)은 형이상학과의 대결이라는 문제설정을 경제학과 문학이라는 각기 다른 방면에서 펼쳐낸 것들이었다. 그는 이 저작들에서 자본주의와 근대문학을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장치로 해명하여 근대인들을 속박하는 관념의 그물을 걷어내고자 했다.

아마도 가라타니 고진이 스물여섯에 발표한 첫 번째 평론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는 이런 점에서 그의 사상적 원점을 이룬다고 하겠다. 그 일절을 주목하자. “사상과 사상이 격투한다고 보일 때도, 실상은 각자의 사상적 절대성과 각자의 현실적 상대성이 모순되는 지점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상이 각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곳에서 결전이 이루어진 예는 한 번도 없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비평가’로서의 자기의식을 갖고 출발했다. 그에게 비평은 다른 텍스트에 기대어 자신의 입장을 전하거나 편을 짓는 작업이 아니었다. 비평이란 사상의 결전이 치러지는 장소 밑바닥에서 이뤄지고 있는 역할극을 끝까지 주시하는 일이다. 대치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입장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대치할 수 있는 조건, 그 무의식적 구조를 해명하는 일인 것이다. 그 조건과 구조를 밝힌다면 날이 선 온갖 사상적 입장들은 형이상학의 성채를 두르고 있던 부속물임이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비평에는 으레 자신은 상처입지 않으면서 상황 밖에 서 있다는 푸념이 따르곤 한다. 하지만 고진은 홀로 옳은 곳에 서 있고자 비평하지 않았다. 그에게 비평(critique)이란 위기적인(critical) 상황으로 내몰리는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비평 대상만이 아니라 비평하는 자신도 그래야 한다는 점이다. 사상가가 자신의 발화를 자명하다고 여겨 더 이상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면, 사상은 어느새 상업성을 띤 선교가 되고 만다. 가라타니 고진에게 비평이란 자신을 불명료함으로 내몰아 선교사의 입장을 피하는 일이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 비평가로서 자신의 사상을 개척해나가던 60년대 후반은 서구 지성계에서 소련식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시기이자 반체제 운동이 번져나가던 시기였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닌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다만 난무하는 여러 입장들을 곁눈으로 흘기며 자신의 속도로 걸어갔다. 당시 제기된 인간적 마르크스주의도 반체제 운동이 보여준 열정도 그에게는 ‘이념이 만들어낸 병’에 불과했다. 그 무렵의 학생들처럼 거리로 나섰으나 이내 회의를 느끼고는 이념을 걷어낸 자리를 끝까지 응시한다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어떠한 ‘주의자’도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에게 입장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입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했다.



태도 전환

이후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적 노정은 『탐구』에서 결실을 이룬다. 형이상학과 맞서 싸운다는 버거운 작업으로 삼십대에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지만, 그는 『탐구』를 통해 자신의 스스로 병을 치유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그는 잡지 『군조우』에 『탐구』를 연재했다. “내가 『탐구』를 연재하면서 계속 질문했던 것은 ‘사이’ 혹은 ‘외부’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과 근거였다 할 것이다.”(『탐구Ⅰ』후기) 가라타니 고진은 『탐구』에서 ‘타자의 문제’를 해명하여 역사에 대한 목적론을 부정하면서도 그 반편향으로 해체주의 마냥 어려운 지적 수사에도 빠지지 않는 ‘삶의 비평’을 일궈냈다. 90년대로 넘어가기 직전에 나온 이 책을 두고 일본의 사상지 『유레카』는 90년대 일본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정작 가라타니 고진은 90년대에 들어서자 『탐구Ⅲ』을 쓰겠다던 계획을 중단한다. 가라타니 고진이 90년대 이후 쓴 저작들을 보면 무언가 적극적인 발언을 하겠다는 충동이 가득 묻어난다. 하나의 선명한 입장을 갖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태도 전환이 응축되어 있는 저작이 바로 10년간 거듭해서 써낸 『트랜스크리틱』(2000)이다. 『트랜스크리틱』은 확신으로 씌어진 책이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광명을 보기 시작했다”고까지 표현하는데, 사상의 구석진 자리를 응시하려던 과거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1989년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경멸해 왔다. 그는 어떠한 입장에도 속하지 않고 비평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하자 자신이 과거 마르크스주의적 정당이나 국가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이 지속된다는 전제 아래 유효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는 역사의 ‘거대 서사’와 함께 종언했지만, 아울러 몇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사회주의의 종언이 서구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서사’가 등장했으며, 민족주의와 원리주의라는 ‘서사’가 부활했다. 아울러 모든 이념을 조소하는 냉소주의도 만연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사회주의가 현실적으로 끝났을지언정 사상적으로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자본주의를 극복할 현실적인 기획에 몸을 담았다. 90년대의 상황이 학문적으로는 회의론적 상대주의가 범람하고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의 우월성이 구가되었으나 그것들이 점차 파괴력을 잃어갔다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가라타니 고진이 시대의 변화와 아울러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했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구축된 실천의 방향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전망을 가다듬는다. 기억해야 할 대목은 그가 지극히 이론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폐절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론적인 무지를 바탕으로 한 실천은 결코 변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정의감과 연민에 기반한 열정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토대로 삼는 논리구조를 해명할 때 그것을 극복할 단서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교환’에 내재된 근원적인 패러독스로 생겨났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지양할 코뮤니즘 역시 종교적이거나 유토피아적인 상상이 아닌 새로운 교환원리를 통해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선 자본주의를 스테이트(state, 국가)와 네이션(nation, 공동체)과 겹쳐 사고한다. 89년 이후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자신의 정식을 설파하는 데에 경주했다. 그것들 각각은 등가교환, 상호부조, 강탈이라는 교환원리에 대응한다. 먼저 네이션 안에서는 ‘상호부조’가 이루어진다. 등가교환에 따르지 않고 공동의 감정에 기대 서로를 돕는다는 교환원리이다. 스테이트는 강탈을 자신의 교환원리로 삼는데, 그것이 교환인 까닭은 지속적으로 빼앗기 위해 수탈당하는 이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의 기원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는 시장원리에 따라 화폐를 통한 등가교환을 취한다.

이렇듯 상이한 교환원리가 합쳐져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를 이룬다. 자본주의가 강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자본주의를 깨려고 하면 국가적인 관리가 뒤따르거나 네이션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래서 우리는 공황에 직면하면 국가기구가 전면화되고 민족주의가 활성화되는 현실을 목도한다.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강력한 스테이트로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던 것이 레닌주의이고, 네이션으로 자본주의 극복을 꾀했던 것이 파시즘이다. 이들 모두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사슬을 끊지 못했기에 역사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세 가지 교환원리에 기반해 있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새로운 교환원리를 제안한다. 그것이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다.

또 한 가지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이론적인 단서는 자본의 자본화 과정, 즉 화폐(M)-상품(C)-화폐'(M')에 있다. 여기에는 두 차례 개입의 여지가 있다. 첫째는 M-C의 계기, 즉 화폐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고, 두 번째는 C-M'의 계기, 즉 상품이 다시 잉여가치가 부가된 화폐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이것은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구매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다시 파는 일이 된다. 무산대중에게 이것은 노동자가 되고 소비자가 되는 일로 나타난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 M-C-M'의 과정을 끊자고 제안한다. 즉 일하지도 상품을 사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일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정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까닭에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의 연합’을 제시한다.



사상의 실패인가 새로운 사상인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90년대 후반부터 그는 본격적인 실험에 나섰는데, 그것이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 운동이다. NAM 운동은 그가 제안한 최초의 현실운동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NAM 조직을 만들고, 각 지역의 NAM 지부 사이에서 네트워크를 꾸려냈다. 간단히 말해 그가 제안한 NAM 운동은 새로운 교환원리인 어소시에이션에 기반하는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 운동이었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와 닮아 있지만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의 교환원리인 상호부조와 유사하지만 배타적이지도 구속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발상이 단지 낯설지만은 않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통화 운동은 원리적으로 어소시에이션이다. 그가 『가능한 코뮤니즘』이나 『NAM 원리』에서 제시한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운동 역시 자본이 되지 않는 화폐를 매개로 삼는 지역통화 운동의 일종이다. 그리고 NAM 운동은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의 연대를 목표로 삼는다. 화폐 경제에서 판매와 구매, 생산과 소비는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분리는 노동자와 소비자의 분리, 나아가 노동운동과 소비자운동의 분리를 낳는다.

그러나 소비자운동은 실상 입장이 바뀐 노동운동이며, 노동운동 역시 소비자운동인 동안 자신의 국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소비과정은 육아, 교육, 여가 등 생활세계 전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주의 바깥에서 생활의 지평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그가 기획한 현실운동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가라타니 고진은 FA(Free Association)라는 또 하나의 조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라타니 고진은 2002년 「FA선언」을 통해 NAM을 해산시킨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NAM은 그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지식인들의 모임이 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FA선언」에서 밝힌 해산 이유 역시 NAM 운동을 지속할 운동체가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현실에서 보여준 시도와 실패는 일본과 한국에서 그를 둘러싼 평가가 갈리는 지점이 되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 평가는 예순이 넘은 가라타니 고진의 나이를 상기시키며 “가라타니 고진도 이제 다했다”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것은 정녕 사상의 실패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실패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 않았을까. 그 사실을 알고도 그는 실패를 감행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현실적인 운동의 실패를 사상의 실패라고 단정짓는 것은 사회주의의 현실적인 몰락 이후 새로운 사회주의를 사상적으로 꾀했던 가라타니 고진에게는 공평치 못한 일이리라.

가라타니 고진은 이제껏 여러 사상적 입장에 가격을 매겨 왔다. 이제 자신의 사상적 궤적을 제작비이자 홍보비 삼아 하나의 입장을 상품으로 내놓았으니, 그것은 팔릴 것인가. 쉽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지금의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호의적이고 싶지 않다. 그의 시도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의 긴장감을 놓쳤으며, 그의 실패는 그마저도 이론적 완결성을 위해 희생되었다. 그의 사상 언저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늘과 불쾌함을 더 이상은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한 사상가를 진정 대면하려면 그 사상이 지닌 탄성을 제멋대로 줄여놓고 쉽사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2007년 가라타니 고진은 재직 중이던 컬럼비아 대학과 긴키 대학에서 물러나 일본에서 지인들과 교류하며 또 한 번의 사상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하지만 자신의 명성에 사로잡히지도,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기에 그는 건강하다. 그리고 이 말도 보탤 수 있겠다. 기꺼이 실패하는 것. 그것이 사회주의자의 역사적 역할이다. 사회주의자는 하나의 입장에 관한 이름이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자들이 공유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사고는 현실에서 실패할지언정 불씨를 남긴다. 그 불씨는 타오를 것인가.(윤여일 /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07.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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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보드리야르는 죽지 않는다

한 대학신문에 기고했던 기사를 옮겨놓는다. 갑작스런 청탁을 받고 급조한 것이어서 미흡한 대목들이 없지 않은데, 핑계라면 분량이 너무 한정돼 있었다는 것. "보드리야르의 사상과 업적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 그의 학문(사상)이 어떻게 전수돼고 있는지"에 대해서 12매 분량으로 쓰는 일은 나의 능력을 벗어난다. 그저 한 '독자'로서 몇 가지 인상만을 나열하는 데 만족했다.  

대중적으로는 ‘매트릭스’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가 세상을 떠났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하이퍼리얼리티의 이론가에게 걸맞은 표현을 쓰자면 이 세계로부터 ‘로그아웃’했다. <사물의 체계>(1968)로 지식사회에 명함을 내민 지 얼추 40년만이다.

그리하여 그의 학문적/이론적 삶에 대한 본격적인 독해와 평가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 되었다. 그것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네는 두 가지 알약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처럼도 보인다. 빨간약이냐 파란약이냐, 혹은 보드리야르를 기억할 것인가 잊어버릴 것인가.

 


빨간약을 입에 넣을 경우 우리에게 펼쳐지는 초기화면은 1960년대 중반 프랑스 지식계의 풍경이다. 보드리야르는 낭테르대학에서 <현대세계의 일상성>(1968)의 저자 앙리 르페브르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하고 롤랑 바르트의 <모드의 체계>(1967)을 연상시키는 첫 번째 연구서를 출간한다. 그것이 <사물의 체계>이다(*국역본이 신뢰할 만한지는 의문이다). 이 ‘사물’에 대한 관심은 그의 이론적 여정에서 줄곧 견지된다.

 

 

 

 

 

 

 

 


자신의 이론적 여정을 요약해주고 있는 책 <암호>(2000)에서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첫 번째 ‘패스워드’가 바로 ‘사물(objet)’이었다. "나에게 사물은 암호 중의 암호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러한 관점을 취했는데, 왜냐하면 주체라는 문제틀과 단절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물의 문제는 (...) 지금까지도 나의 사유의 지평으로 남아있다."고 그는 적었다.


보드리야르가 다루는 사물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상품’들이다. 1960년대는 사물들이 득세하게 된 시대, 본격적인 상품들의 시대였다(동시대 작가인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1965)을 떠올려보라). 그러한 시대를 일컫는 말이 ‘소비사회’이며 이 새로운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더 이상 생산이 아니라 소비이다. 그의 초기 사회학적 작업은 이 소비사회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에 바쳐진다.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소비사회에서의 상품가치는 ‘사용가치/교환가치’라는 문제틀만으로 더 이상 유효하게 분석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재평가하면서 ‘기호가치’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요즘 쓰는 말로는 ‘브랜드가치’가 예가 되겠는데, 가령 사치성 소비재, 소위 ‘명품’에 대한 수요는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란 용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명품의 가치는 말 그대로 ‘이름값’이기 때문이다.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1972)은 그러한 ‘이름값’으로서의 기호가치에 대한 이론적 분석이다. 그에 따르면 상품은 더 이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데 봉사한다.    


상품들과 기호가치가 범람하는 보드리야르적 세계는 1970년대 후반 이후에 컴퓨터화되고 디지털화된 세계로 ‘버전-업’된다. 그것이 그가 펼쳐놓는 두 번째 화면이며, 보드리야르는 이것을 ‘코드’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부른다. 여기서도 여전히 사물들은 그의 주된 관심대상이지만 그 존재론적 차원은 변화한다. 이것은 가상세계이지만 현실과 가상이라는 구분/구획 자체가 무효화되기에, 즉 더 이상 원본과 모사물(시뮬라크르)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가 유지되지 않기에 ‘가상화된 현실’이고 ‘현실화된 가상’이다. 그러한 현실-가상을 축조하는 방식이 시뮬라시옹이다(이 새로운 시대, 포스트모던은 ‘나훈아’의 시대가 아니라 ‘너훈아’의 시대이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세계는 가역성의 원리가 지배하며 극단적으로 말해서 죽음조차도 불가능한 세계이다(우리는 로그아웃할 수 있을 따름이다). “걸프전을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악명 높은 주장은 그러한 차원에서 제기된다. 이 ‘불가능한 죽음’을 이제 우리는 ‘보드리야르’라는 기호-이름에도 되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름의 주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가 보드리야르라는 ‘빨간약’을 먹을 때마다 우리 눈앞에 언제나 되살아날 것이다.

 

07. 03. 19.

 

 

P.S. 짤막한 기고문을 작성하는 일이라고 해서 품이 덜 드는 건 아니고 나는 부랴부랴 '크리티컬 씽커즈' 시리즈에서 리처드 레인이 쓴 <장 보드리야르>(루틀리지, 2000)을 구해 읽어보았다. 물론 서론과 문헌해제를 주로 읽어본 것이었지만. 

 

 

 

 

 

 

 

 

 

그리고 몇몇 관련문헌들을 읽어보았다. 이런 글을 쓸 때 요긴한 책은 존 레흐트의 <현대 사상가 50>과 존 페파니스의 <이질성의 철학>, 그리고 미셸 리샤르 등이 쓴 <오늘의 프랑스 사상가들> 등이다. 마단 사럽의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도 보드리야르에 대해서 한 장이 할애돼 있다(이 장은 개정판에 추가된 것이며, 내가 갖고 있는 영역본 초판에는 빠져 있다).

 

한편, 처음 작성한 원고에는 다음과 같은 자기변명조의 문단이 포함돼 있었다: "내게 잠시 부여된 역할은 얼치기 장의사의 그것이다. 관을 짜기 위해서 죽은 자의 치수를 재듯이 그가 남긴 이론 혹은 사상의 사이즈를 재는 것이 나의 몫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하지만 내가 거들지 않더라도 견적은 이미 다 나와 있다!). 모사물(시뮬라크르)이 실재를 대신하는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실 보드리야르 자신이 ‘지적 사기꾼’이란 혹평도 심심찮게 들었던 만큼 그의 사상에 대해서 섣부른 관견을 늘어놓는 일이 심하게 무례한 건 아니겠다." 그건 내가 다른 사상가들에 관해서였다면 섣불리 이런 일을 맡지 않았을 거란 얘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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