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랄수록 엄마도 함께 공부할게 많아지는 것 같다.
자라는 아이를 보며 궁금하고 고민스러운 것이 날로 많아지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만 이럴까? 요맘때 애들은 다 이런가? 다 이렇게 고집스럽고, 장난꾸러기고 말썽장이일까?'
'내가 너무 야단을 안 치나? 더 엄하게 해야하는건 아닐까? 어떻게 키워야하지?'
'만 두 돌 이후의 아이에게는 어떤 놀이가 필요한걸까? 늘 하던 놀이만 계속 하는건 지겨울 것 같은데...' 

그래서 이런 내 궁금증과 필요를 해결해줄 수 있는 육아책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딱 만났다. 
내가 신뢰하는 출판사인 보리출판사의 책목록을 훑어보다가 발견한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울까> 시리즈! 
1살부터 6살까지 나이별로 한권씩! 지금 우리 아이에게 딱 맞는 내용이 책 한권 가득 들어있어 읽기전부터 든든하다.  



 



 

 

 

 

 

 

처음 주문할때는 만으로 두 돌이 된 연수에게 맞는 내용이 <두 살,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울까>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에서 '두 살'은 우리 나이세듯이 만13개월부터 24개월을 뜻했다.
(책 소개에 그 내용이 없어 미리 알기가 어려웠다. 혹시 구입하시려는 분들은 참고하셔요..) 
잘못 주문했다고 속상해했는데 찬찬히 읽어보니 더 잘 된 일이었다.
13개월~24개월이 어떤 시기였는지를 다시 돌아보고, 그 시절에 내가 아이를 돌보면서 부족했던 것들을 짚어볼 수 있었다.
 
저혼자 숟가락질을 잘 하지 않고, 손으로 음식에 장난을 많이 치는 연수의 식습관은 늘 고민이었다.
처음 이유식을 먹을 때는 '음식에 흥미를 갖는 것과 스스로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으로 먹어도 그냥 두고 장난치는 것만 제지하면서 지내왔지만 두 돌이 됐는데도 계속 그렇게 두면 안되지 않을까.. 싶고
무엇보다 연수가 일부러 하는 음식장난을 보면서 내가 너무 화가 나곤 했다.


"손으로 집어 먹는 것은 먹으려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언제까지나 손으로 집어 먹게 내버려 두지 말고, 숟가락으로 먹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특히 두 살 중반이 지나면 손으로 먹게 하지 말고, 숟가락으로 잘 먹으면 "잘 먹었구나"하고 칭찬하는 것도 잊지 맙시다. 두 살 어린이들이 밥을 먹을 때는 어른이 금지하거나 지시하기 쉬운데 그보다는 잘 했을때 확실히 칭찬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책 104쪽)


별 것 아닌것 같은 내용이지만 실제 내가 하는 것을 돌아보니 연수에게 제대로 숟가락을 맡겨본 적이 별로 없었다. 
아직은 혼자서 잘 못먹는다는 생각만 했지 스스로 먹는 것을 북돋워주고, 응원해주면서 해볼 생각을 별로 못 했다.
계속 엄마가 먹여주면서 '좀 더 먹었으면..'하고만 바라고, 손으로 장난치는 것만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수에게 숟가락을 맡기고, 잘 되든 안되든 기다리면서 '잘 한다, 와~ 우리 연수가 혼자 밥도 숟가락으로 잘 떠먹네'하고 칭찬해주었더니 연수는 신이 나서 숟가락질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참 단순한 변화인데도 사람 마음이 이렇게 신나고 기쁠 수가 없다. 
엄마는 칭찬하면서 기다려주고, 연수는 신나서 열심히 하고.. 
절반쯤 먹다 흥미가 떨어지면 내가 다시 먹여주기도 하지만,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일때는 혼자 밥 한그릇을 다 먹기도 한다. (아이에게는 특히 '맛있는 것'이 식사에 대한 의욕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듯..ㅠ)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아이들이 일정하게 일어나서 먹고 놀고 잠을 자야 합니다. 두 살 어린이는 사람다운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출발점에 서 있으므로 이것은 더구나 크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부모 사정으로 아침을 거르거나, 평소에는 "팬티는 혼자서 입어 봐." 해 놓고 어느 날은 늦었다고 부모가 서둘러 입혀 주면 어린이는 기분이 망가지고 때로는 울고 소리지르고 하여 결국 어린이 스스로 입을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합니다.... 교사가 "빨리 손 씻어." "팬티는 입혀줄테니까 빨리 해."하고 재촉하면 생활에 일관성이 없어집니다. 이 나이에는 재촉해도 빨리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른처럼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사는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서 해야합니다" (책, 112~113쪽)


일관성은 정말 중요하다. 
나도 연수에게 어느 날은 혼자 숟가락으로 밥을 먹어보라고 했다가 어느 날은 처음부터 그냥 내 손으로 먹여줘 버리고, 
옷입는 것도 가끔 생각날때만 혼자 입어보라고 하고 평소에는 그저 빨리빨리 내가 갈아입히는데 급급했다. 
아이에게는 하나하나가 중요한 일상이고, 배움인데 그런 것들을 엄마가 일관성없이, 그날그날 되는데로 해나가면서 아이의 생활습관이 잘 잡히지 않는다고 속상해하면 안되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 책은 일본의 오사카에서 지역아동 보육운동을 20년가까이 해온 성과를 모아 '오사카보육연구소'에서 1984년에 제작한 것이다. 2010년의 우리 현실과는 시대 차이도, 문화 차이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를 대하는 마음자세는 배울 점이 정말 많다.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여러 아이들을 키워본 사람들의 집단적인 지혜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얘기들이다. 

책은 참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우선, 두 살이란 나이가 어떤 시기인지를 정리하고(1장 두 살, 말이 꽃피는 시기)
세 살까지의 1년동안 어떤 목표를 가질 것인지를 어린이의 활동을 중심으로 정리해본다(2장 두살 어린이 보육계획).
'3장  두 살 어린이를 돌볼 때' 에서는 건강, 안전, 음식, 생활습관, 놀이 등의 중요한 내용들이 세심하게 쓰여 있고
마지막 4장에서 어린이집 교사와 부모가 할일 을 정리해놓았다.
전체 170쪽 정도로 분량이 많진 않지만 중간중간 진도가 얼른 안 나가는 대목도 있다.(특히 뇌발달과 손의 관계 등은 과학에 약한 나에게는 쿨럭..ㅡㅡ;;) 
 

어른은 어른 방식으로 어린이를 바라보기 쉽습니다. 거기에서 아이와 많이 부딪히고, 아이는 바쁜 어머니를 애타가 합니다. 어린이도 불만에 찬 날들이 이어지면 아주 안 좋습니다. 한 살 어린이는 누군가가 옆에서 다 해주어야 한다면, 두 살 어린이는 자기 뜻대로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넘쳐 납니다. 도구를 적극 다루면서 바깥세상에 다가가고, 말을 풍성하게 이해하고, 또 쓸 수 있는 어휘 수도 늘어갑니다.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끼리도 관계를 잘 맺어갑니다... 끊임없이 "내가 할게, 내가 할게." "싫어, 싫어"하고 말하는 두 살 어린이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어린이가 자주성도 발달하고, 다음 행동으로 기운차게 옮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이 시기를 잘 넘겨야 합니다. (책, 146~147쪽) 

어린이한테는 어린이와 함께 놀고 지켜보고 감동할 수 있는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두 살 어린이에게는 손에 닿는 것 하나하나, 눈으로 보는 것 하나하나가 놀랍고 새운 것이며, 흥미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갖고 싶은 것, 만져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 손에 넣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어른을 부르러 옵니다. 산만하거나, 장난만 치는게 아니라 탐구심과 행동력이 강합니다. 교사는 이렇게 어린이가 계속 걷고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을 찾아 나갈때 어린이와 함께 놀라고 기뻐하면서, 그 마음과 행동을 소중히 생각해야 합니다.(책, 131쪽)


집단보육(어린이집)을 우리나라보다 한 세대 일찍 시작한 일본에서 '어떻게 하면 가정과 지역과 어린이집이 힘을 모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천해온 기록인 이 책은
기본적으로 '아이를 이해하자, 아이의 성장을 돕자, 아이를 마음껏 행복하게 놀게 하자'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집 교사, 아이의 부모, 어린이집의 운영자 등 아이를 만나는 여러 주체가 어떤 입장에서 읽어도 도움이 된다.


어린이의 기분을 이끌어 내고 열어 나가야 합니다. 교사가 말을 확실하게 하고, 몸짓을 크게 하고, 표정을 풍부하게 해서 어린이에게 말을 건네야 합니다... 교사의 아름다운 표정과 몸짓이 이렇게 아이들을 움직이고, 해보고 싶어하게 만듭니다.(133쪽)

이 세상에 태어난 갓난아기를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우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더욱 아름다운 사람으로 갈고 닦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를 돌보면서 자신이 더욱 사람다워지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교사는 아이와 같이 생각하고, 아이가 즐겁게 생활하고 풍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이 성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때 행복합니다. (책, 139쪽)


나는 엄마이고 지금 내 아이에게는 교사이기도 하다.
다른 누구보다도 아이는 내게서 배우고, 나를 통해 세상을 만나면서 제 나름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있다.
교사의 관점이 엄마인 내게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는 엄마라면 '내 아이의 보육교사가 이런 사람이었으면..'하고 바라는 그 모습을
지금 나는 내게 바래야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배우고 생각한 것들을 생활에서 잘 실천하도록 노력해봐야지..
오늘 하루도 또 세살배기 말썽쟁이와 옥신각신, 투닥투닥 하느라 온몸에 진이 다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마음을 추스려본다. 엄마와 아이, 내일은 더 행복하게 자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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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울까?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울까? 4
오사카보육연구소 지음, 이학선 옮김 / 보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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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도, 엄마와 집에 있는 아이에게도 정말 좋은 보육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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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깃든 밥상 - 쉽고 소박한 문성희의 자연 요리, 2010년 제 50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부문 최종후보작 평화가 깃든 밥상 1
문성희 지음 / 샨티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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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책을 만났다.
덕분에 부엌에 있는 시간이 훨씬 즐거워졌다.
 


요즘 우리집 식탁 위에는 이 책이 항상 있다.
낮에는 그 날 만들 음식이 나오는 쪽을 펼쳐놓고 오며가며 짬짬히 들여다보고,
밤에는 미처 못읽은 부분들을 천천히 조금 더 읽고 덮어놓는다.
내일 아침이 되면 또 어딘가를 펼쳐놓고 있을 것이기에 식탁 한 구석, 그 자리에 가만히 둔다.


쉽고 소박한 문성희의 자연요리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으로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밥상 차리기 란 부제가 붙어있는 범상치않은 요리책,
바로 <평화가 깃든 밥상>이다.

이 책에 나온 요리들은 쉽다. 그런데 그 맛은 깊다. 
이게 참 신기하다.
뭘 그닥 하지 않는데, 바쁘게 굽고 볶고 후다닥 거리지도 않고 그저 천천히 익히고 푹 끓이는데 맛이 좋다.
초보주부가 부엌에 서서 뭘 하나 만들려치면, 그게 국이든 반찬이든 재료를 준비할때부터 끙끙대고 연기가 나며 타기 일쑤인데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어수선하고 피곤한 분주함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너희들이 요가 상태에 머무르면서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면 많은 사람들이 유익을 얻을 것이다. 
너희들의 음식과 음료는 순수하고 소박하며 기품이 있어야 한다. 침묵 속에서 신의 사랑으로 만든 음식이 곧 마음을 만든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슈마리트'(신의 가르침이란 뜻)다.
안정되고 차분한 마음, 즐겁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든 음식은 그 자체가 몸과 마음을 살리는 약이 되고 생명이 된다는 생각.. 
세살배기 아이와 씨름하다보면 밥때는 어찌 그리 금방 돌아오는지, 이번엔 또 뭘 해먹나.. 엄마는 고민인데 아이는 계속 저와 놀자 매달리니 부엌에서 조용히 식사 한끼 준비하기가 정말 어렵다.
이런 마당에 어찌 안정되고 차분한 마음을 담을 수 있으랴... 싶지만, 그래도 책을 본 뒤로는 요리하는 순간만큼은 한결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수 있는 제일 큰 이유는 부엌에 서있는 시간이 전보다 훨씬 짧아졌기 때문이다.

책 첫머리에 저자는 '요리 솜씨 비법1,2,3'을 간단하게 정리해놓았는데 그중 두번째, '쉽고 즐겁게 요리하기'가 참 와닿았다.

"부엌에 오래 있는 아낙치고 음식 솜씨 있는 이 없다"는 옛말이 정말 일리있는 말이예요. 모든 엄마들이 하루도 쉼 없이 하는 일이 부엌일이니 요리는 무엇보다 쉽고 간결해서 즐겁게 할 수 있어야해요. 밥상 위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과 설거짓거리를 줄이는 것도 요리를 즐겁게 만드는 비결 중의 하나예요... 씻다가, 썰다가, 익히다가 하는 식으로 두서없이 이 일, 저 일을 섞지말고, 손질할땐 모든 재료를 손질해놓고, 씻을 땐 모든 재료를 함께 씻어놓고, 썰 땐 모든 재료를 다 썰어 요리할 순서대로 각각 큰 접시에 담습니다... 요리를 만들땐 그릇을 씻어가며 하는게 좋아요. 이 그릇 저 그릇 다 내어 사용하다보면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설거짓거리만 산더미입니다. 그러다 보면 두 번 다시 요리를 하기 싫어지니 설거짓거리를 미리 줄이는게 좋아요. (책 21쪽)

기본중의 기본이랄 수 있는 이 작은 충고가 내게는 참 큰 것이었다. 이 일 저일 섞지말고 차근차근, 차례차례 해나가다보면 짧은 조리과정은 금세 끝나있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할 일은 연수와 놀며 음식이 익기를 기다리는 일.

요즘 우리집 식탁에 자주 오르는 국인 '무호두탕국'.
가을무는 참 달고 맛있다. 무나물 같은 반찬을 해도 맛있고, 국을 끓여도 시원하고 단 국물맛이 좋은지 연수가 아주 잘 먹는다.
버섯은 집에 있는 한가지만 넣고, 호두나 밤은 넣을때도 있고 없으면 그냥 끓여도 맛있다.
이 요리 한가지를 하면서 나는 국물요리의 여러 비법(?)을 이제사 배우게 되었다.

(무, 버섯, 연근, 밤 같은 재료들을 썰어두었다가 간장과 참기름을 넣어 볶는다)
Tip1. 볶을 때 음식 맛이 결정되는데 간장과 참기름 향이 재료에 스며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Tip2. 우리나라의 대표 국물 요리인 국의 맛을 잘 내는 비결은 재료와 장맛의 어울림이므로, 국물안에서 서로 어우러질 수 있게 충분히 시간을 들여 끓이는 게 중요하다.


말린 애호박나물, 무나물, 버섯장조림.. 한번 만들어두면 끼니때마다 입맛을 살려주는 이 반찬들은 찾아보면 만드는 방법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다. 말린 애호박나물에 불린쌀을 갈아두었다가 쓰는데 그렇게 따로 뭔가 하나 더 준비해두는 것 정도가 제일 번거로운 것이니 그 외의 과정은 그야말로 씻어서 썰고, 냄비에 넣어 단순한 양념 두어가지 넣어 잘 익히면 끝이다.
재료의 풍미가 살아있으면서도 짜지 않고 입맛도는 반찬 한가지만 꺼내놓고 거기에 따뜻한 밥만 비벼줘도 아이는 잘 먹으니 내가 만들었지만 참 먹을때마다 알려준 분께 고마운 마음이다. 

저자인 문성희 씨 소개를 보니..

"이십여 년간 요리 학원 원장으로 살면서 맛있고 화려한 요리를 만들고 멋진 요리상을 차리는 일에 몰두해왔다.
가장 훌륭한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래의 생명력과 모양을 망가뜨리지 않고 먹는 것이고, 그런 음식을 찾기 위해서는 마트가 아니라 밭으로 가면 된다는 사실과 조리 과정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리 학원을 그만 두었다...
거친 밥과 푸성귀, 생식가루를 먹고 사는 동안 점차 몸 세포가 변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끼면서 생명을 살리는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저자소개글 중에서)"


이 분이 갖고 있는 밥상의 원칙 열가지가 다 마음에 와닿는다. 그중 지금 바로 내가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것-채식-도 있지만 특히 공감하고 바로 우리집 밥상에 적용해보고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셋째, 먹을거리를 손수 재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득이할 때는 유기농 재배 농가나 협동조합, 유기농 매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구매한다...
다섯째, 되도록 조리 가공을 적게 한다. 신선한 날것을 많이 먹고, 익힐 때는 가열을 최소화하며, 양념을 적게 하여 재료의 신선한 맛을 최대한 살리고 살짝 찌거나 굽거나 데쳐서 먹는다.
여섯째, 조리법을 간단하게 하는 대신 한가지 요리에 다양한 채소를 골고루 사용하고 밥도 다섯 가지 이상의 알곡을 섞는다. 반찬 가짓수를 두 세개 이상 놓지 않으며, 조리된 음식은 서른여섯 시간안에 먹고 음식물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열째, 씨앗이 자라 꽃 피우고 열매 맺도록 한 흙, 공기, 물, 햇빛의 수고로움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내게 들어와 내 몸으로 모양을 바꾼 그것들, 곧 내 몸에게 자주 사랑을 보낸다. (책, 9-10쪽)"


이 책에 나온 요리들을 아직 많이 해보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몇가지 해보면서 느낀 것은
한 요리의 조리 과정은 짧지만 음식 하나를 준비하는 시간은 길다는 것이다.
서너시간 전에 콩을 씻어 불려놓고, 말린 버섯이나 호박, 가지같은 나물도 불려놓고.. 약한 불에서 푹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있고
하룻밤쯤 재워두다가 불려두었다가 다음날 끓이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바쁘지 않게, 천천히 흘러간다. 콩이 불는 동안 아이와 책을 읽고, 집을 치우고 빨래도 한다.
하루밤 기다리며 내일 그걸 끓이면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것도 좋다.
조리과정이 단순하지만 맛은 깊은 것은 아마도 그 기다리는 시간들 때문이 아닐까. 그 시간에 실리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밥상을 바꾸는 것 만으로도 화석 연료는 물론, 물과 세제의 사용도 현저히 줄일 수 있었고, 쓸데없는 일손과 조리하는 시간도 줄여 부엌일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소유를 줄이게 되었지요.
내가 먹는 바로 그것이 나를 만듭니다. 그런 마음으로 만든 음식은 사랑과 행복의 에너지가 전달돼서, 먹는 사람도 충족함을 느낄 수 있어요.(10쪽)
나는 먹는 것이 단순해지면 생각이 단순해진다고 믿어요. 생각이 단순해지면 지각이 선명하고 명료해져서 삶 속에 복잡하게 파고든 여러 가지 불필요한 관계에도 휩쓸리지 않게 돼요. 불필요한 관계가 정리되기 시작하면 시간이 느슨하게 흐를 것이고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163쪽)"


요리 한가지에만 해도 이만한 삶의 철학이 깃든다.
그러니 우리 삶을 이루는 한 가지, 한 가지 모두를 깊이 느끼고 진심으로 수행하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고 체득할 수 있을까..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보양식(모두 채소로 만든다 ㅎㅎ)이 가득한 '열두 밥상'과 이름들만 봐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곱 죽상'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안심 간식'과 약선 김치들, 효소와 소스 만드는 법까지 참 알차고 고마운 내용이 가득한 이 책, 평화롭고 건강한 밥상을 꿈꾸는 모든 지인들께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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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지 않았다 - 삶이 다시 열리는 시간 중년의 인생 매뉴얼
한명석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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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똑순이가 잠들고 나면 비로소 하루중 유일한 내 시간이 시작된다.
가끔은 그 시간에도 기저귀 빨래나 방닦기 같은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지만
보통은 지친 몸이나마 잠시 책상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블로그를 볼 수 있다.

요즘 내 밤시간은 이 책이 있어 뜨거웠다.
블로그 이웃 '미탄'(티스토리 블로그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님의 첫 책, <늦지 않았다>가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삶이 다시 열리는 시간 중년의 인생 매뉴얼'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사실 따져보면 내가 성인이 되어 이제까지 생활해온 시간과 똑같은 시간이 또 한 번 남아 있다. 삶에 관한 아무런 지식 없이, 겁도 없이 저지르며 산 전반생에도 그토록 많은 경험과 교훈을 얻었는데, 내 걸음걸이를 계획하고 의식하고 점검하며 걷는 후반생은 두 배 이상의 밀도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시간은 결코 짦은 시간이 아니다... 그저 성공적으로 쇠퇴만 하기에는 너무나 길고, 너무나 중요한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원하기만 한다면 다시 한 번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열정을 조금만 더 유지하기만 한다면."(26쪽에서) 

이 구절을 읽고 깜짝 놀랐다.
중년에 대해서는 사실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끔 '은퇴후 설계'라는가 '노후 대책'같은 얘길 보험사 팜플렛같은 곳에서 보더라도 '글쎄.. 뭘 좀 하긴 해야겠지' 정도만 생각하고 그저 지나쳐갔는데 음.. 성인이 되어 생활한 것과 똑같은 시간이 한 번 더 남아있다니.. 생각하니 정말 그랬다.
스물부터 쉰까지 30년, 쉰부터 80살까지 또 30년. 저자의 표현대로 '전반생', '후반생'이라 부를만하다.
전반30년 중에서도 전반을 살며 겨우 첫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허덕거리고 있는 나로서는 후반30년은 것은 정말 상상할 엄두도 못 냈던 삶인 셈이다.

이 후반생을 생각하니 경제력도 경제력이지만, '무엇에 열정을 쏟으며 살 것인가'하는 문제가 정말 내게도 크게 고민되기 시작했다. 아직 먼 얘기같지만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니 시간은 정말 금방 가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눈깜짝하고 나니 벌써 19개월이다. 며칠 지나면 아이는 세살이 되고, 그렇게 몇년만 지나면 학교에 간다고 가방메고 나설 것이다. 아이가 스무살이 되면 나는 쉰이 된다. 신랑도 쉰이 된다. 쉰. 쉰. 휴... 그러면 얼마안가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게 되겠지? 음.. 그 뒤에는 뭘 하면서 살고싶을까? 쉰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니 내 일보다 먼저 신랑의 일이 궁금해진다. 그동안 가족들 부양하느라 못펼치고산 자기 꿈을 펼치고 싶을까?  

책을 겨우 30쪽 남짓 읽었을 뿐인데 꼬리를 무는 생각에 계속 읽을 수가 없다. 책을 덮고 신랑을 불러 얘기를 나눴다. 오십 이후에 우리 어떻게 살까? 아이를 몇 명 낳느냐에 따라 몇 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얼추 쉰을 지나 환갑이 되기 전에 아이들은 성년이 될 것이고, 그럼 그 녀석들을 독립시키고 우리는 뭘 하면서 살까? 회사도 거의 다 다녔을테고.. 세계 여행을 하자! 그것도 한두 해지, 다녀와서는 뭐할까? 길면 30년쯤 되는 긴 시간을.. 돈벌고 애키우느라 못한 일을 해야지.. 새로 학교에 들어가 관심있던 공부를 해볼까? 시민운동을 할까..? 흠.. 정말 뭐하지?? 천천히 생각해보고 얘기 많이 하자.

이쯤에서 대화를 일단락하고 다시 책을 읽는다.



"구구절절 흔치않은 경험을 하며 인생의 모퉁이마다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고 나니, 소중한 은유를 하나 갖게 되었다. 인생은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이다. 폭우가 오면 흙탕물이 되는 수도 있고 때로는 범람하여 홍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강물의 본래 모습은 아니다... 조그만 마을과 나룻터, 갈대숲을 지나가지만, 그곳이 강물의 목적지는 아니다." (34쪽에서)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은유를 가질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오래, 치열하게 살아야할까.
나는 아직 '인생은 무엇'이라는 은유를 할 수가 없다. 미탄님의 은유를 빌리자면 나는 아직도 세차고 좁은 어느 골짜기를 부지런히 달려내려가는 작은 시내쯤 될 것이다. 이제는 도도하게 바다를 향해가는 선배 강물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듣고 화득! 놀라 제가 곧 이를 곳이 어디인지, 지금 이 시절은 어떻게 지나야할지 뒤척거리며 묻는 시내.


"노년에 '파우스트'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완성한 괴테는 76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 긴 밤에 모호하고 대략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고 다음날 할 일을 정확히 숙고했다. 아침에 시작할 수 있고 가능한 한 시행할 것들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더 많은 일을 하고, 다시 내일이, 영원한 내일이 있다고 믿거나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날들에 게을리 했던 일들을 할당받은 날들에 꼼꼼하게 완수한다." " (112쪽에서)

영원히 내일이 있을 것처럼, 인생의 숙제들을 내일로 내일로 미루기 일쑤인 나에게 괴테의 이 말은 참으로 뜨끔했다. 저자는 중년, 노년에 더 많은 성취, 더 질적으로 우수한 성취들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인용했다. 중년이 되면 내 생에 남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체감하기 때문에 공허하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자세를 지금부터 가질 수 있다면...! 
이 책 곳곳에 젊은 나를 일깨우고, 다잡게 하는 구절이 어찌나 많은지... 지금 중년인 사람만이 아니라 언제고, 곧 중년이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참 절실한 지침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은 찾으면 된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곰곰히 뒤져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했는지 모조리 찾아보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새워 몰두하던 일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가? 잘한다고 칭찬받은 일을 떠올려보라. 아주 작은 일이어도 괜찮다. 어렵게 배우지 않아도 쉽게 익힐 수 있었던 일들도 끄집어내라. 어쩐지 마음이 가는 일도 빼놓지 마라. 자기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을 존중하라. 그렇게 해서 정리된 내용을 직업화할 수 있는 것과 취미로 남겨두어야 할 부분으로 구분한다." (123쪽에서)

바깥 일은 접고 아이만 키우는 전업육아(?)를 하기로 마음 먹은 뒤 가끔 아이를 좀 키워놓고 나면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한다. 하다만 공부가 있지만 과연 그 길이 내 길일까.. 계속 가고 싶은지,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하고 새삼 확신이 들지 않기도 한다. 아이가 자라서 제 길을 찾아가는 동안 나도 내 길을 찾아야한다. 걸어온 길은 그리 길지 않으므로, 걸어온 길과 걷는 길 모두를 통해 내 길을 잘 찾을 수 있길...

이미 어른으로서의 삶을 꽤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계획할 때는 자기가 정말 하고픈 일을 찾는 것과 함께 아래 옮겨놓은 것처럼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 딸을 시집보낼 때 그럴듯한 '명함'이 아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컨설턴트라면 늙어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은행 실무와 연결이 되는 '벤처 중소기업학' 박사학위에 도전하기로 했다.
 4. 은퇴 후에도 만날 수 있는 친구 10명에 정성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5. 내 생활은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결심했다. 설거지, 빨래, 음식 장만 등 집안일과 사소한 가전제품 수리는 직접 하기로 했다.
- 은행원 조성권씨가 46세였던 2001년에 작성한 '앞으로 10년간 행할 10가지 은퇴 준비 리스트'중에서."(128쪽)

딸이 없는 신랑도 십분 공감하며 '그렇지'한다. ^^ 나는 자신의 생활을 책임지겠다는 아저씨의 결심이 참 훌륭해보였다. 나와 신랑도 그런 중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원봉사가 매력 있는 이유는 계속해서 나의 잠재력을 계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국문화원연합회에서 실버 세대를 문화 분야의 도우미로 활용하고 있는 '땡땡땡 실버문화학교'를 보자. '땡땡땡 실버문화학교'는 2005년에 10개 문화원에서 시범적으로 시작되어 2007년에 76개 문화원에 개설되었다... 짚풀 만들기나 목공예, 한지 인형처럼 전통적인 영역은 물론 벽화 제작, 젊은 노인의 희망연극 만들기처럼 혁신적인 영역도 있다. '끝없는 음악여행 silver of Rock'이라는 록밴드까지 있다." (143쪽에서)

책은 다양한 중년의 직업전환 사례, 노년의 도전과 아름다운 삶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례도 그중 하나다.
지방에서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후배가 지역의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연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땡땡땡 실버문화학교'같은 프로그램과 연계하면 좋지 않을까.
찾아보면 우리집 가까운 곳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을지 모른다. 똑순이는 친가와 외가가 모두 멀다. 제 조부모님들을 가까이서 자주 뵙고 직접 배울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가까이에서 다정한 어르신들께 공예도 배우고, 따뜻한 정도 나눌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 분들의 손끝에 깊이 체화된 성실한 노동과 삶의 지혜 같은 것들을 자연스레 배우고 차분하고 온화한 마음도 닮게 되지 않을까. 다른 무엇보다 '문화'를 매개로 한 만남이니 그것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 '노년의 문화인류학'에서 정진웅이 말했듯이, 문화를 만들어가는 능력은 곧 자기 형성의 능력이며 동시에 자기 긍정의 능력이다. 자신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을때 우리는 남이 만들어주는 삶의 조건에 맞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뜻에서 문화역량은 주도성이요, 독립된 개인이 갖추어야할 필수 조건이다. 나의 취미와 특기, 재능과 경험을 모조리 뒤져 그중 강력한 것을 한두개 집중적으로 계발할 필요가 있다." (144쪽에서)
  


중년을 맞으며 미탄님 스스로가 설정한 과제들 중 하나는 '누구와 살 것인가'이다.
장성한 아이들을 독립시킨 후 다시 단촐해진 삶, 그 삶을 어디서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전통사회와 같은 이웃, 마을들은 사라졌고, 가족들도 단촐해진 후의 삶이라...
대안학교에 이어 대안마을 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 조한혜정 교수의 활동과 고민을 소개한 내용은 내게도 너무나 절실하고 반가운 얘기였다.  

"그녀가 이번에 주목하는 것은 '마을'이다. 그녀가 꿈꾸는 곳은 작은 학교와 공동 식탁이 있는 생기 있는 작은 마을이다. 거대한 백화점과 우뚝 솟은 관 주도적 문화 공간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학교와 문학 까페와 식당과 소극장과 작은 진료소가 있는 타운 센터이다. 노인들이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있으며, 수시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서로가 잘 알기에 함께 있음으로 안전한 마을! 근대적 거대주의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로 들리겠지만, 이미 그런 마을이 실험되고 있다고 한다." ( 213쪽에서)

아! 나도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 실은 이 실험의 무대인 마포 성미산 마을은 지금 우리집에서 가까운 편이다. 결혼 전부터 이 마을 얘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공동육아'가 내 문제가 아니던 시절에는 그저 '대단한 사람들이네' 하고 먼산 건너보듯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발등의 문제가 되었다. 아이를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배우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꼭 성미산에서가 아니더라도 나도 내 나름의 마을을 만들며 살아가야 하리라. <늦지 않았다>는 내게는 적어도 정말로 '적실한' 고민들을 다루고 있는 '늦지 않은' 책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창조하는 일은 우리 중년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 한 세상 살아낸 우리는 모두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가 별건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창조하는 사람이지."(234쪽에서)

"한 세상 살아낸 우리는 모두 아티스트"란 말의 울림이 넘 좋아서 이 페이퍼의 제목으로 할까.. 여러번 망설였다. ^^
나는 정말 우리 엄마가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만들고 뜨게질로 우리들의 옷을 만들때 엄마에게서는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엄마가 담그는 김치, 엄마가 만드는 식혜, 약밥, 찰밥, 각종 나물과 묵과 탕과 밑반찬들.. 그 귀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다 내가 배울 수 있을까.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나도 엄마같은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까.



<늦지 않았다>는 미탄님 개인의 고민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여정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고도 볼 수 있다.
중년이란 어떤 나이인지, 중년의 긍정성과 강점을 확인하고 스스로 자신감을 찾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해
중년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자세들(끊임없이 배울 것, 자신을 표현할 도구를 가질 것, 커뮤니티를 구성할 것)을 찾아낸다.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고찰도 있고, 오늘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실험들과 구체적인 사례들도 풍부하다.
글에서 인용하거나 소개한 책들중에는 '아, 나도 꼭 읽어야겠다'싶은 책도 많다. 
2년 가까이 그 모든 책과 사례들을 수고스럽게 읽고 정리한 성과를 나는 너무 쉽게 앉아서 얻는 것이 조금은 미안할 정도다.    
진정 '늦지 않기'위해 지금 아기가 잠든 이 밤에 내가 해야할 일들, 그것을 실행할 결심, 용기 같은 것들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일깨워준 미탄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저술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스스로에게 선물한 그녀는 앞으로 아마 더욱더 자기 책에 적합한 사례가 되어 갈 것이다. 
미탄님의 에필로그 한 꼭지와 이 책을 통해 얻게된 '읽고싶은 책' 리스트를 덧붙여 놓는다.     



인생이 참 길어졌습니다. 별별 시행착오를 다 겪었는데도 아직도 고쳐 살아볼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그런데 이 길어진 시간에 할 일이 없다면 그것 또한 고역이겠다 싶습니다... 이 금싸라기같은 시간을 나는 아주 실험적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하는 공동거주에 대한 실험,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 하는 '호모 루덴스'로서의 탐구,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가, 즉 50대에 전문가가 되기 위한 도전 같은 것들입니다... 나는 좋은 삶이란 끊임없이 창조하고 성장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라고 해서 반드시 대단할 것도 없고, 반찬 한 가지를 다르게 해보는 마음, 조금 다른 스타일에 대한 시도, 안 가본 길로 가보는 탐구심 같은 것도 다 여기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삶을 더 충만하게 살고자 하는 활기가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번져나가 세상을 완성하는 에너지가 되는 것! 이것이 나의 꿈입니다." (저자 에필로그 중에서)



* 읽고싶은 책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
왕멍의 '나는 학생이다'
알렌 B. 치넨의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
셰릴 자비스의 '결혼한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
대니얼 레빈슨의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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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위스퍼 - 행복한 엄마들의 아기 존중 육아법 베이비 위스퍼 1
트레이시 호그, 멜리다 블로우 지음, 노혜숙 옮김, 김수연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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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읽은 것은 똑순이가 생후 4개월 즈음이었습니다.
똑순이의 수면패턴이 최악(?)으로 치닫던 때였죠.

낮잠도 잘 안자고, 밤에도 그전에는 보통 2~3시간 정도 자고 깨던 녀석이 40분마다 깨서 울고..
그런 녀석을 재우기위해 밤마다 안고 돌아다니고, 수시로 젖을 먹이다보니
새댁도 거의 잠을 못자 정말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보통 잠 잘 못자고 보채던 아가들도 100일 지나면서부터는 잘 자서 '백일의 기적'이란 말도 있다는데
우리 똑순이는 오히려 100일 지나고부터 점점 더 잠자기가 어려워지니 어떡해야하나.. 정말 고민되더라구요.

게다가 다른 육아서들에서는 2~3개월쯤부터 혼자 누워 잠들도록 해서,
4개월쯤부터는 밤에 6~7시간은 깨지않고 혼자 잘 자게 할 수 있다며 수면 습관을 잘 들여보라는데
잠들때까지 안고 흔들거나, 졸려할 때마다 젖을 먹이는게 아니라
아가 혼자 누워서 자장가를 들으며 뒹굴뒹굴 낑낑 하다가 스르륵 잠들기..라는게
정말 가능한 일이지 늘 팔이 떨어져라 똑순이를 안아재우던 저에게는 꿈만 같은 얘기였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육아까페들에서 '아이 혼자 자는 습관들이기'에 관해 찾아보니
한 며칠 대차게 울리면 그 뒤론 혼자 잘 자게 된다는 얘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해야하는걸까.. 싶어 하루 정도 새댁도 도전해봤지만 
아이가 우는 10분은 1시간보다 길게 느껴졌습니다. 
엄마를 찾는듯한 똑순이의 울음 소리를 도저히 계속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다시 안아 얼르고 하다보니 실패... 도저히 이 방법으론 안되겠다 싶던 그때,

불현듯 육아선배 두 사람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고
두 사람 모두 제게 '베이비 위스퍼' 이 책과,
이 책의 내용을 기본으로 아기 잠투정 문제 해결법을 집중 탐구한 블로그 '아기와의 즐거운 속삭임' 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전히(10개월인 지금까지~) 똑순이는 혼자 잠은 못듭니다. ^^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속삭임 블로그를 보면서 새댁이 받았던 위안과 깨달음은 참 두고두고 고마운 것이었습니다.
(책 얘기만으로도 포스팅이 길어져서.. 블로그는 언제 따로 한번 더 소개할까봐요~;;)


우선, 이 책을 읽고 저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똑순이가 울어도 당황하지 않고, 훨씬 더 침착하게 똑순이를 대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저자가 제시한 'slow'란 원칙 덕분입니다.
아기가 울면 가슴부터 덜컥 내려앉던 초보엄마에게 '한템포 천천히' 란 주문은 매우 중요하고,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짧게 옮겨보면,

S 는 'stop' 입니다. 일단 멈추라는 거지요. 아기가 울면 바로 안아올리지 말고, 잠시 멈춰서서 심호흡을 가다듬으라는 것입니다. 운다고 죽는 아기는 없다는 다소 과장된 설명에 초보엄마는 적잖이 안심했습니다. 울음은 아기의 언어.. 아기는 지금 뭔가를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얘기를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기와 24시간 함께 지내는 저입니다.

L 은 'listen', 아기의 얘기를 들어보라는 것이죠. 무슨 얘기일까? 잘 듣고 파악해야합니다.

O 는 'observe' 관찰해봅니다. 아기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기의 신체언어와 주변 상황을 살펴보고..

W 는 'what's up'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이제 보고들은 것을 토대로 평가하고 대처하라는 것이죠. 

어찌보면 무척 단순하고, 또 그전부터도 그렇게 해왔던 것일수도 있는데 
잠시 한 호흡 멈추고 아기를 바라보는 것, '무슨 일이니, 얘야~'하고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
어떤 대응을 하든 좀더 천천히, 여유를 갖고 움직일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새댁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엄마의 목소리와 몸짓에서 배어나는 여유와 자신감, 부드러움 같은 것이 똑순이에게도 전해져 더 안심이 되었을것 같아요.

초보엄마의 정곡을 찔렀던 또 한가지!
베이비위스퍼(아기돌봄전문가, 보모라고 많이 부르지요^^)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저자에 따르면
건강한 아기가 울음으로 표현하는 것과 표현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새댁, 그 둘을 구분해놓은 표를 보고 뒤집어졌습니다. ^^
표현하는 것은 '배가 고프다, 피곤하다, 자극이 지나치다, 배가 아프다, 불편하다, 너무 덥다, 너무 춥다, 충분히 먹었다, 안아달라' 등 이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당신에게 화가 났다, 슬프다, 외롭다, 어둠이 무섭다, 지루하다, 내 침대가 싫다, 당신 생활을 망쳐놓겠다' 등 이라는 것입니다. 

이중 저는 '슬프다, 외롭다, 어둠이 무섭다'를 자주 똑순이 울음의 이유로 생각하곤 했었어요.
그런데 저자는 '슬프고, 외롭고, 어둠을 무서워하는건 바로 당신'이라고 얘기합니다.
엄마나 아빠는 자기 입장에서 아기가 우는 이유나 문제점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정말 저는 스스로에게 느끼는 측은함, 힘겨움, 외로움, 우울함 같은 것을 
똑순이의 감정처럼 자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구 우리 애기 많이 힘들지.. 혼자 자고 있어서 외로웠지..'하며 한번 안으면 잘 내려놓질 못했던 것입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깔깔 웃기도 하고, 스스로를 한번 더 안쓰러워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론 더 많이 씩씩해지게 되었습니다. 

EASY 라는 생활리듬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똑순이와 제 생활에 리듬이 없진 않았겠지만 제가 그걸 의식하고,
또 비교적 일정하게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게 된 결과, 갓난아기와 엄마의 생활에 모두 훨씬 더 안정감이 생겼습니다.

똑순이의 EASY를 찬찬히 관찰해보기 전에 제가 파악하고 있던 유일한 리듬은 
똑순이는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난다는 것이었어요. ^^
농담삼아 '농민의 아들'이라고 말했지만, 그 리듬 하나만으로도 하루를 버티는 큰 힘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잘 살펴보고, 또 만들려고 노력하니 똑순이도 어렵지 않게 3시간 리듬을 갖게 되었어요.
규칙적으로 먹고(eating), 놀고(acting), 자고(sleeping), 똑순이가 잘때 새댁은 잠깐이라도 내 시간을 갖는(you, 엄마시간)
EASY 리듬이 매번 정확히 지켜지는건 아니고, 아이가 성장하면서 각 시간이 조금씩 늘고, 줄고하는 차이가 생겼지만
그래도 아이의 기본적인 생활 패턴을 단순화해서 파악하게되자 엄마의 심리적인 스트레스는 한결 줄었습니다.  
엄마의 여유나 밝은 기분은 아기에게도 잘 전해지겠지요~

쓰다보니 무척 길어졌어요.
아기 엄마들끼리 만나면 수다가 정말 많은데.. 새댁은 블로그에 그 수다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베이비 위스퍼'의 핵심을 꼽으라면 '아기 존중'과 '아기 관찰'이 될 것 같습니다. 
아기 주위에 '존중의 테두리'라는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누구라도 그 선을 넘어 아기에게 다가갈때는
누군가의 방문을 노크하고 양해를 구해 들어가듯 아기에게 얘기를 하라는 것도 참 신선했습니다. 
아기라고 '못 알아듣겠지', '뭘 알겠어'하고 마치 못 듣고, 못 보는, 감정없는 존재처럼 대하지 말라는 것이죠.   

유용한 이야기들이 참 많이 담겨있지만 여기서 다 소개할 순 없고요..
이 책을 감수한 아기발달연구소 김수연 소장님의 '향후 20년간 이보다 훌륭한 육아책이 나올 순 없을 것'이란 평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해야겠습니다.

물론 책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아이에게 다 들어맞는 얘긴 아니라는 것, 
이 책과 다른 지식이나 정보도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
저자의 경험과 판단은 훌륭한 참고가 되지만
우리 아이에 대한 가장 좋은 판단은 역시 그 엄마아빠의 몫이라는 것 등을 사족으로 남깁니다.

아무튼 '베이비 위스퍼'는 주변에 누가 임신했다고 하면 새댁이 첫번째로 권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계신 분들(출산하고나면 한동안 정신없으므로 8~9개월쯤 꼭 읽으시길!!),
저처럼 첫아기 낳고 허둥지둥 안절부절하던 갓난아기 엄마께 권합니다. (안 읽어보셨다면 둘째 엄마들께도 물론 권합니다^^)
남편분들도 같이 읽으셔야하는건 필수겠지요~~!

행복한 엄마아빠의 아기존중 육아를 위해, 에고.. 오늘도 모두모두 화이팅입니다~^.^



* 앗. 참고로 이 책은 '베이비 위스퍼'1권(신생아부터 첫돌까지) 이고요, 2권, 3권(골드, 실전편)도 있습니다.
선배맘들의 권유는 1권부터 읽을 것, 육아의 원칙이 담겨있는 1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고요,
당장 실전적용이 급해 3권부터 보는 것은 그닥 권하지 않지만 꼭 필요하면 그렇게 하되, 책대로 안된다고 아가도 괴롭히고, 엄마도 넘 괴로워말라는 당부가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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