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에 가고 싶다
이재호 지음, 김태식 사진 / CPN(씨피엔)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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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표지가 반듯한 느낌을 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표지를 들춰내면 화엄사의 종소리가 들리는 듯, 스님의 염불소리가 들리는 듯, 전국 팔도의 알지도 못하는 그 절들 어딘가를 걷는 기분으로 시를 읽게 된다.
괜스레 여행이 떠나고 싶어진다.
고즈넉한 절간의 고요함 속에도 있어보고 싶고 절을 품은 숲 속을 말없이 걸어보고도 싶다.
바쁜 도시생활에, 커가는 아이들 보며 요즘은 인생의 속도가 삶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 밖은 2배속, 3배속인데 나는 늘어진 테이프 같다.
그래서 이 시들이 나를 더욱 위로했는지 모른다.
 


사진에도 한참, 시에도 한참 눈길이 따로따로 머무른다.
화엄사를 가 본 적은 없지만 뭔가 정적 속에 힘이 느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달빛을 잡아다 차 한잔하려 한다는 시 문구가 화엄사와 잘도 어울린다.
화엄사 시들은 외롭다. 그리고 서글픈 옛 시조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유배된 어느 선비의 글처럼 ~
 




시라기보다는 수필처럼 느껴진다.
나는 금강 스님을 만난 적은 없지만 뭔가 글에서 그 사람에 대한 향기가 나는 듯하다.
꽃이라 꽃 같고, 풀이라 풀 같아서 스님을 생각하면 입술 동그랗게 미소가 머금어진다는 스님을 향한 저자의 마음이 설레는 짝사랑의 그것과 닮은 것 같다.
 



사진을 보고 그곳을 상상한다.
저자가 이곳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시를 썼을까 궁금해졌다가 사진을 보며 이해한다.
그리고 나도 보광사 토방에 앉아 독경소리를 들으며 가을을 바라보고 싶다.
나이가 드니 고즈넉함이 좋고 조용함이 좋다.
불교인이 아니지만 절이 좋은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일까?
 


절을 찾는 그의 시에는 외로움이 묻어나는데 그리고 유독 사랑에 대한 시가 많다.
외로움과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니던가?
쉽지 않은 단어와 쉽지 않은 내용~
그의 시는 쉽사리 읽혀지지가 않는다. 꼭꼭 씹고 또 곱씹어 본다.
그래야 머리가 이해를 하고 마음이 이해를 한다.
 


사진을 보자마자 마음이 저절로 간다.
주제별로 비슷한 제목의 시들을 이어서 읽다 보면 이 시인이 그 주제에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를 살짝쿵 알 것도 같다.
어쩌면 내 멋대로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뭐 어떠랴~
시는 원래 읽는 사람의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는 거 아닌가? 하고 되지도 않는 우기기를 해본다.^^
비 오는 날 구멍 난 신발 밑창으로 비가 들어오는 것을 가을이 스미고 있다는 표현이 그저 좋았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시인은 정말로 시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햇살을 쓰고 사랑을 쓰고 별의 선율을 쓰고 숨소리를 쓰고 내 가슴을, 단지 사람을 쓴다고 했다. 그것이 쉬운 일인가?
그는 시인이다. 그가 비록 부정을 한다 해도~~
 



내가 바라는 이생의 마지막 날은 어떤 날일까?
시인의 마지막 날은 참으로 시적이군.
반백의 머리카락 내 가슴에 비처럼 날리는 날.
그런 날은 어떤 날일까 궁금도 하다.
 

전체적으로 고즈넉한 절을 닮은 시들이었다.

꽃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외로움에 차있는 저자의 글들이 때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뭔가 깊이가 느껴진다.

순간순간  저자에게 시상이 떠오른 그 순간에 시를 쓴 느낌이 들 정도로 현장감이 느껴지고 또 어떤 시에서는 지독한 고독감과 우울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이면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고픈 마음이 보여지기도 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어 이 분이 어떤 걸 좋아하는구나 느껴지기도 했다.

어려워서 천천히 읽어야 하는 시들도 있었고, 가벼운 사랑 이야기 느낌도 있었고, 옛 선비가 쓴 시조 같은 느낌도 있었다.

오래간만에 feel 충만한 시를 읽으며 절에도 가고 가을도 가고 봄에도 다녀왔다.

봄이 오면 진짜 절에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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