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다려 ㅣ 북멘토 가치동화 26
박현숙 지음, 김은주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7년 12월
평점 :
누구나에게 기다림은 한 번쯤은 경험해 본 시간들이죠.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거나, 초조하게 어떤 결과를 기다리기도 하지요. 기다리는 시간 동안 행복할 수도, 불안할 수도 있도 있을 테고,
기다리는 시간이 죽을 만큼 싫을 수도 있겠죠.
'기다려'라는 제목에서
우리는 기다림의 다양한 감정들을 끄집어 낼 수 있을 거예요.
처음엔
하나의 이야기로 된 책인 줄 알았는데 5개의 감동적인 가족 이야기가 담겨 있더군요.
짧지만 여운 가득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놀라운 것은 박현숙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이라는 점이에요.
이 작가의 수상한 시리즈 참 좋아했는데 역시나 단편집도 좋네요.
이 책 제목이 된
<기다려>라는 이야기랍니다.
아파서 요양원에 가 있는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보는 미호의 일요일이 그려지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아빠는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보러 가고 집에 남겨진 동생 미솔이는 일요일이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똥이 마렵다, 배고프다 하면서 미호를 괴롭게 하지요.
하지만 누구보다
똘똘했던 미솔이가 엄마가 아프고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퇴행하고 있음을 알기에 저는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어린데도 부모 노릇을 해야 하는
미호도 안타깝고 사랑을 받아도 모자를 나이에 엄마의 부재로 똘똘함을 잃은 미솔이도 안타까운 상황이네요.
엄마는 그래도 요양원에서 매일 미호에게 메일을 보냅니다.
어느 날 아빠의 생일을 앞두고 미호에게 아빠의 낡은 옷에 가슴 아픈 엄마는 생일 선물로 아빠의
티셔츠를 사라는 엄마의 부탁을 받게 되는데요.
엄마의 돈으로 미경이의
생일 선물로 비싼 핀을 먼저 사버린 미호는 아빠의 티셔츠를 살 돈이 부족해 버리게 되지요. 결국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엄마는 몸이 조금 좋아져 집으로 돌아와 혼내준다고
미호에게 기다리라고 했지만 그 약속 며칠 후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수술실로 들어가게 되고 맙니다. 미호는 약속을 어기는 걸 제일 싫어하는
엄마니까 그 약속도 꼭 지킬 거라고 믿으며 미경이 선물 사느라 아빠의 선물을 사지 못했던 것에 대해 엄마한테 꼭 혼나게 되기를 바라게
되네요.
티셔츠 사건 때문에 한동안은 엄마가 요양원에 더 있기를 바랐지만
지금은 엄마가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도 좋으니 자신에게 꼭 돌아오기를 바라는 미호를 보면서 엄마를 향한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한지 느낄 수
있네요.
이런 동화를 읽을 때마다 정말 건강해서 아이들 마음 아프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커집니다.
미호의 엄마는 분명 아이들에게 다시
건강하게 돌아오겠죠? 엄마가 건강히 돌아와 거짓말하고 엄마 돈을 함부로 쓴 미호를 혼내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동화 다섯 편 모두 꼭 기다림을 주제로 한 건 아니겠지만
제가 볼 때 모두 비슷하게 가족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기다림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다려> 뿐만 아니라 <먼 길>이라는 동화도 빗속에서 아파할 눈먼 할머니를
찾아다니던 죄송스러운 손녀의 마음을 담았고, <불량 과자>도 화재로 화상을 입고 삶의 의욕, 마음의 문까지 닫아버린 소방관이던 아빠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딸아이의 마음을 담았고 <마지막 손님>도 저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이발관이라는 장소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이 필요했다는 기다림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거든요. 또 가장 마음이 아팠던 마지막 동화 <운동화>는 자신
때문에 남한을 향해 국경을 넘다 다시 잡혀가 생사도 모르는 부모를 기다리는 성식이의 기다림이 낡은 운동화를 통해 가슴 아프게 그려지고
있답니다.
이런 성식이의 마음도 모르고 친구들은 성식이의 말투를 놀리고
북한의 안타까운 생활을 웃음거리로 삼지요. 우리는 왜 늘 약자 앞에서 유치한 강자 놀이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이들은 때로는 어른만큼이나 잔인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착한 본성이 꼭 들어있다고 전
생각해요.
처음에 동진이도 성식이를 못살게 굴고 놀리지만 운동화를 멀리
던져버린 장본인으로 죄책감이 컸겠지요. 그 운동화가 성식이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았으니까요.
소희의 도움으로 운동화를 찾겠다고 그림을 그려 학교에
붙이자 전교생들이 걱정해주고 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성식이에게 전해줍니다. 그것만으로도 성식이는 마음이 따뜻해졌을 것
같아요.
하지만 더 큰 감동은 동진이가
만들어주네요.
동진이는 하수구에 빠진 운동화를 건져내 운동화 세탁소에
맡겨 말끔하게 세탁을 하도록 해놓았군요. 본인이 져지른 일을 그래도 모른척하지 않는 걸 보면 성식이를 놀려대던 동진이도 꼭 나쁜 아이는 아니었나
봅니다.
다만 꼭 성식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둘이서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또 성식이가 반대편 운동화도 꼭
세탁해서, 낡았어도 깨끗한 신발을 신고 엄마 아빠를 기다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꼭 만남이 있는 해피엔딩이기를
바래봅니다.
역시 박현숙 작가의 이야기답게 다섯 동화 모두
감동적이면서 상투적이지 않고 재미났어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코코>라는 애니메이션을 아이들과 보고 왔거든요. 가족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감동적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고 돌아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역시나 가족의 소중함을 또 느끼게 됩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힘을 주는 것도, 살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살아야 할 힘을 주는 것도,
가족이라는 것을 이 책이 감동을 담아 전해주네요.
이야기는 길고 짧은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긴 이야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큰 주제를 담을 수 있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박현숙 작가님의 이 책이 첫 단편 소설집이라고 하셨는데 이제 단편집 많이 쓰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