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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고백 - 상
김상순 지음 / 지식과감성# / 2017년 6월
평점 :
한동안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 책 읽고 한국사
책 읽고 육아서 읽느라 내 만족을 위한 소설책을 읽는 건 시간적 사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나도 모르게 갈증이 찾아온다. 온전히 나의 갈증을 채워줄 책 한 권 맘 편히 읽고
싶다는 그런 순간 쓱 나타난 책이 바로 <한 여름밤의 고백>이었다. 사실 표지를 보고 뷰티 관련 책인가 싶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표지를 다른 방향으로 정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야기의 시작은 호주에서 뉴스 에이전시를 하는 평범하고
손녀를 끔찍이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처음엔 이 작가의 진짜 삶을 서술한 줄 알았을 정도로 손녀에 대한 사랑을 온갖 미사여구로
그려낸다. 사실 사랑은 여러 종류가 있기는 하지만 손녀에 대한 순수하고 조건 없는 사랑과 유끼꼬에 대한 남자의 사랑은 뭔가 완벽한 대비를 이루는
듯 보였다.
유끼꼬와의 첫 만남에서는 뭔가 스스로 정당화하려는 한 남자의
속내가 풋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자신의 팔자가 그동안 별 볼 일
없다고 여겼던 남자가 묘령의 여인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마치 인생의 큰 행운으로 여기며 혼자서 설레여하는 모습이 그래도 적나라해서, 솔직해서
괜찮았다.
중년 남자의 솔직한 고백들이 때로는 썩 기분을 상하게도
했지만 어쩌면 이 마음이 내면 깊숙한 거친 본능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처음 만난 여자를 두고 솟구치는 탐욕과 인간적 이성 사이에서 자문자답하는 주인공 남자에 대해 다른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이 주인공이 어떻게 흘러갈까 호기심이 들어 자꾸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의 젊은 시절을 유끼꼬에게 털어놓는 모습을 읽어본다.
역시나 그는 설명이 길다. 이 사람을 이렇게 표현하고픈 작가의 의도인가? 아니면 작가의 표현법인가? 중간중간 사진들이 책의 한 공간을 차지한다.
내용과 유사한 면이 있는 사진들은 나름 유치하지만 재미있다.
그의 젊은
시절의 첫 경험을 읽으면서 할아버지가 된 지금 유끼꼬에게 품는 감정이 그래도 인간적이란 생각도 든다. 남자니까. 그러나 매력적인 주인공은
아니다.
그는 곳곳에서 모순적인 행동과 생각을
보인다.
자기가 그토록 탐하려 했던, 속으로 여러 번 간음했던 그녀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믿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그렇다.
청순한 유끼꼬가 금지된 사랑을 했다는 것은 놀라워하면서 본인은 손녀를 보러 가는 행복은 저만치 잊고
그녀와 있으면서 그녀를 안고 싶어 혈안이 되고 자신의 부인은 한 번도 떠올리지 않는 모순 가득한 모습을 보인다는 게 참 씁쓸했다. 독자가 아닌
부인의 입장이 되어서 그런가?^^
한편 유끼꼬의 스토리를 들으면 여자로서의, 아내로서의
입장에서 이해도 간다.
나를 돌아볼 틈도 없이 바쁘게 살 때는 안정적인
것을 바라게 되지만 또 그 안정이 찾아오면 우리는 현실에 권태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유끼꼬는 여행으로 찾은 시드니에서 과감한 일탈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일탈은 그녀를 파멸의
초입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는데 그 순간 주인공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기가 막힌 타이밍!
로또를
판매하는 남자는 여러 상황에서 로또를 빗대어 인생을 논하고 인간의 내면을 논한다.
그리고 이 둘은 책 상권에서 내내 서로를 속으로만 탐하다 끝내 욕심을 채우지는
못한다.
우리는 이 남자의 속내를 훤히 알고 있지만 결국 이 남자는
끝자락에서 신사인 척 돌아선다.
하권의 시작도 이 남자 별반 다르지 않다. 눈앞에서 낯선
여자를 탐할 기회를 놓치고 허탈하게 돌아온 가게에서 또 새로운 여자인 안나를 만나게 된다. 유끼꼬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그는 안나에게도
같은 마음을 품으며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진하게 느낀다.
하지만 이
여인은 자신의 삶에 대한 푸념을 늘여놓고 남자를 혼란에 빠뜨리다가 끝내 쉽게 날아가 버렸다. 이 남자는 오늘 엄청나게 헛물만 켜고 독자에겐
남자의 동물적 본능을 탈탈탈 털어 보인다.
나는 그가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더 이상 흔들리지 말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목메지 말고 현실로 돌아가길...
하지만 그는 여전히 유끼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참 한심한 사람. 인간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굴지만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는, 자신의 마음이 흐르는 방향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이것이 신사다운 거라고 다독이는 사람.
솔직히 좀 짜증이 났다. 구구절절. 모든 것이 구구절절이다.
지긋한 나이로 인생을 어느 정도 산 멋스러운 할아버지, 현자만큼이나
현명함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살아온 세월이 있는 만큼 든든하고 푸근한 할아버지를 바랐지만 너무 밑바닥까지 속내를
드러내 버린다. 멋있는 주인공으로 보이기는 애당초 틀려먹었다.
그나마
남자의 본능적 솔직함은 알려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주인공은 하루 만에
정말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에게 한 여름밤의 하루가 참 길다. 유끼꼬를 우연히 만나고 그녀를 돕고 그녀와 헤어지며 후회를
하는 과정이 참으로 길었다.
그의 하루엔 세 명의 여자가 있었고
비록 그 여자들을 한 명도 탐할 수 없었지만 그녀들을 탐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자아성찰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비록 서툴고 장황하고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흥미로웠고 솔직했지만 조금은
진부한 표현과 조금은 늘어져버린 스타일이라 아쉬웠다.
한 권으로
압축했다면 훨씬 긴장감 있고 만족스러웠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