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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ㅣ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 6
장 자크 루소 원작, 문경자 지음 / 생각정거장 / 2017년 7월
평점 :
이 나이 되도록 내가 고전이라고 하는 책을 얼마나 읽었나
싶어요.
아이들에게는 고전이 좋다고 하니 많이 읽기를 권하면서 엄마인
저는 사다 책장에 끼워놓는 역할만 하고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좀 더 고전을 많이 읽었더라면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
에밀>을 읽고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더군요.
말초적 재미를
주는 책을 읽었던 시간들을 고전에 쏟았다면 좀 더 괜찮은 나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아닌 후회가 되기도 하고
~^^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는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고전 내용을 쉽게
깨칠 수 있도록 원전을 새롭게 풀어 전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원전 그대로의 내용은 아닌 거죠. 그런데 원전 <에밀>이 약
700장에 달한다고 해요. 우리가 그 700장 가까이 되는 심오한 고전을 읽기가 사실 수월치 않지요.
이 책으로 먼저 고전의 깊은 맛을 살짝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에밀>은 루소가 에밀이라는 가상의 아이를
설정하고 교육하는 내용으로, 인간의 본성을 훼손하지 않은 채 올바른 시민을 육성하는 것이 교육의 근본적 목표임을 설파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교육론뿐만 아니라 인간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불후의
고전이라고 하는데요. 목차만 봐도 요즘 나오는 교육서와는 다른 느낌이 확연하게 듭니다.
사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루소가 자신의 자식을 고아원에 버리고 난 후 이 책을 썼다는 글을 보고 조금
놀라웠어요.
경험이 없는 그가 이런 책을 썼다는 사실도 그랬지만
자녀교육이란 어쩌면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면 본질이라는 것이 더 잘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거기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섬세한 일이고, 하나의 제대로 된 인간을 키워내는 놀라운 일이며
그래서 쉬운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차례를 보며 드는 생각이었답니다.



"모든 것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완전하나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변질되고 만다."
이 첫 문장이 저에겐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오더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 그
자체만으로도 그렇지요. 문명이 발달해 왔지만 그러면서 자연은 변질되고 부서져왔고 그 이전에 가지고 있던 자연스러움 들을 다 빼앗기고 있잖아요.
인간도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요. 인간의 선한 본성을 믿는 루소의 눈에는 인간의 타락한 모습들은 그 인간을 길러낸 인간 때문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었겠어요.
루소는 생명체로서 자연인은 생존을 위한 욕구와 그것을
만족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상태에서 그 둘은 일치한다고 했고 이것이 인간의 자연적 선함이라고 했어요.
욕구를 많이 갖지 않고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면 본질적으로 선량하게 된다는 거죠. 허나
인간은 자연 그대로를 원하지 않으며 기존 사회에 맞게 길들이고 변형시키려 들며, 인간의 역사가 사회를 이루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오면서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고 왜곡시켜왔기 때문에 그 자연적 선함은 변질되었다고 보았어요.
당시 그의 이론은 비판받기에 충분했는데 한창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던 시기였기에 학문과 예술이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주장하는 그의 이론이 받아들여지기엔 어려웠겠지요.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보고 요즘 아이들의 삶에 비춰보면 지나친 교육이 아이들의 선함을 파괴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인간의
문명과 시대적 발달이 인간의 본성을 더 퇴보시킨 것은 맞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혼란스러울 때가 참 많았죠. 내가 키우는
이 방식이 맞는 것인가,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 되고, 내가 잘하고 있나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일 때도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참 많은
육아서를 읽었던 것 같아요.
때로는 다른 사람의 육아법에서 내 아이에게는
맞지도 않는 방법을 가져다 써보기도 하고 오히려 모르느니만 못한 교육법으로 아이를 힘들게 하기도 했었죠. 늘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는데 어쩌면
아이에 대한 본질적인 것에 대한 성찰 없이 오직 사회가 만들어둔 이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아이를 만들려 하지는 않았나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이의 어린 시절도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는데 루소의 말처럼
설익은 열매를 맺도록 밀어붙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구요.
때로는 역설적이기도 하고 모순인 것 같기도 하고 시대에
맞지 않게 올드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루소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것은 제가 엄마이고 아이를 키워봤기에 느낄 수 있는 공감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루소의 주장에 무조건적 공감은
어렵지 않았을까 싶네요.
사실 책을 읽으면서 불편한 감정이 드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어요.
구시대적 발상이기도 하고, 이것이 고전이라 해도 독자 입장에서
너무나 원론적인, 비경험적인 내용이란 생각이 들면서 반감이 생기는 부분도 분명 있더라구요.
하지만 그럼에도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 있기에 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아이를 잘 가르치려면 아이와 결코 이치를 따지지 말라는 말, 아이가
불쾌하게 여기는 일에 이치를 끌어대면 아이는 이치를 지겨운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아마도 뭔가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막아야 할 때 어른들의
이치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했던 경험들이 있어서일 거예요.
어쩌면 아이는
그 말들을 이해한 게 아니라 지겨워서 포기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또한 아이가 누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미래의 행복을 준비하기 위해 현재의 불행에 눈 감고 있는
것은 결코 아이를 위함이 아니라는 말도 공감이 되네요. 저 역시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유년의 즐거움을 주고 싶은데 현실은 그게 참
어렵네요.
그의 이론은 꽤나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100% 그러한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요.
한편으로는 전혀 그런 방향으로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깨달음을 줄 때도 있었어요.
바로 도덕 교육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도덕교육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때 이른 도덕 교육은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법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더군요.
교육이란 어찌 되었든 적기 교육이 중요하다 싶네요.^^
이 책은 루소의 <에밀>을 이해하기 쉽고 간결하게 정리한 책이라서 고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저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어요.
<에밀>원전을
읽으라고 했다면 이렇게 쉽게 읽기 어려웠겠죠?
제목 그대로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에밀> 이랍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소 구시대적
발상이 아닌가 싶은 부분도 있고, 너무 극단적인 사고방식이란 생각이 드는 부분도 분명 있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고전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가 지적하고 우려하는 부분들은 현대인들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들이고 지금 과잉되는 것들에 대해 시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답니다.
결국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것들은 시대를 거슬러 다 똑같구나 싶더군요.
<에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아이일 때는 가장 자연적으로, 아이답게 놀고 생활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이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주는 것이구나 하는 것이었구요. 그것이 올바른 어른이 되는 기초가 되는구나 하는
거였어요.
어릴 때부터 아이 머릿속에 많은 걸 넣어주려고 하고, 가르치려
하고, 이념적인 부분을 알려주려고 하는 부자연스러운 것들이 오히려 아이들을 불완전하게 만들고 있고 불편하게 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네요. 에밀은 때이른 지나친 교육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었나 봅니다.
에밀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되겠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