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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 공짜는 없더라 ㅣ 햇살어린이 25
윤기현 지음, 정가애 그림 / 현북스 / 2015년 1월
평점 :

제가 개인적으로 현북스의 햇살어린이 시리즈를 참 좋아라 합니다.
요즘 동화들처럼 아이들 입맛에 맞는 내용은 아닐지 모르지만 진한 느낌이 들고, 추억을 끄집어 내는 내용들, 가슴 찡하게, 때로는 코끝을 찡하게 하는 내용들이 많아서 참 좋더라구요.
한권에서 여러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장점도 있구요.
그 내용 하나하나가 참 곱디 고운 이야기들....
<세상일 공짜는 없더라>역시 잔잔한 감동이 있는 동화집이랍니다.

총 9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하나하나 다 재미있어요.
감동도 있고, 교훈도 있고, 유쾌함도 있고 그렇습니다.
하나의 긴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짧은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여있으니 골라보는 재미도 있고, 좋은 내용만 다시 읽어보기도 수월하다지요.

그 중에 두개의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해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우리의 엄마들 세대가 그러했고,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남아있기에 읽으면서 재미있으면서도 기분이 좀 그렇더라구요.
<뒤웅박 팔자>
왠지 제목에서 어떤 느낌의 이야기일지 감이 오시죠?
자신의 이름은 사라지고 택호로 불리거나, 아이들 엄마로 불리거나 하는 ....그것이 영 싫은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랍니다. 사실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키우면서 내 이름으로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지요.
아이들의 엄마로서 불리는 것이 다반사...그래서 더 공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어머니는 이제 서른 다섯인데 해남댁이라고 불리니 열살은 더 늙어 버린 느낌이라고 해요.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 고등학교도 꽤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군청에서 근무하다가 만난 아버지는 복지 농촌, 기계화 영농을 꿈꾸는 젊은 농군이었어요. 아버지의 꿈에 부푼 열정이 마음에 들어 결혼을 했는데요.
농촌일이 손에 설어 힘들었으나 열심히 살았건만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성공한 사람으로 떠받들여지면서 자기 과시를 하는데 어머니 눈에는 영 못마땅했대요. 그것이 마치 열등의식처럼 느껴져서 말이죠.
어느날 집으로 찾아온 군청 지도 계장은 하필 학교 다닐때 어머니를 귀찮도록 쫓아다녔던 창식이였어요.
아버지는 그에게 굽신굽신 거렸고 어머니는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죠.

그들이 돌아가고 난 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농사짓는 사람만큼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이 어디있냐며 그들에게 당당해지라고 말합니다.
마누라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는 하지만 남편이 똑똑하고 당당하면 마누라도 똑똑하고 당당한 것이오, 당신이 농사짓는 것을 비굴해 하면 앞으로 같이 살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대요.
택호에 길들여진 시골 아낙네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사는 여성 농민으로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어머니가 참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왠지 제 어깨가 다 펴지는 듯 속이 시원한 이야기였어요.
아버지가 가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머니의 멋진 반란이 아버지의 변화로 이어졌겠죠?

<녹두꽃 핀 계절>은 잔잔한 감동이 있는 이야기랍니다.
저는 아이들과 국악공연을 시간이 되는대로 보는 편이에요.
어릴 때는 몰랐는데 국악이 주는 그 흥겨움과 가슴울림이 참 좋더라구요. 왜 어른들이 국악을 들으면 저절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게 되는지 슬슬 이해가 되더라구요.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겠지요?^^
그 국악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이 이야기가 더 인상깊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도 국악을 많이 접한 편이라 이 동화를 좋아했답니다.
이 책에는 귀틀양반이란 할아버지가 등장해요. 나이를 물어도 나이같은건 계산할 필요가 없다며 자신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괴짜시랍니다. 할아버지는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시는지 마당의 잡초도 뽑지 않아 집은 도깨비가 나올 정도구요. 전기를 쓰지 않아 저녁이면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귀틀 양반을 도깨비 할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머리를 길러 상투를 틀어 올렸는데 그 모습이 아이들이 보기에는 도깨비 뿔처럼 보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알고보니 도깨비 할아버지가 풍물 남도 가락 기능 보유자라고 하네요.

아이들은 호기심에 도깨비 할아버지 댁으로 가봅니다.
도깨비 할아버지 옆에는 할아버지의 풍물을 배우고자 하는 광수 형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일류대를 졸업하고 교수로 있다가 내려왔다고 하네요. 도깨비 할아버지가 광수 형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집니다.
우리 가락에는 혼이 들어있고, 그 혼은 짚세기에도 담겨 있다는 말과 우리의 가락은 익혀서 기술로 나오는 것이 아닌 인심 하나라도 살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단순히 겉모습과 삶의 방식이 괴짜스럽다고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기이하게 여겼지만 정말 남다른 분이었네요.
광수 형이 말해주는 도깨비 할아버지의 과거는 더 남달랐어요.
겉모습이 괴이해서 피했던 아이들이 도깨비 할아버지가 우리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힘썼는지를 알게 되니 할아버지가 남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통이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접하고 지켜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광수 형의 말에 우리의 전통 문화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물론 동네 어른들의 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아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답니다.
60년 할아버지의 소원이 아이들의 풍물 가락에 새롭게 살아나고 있었답니다.
소시민들의 삶속의 잔잔한 감동이 담겨있는 여러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점점 이러한 작은 감동을 느낄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어요.
뭔가 점점 무기력해지고 이기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현 시대에 이런 작은 감동을 주는 책 한권이 그저 고맙기도 했네요.
제목처럼 세상을 살아보니 절대 공짜는 없더라구요.
공짜처럼 느껴질뿐이지 늘 그에 대한 댓가는 어떤 형태로든 생기기 마련이라는 걸 이제 막 조금씩 알것 같답니다.
거저 얻어지는 것도 없듯이 무언가 노력을 하고 희생을 하면 그에 대한 댓가 역시 꼭 주어진다는 것...
이 책이 다시 한번 알려주네요.
투박하지만 진실되고 세련되지는 않지만 감동이 가득한 책 한권을 만나 참 기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