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시들을 읽으면서 새콤시큼달콤씁쓸한 맛이 나는구나
느꼈어요.
여동생, 언니, 엄마, 할머니, 각각 다른 나이의 여자들의
오묘한 감정들을 시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여우들의
세계>랍니다.
여자들은 다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시들이라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제목도 하나하나 읽어보면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지는 것들이
많더라구요.
<열두 살 여우, 예순일곱 살 여우, 여우가 아니라
곰>이라는 큰 제목도 흥미롭죠.
열두 살 여자아이와 예순일곱 살
할머니의 감정의 차이도 느껴볼 수 있어 재미있어요.
열두 살, 사춘기가 시작되고 외모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 그래서 그 변덕 심한 여자아이의 마음이 담겨있는 시 <국가대표급>은 딸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더 공감이 되고 미소가
지어지네요.
'하루에도 열두 번'이라는 문구가 아주 공감 백 배랍니다.
<그날을 위해>는 독립을 꿈꾸는 소녀의 마음이 담겨있지요.
엄마 아빠의 품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를 모르는 철없는 소녀의 마음이지만, 저 역시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또 이해가 되는
내용이에요.
'엄마 아빠 없이도 잘 살 테니까
'?
흥! 그래 잘 살아봐라~~ 이 세상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데..^^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은 왔다 갔다 하고 엄마 아빠의
그늘은 얼른 벗어나고 싶어도 그 속내는 풋풋한 소녀임을 보여주는 <토마토와 파인애플>, <2차
성징>이에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 앞에서는 좋아하는 티를
숨기려 해도 좋아하는 건 감출 수 없다는 사실!
달복이만 보면 얼굴이
뜨끈해지지만 파인애플처럼 까칠하게 굴면서 새콤달콤 샛노란 마음을 숨기려 애쓰는 열두 살 소녀!
내 딸에게도 이런 날이 언젠간 오겠죠?
그렇게 만들어줄 남자친구가 누가 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요 시도 너무 재미있어요.
남자가 여자를 꼬시는 방법은 단순하고 촌스럽지만 순수하기도 합니다. 따끈한 커피 한 잔, 예고치 않은
꽃다발, 몰래 넣어둔 초콜릿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여자들은 또 그것에 홀라당 넘어가지요.
그것을 건네는 마음을 아니까!^^
여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아주 사소하지만 진심이 담긴 거라는 걸 아는 남자나 또 이런 걸 할 수 있기도
하지요.
<상상력 결핍>은
씁쓸합니다.
엄마도 다 경험했던 건데, 엄마도 다 그 시절을 지나왔는데
왜 엄마가 되면 본인이 느꼈던 감정과 기억은 다 지워버리고 잊어버리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 억지로 하면 될 것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고 싶어지나
봐요.
한 번씩 휘청 주저앉더라도 영양제 먹으면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의 병을 낫게 해줄 약은 어디에도 없는 걸까요?
어릴 때는 그 자체로 빛나고 예쁘지만 나이가 들면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게 된다고 하죠.
그래서 나이가 들면
'곱다'라고 하는 게 아닐까요?
저도 예쁜 할머니보다는 곱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인생이 고달프고 고생을 하더라도 마음을 곱게
써서 그 고운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곱게 늙으려면 주름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죠. 그
주름살 하나하나에 내 인생이 들어있으니까요.
나이가 들어도 여자이고
싶다고 의학의 기술을 빌어 얼굴을 팽팽하게 필수는 있겠지만 저는 자연스럽게 나이를 얼굴에 담아 가는 게 좋아요.
내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곱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요.
주름살을 내 인생의 압축파일이라고 표현한 건 너무 신선하지
않나요?
<한 해가 다르게>는 열두 살 소녀와 예순일곱의
할머니를 비유하면서, 할머니의 딸이자 소녀의 엄마로서 중간자적 입장에서 뭔가 찡한 느낌이 들어요.
엄마는 점점 나이가 들어 내 곁을 떠나려 하고, 딸은 점점 커서 내 품을 떠나려
하니까요.
있을 때 더 잘하자는 마음이
드네요.
결국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만나고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열두 살은 열두 살이 누려야 할 행복의 조건이
있고, 예순일곱 살은 예순일곱 살이 누려야 할 행복의 조건이 있겠지요.
그 조건이 다를 뿐이지 우리는 늘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행복의 가장 큰 조건은 역시 '사랑'
이겠지요.
멀리 여행을 가지 않아도 가족들이 함께 하는
<방콕리조트>를 보면 그게 행복이라는 걸 알겠고, 여우 같은 엄마와 곰 같은 아빠가 만나도 그게 사랑이기에 행복할 수 있는
거니까요.
시집을 읽다 보면 짧지만 그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구나 싶어요.
같은 시를 읽어도 독자에 따라 수만 가지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구요.
사실 저도 시를 무슨 재미로 읽지?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시집을 몇 권 읽어보니 시가 주는 즐거움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시는
짧지만 그 짧은 시에 압축된 저자의 마음을 생각해보고 상상해보면 소설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소녀의 풋풋하지만 당돌한 마음에 미소 짓고, 할머니의 살아온
인생과 이제는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모습에 코끝 찡해지게 만드는 <여우들의 세계>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