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인문 동화? 란 뭘까?
표지에서부터 궁금증을 느끼며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파랑새의
<맘대로 과학자의 적정기술>이었어요.
표지부터 우리
책이라기보다는 번역본처럼 느껴졌고 스토리도 그렇게 느껴졌지만 이 책의 저자는 최형미 작가님이랍니다.
최형미 작가님의 책은 저희 집에도 여러 권이 있거든요. 재미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그런 동화들이죠.
딸아이가 처음엔 과학 책인 줄 알고 관심 없는 듯 뒤적뒤적하더니 금세
읽고 나서는 생각했던 책이 아니고 정말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궁금해서 바로 읽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곧 왜 인문 동화라는 타이틀이
붙었는지 느낄 수 있었지요.
내일을 알 수 없을 만큼 아팠던 어린 카일은 마을 사람들과
자선 사업을 하던 후원자의 도움으로 고향 하울레를 떠나 도시에서 생명을 얻고 새 삶을 살며 과학자와 교수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이루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고향 생각에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결국
아내 요안나의 응원에 힘입어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어요.
평생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썼던 기술을 고향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하면서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카일의 결심에 많은 기업들이 가전제품을
후원하겠다고 하고 방송국에서는 동행 취재를 하기로 했죠.
카일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고향 하울레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신과 하울레를
향한 관심이 오지 마을에 대한 후원과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랐죠.
하지만 그런 바램과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흔들리고
말아요.
하울레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자신이 들고 온 가전제품들은
무용지물이고 방송국 취재도 전기가 없어 이어지기 힘들었죠. 연구소에서 자신을 도왔던 한스가 카일 대신 하울레에 대한 조사를 했었는데 '하울레'가
아닌 '하울래'라는 곳으로 잘못 알고 조사를 했던 거예요.
카일은 너무
준비 없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을 후회했지만 자신이 가진 과학 기술이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기를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지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전기가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해하지도 않고 오히려 전기세 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죠. 더군다나 카일의 옛 친구 콩데는 자신의 마을을 카일 마음대로 바꾸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해서 카일의 마음을 속상하고 답답하게 합니다.
게다가 직접 간이 발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오랫동안 마을의
우기를 점쳐주는 중요한 빗물통과 판을 망가뜨려서 마을 사람들을 어려움에 빠뜨렸어요.
카일은 마을을 위해 전기를 만들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런 카일을
고마워하기는커녕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미신이 아닌 과학으로 마을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카일에게 콩데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네요.
"카일, 우리는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게 아닐세.
-중략-
우리의 하울레를 자네 마음대로 바꾸려고만 하지 말게. 모두가 편한 것만을 좇아 하울레를 떠났다면
자네가 돌아올 하울레가 남아있었겠나?"
카일은 처음엔 콩데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죠.
하지만 아내 요안나와 콩데의 진심은 카일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마을을 위한, 마을에 꼭 필요한 기술로 도움을 주기로 합니다. 없어도 되는 전기가
아니라 생존에 꼭 필요한 물을 찾는 일이죠.
카일은 하울레에 꼭 맞는,
꼭 필요한 펌프와 간이 정수기를 마을 청년들과 힘을 합해 만들었어요. 물론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일에도, 간이 정수기로 물을 정수하는 일도
성공했지요. 마을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했겠죠?
그리고 카일도 마을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들이 게으르고 몰라서 전기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더 급하고 더 절실했던 것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자신이 하울레에 꼭 필요한 것을 찾고, 하울레에 맞게
변화시키려고 한 게 아니라 하울레를 무조건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카일과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그들의 삶의 형식에 맞게 만들기
시작했어요.
물을 구하러 갈 필요가 없어지자 시간적 여유가 생긴
덕분이었죠.
이런 하울레의 변화는 인근 마을로도 퍼져서 하울레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마을을 망치는 기술이 아니라
마을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하울레의 변화는
아주
긍정적이었으니까요.
카일과 마을 사람들은 어렵게 그들을 찾아온 윔덕 마을
청년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주었어요. 윔덕 청년들은 이곳에서 기술과 희망을 안고 떠나갑니다. 카일에게 배운 기술로 윔덕에 필요한, 윔덕에
맞는 것들을 만들어 더 나은 마을을 만들어내겠지요?
그리고 카일은 근처
엄청난 홍수로 피해를 입은 호이젠 마을의 복구에도 마을 사람들과 참여하기로 하는데요. 하울레를 변화시킨 착한 기술로 분명 호이젠도 더 나은
마을로 변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과학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했고 시간적 여유를 제공해주었죠. 인간은 그 시간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활용하고 가치있게 써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들을
되돌아보면 그 여유시간을 더 자극적인 유희에만 쓰고 있는 듯 보여요. 카일 교수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과학 기술이란 반드시 옳기만 한가? 의문을
가져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에게 과학이 준 선물들은 어마어마하게 많고 또 감사할 일이죠. 그러나 그 과학 기술이 가져온 폐해 또한 많은 게
사실입니다.
제목에 나와 있는 적정기술!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나한테 꼭 필요한 기술, 우리 마을, 우리 국가, 우리 지구에 꼭 필요한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나다움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필요한 요즘인 것 같아요.
전기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것, 불편한 것이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것,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가 지금의 넘치는 편리함에 대해서 한 번쯤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네요.
이 책을 읽으며 기술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는 대신 무엇을 가져갔는지 생각해 보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