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인문을 만나다 - 역사와 고전으로 엿보는 19가지 IT 키워드
이범석 지음 / 한빛미디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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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갑자기 인문학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공계뿐 아니라 인문계도 드디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가 했다.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결국 인문을 좇아 융합형 전공을 택한 학생으로서 인문학의 행보가 더욱 궁금했고 관심이 갔다. 그러나 인문과 기술을 엮는 것은, 그것이 정말 가능한지 의심만 들게 했다.


나는 아트앤테크놀로지전공을 주전공으로 인문, 예술, 기술의 적절한 융합을 꿈꿨다. 여기에 인문 학도로서 독일문화학을 복수전공하기까지 했으니, 인문과 기술의 접점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을 내 임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전공의 어떤 수업을 듣든 두 전공 간의 연결 고리를 찾으려 애썼다. 그 노력이 가장 극명했던 때가 '독일문화사' 수업을 들었을 때다.


'독일문화사' 수업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해 볼 주제로 내가 선택한 것은 '독일의 미디어아트'였다. 즉, 독일의 미디어아트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발전하였고, 그 결과 어떠한 강점을 갖고 있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독일의 문화는 세계라는 무대에서 미국에 비해 대중적이지 못한 탓에, 실제로 '강점을 갖고 있는' 독일 미디어아트의 사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좁은 식견으로나마 알고 있는 점들을 연결 지으며 독일의 인문, 예술, 기술의 접점을 발견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가상 현실'이라는 현대의 기술 개념을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작품 '숲길'에서, 또 '웨어러블'을 니체의 작품 속에서 찾는 등 몇 가지의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이후, 누군가 내 전공에 대해 묻거나 인문학과 기술의 관계에 대해 물으면, 이때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답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속이 후련하지 않았다. '인문학과 기술을 어떻게 융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사례를 들 수는 있었지만, 보편적으로 인문학이 기술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답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다양한 책을 찾아 읽고 영상을 찾아 보았지만, 여전히 명쾌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모두 단편적 사례를 이야기하였을 뿐, '그래서 인문학이라는 걸 배우면 기술과 어떻게 융합할 수 있는데?'에 대한,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답답함 속에서 나는 이 책을 읽게 됐다, 'IT, 인문을 만나다'. 이 책은 한두 개의 사례가 아니라 19개의 다양한 사례를 가지고 인문과 기술의 접점을 탐구한다. 다수의 사례 속에서 패턴을 찾고 인과관계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총 19개의 동서양 인문 사례 속에서 현대 IT 기술을 찾는다. 고대 그리스의 전쟁통에서 RSA 알고리즘을, 은혜를 저버리지 않은 춘추전국시대의 자객들에게서 재난구조 로봇을, 먼 거리를 극복하고 자식들에게 사랑을 전하고자 했던 다산 정약용의 편지에서 무크를 본다. 저자가 IT 업종 종사자들에게 인문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글을 쓴 만큼, 어려울 수 있는 인문적 요소도 쉽게 이야기하며 트렌디한 IT 이슈에 접목시킨다. 재미있게 쓰인 19가지의 고전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 속으로 빠져들었더니 그날 저녁에는 꿈에서 내가 영웅이 되었을 정도다.


19가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인문은 1) IT의 기원으로 돌아가 그 본질을 보게 하고, 2) IT를 잘 운용할 수 있도록 롤모델을 제시해준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IT 기술은 특히나 그 발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작은 것들을 놓치거나, 뒤처지거나, 그 속도에 압도되어 무력해지기 쉽다. 따라서, 비슷한 상황을 이미 겪고 그 끝을 본 사람의 지혜를 빌리는 것, 혹은 같은 아이디어를 다르게 보는 사례를 접하며 생각을 환기해 보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따뜻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볼 용기를 얻는 것, 이런 것들을 인문에 기대하는 게 아닐까?

장자가 복수 강가에서 낚시하고 있는데 초나라 왕이 대부 두 사람을 보내 왕의 뜻을 전했다.
"부디 나라 안의 일을 맡아 주십시오."
장자는 낚싯대를 쥔 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듣기에 초나라에는 신령한 거북이 있는데 죽은 지 3천 년이나 되었다고 하더군요. 왕께서는 그것을 헝겊에 싸서 종묘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지만, 그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긴 채 소중하게 받들어지기를 바랐을까요?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까요?"
"그야 당연히 살아서 진흙탕에 꼬리를 끌고 다니길 바라지요."
"그렇소. 어서 돌아가시오. 진흙탕에 꼬리를 끌고 다니면서 살게 나를 내버려 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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