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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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남주의 도서평이 먼저 들어온다.


일본 헌병과 바람나 가족을 버린 할머니, 살림 솜씨가 엉망인 어머니, 이혼 위자료로 받은 건물 하나 믿고 사는 딸. 얼핏 삼대에 걸쳐 여자들이 집안을 말아먹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런데 그녀들의 곁에 유약하고 경솔한 할아버지, 가족부양은 팽개치고 정치판에만 기웃거리는 아버지, 변변한 직장도 목표도 없이 술만 마니고 다니는 아들이 있다면? 남자들로 말미암은 거대한 균열을 바지런히 메우는 여자들. 그런데도 정숙하지 못하다고, 엄마답지 못하다고, 계산적이고 영악하다고 비난받는 여자들. 지겹도록 구태의연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여성 비하와 낙인에서 손녀와 며느리와 자기자신을 구해내는 유쾌한 할머니의 이야기. "할매가 돌아왔다"는 시대를 너무 앞섰던 소설이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 처음에는 위와같은 생각을 전혀하지 못했었다. 나역시 등장하는 여성주인공들이 왜 이리 억척스럽기도 모자라, 계산적인지 어머니를 비난했고, 할머니는 어쩜 저리도 뻔뻔하게 67년간이나 비웠던 자리로 들어갈수 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이역시 사회에 깊숙히 자리잡은 남성중심의 여성비하적인 사고가 나에게도 있음을 말해주는게 아닐까? ㅡ,ㅡ;;

왜 금강이 비단 강인 줄 아냐? 저녁때 노을이 강에 내리면 그리 많지도 않은 물살이 비단처럼 빛을 내는 거야. 그냥 환하게 빛을 내는게 아니라 비단처럼 은은하게, 고급스럽게 그렇게 반짝이고, 빛이 수면 위를 흘러다니는데, 아무튼 참 예쁜 강이란다.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라서 더 예쁜 그런거 있잖아.

사람이 아무리 머리로 산다고 해도 가슴이 한번 동하면 머리 같은 건 정말 쌀 한 톨보다도 못한게 되더라고. 나중에 후회를 해도, 다시 그 순간이 돌아오면 어쩔 수 없이 또 가야 하는 길.

 

 

 

 

소설속 할머니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놓은 책표지의 모습처럼 할머니의 등장으로 유쾌,상쾌,통쾌하게 남성주의 사회에 주먹을 날리는게 아닐까 싶다.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을 밀고하고, 일본헌병을 따라 도망갔다던 할머니의 67년만에 등장! 독립운동을 하고, 평생교육자로 살아왔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등장과 함께 그간의 고귀한 품성은 사라지고,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거칠게 또는 저급하게 내뿜는다. 할머니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던 가족들은 할머니의 60억 유산이야기에 돈에 대한 민낯을 드러낸다.

할아버지를 이어 교육자로 살았지만, 진보주의자입장에서 정치에 대한미련을 버리지못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로 인해 평생을 슈퍼운영하며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어머니, 그리고 모든시험과 입사에 낙방하고 제앞가림도 못하는 아들, 야무지게 제 삶을 살아가지만 이혼 후 경제적문제로 힘들어하는 딸이 있다.

각자만의 이유로 할머니의 60억을 탐내는 가족들..~

그리고, 할머니의 60억이 사실인지, 아닌지 밝혀내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의 긴긴 세월에 대해 궁금해하는 가족은 없는 부분에 대해 기분이 씁쓸해진다.

그 과정에서 남성위주의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되어 있는 주위의 이야기, 돈이면 모두 해결이 될거같은 물질만능주의의 이야기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 사회의 가장큰 피해자가 바로 할머니 아닐까?

신분제도의 잔재속에 무참히 남성의 폭력을 견뎌야 했고, 해방이후 일본으로 건너가지만..또 일본인의 폭력에 견뎌야했던..지금 이시대의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뻔뻔함과 당당함으로 무장한 할머니의 등장으로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무너져가던 여자라는 이름의 다른 조연들은 하나 하나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어쩌면, 지금의 이 시대를 가장 고전적인 신파로 꼬집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비록 고향땅을 밟지는 못했지만(밟지못한사유는 책에..)

그동안의 삶이 돌아보면 행복이었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매순간의 행복에 최선을 다하라고 이야기하는게 아닐까?

돌아보면 모든 것이 행복이었다. 후지오카에게 난 홍련이었다. 누군가에게 평생 꽃이었다는 것, 멋지지 않니? 스티브의 따듯한 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하루 일을 끝내고 그의 품에 안겨 석양을 바라볼 땐 매 순간이 행복이었다. 네 할아비는 내게 열정이었다. 휘중당은, 아마 내가 홍갭이와 결혼했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잊지못할 꿈이었을거야. 그 꿈과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재회를 했으니, 정말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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