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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평점 :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연재할 때부터 챙겨보았던 백은선 시인의 산문집이 출간되어서 무척 기뻤다. 인터넷 연재 때의 제목은 "우울한 나는 사람이에요"였다. 사실 이 제목이 나는 더 좋았다. 보통 사람들은 "나는 우울한 사람이에요"라고 문장을 쓸텐데 시인은 단어의 위치 하나를 바꾸어 매우 새롭고 색다른 제목을 만들어냈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에요"라는 문장은 내가 우울하다는 정보 밖에 갖고있지 않지만, "우울한 나는 사람이에요"라고 한 단어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내가 우울하지만 그래도 사람이다 + 우울한 사람도 사람이다, 라는 의미를 더한다.
새로운 제목 또한 매력적이다. 내가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는, 자신을 향한 이 복잡한 감정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임과 동시에 견디기 쉽지 않은 감정이기도 하다. 이런 대중적이면서도(누구나 겪는) 철학적이고(자아성찰) 진지한(내가 아프므로) 제목은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누가 장르별로 책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읽어라.
일단 백은선 시인의 글이 아닌가, 이 책은 산문집이 분명하지만 시의 운율을 가지고 있고 시적인 이미지와 시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읽어라.
꾸밈도 과장도 없이 진술하는 한 사람의(시인의, 여성의, 엄마의, 딸의, 가사노동자의, 교사의,돌 수집가의, 다시 시인의) 삶만큼 맵고 짜고 쓰고 달고 차갑게 뜨겁게 울리는 이야기가 있을까.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읽어라.
우리가 에세이를 읽는 목적이 한 인간의 삶과 내면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서라면 백은선 시인의 이 책만큼 적절한 책도 드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담담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갑작스레 발 밑이 꺼지는 허방의 느낌을 받기도 하고 사방이 벽으로 막힌 좁은 방에 갇힌 느낌을 받기도 한다. 가부장제 사회의 불합리와 고통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목소리에 안타까워하다가도 여성에 대한 긍정과 연대로 든든한 응원을 받기도 한다.
따뜻하고 다정한 교훈으로만 이어지는 순한맛 산문집에 지친 독자라면 이 맵고 짜고 달고 쓴 백은선의 산문집을 읽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