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각자의 덮어둔 구멍이 있다. 우리는 그 구멍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구멍을 덮어놓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구멍은 무언가의 상실이거나 되돌릴 수 없는 상처다. 우리는 그 구렁텅이의 가장자리를 벗어날 수 없어서, "그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을까 늘 경계를 해야 한다. (⋯) 부러 빠질 마음을 먹지는 않으나, 그것의 존재로 인해 늘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구렁"(240)이다.

구렁의 가장자리에서, 구렁을 덮어놓고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토록 담담하고 처연하다. 그것들은 대개 삶이 채 무르익지 않은 어리거나 젊은 날의 기억이다. 그래서 더욱 섬세하고 여리며 맑다. 하지만 들춘 구멍을 다시 덮은 채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지금의 그들을 상상하는 일은 꽤나 아픈 일이다. 그들은 여전히 덮어놓은 구멍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구멍 속에는 각자의 어둠이 웅크리고 있다. 그러한 구멍을 덮어놓고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구멍을 덮어놓을 수 있을 만큼의 빛과 용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잔인한 짓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안개 속의 꿈을 믿으면서"(249) 살아갈 것이다. 이토록 우리는 맑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어둠 바깥의 '빛과 물질'에 기대어 있는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