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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ㅣ 문학동네 시인선 111
이현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사랑은 실패한다. "손끝만 닿아도 스륵 풀려버릴 것 같은 매듭들"처럼, 우리의 사랑은 너무나도 쉽게 떠나가버린다. 실패하는 것이 사랑의 본모습이라면, "곁에 없는 사람만을 우리는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빈자리로서만 실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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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는 이러한 마음의 빈자리를 궁구한다. 당신이 없는 빈집에 앉아 없는 것과 잃어버린 것의 자취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가진 적 없는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며", "빈자리가 가장 짙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당신이 없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직유를 던지며" 노는 것 뿐이다. 직유는 대상에 한없이 가까워지기만 할 뿐 영원히 닿지 못한다. 이곳엔 당신이 없고, "당신같이 당신처럼 당신인 듯이" 있는 것들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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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다. 당신이 떠난 빈집에서 나는 혼자다. 키에르케고르의 '신 앞에 선 단독자'처럼, 말하자면 이현호의 화자는 지금 '당신 앞에 선 단독자'다. 이때의 삶은 거창한 실존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사라진 삶은 위태롭다. 그러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을 잊고 오로지 생활할 뿐이어야 한다. 그 어디에도 내 삶을 향하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나를 생활한다"는 것이다. "철학의 대가들이 삶의 전문가는 아니라고" 말하며, 당신 없는 지금의 생활을 오로지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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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삶은 지탱된다. 마음의 빈자리를 받아들이며 사소한 생활을 모두 살아냄으로써 삶은 계속된다. 그러다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다. 사랑은 반드시 실패하고, 언제나 "나와 함께 나는 혼자"일 것이다. 혼자된 내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 불가능한 사랑을 긍정하는 또하나의 방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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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름다운 혼자를 생활하는 것으로 이현호는 계속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더듬지 않으면 지워져버리는 꿈이 있"으므로, 끊임없이 빈자리를 더듬는 것이다. 사랑의 이후를 아는 나는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욱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무섭게 사랑해야 할 것만 같았다"면서. 그렇게 사랑은 무섭게 진행되고, 또다시 빈자리를 더듬을 것이다. 괜찮다. 우리 다 알지 않는가. 사랑은 언젠간 떠나고, 혼자가 된 우리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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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응, 나도 잘 지내"
이현호의 마음은 이토록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