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자
정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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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그렇다고 아주 길지도 않은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면서 모두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이야기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이야기면서 살인자의 이야기다.

생의 이야기면서 죽음의 이야기다.

인간을 구원할 신의 이야기면서

무엇도 파괴할 수 있는 자연의 이야기다.

기독교의 이야기면서 이슬람의 이야기다

종교 이야기면서 사람의 이야기다.

악의 이야기면서 선의 이야기다.

전쟁의 이야기면서 평화의 이야기다.

서양의 이야기면서 동양의 이야기다.

과거의 이야기면서 현재의 이야기다.

전생의 이야기면서 지금 여기의 이야기다.

 

우린 모두 유랑자..

보이는 모든 길이 길이라서 정작 갈 길을 모른다. 잃는다.

우린 모두 유랑자..

우주의 모든 것이기에 아무것도 아니다.

완벽하게 비워야 비로서 채워지는 신비한 풍경

그 곳에 서 있으면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무엇을 만나고 싶은가..

우린 모두 유랑자.

 

인간 역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본과 종교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의 필요에 의해 종교는 갈기갈기 변신했다.

이 책은 종교의 원형에 대한 흐릿한 스케치다.

인간 역사의 한 기둥인 종교를 통해서

인류의 삶과 죽음을 설명한다.

시간과 공간의 뒤엉킴이 흥미롭다.

인간과 인간 사이, 그 인연의 뒤틀림이 무섭다.

중세 십자군 전쟁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한국전쟁을

오버랩시켜서 인간의 최선과 최악의 행동들을

나열하고 서술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전생이라는 다소 진부해진 소재로

이렇게 탄탄한 흥미와 몰입를 불러일이킬 수 있는

작가의 문장력이 보기 좋다. 읽기 좋다.

정찬이라는 세계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

혼동, 혼미, 혼절, 혼란스럽지만

나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는 진리의 그림자가 얼핏 보인다.

서성인다. 아무도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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