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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2.0 - 일상 속으로 파고든 '경제학의 재발견'
노르베르트 해링 외 지음, 안성철 옮김 / 엘도라도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부모들 때문에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애를 먹는다. 그런 부모를 규제하는 방법은 뭘까? 쉬운 방법 가운데 하나가 벌금을 매기는 것이다. 그러나 벌금을 매겨도 부모들의 행태는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이 조사해 보니, 벌금제를 시행한 다음부터 부모들은 전보다 더 많이 늦었다. 단지 더 늦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늦는 부모들의 태도가 더 태연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경제적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주류경제학의 기본 가정인데, 그 가정에 정반대인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벌금을 매기자 더 늦게 오는 부모들
경제학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전에는 늦는 게 교사와 부모의 인간관계 문제였다. 그런데 벌금제에서는 돈의 문제가 되었다. 부모는 늦은 것에 대해 돈으로 벌충하면 된다. 따라서 교사에게 늦었다는 미안함을 느낄 필요도 없어져 오히려 당당해 졌다. 돈을 지불한 것에 대한 권리가 생긴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너무도 흔한 일이지만, 경제적인간이라는 경직된 경제학 가설에 대한 경제학적인 분석이란 점에 의미가 있다.
택시 안에서 이 얘기를 해주자 같은 직장의 팀장은 깜짝 놀란다.
“어 그러면 지각하는 사람에게 벌금 매기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겠네요?”
지각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지각을 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으로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방법이 꼭 올바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코노미 2.0’은 이처럼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경제적 가설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는 책이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웃자는 차원의 역설이 아니라는 점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기존 주류경제학의 기본전제인 경제적 인간, 다시 말해 돈을 중심으로 사람이 움직인다는 주장에 대한 반기를 들고 있다. 그 논리전개는 개인과 집단의 심리행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특히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경제적 행위가 달라지는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언젠가 중국 외교관의 면책특권과 한국 경찰의 음주검문이 쟁점이 된 적이 있다.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이야말로 그런 면책특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경제학자들이 그 뉴욕에서 면책특권을 활용해 주차위반을 하는 외교관들을 분석해 보았다.
외교관들은 누구나 주차위반을 해도 벌금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외교관들이 그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별로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출신국가의 부패 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면책특권이 있어도 주차위반을 하지 않는 외교관
1997년부터 2002년의 5년 동안 쿠웨이트 외교관들은 1인당 246회의 주차위반을 했고, 이집트 외교관들은 139회, 차드 외교관들은 124회씩을 했다. 반면 같은 기간에 독일 외교관들은 1인당 딱 1번 주차위반을 했다. 스위스, 네델란드, 스칸디나비아 외교관들은 딴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가장 주차위반을 많이 한 외교관들의 출신국 10개국은 국가별 부패 순위에서도 좋지 않은 성적을 보였다.” 반대로 부패 정도가 낮은 국가의 외교관들은 자신의 특권을 남용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로부터 연구자들은 이런 결론을 도출한다. 사회적 부패의식은 그 국민들에게 깊숙이 뿌리박혀 있고, 벌칙을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축구경기와 같은 경제와 동떨어져 있는 듯한 주제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른 연구결과들을 보여준다. 이긴 팀에게 2점이 아니라 3점을 주면 골이 더 많이 나서 흥미진진한 축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유럽의 프로리그를 분석한 결과 정 반대였다.
“더 큰 골 차이로 이기는 비율이 줄어들었다.” 스페인 리그를 분석한 연구자들의 말이다. 규칙이 바뀌기 전 1골차 승부는 31%였지만, 규칙이 바뀐 후에는 40%로 늘었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조사한 결과 경기당 골 수는 2.9개에서 2.8개로 줄었다. 또 1대 0으로 끝난 경기가 12%에서 14%로 늘었다. 왜 이렇게 의도와 다른 결과가 일어난 걸까?
3승점제가 오히려 공격축구를 방해
새로운 규칙은 경기 초반에만 영향력이 있을 뿐 시간이 지나면 효력이 떨어진다. 이기고 있는 팀은 새로 골을 넣기보다는 수비를 강화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규칙이 바뀌기 전에는 동점골을 먹으면 승점 1점을 잃지만, 이제는 승점 2점을 잃게 된다. 그래서 선제골을 넣은 다음에는 공격수를 빼고 수비수를 투입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심지어 반칙과 경고 횟수도 늘었다고 한다. 이기는 팀에 점수를 더 준다는 매력에 대한 반작용이 처음 의도한 이점을 상쇄해 버린 것이다.
“골 득실차에 따라 추가점수를 주면 되겠네요.”
책 얘기를 들은 후배의 제안이다. 바둑에서는 승패만 따지는 게 원칙이지만, 내기바둑에서는 집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원리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개인재무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게 된다. 소득이 많아져 저축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란 가능성은 3승점제로 바뀌어 경기 초반 서로 먼저 골을 넣으려고 하는 시기와 비슷하다. 이긴 팀이 2점을 잃지 않기 위해 수비를 강화하는 것처럼, 소득이 늘어나면 지출도 따라서 늘어난다.
효율만을 따진다면 가족을 해체해야
‘이코노미 2.0’를 읽으면서 나는 ‘경제적 인간’이란 명제를 새삼스럽게 되돌아보았다. 과연 사람들은 경제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가? 내가 그렇게 살았던가? 전혀 아닌 것은 아니지만, 나와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편협하지는 않았다.
“협동조합 하면 왠지 효율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난 연초 강화의 한 모임에서 아는 사람이 한 말이다. 순간 이런 반론이 떠올랐다.
“정말 효율을 따진다면 가족을 해체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족이야말로 경제적 효율을 따지지 않는, 어떤 면에서는 가장 철저한 협동조합이라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내게 경제학이나 경제학자는 효율성만을 따지는 집단으로 여겨졌다. 그런 내게 ‘이코노미 2.0’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경제학자들도 많다는 인상을 남겼다.
현실과 동떨어진 거시경제학 또는 난해한 수학공식 같은 경제학으로만 생각했던 경제학이 이 책을 읽으면서 친근하게 다가왔다. 특히 개인의 재무문제를 상담하는 나로서는 더욱 더 인간의 모습을 한 경제학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사람 냄새는 나지 않으면서 경제적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이 책에 더 애착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아, 경제학자들이 다 그런 효율 만능주의자는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