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시장에 관한 6가지 질문
이정전 지음 / 한길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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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결론부터 말하자. 이 책의 저자는 결코 시장의 기능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가 시장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곤 단지 ‘네 자리를 지켜라’하는 것뿐이다.

물론 노동시장과 소비자 시장을 비교하면서 노동시장이 야기하는 ‘인간소외’ 현상과 소비자 시장이 반영하는 ‘일그러진 욕망’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마르크스의 우려를 되새기지만 마르크스가 그러했듯이 저자 역시 시장의 기능성만은 인정하고 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사회의 전 영역에 미치는 시장의 힘이다.

시장은 가정도 ‘합리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학교도 ‘경제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정치 역시 시장의 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을 하느냐가 어떤 사람을 만드느냐를 결정한다”는 명제는 이 책의 기본명제이자 이처럼 시장이 영역을 무시하고 판치는 현실에 대한 경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시장의 저주를 막아내고 인류를 구해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처음부터 사회적 자본이라는 답을 향해 치밀하게 자신의 견해를 펼친다. ‘치밀하게’라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답을 정해놓고 가는 길이기에 저자에게 길은 순조로워 보인다.

도덕심 함양의 중심단위인 가정을 토대로 하여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사회 공동체가 시장의 월권행위를 막아내는 열쇠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이타심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절대적 믿음으로 이러한 주장을 펼친다. 순조롭지만 ‘경제적’ 논의도 살펴보는 저자의 균형잡힌 시선에서 우리는 저자의 믿음에 일순간 동조하면서도 이러한 믿음이 어쩐지 욕망과 이기심이라는 또 다른 ‘우리’의 본능 앞에 무력해 보인다.

경제적 ‘난쟁이’일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욕심을 조금 버리고 그만큼 사회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은 너무 이상주의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잠들기까지 각종 상품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환상을 심어준다. 환상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소비는 마약처럼 우리의 갈증을 감질 맛 날 정도로만 해소하고 더 큰 욕망으로 이끈다.

그래도 이 책의 매력이자 강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상품이나 생산요소 대신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물건보다는 ‘인간’으로 대접해주기를 원할 것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약간 용기와 희망이 샘솟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우리의 조그만 용기가 당장 ‘난쟁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지만 ‘난쟁이’의 자식들을 행복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미래의 일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코웃음치고 있다면 이런 확률을 따져보는 것은 어떨까.

나와 나의 자식, 그리고 또 그 자식들이 평생을 난쟁이로 살아가면서 거인이 되려고 거인과 어울려 놀다가 거인들의 발에 밟힐 확률과 ‘우리’ 난쟁이들이 스스로 난쟁이임을 인정하여 목소리를 울려 모두가 똑같은 인간의 자격을 얻을 확률, 이 두 가지 확률을 정확히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다시 불안보다는 희망이 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나의 독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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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
제임스 트위첼 지음, 김철호 옮김 / 청년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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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욕망,광고,소비의 문화사> 이책의 원제를 풀이하면, '세계를 놀라게 한 광고 이십편; 20세기를 바꾼 광고. 그것은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켰나>라고 할 수 있겠다..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세 단어를 역자의 수고를 실례하자면 욕망, 광고,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욕망, 광고, 소비란 세 단어는 다시 이렇게 그 과정을 정리할 수 있다.

욕망 -> 광고 -> 소비 -> 욕망 -> 광고 -> 소비 -> 욕망 -> 광고 -> 소비 ->......

광고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매커니즘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는 이책은 광고와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이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광고를 소비한다는 것이 욕망 충족의 과정이 아니라 욕망 생산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끊임없는 욕망의 재생산으로 소비를 촉진한다는 광고의 커다란 악덕에도 불구하고 광고는 당대의 문화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문화적 코드의 총체로 읽힌다는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그 분석적 가치를 지닌다.

이책의 저자 '제임스 트위첼'은 광고라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첨단 예술양식에서 '두드러지는-광고의 본성과 역사적 발전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례 20가지를 골라서 광고란 무엇인지에 대한 훌륭한 개론서를 써내려가고 있다.

대부분의 개론서가 형식을 갖추어 저자의 지식을 과시함으로써 독자에게 지레 겁을 집어먹게 만들어 결국 체념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이책의 미덕, 즉 '실감난다', '알기쉽다'를 넘어 '나도 알 것 같다', '내가 생각하던 것이다'라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이건 무슨 광고에서 나오던 것인데..'라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과 비교한다면 '개론'이라는 이름 자체가 면목없음을 느낄 만 하다.

이는 광고 자체가 우리가 매일 호흡하는 그 무엇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가지는 미덕의 대부분은 저자가 지닌 동시대에 대한 풍부한 감성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광고의 속성에 대한 이해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새삼 한국의 학계에도 진정한 개론서가 보다 많이 출현하기를 아쉽게 기대하게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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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소설전집 1 - 생명연습 외 김승옥 소설전집 5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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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보편과 현실을 동시에 담아내는 것인 진정한 고전이라면 김승옥의 소설은 현대 한국사회의 고전이라 일컬을 만하다. 그의 소설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원동력과 그 구체적 현실을 꿰뚫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의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단연 '무진기행'이다. 그의 소설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진'에 살던 때를 상기시키면서도 다시 일상의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인이 자신의 젊은날 방황과 회의를 현실의 비루한 감정으로 엮어내 하나의 빈틈없는 과거로 남기는 작업이 '무진기행'이라면 김승옥 소설은 이를 가운데 두고 두개의 세계가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하나가 소년이 일상인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담은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일상에 대한 연민을 그리고 있다. 전자가 '乾','염소는 힘이 세다','力士'의 세계라면 후자는 '차나 한잔','들놀이','우리들의 낮은 울타리','서울의 달빛 0장'의 세계이다. 즉, 김승옥은 작품을 통해 '도시',혹은 근대의 일상과 마주친 회의적 지성이 어떻게 일상인이 되어가는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무진기행'이 이러한 과정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는데도 김승옥 소설의 핵이 되는 것은 '무진'에서 무기력과 허무가 없었다면 작가에게 창작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바로 '무진'은 일상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회의하는 지성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의하는 지성의 한계로 우리는 김승옥 소설에서 근대적 일상의 비루함에서 벗어나는 희망을 엿볼 수는 없다.

작가 김승옥이 취하는 최대한의 낙관적 제스처란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를 지키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누이를 이해'한다는 거짓된 명분으로 도시에 정착하면서 '힘이 센 염소'를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남들이 다들 가는 '들놀이'에 따라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고, '그와 나'의 관계는 '차나 한잔'하는 시간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들 한때는 '力士'였겠지만 결국 '서울 1964년 겨울'의 일상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게 회의적 지성의 목소리인 것이다.

김승옥 소설의 이런 메세지에 뭔가 해답을 바라던 우리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 그 우울함을 치료하는 것은 아마 대부분의 김승옥 소설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폐쇄된 사유의 공간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설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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